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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석
사진 출처. 빅히트 뮤직

‘봄날’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노래다. 방탄소년단은 “머물러줘”로 노래를 끝맺는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우린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호소다. 그러나 “줘”를 부르는 순간 목소리 뒤의 수많은 소리들이 사라진다. 마치 배경이 낮에서 밤으로 갑자기 변한 것처럼, ‘봄날’은 목소리를 적막한 공간에 가둬 놓고 끝나 버린다. 너를 만나러 가겠다는 토로의 노래가 내 곁에 누구도 없는 정지된 순간으로 끝나는 이 역설은, 노래를 다시 재생해야 벗어날 수 있다. 어둡고 적막한 노래 속 공간은 다시 ‘봄날’이 시작되면 차분하게 흘러가는 메인 리프와 건반 연주와 함께 시간이 앞으로 흘러간다. 물론 그 끝에는 모든 것이 멈추는 어둠이 다시 기다린다. 그러나 노래를 그대로 끝내버리면, 어둠 속에 내 목소리를 가둬 놓으면, 시간은 다시는 앞으로 흐르지 않는다. ‘봄날’의 뮤직비디오는 뷔가 눈 내리는 기차역에서 멀리서 오는 기차 소리를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가 기차를 탄다고 해서 “너”가 기다리는 “그곳”에 도착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그를 홀로 있던 눈 내리는 기차역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줄 수는 있을 것이다. 노래로서의 ‘봄날’이 정지된 시간을 다시 흘러가게 한다면, 뮤직비디오는 정지된 공간을 이동시킨다. ‘봄날’은 결국 “너”와 재회하지 못한 채, 인생의 어떤 시간과 공간에 멈춰 버린 사람의 노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순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애쓰는 마음의 여정이다.

슈가는 방탄소년단의 오피셜 북 ‘BEYOND THE STORY : 10-YEAR RECORD OF BTS’에서 ‘봄날’의 가사를 쓴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그냥 되게 미웠어요, 그 친구가. 진짜 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어서요.” 그가 ‘봄날’에서 “그래 밉다 니가 넌 떠났지만 단 하루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지 난 솔직히 보고 싶은데 이만 너를 지울게 그게 널 원망하기보단 덜 아프니까”라고 했던 이유. 수많은 순간을 함께했던 그 사람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그런데 나는 계속 산다. 마음의 겨울에서, 생의 어느 순간에 멈춰 있는 사람이 흘러가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과정. 동시에 그 정지된 순간으로부터 떠날 수도, 떠나서도 안 될 것 같은 마음. ‘봄날’의 도입부는 메인 리프와 건반 연주가 선명하게 부각된다. ‘봄날’의 서정적인 분위기에는 도입부의 두 소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두 소리는 뒤로 물러나고, 그 위로 다른 많은 소리들이 쌓인다. 곡이 전개될수록 두 소리의 속도 또한 빨라진다. 멜로디가 부각됐던 소리가 점점 빠른 속도로 반복되면서 비트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뒤로 물러나며 방탄소년단의 노래에 대한 배경이 된다. “마음은 시간을 달려가네 홀로 남은 설국열차”는 ‘봄날’의 표현 방식을 함축한다. 동명 소설과 영화 속에서 설국열차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추위에서 철로를 따라 끝없이 이동한다. 그렇게 홀로 있는 마음은 시간을 끝없이 달려 상실의 대상을, 상실의 순간을 헤집는다. 슈가가 “이만 너를 지울게 그게 널 원망하기보단 덜 아프니까”라고 하기까지 그의 마음속에는 얼마나 많은 슬픔과 분노와 원망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쉴 새 없이 회한이 치미고, 가라앉고, 다시 다가온다. 하지만 슈가는 결국 그 감정들을 극도로 정제된 언어로 승화시켰다. ‘봄날’의 사운드처럼 점점 더 빠르고 복잡해지는 마음을 뒤로한 채 덤덤하게 가사를 전하는 목소리. ‘봄날’의 멜로디는 좀처럼 감정을 쏟아내지 않는다. 노래에서 가장 격정적인 순간 중 하나인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얼마나 기다려야 또 몇 밤을 세워야 할까”를 부를 때에는 중심에 서는 목소리 외에 낮고 작은 목소리로 멜로디를 따라가기도 한다. 참을 수 없는 감정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담담하게 되돌이켜 정리하는 그 소리 없는 아픔의 과정을, 그 언어화할 수 없던 삶의 복잡한 고통이 ‘봄날’에 담겨 있다. 그래서 ‘봄날’은 슬픔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 그 자체를 보여주는 동시에, 예술이 되는 어떤 삶에 대한 기록이다. 누군가 상실에 관해 타인에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리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정지된 순간에서 흐르는 시간으로 이동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심지어 타인까지 배려하면서.
 

음원이 “머물러줘”에서 그대로 끝나는 것과 달리, ‘봄날’의 뮤직비디오는 곡 후반에 등장하는 함성과도 같은 코러스를 반복하며 끝난다. 음원에서 다른 소리들에 묻혀 배경과도 같은 역할을 하던 코러스는 이때 더 크게 부각되고, 격정적인 기타 연주가 더해진다. 영상 속에서는 방탄소년단이 큰 나무 앞에 선다. 그들이 타고 있던 기차는 다른 곳으로 떠나가고, 지민은 신발 한 켤레를 손에 들고 있다. 신발이 나무에 걸린 뒤 뮤직비디오는 끝난다. 나무는 아직 잎이 피지 않았지만 땅에 뿌리내렸다. 설국열차처럼 영원히 주행이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열차에서 내려 새로운 땅에 뿌리내리는 삶. 많은 이들의 삶은 그렇게 새로운 정착지를 찾지는 못한다. 상실이 더 아픈 것은, 평범한 삶의 반복 속에서 혼자 감당하고 또 감당하고 또 감당해야 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봄날’의 음원이 일상에서 상실을 견디며 정리하는 과정 그 자체라면, 뮤직비디오는 그 수많은 상실의 날들 끝에 언젠가 올 수도 있는 한 시절의 끝을 보여준다. 언젠가는 이 고통의 날들에 끝이 있을 거라고.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뮤직비디오처럼 눈에 보이는 종착지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매일 조금씩 마음속에 나무를 키울 수는 있다. 아직 잎은 없지만 조금씩 내 마음에 뿌리내리고 자라는 삶. 상실로 갈라진 마음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그 땅에서도 나무는 자란다. 그리고 어느새 깨닫게 된다. 나는 과거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있지만, 동시에 내 생각보다 앞으로 많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방탄소년단이 2017년 2월 13일 ‘봄날’을 발표한 것은 그들의 커리어에서 첫 번째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었던 ‘화양연화’와 ‘WINGS’를 거친 시점이었다. 2015년 발표한 두 장의 ‘화양연화’ 앨범을 통해 그들의 인기는 치솟았고, 2016년 ‘WINGS’를 발표한 뒤에는 Mnet ‘MAMA’에서 ‘올해의 가수’를 수상했다. 그리고 ‘봄날’이 실린 ‘YOU NEVER WALK ALONE’을 발표한 얼마 뒤부터, 이 팀에게는 전 세계 대중음악사를 바꿔 놓을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광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미래가 시작되는 순간, 방탄소년단은 ‘봄날’을 통해 지금 함께하지 못하는 과거의 모든 이들을 돌아본다. 누군가는 방탄소년단처럼 성공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이 자리에 없다. “벚꽃이 피나봐요. 이 겨울도 끝이 나요.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시간이 흘러 겨울이 끝나가는 것은 함께했던 그 순간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의미기도 하다. 슈가가 친구에 대해 가졌던 고통의 시간처럼, ‘봄날’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은 이제는 볼 수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의 또 다른 표현이다. 시간을 돌려서라도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앞을 보라고, 달리라고 재촉한다. 데뷔 당시 중소 기획사 소속 아이돌 그룹이라는 이유로 주목조차 못 받은 팀이었다. 큰 인기를 얻기 전에는 이유 없는 무시를 당했고, 인기가 치솟기 시작한 시점에는 이유 없는 공격을 당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더 높은 위치에 올라가고, 그렇게 자기 증명을 해야 스스로를 지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상처를 안은 채 앞만 보고 달려 위로 올라가야 했다. ‘화양연화’부터 ‘YOU NEVER WALK ALONE’에 이르는 방탄소년단의 성공사는 그들 또래, 밀레니얼의 끝과 Z세대의 시작에 있는 그 시대 많은 한국 청춘이 각자의 위치에서 겪던 일들이기도 하다. 아이돌이 되든, 입시를 하든, 취업에 나서든 한 세대의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누군가는 남고, 나머지는 떨어지는 경쟁을 치러야 한다. 때로는 그 경쟁의 출발선에 서지조차 못한 아이들도 있다. ‘화양연화’는 그 시대 청춘의 기록이었고, ‘WINGS’는 한 시절을 통과한 청춘이 만나게 되는 또 다른 현실이었다. 그리고 ‘봄날’은 그 모든 사라진 친구들을 위한 기도이자 살아남은 청춘들을 위한 가장 결백한 위로다. 지금, 여기에 있는 이들도 상실의 기억이 쉴 새 없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는 겨울의 끝으로, 언젠가 잎을 띄우고 꽃이 흩날릴 나무가 있는 그 땅으로 가야 한다. ‘봄날’은 과거의 슬픔을 안은 채 미래로 달리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노래고, 그것은 청춘을 넘어 한국인의 생에 관한 어떤 본질을 드러낸다. 쉴 새 없이 앞으로 달리며 위를 바라보는 삶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던 상실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살아가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뒤를 돌아볼 수는 없는 생.
 

‘봄날’은 발표한 날부터 만 7년의 시간 동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한국에서 가장 이용자가 많은 음원 서비스 멜론의 일간 순위에 들고 있다. RM이 ‘BEYOND THE STORY : 10-YEAR RECORD OF BTS’에서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오래 가고 싶은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던 소망은 현실이 되었다. 그 7년 동안 누군가는 ‘봄날’을 수없이 반복해 들으며 펑펑 울었을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안은 채 미래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그때 이 노래를 들었을 것이다. 그 사이 한국의 봄은, 그 봄에 대한 노래들은 의미가 바뀌었다. 이제 이 계절에는 좋은 날들이 올 것이라는 기대와 상실의 순간에 대한 기억이 교차한다. 그것이야말로 방탄소년단의, 모든 청춘의 성장의 증거일 것이다. 누구나 상실을 겪는다. 누구나 후회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상실을 잊지 않는 것, 보고 싶은 마음을 놓지 않는 과정을 통해 마음속에 자신만의 나무를 키운다. ‘WINGS’의 시작을 알린 ‘‘Boy Meets Evil’ Comeback Trailer’에서 제이홉은 자신의 특기인 비보잉 스타일을 안무에 녹여 독무를 췄다. 동작마다 확실하게 끊기며 힘을 주는 동작들 사이로 “숨이 차오르고 뒤틀린 현실에 눈 감는 밤”과 같은 랩이 나온다. 팀이 수많은 공격, 더 많아진 스케줄을 속에서도 위로, 더 위로 올라가야 했던 시절, 제이홉은 현실의 유혹 앞에 선 청춘을 자신의 춤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봄날’에 이르러, 그는 지민과 함께 무대 앞에서 현대무용을 접목한 군무를 이끈다. 과거의 상실에서 오는 슬픔을 껴안고 그래도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곡처럼 그의 춤은 부드럽게 끊임없이 이어진다. 훗날 ‘Black Swan’까지 이어지는, 현대무용을 접목한 방탄소년단 특유의 퍼포먼스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봄날’ 다음에는 ‘LOVE YOURSELF’ 시리즈로 그들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기 시작했다. 상처 속에도 성장해야만 했던 청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의, 더 나아가 동세대의 상실을 경험하고 벗어나기까지의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그리고 모든 것을 지고, 모두를 껴안는다. 청춘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 좋은 어른이. ‘봄날’은 모든 상처받은 청춘의 승천이었다. 그리고 청춘의 가장 슬픈 기억을 담은 노래가, 한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노래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