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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희원,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디자인. MHTL
사진 출처. TVING

‘환승연애 시즌3’ (티빙 오리지널) 

이희원: “우린 해가 될까? 해(害)가 될까?” 시즌 1부터 함께한 ‘환승연애’의 OST ‘해가 될까’의 가사는 이번 시즌 또한 관통한다. ‘환승연애’는 헤어진 전 연인들이 한 집에서 합숙 생활을 하며 지난 연애를 되짚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며 자신만의 사랑을 찾아가는 연애 리얼리티이다. 합숙 시작 전 출연자들 앞에 전 연인 ‘X’와의 인연을 상징하는 실타래와 가위가 놓인다. ‘X’와의 인연을 서로를 비춰주는 ‘해’로 여기고 이어 나갈지, 서로를 아프게 하는 ‘해(害)’로 여기고 끊어낼지 미리 결정하는 것이다. 출연자 중 한 사람인 혜원은 과감하게 인연의 실타래를 가위로 잘라버리지만 ‘X’를 다시 만난 순간부터 멋대로 감정이 동요하고, “좋아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모든 것들이 아직 정리가 안된 것 같”다고 말한다. 동진은 ‘X’가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 “더 이상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과 행복해 보이는 ‘X’의 모습에 질투를 느끼기도 한다. ‘환승연애’는 그렇게 출연자들의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들을 지켜보게 만든다. “자기야, 미안해.” 한마디 했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커플, 10대에서 30대 무려 13년을 함께한 커플 등 연애의 기간과 모습도 헤어진 이유도 제각각이다. 하지만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사랑했었다’”라는 패널 김예원의 말처럼, 출연자들은 그렇게나 사랑했‘었’던 사이지만 새로운 사랑의 설렘 앞에서 흔들린다. 그리고 ‘환승연애’의 그 유명한 “당신의 ‘X’는 당신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문자에도 끊임없이 ‘X’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인연을 끊어내겠다는 결심으로 단 한 번도 ‘X’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엇갈리는 문자, 엇갈리는 마음, 그 끝은 누구를 향할까.

Jasmine (Spotify Playlist)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K-팝은 영어권 바깥에서 등장한 흐름이 글로벌 대중음악 시장의 지분을 확보한 드문 사례다. 특히 일회성 화제에 그치지 않고 차트나 시상식으로 대표되는 주류 시장의 인식을 꾸준히 얻어왔다. 하지만 영어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아시아계 아티스트는 시장 전체에서 여전히 소수다. 물론 일본계 미츠키가 인디 록의 아이콘 위치에 오르고, 필리핀계 H.E.R가 오스카를 수상하는 등 많은 일이 일어난다. 재패니스 브렉퍼스트의 미셸 자우너는 음악가만이 아니라 베스트셀러 ‘H마트에서 울다’의 작가로, 자신의 이민 1.5세대 배경을 자연스럽게 창작의 배경으로 삼았다. 앤더슨.팩, 리나 사와야마, 조지 등 말할 수 있는 이름은 계속 늘어난다. 이들만이 아니다. 한국,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인도, 동남아시아, 태평양 지역으로 시각을 넓히면 더 많은 가능성이 보인다. 스포티파이의 ‘Jasmine’은 이 흐름을 꾸준히 다루는 성실한 재생목록이다. 당장 최근 주목받는 라우페이와 비바두비의 협업이 보인다. 송라이터, 프로듀서, DJ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글로리아 김도 꾸준히 소개된다. 베트남계 트위는 현재 미국의 R&B를 따라갈 때 반드시 나오는 이름이다. 데뷔부터 틱톡 바이럴을 탔던 인도 출신 드루브의 신곡도 있다. 정국, 에릭남, 전소미 등의 K-팝 아티스트도 아시아계라는 관점 안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단지 아시아계라서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다. 소셜 미디어와 스트리밍 이래로 아시아계 인구가 실제 비중에 걸맞은 음악 소비력을 보여주고, 스스로 동질감을 가질 수 있는 아티스트를 선택하는 것이 갈수록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플랜 75’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죽여드립니다. 75세 이상 누구나 신청 가능. 가족 동의 및 건강 증명서 필요 없음. ‘준비금’ 10만 엔 지급. 24시간 1:1 케어 제공. 화장(火葬)부터 매장(埋葬)까지 무료. ‘플랜 75’는 일본이 초고령 사회 ‘특별 대책’이자 ‘묘수’로 강구한 가상의 정책 이름이다. 78세 미치(바이쇼 치에코). 독거노인이다. 호텔 객실 청소를 하며 생계를 이어온 그는 지병을 앓던 동료가 일터에서 쓰러진 후, 사실상 해고에 가까운 명예퇴직을 당한다. 거주지에는 철거 안내문이 붙었다. 새 직장과 새집은 미치의 감당 범위를 벗어난 발품과 기술과 체력과 자금을 요구하지만, ‘플랜 75’는 미치의 결심만을 요구한다. “죽는 때만큼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면.” 이 슬로건은 ‘죽음’을 원치 않게 부과된 ‘삶’의 반의어로 규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인의 시신이 아니라 고인의 심장이 박동한 시간을 추념한다. 국가가 생사란 별개라 주창한다면, 늙음을 엑기스가 빠져나간 가죽 취급한다면, 자신의 시작에 자신조차 개입할 수 없는 게 생의 속성이듯, 아무도 자신의 끝을 채근할 수 없다는 것 역시 죽음의 속성이라 응수하겠다. 어쨌든 삶은 아름답다고 낭만화하고 싶지 않다. 비애도 성가신 하루가 있다. 풀어야 하는 매듭의 더미 앞에서 미치는 지금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 있다. 호흡을 가다듬은 미치가 노을을 바라본다. 들숨 날숨은 숨 쉴 근거를 댈 틈을 물리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아랑곳하지 않는 그 광휘가 무심히 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