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원은 자신의 노력과 성취에 대해 전할 때 “그냥”으로 말문을 열곤 했다. “그냥” 뒤에는 제법 고단했을 법한 날들에 대한 회상이 이어졌지만, 채원은 그저 또렷하고 분명하게 그리고 조금은 경쾌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콘서트에서의 ‘도도독’ 모멘트로 많은 화제를 모았어요.

김채원: 처음 “너 내 동료가 돼라” 파트를 맡게 됐을 때는 많이 부끄러웠는데,(웃음) 이 파트를 통해 ‘Fire in the belly’도, 르세라핌도 알게 되신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영광이고 감사할 따름이에요.

 

지난 1월 ‘골든디스크어워즈’ 무대에서는 YB의 윤도현 씨와 함께 “너 내 동료가 돼라”를 외치기도 했고요.

김채원: 혹시 오글거릴까 봐 걱정했는데, 윤도현 선배님께서 웃으면서 즐겁게 해주셔서 그 장면이 너무 잘 나온 것 같아요. 여러모로 “너 내 동료가 돼라” 파트가 저한테 중요한 순간이 됐어요.

 

무엇이든 가볍고 재밌게 해내는 모습을 보며, ENA ‘혜미리예채파’의 이태경 PD님이 채원 씨에게 남긴 코멘트가 생각났어요. “모든 게 가장 자연스러운 사람”이라 “본인의 느낌대로 하는데 그게 다 자기 매력”이 된다고요. 

김채원: 예능에서는 어차피 제가 막 그렇게 큰 웃음을 주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애초에 개그는 포기했으니까 그냥 즐기면서 자연스러운 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마음이었거든요. 저는 편하게 했을 뿐인데,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저도 너무 좋았어요.

 

무대 위에서도 항상 자연스러워 보여요. 리듬에 맞춰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화제가 된 ‘ANTIFRAGILE’ 입덕 직캠처럼요.

김채원: 무대에 서기 전까지는 디테일까지 맞춰져 있게끔 최대한 준비해둬요. 대신 무대 위에 올라가서는 다른 생각은 잘 안 하려고 해요. 생각이 많아지면 즐기지 못하겠더라고요. 말씀하신 ‘입덕 직캠’처럼 무대에서 마음이 내키는 대로 다르게 할 때도 있어요. 신나서 ‘오늘은 좀 더 해볼까?’, ‘약간 다르게 해볼까?’ 이렇게요.

  • 블랙 코트는 리리(LEE y. LEE y.),플라워 새틴 블라우스는 지브이지브이(G.V.G.V.),니트프릴치마는 아쿠아리순스(AQUA LIXUN SU),업사이클 체크트렁크스는 뉴시안(Newsian), 하트 목걸이, 코트에 붙어있는 앙핀 귀걸이,앙핀 목걸이, 벨트는 앰부쉬(AMBUSH®), 코트에 붙어있는 다른 핀 배치는 언더 커버 (UNDERCOVER), 주얼리슈즈는 미키오사카베(MIKIOSAKABE).

내키는 대로 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텐데, ‘LE SSERAFIM (르세라핌) EASY TRAILER ‘Good Bones’’에서 덩크슛을 하는 채원 씨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김채원: 트레일러에서 저희가 계속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을 되게 쉽게 하잖아요. 살면서 덩크슛을 해본 적도 없는데,(웃음) 그런 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모습에서 이번 앨범의 애티튜드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나, 열심히 하고 있어. 열정 이만큼! 어때, 잘하지?” 이런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러지 않아도 충분히 멋있는 느낌이 나길 바랐어요. 그런데 타이틀 곡 제목은 ‘EASY’지만 퍼포먼스도, 노래도 전혀 쉽지 않았거든요. 열심히 하는 티를 내도 되면 차라리 괜찮은데 여유로운 척을 하는 게 어려웠어요. ‘EASY’하지 않아요! 진짜 절대.(웃음)

 

“힘 빼기의 기술”이라는 말이 생각나요. “나의 발걸음은 매 순간 history, 이건 my way” 파트에서 빠르게 스텝을 밟으며 동선을 맞추면서도 능숙하게 완급 조절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김채원: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만큼 잘 살리고 싶은 파트였기 때문에 진짜 열심히 연습했어요. 힙합 동작에 익숙하지도 않고, 이동하면서 해야 하는 스텝이라 멤버들이랑 계속 맞추면서 연구도 많이 했고요. 어디서 힘을 풀고, 어디서 힘을 줘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데 열심히 하려다 보니 그냥 다 엄청 힘을 주게 되더라고요. 처음으로 퍼포먼스 디렉터님께 “좀 풀어도 된다. 너무 세게, 열심히 안 해도 된다.”는 디렉션을 받아봐서 놀랐어요.(웃음) 그 파트가 아주 킬링 파트가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여러모로 느낌을 어떻게 낼지 고민이 많았어요.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R&B 스타일을 많이 듣기도 하고 부르는 것도 좋아해서, 이번 타이틀 곡을 준비하는 게 되게 재밌었고 저랑 잘 맞았거든요. 앞으로 무대를 많이 하다 보면 각자의 느낌이 더 잘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EASY’에서 이면의 불안과 고민에 대해 토로하는데, 날것의 감정을 꺼내와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은 없었나요?

김채원: 음, 부담이나 걱정은 별로 없었어요. 맞는 말이니까요. 처음 들었을 때 진짜 딱 저희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동안 “부럽다.”, “쉽게 간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 속에서 저는 진짜 열심히 달려왔고 그래서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었거든요. ‘쉬워 보이지만 절대 쉽게 온 게 아니다. 보여지는 모습은 너무 화려하지만, 저희에게도 비하인드가 있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이 곡에 담긴 메시지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아무리 좋아 보여도 모두가 각자의 힘듦과 고민이 있잖아요. 그래서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거든요. 저는 이렇게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생각들을 노래와 퍼포먼스, 앨범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참 좋고 감사해요. 그 덕분에 솔직할 수 있으니까요.

  • 플라워 새틴 블라우스는 지브이지브이(G.V.G.V.), 니트프릴치마, 레그워머는 아쿠아리순스(AQUA LIXUN SU), 업사이클 체크트렁크스는 뉴시안(Newsian), 하트 목걸이, 앙핀 목걸이는 앰부쉬(AMBUSH®), 치마에 붙어있는 앙핀, 스타킹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헤어클립은 토모야 자체 제작.

‘Swan Song’에는 작사로 참여하기도 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요?

김채원: 요즘 생각하는 것들, 느끼는 것들을 솔직하게 적어봤어요. 겉보기엔 좋아 보여도 밑에서는 엄청 발버둥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매 앨범마다 힘들어요. 고민이 또 생기고 또 생기니까 해도 해도 힘들어요. 그런데 이게 인생인 것 같은 거예요. 그냥 ‘앞으로도 고민은 항상 있겠구나. 그렇다면 언제 없어질까? 아, 이게 기본인 것 같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힘들어도 계속 해야겠다.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노력한 만큼의 결실을 얻지 못했을 때는 어떻게 해요?

김채원: 그럴 때요? 솔직히! 기분은 별로 안 좋아요.(웃음) 그래도 많은 분들과 같이 고생해서 준비한 건데 그것 하나 때문에 포기하긴 아깝잖아요. 그것 하나 때문에 무너지면 너무 아까우니까. 앞으로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겠지만, 힘든 일이 있어도 이때까지 내가 했던 게 너무 아까워서 잘 이겨낼 것 같다는 믿음이 있어요. 또 예전보다는 멘탈과 마음이 많이 단단해졌으니까요. 잠깐 삐끗했더라도 저희한테는 앞으로가 있으니까 괜찮아요. ‘이번에 조금 아쉬웠으니까 다음에 진짜 잘해야겠다.’ 하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기반으로 삼으면 되죠.

 

반면 잘됐을 때는 어떤가요?

김채원: 잘돼도 그렇긴 해요. 잘되면 ‘와, 우리 지금 너무 좋다. 이대로 열심히 하자.’, 조금 아쉬우면 ‘열심히 해서 더 잘해야겠다.’(웃음) ‘열심히 해야지!’랑 ‘하… 진짜 열심히 해야지.’ 이런 거죠. 기분은 다르지만 같은 마음인 것 같아요.

 

어찌 됐든 결론은 같다는 거네요.(웃음) 

김채원: 네. 아, 진짜 이상한데(웃음) 결과에 상관없이 계속하고 싶은 것 같아요. 행복보다는 힘듦이 훨씬 길잖아요. 근데 그걸 다 이겨요, 찰나의 행복이. 한편으로는 그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그 힘든 시간까지 즐길 수 있는 날도 오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해요. ‘지금을 잘 버티고 이겨내면 또 큰 행복이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최근에도 힘듦을 상쇄할 만한 행복이 있었을까요?

김채원: 그런데 행복, 생각보다 별것 없어요.(웃음) 사소한 거지만,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탈색을 해보고 뮤직비디오를 찍었는데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그게 그냥 행복했어요. 컴백하고서 팬분들의 반응을 느끼면 또 행복할 것 같아요. 그런 게 제 행복이에요. 정말 생각하기 나름인 거죠. 저도 한때 너무 잘되고 결과도 좋은 상황인데도 ‘왜 난 안 행복하지?’ 이러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너무 행복하려고 애를 쓰면, 아무 행복도 찾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냥, 생각을 바꾸면 행복도 따라와요. (음료 잔을 들며) ‘지금 이거 마시는 것도 너무 행복한 일인데?’ 이렇게요.(웃음)

 

다만 채원 씨가 MC를 맡은 ‘핌키타카 릴레이 캠’에서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 중에 우울함도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김채원: 우울함이 잘못된 감정이 아니잖아요. 세상에는 너무 많은 감정들이 있는데, 사람이 살다 보면 우울할 때도 있는 거죠. 우울함이 없으면 행복도 없을 것 같아요. 다 상대적인 거니까요. 물론 우울한 감정을 너무 길게 가져가는 건 좋지 않겠지만, 그래도 느껴봐야 그 과정에서 또 성장하고, 배우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솔직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이 있을까요? 지난 위버스 매거진 인터뷰에서는 “힘든 게 있을 때 잘 내색하지 않는 성격”인지라 지칠 때 티내는 걸 잘 못하는 편이라고 말했었죠.

김채원: 최근에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고 멤버들과 다 같이 얘기한 적이 있어요. 각자 요즘 뭐가 힘들었고,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말했거든요. 문득 이렇게 서로 말할 수 있는 게 진짜 다행이다 싶었어요. 이제 제가 뭘 말하기 전에도 멤버들이 알고 자기들이 먼저 짐을 덜어주려고들 하더라고요. 그게 제 눈에도 보이니까, 제가 마음을 열어야겠다 싶었어요. 혼자서 힘든 걸 감추려고 하면 멤버들이 오히려 더 불편할 것 같아서요.

 

혼자 짊어질 때는 무거웠던 고민도 말해보면 생각보다 별것 아닌 경우도 있잖아요.

김채원: 맞아요. 혼자 생각하면 진짜 그래요. 사실 멤버들이랑 이야기했던 날도 다 각자의 고민을 얘기했는데 저만 또 얘기를 안 하고 있었어요.(웃음) 그러니까 멤버들이 장난치듯이 “언니, 채원아, 고민 있잖아~. 빨리 말해.” 하고 먼저 얘기해주더라고요. ‘멤버들한테는 쉽게 터놓아도 되겠다. 제가 걱정한 만큼 부담을 느끼지는 않겠다.’ 싶었어요. 그때 마음이 많이 열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우리 아니?’ 콘텐츠에서 멤버분들이 채원 씨와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시간”이라고 입을 모아 말씀하시더라고요.

김채원: 확실히 저는 시간이 좀 필요한 사람이에요. 오래 같이 있으면서 서로에 대해 알게 되고, 그 과정에서 편안해질 수 있고요. 투어를 하면서 체력이 떨어진다거나, 이번 ‘EASY’ 준비를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 멤버들과 사소하게 장난치고 으쌰으쌰하는 게 정말 큰 힘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버틸 수 있었어요. 요즘 들어 확실히 우리가 진짜 많이 편해지고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아, 이건 다 같이 해서 해낼 수 있었다. 진짜 멤버들 잘 만났다. 진짜 이것도 복이다.’ 싶고요. 5명 모두가 이렇게까지 이 일에 진심이고,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놀라워요.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지난 인터뷰에서는 리더라 “힘든 걸 티내면 안 될 것 같”다고 했었는데, 요즘은 어떤 리더가 좋은 리더라고 생각해요?

김채원: 팀의 중심을 잘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요. 팀에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작년 8월 서울 콘서트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아티스트가 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어요. 어떤 마음일까요?

김채원: 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그냥 제 모습, 꾸며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감정의 혼란이라든지, 살면서 느끼는 점들이라든지, 사실은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하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그래서 그냥 이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고, 거기에 더해서 제가 열심히 하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용기와 위로도 함께 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스타그램에 ‘the way things go’라는 곡과 함께 올린 일상 사진들 중 영화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살던 세계가 가짜임을 깨닫게 되는 장면이 있더라고요.

김채원: 입장을 바꿔서 이 세상이 가짜 세상이었고, 이렇게까지 계속 살아왔는데 새로운 세상에 나갈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저한테 던져봤는데,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은 거예요. 바깥세상이 어떨지도 모르는데 과연 쉽게 발을 디딜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끊임없이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엿보여요. 지난 1월 1일 위버스에 남긴 글에도 “매일매일이 행복할 수 없지만 그래도 힘을 내서 나아가셨을까요?”라고 썼어요.

김채원: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계속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 결과가 안 좋다고 해도 멈춰 있는 게 아니고 그걸 통해서 저 스스로는 배우고 성장하고 있을 테니까요. 이 일을 하다 보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계속해서 매번 증명해야 하잖아요. 그게 힘들긴 하지만 참 재밌는 것 같아요. 스스로도 계속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그만큼 뭔가를 해냈을 때 행복도 크고요.

 

역시, 찰나의 행복이 다 이긴다는 거네요.

김채원: 네, 그런 것 같아요. 이 일이 아니라면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행복이잖아요. 스스로도 그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춤과 노래를 정말 좋아하고, 일이 되었음에도 그 마음이 계속 유지될 만큼, 그 정도로 많이 좋아하는구나 체감해요. 그러니까, 저는 이 일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요.(웃음)
 

Credit
글. 송후령
인터뷰. 송후령
비주얼 디렉터. 전유림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예시연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 김성현, 조윤경, 이수 (쏘스뮤직)
사진. 니콜라이 안 / Assist. 조승한, 케이스케 야마다
헤어. 오유미, 하민 (BIT&BOOT)
메이크업. 김이나, 김이슬 (WOOSUN)
스타일리스트. 슌 와타나베 / Assist. 세이나 타니모토, 노유진
네일. 토모야 나카가와 / Assist. 김서울
세트 디자인. 김사언(@leeroykim), 김성태(@kim_so_young91)
아티스트 의전팀. 김형은, 김아리, 김현호, 박시현, 박한울, 신광재, 안은비, 황지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