최근 우린 또 한 명의 위대한 힙합 아티스트를 잃었다. 무려 30년 넘도록 활동해오며 많은 이로부터 리스펙트를 얻은 래퍼이자 프로듀서, 엠에프 둠(MF Doom). 2020년의 마지막 날에 날아든 그의 사망 소식은 아티스트, 팬, 산업 관계자 할 것 없이 모두를 충격과 슬픔에 빠뜨렸다. 과거 엠에프 둠과 작업했던 아티스트는 물론, 그의 음악을 좋아했던 많은 아티스트가 애도를 표했고, 매체들은 연일 죽음과 업적을 기리는 콘텐츠를 쏟아냈다. 이미 10월 31일에 세상을 떠났지만, 두 달이 지나서야 알려진 현실에 마음이 서글퍼지다가도 사망 이후의 반응을 보며, 그의 존재감에 새삼 놀란다. 비록, 범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적은 없지만, 힙합 씬에서 손꼽는 기인이자 언더그라운드 힙합의 상징이었다.

아마도 많은 이가 그의 독특하고 멋진 마스크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마블 코믹스의 대표적인 슈퍼 빌런, 닥터 둠의 가면을 형상화한 마스크는 제브 러브 엑스(Zev Love X), 킹 기도라(King Geedorah), 빅터 본(Viktor Vaughn) 등등, 그가 내세웠던 여러 자아 중에서도 엠에프 둠을 가장 익숙한 캐릭터로 만들었다. 대부분 영웅을 꿈꿀 때 악당을 자처한 그의 매력적인 악취미는 전례 없는 스타일의 음악으로 발현되어 설득력을 얻고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엠에프 둠은 엄청난 다작가이자 레코드 디거(Digger)였다. 오랫동안 쌓은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독보적인 샘플링과 로파이(Lo-Fi) 힙합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고전 소울과 펑크(Funk) 음악은 물론, 제3세계 음악과 옛 영화 사운드트랙 등등, 다채로운 소리를 재료로 삼았다. 심지어 TV 토크쇼에서 나온 사운드 효과도 활용했다. 특히, 단 한 곡만으로도 샘플을 자르고 붙이는(Cut & Paste) 구간을 조정하고, 재배치의 묘를 살려서 기가 막힌 비트로 창조해냈다.

그가 남긴 많은 명곡 중 ‘Hey!’를 예로 들어보자. 애니메이션 ‘스쿠비 두, The New Scooby-Doo Movies’의 주제가를 샘플링한 곡이다. 원곡에서 잔뜩 긴장감을 조성하는 도입부의 사운드 효과를 잘라 루프를 만든 다음, 바로 이어진 관악 파트를 적재적소에 삽입하여 임팩트를 주었다. ‘Hey!’는 기술적인 측면과 무드, 양면에서 엠에프 둠의 프로덕션이 지닌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 할 만하다.

그는 래퍼로서도 출중했다. 1988년, 동생 디제이 서브록(DJ Subroc)과 케이엠디(KMD)란 그룹으로 데뷔했을 때부터 풍부한 어휘력과 번뜩이는 비유를 무기로 프로덕션 못지않게 개성 있는 랩을 선보였다. 초기엔 사회, 정치적인 주제를 주로 다뤘지만, 이후엔 가상 캐릭터를 통해 비현실적인 주제까지 범위를 확장했다. 그의 라임이 때론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많은 이가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야말로 엠에프 둠의 랩이 지닌 강점이었다.

엠에프 둠은 샘플링의 미학에 심취한 프로듀서들은 물론, 타 장르 아티스트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엠에프 둠의 ‘Gazzillion Ear’를 리믹스한 바 있는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Thom Yorke)가 추모하는 글에서도 밝혔듯이 그의 천재성은 실로 눈부셨다. 마스크를 쓰고 무대를 휘어잡던 그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가 비트 안에서 편히 쉬길 바란다.
TRIVIA

킹 기도라와 빅터 본

엠에프 둠만큼은 아니지만, 킹 기도라와 빅터 본 또한, 그를 상징하는 캐릭터였다. 킹 기도라는 일본이 낳은 유명한 대괴수이자 고질라의 숙적, 기도라에서 빌려온 것이며, 빅터 본은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시간 여행도 불사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다. 그는 캐릭터에 따라 구사하는 음악과 랩의 내용을 달리했다. 킹 기도라로서는 2003년에 ‘Take Me to Your Leader’를, 빅터 본으로서는 각각 2003년과 2004년에 ‘Vaudeville Villain’과 ‘Venomous Villain’을 발표했다.
글. 강일권(리드머, 음악평론가)
디자인. 전유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