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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 유얼라이브
  • ©️ SUM 41 X(Formerly Twitter)

지난해 3월 28일에 예정되었던 썸 41의 내한 공연은 밴드 멤버의 긴급한 사정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밴드는 공식 소셜 미디어를 통해 마지막 정규 앨범 ‘Heaven:x:Hell’ 발표와 함께 팀 해체를 알렸다. 다행히 안내문은 전 세계 헤드라이닝 투어를 예고했고, 그 약속을 지켜 한국의 팬들은 2월 27일부터 28일 양일 동안 예스24라이브홀에서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새천년 록 음악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던 유쾌하고 드센 악동들의 음악도 이제 추억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남게 됐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에이잭스에서 태어난 썸 41의 프로토타입은 보컬 데릭 위블리가 주축이 되어 결성한 밴드 카스피르(Kaspir)였다. 이때 카스피르가 참조한 밴드는 너바나와 위저다. 얼터너티브 록과 그런지라는 장르가 우리에게는 더 익숙하지만, 사실 너바나가 세상을 뒤집는 데 사용한 음악은 펑크 록이었다. 커트 코베인은 어린 시절 태평양 북서부 펑크 록 씬의 팬으로 자랐으며 어린 시절 생전 너바나를 팝음악을 연주하는 펑크 록 밴드라 설명했다. 1989년 첫 앨범 ‘Bleach’ 발표 이후 새 드러머가 필요해지자 너바나가 영입한 인물은 하드코어 펑크의 성지 워싱턴 D.C.에서 스크림(Scream)이라는 밴드 멤버로 정확히 소리를 타격하던 데이브 그롤이었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용어 ‘그런지’에 대해 커트 코베인은 1994년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틀에 박혀있다. 그런지는 뉴웨이브만큼이나 강력한 용어가 되었고,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은 완전히 다른 집단이 음악을 새로 받아들이거나 함께 성장하는 것뿐.”이라 밝히며 스스로 음울한 시대의 끝을 알렸다. 그의 희망대로 커트 코베인 사후 새로운 펑크 밴드들이 등장했다. 메탈 밴드를 이끌던 리버스 쿼모가 새로 단장한 파워 팝, 펑크 록 밴드 위저는 1980년대 하드코어 펑크 커뮤니티의 정신을 대중적으로 이끌어 1990년대 정신적 공황기를 겪던 슬래커 세대에게 유유자적하는 저항의 메시지를 전달한 밴드였다.

 

위저와 함께 그린데이, 오프스프링, 랜시드 등 보다 친근한 멜로디로 무장한 밴드들의 시대가 열리며 네오 펑크의 유행이 시작됐다. 카스피르가 1980년대의 스케이트 펑크 및 멜로딕 하드코어 밴드 노에프엑스(NOFX)의 음악 스타일을 받아들여 밴드 이름을 슈퍼노바(Supernova)로 바꿔 첫 공연을 펼치고, 여름휴가의 41번째 날이었던 공연을 기념하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썸 41의 이름을 결정하던 시기다.

밴드 정비와 무명의 시간을 겪고 등장한 신예 썸 41은 얼터너티브 록과 포스트 그런지, 네오 펑크의 뒤를 이어 팝 펑크의 최전성기를 열어젖히며 실력을 발휘했다. 2001년 첫 정규 앨범 ‘All Killer No Filler’와 함께 성공적으로 록 씬에 안착한 밴드는 플래티넘 앨범 판매고를 인증받으며 빌보드 차트에 진입했고, 그 시기 데뷔한 밴드들처럼 1년 300회 이상의 강행군을 통해 캐나다를 넘어 전 세계에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 MTV 채널 단골 뮤직비디오로 사랑받았던 ‘Fat Lip’과 ‘Motivation’, ‘In Too Deep’은 화려한 영상과 더불어 깔끔한 멜로디 메이킹과 파티를 찬미하고 제도에 저항하는 반항의 태도 및 재치 있는 장르 결합으로 순식간에 팬들을 끌어모았다.

 

하드코어 펑크의 커뮤니티 속성을 견지하면서도 서정적인 멜로디를 쓸 줄 알았던 밴드는 심지어 헤비메탈을 더한 메탈코어에도 가능성을 보였다. 데뷔 앨범의 인트로 ‘Introduction to Destruction’은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언 메이든의 ‘The Number of the Beast’를 패러디한 것이며 이후 일본 10주년 기념 앨범에선 스래시 메탈 밴드 슬레이어의 기타리스트 케리 킹이 ‘It’s What We’re All About’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는 보컬 데릭 위블리와 함께 밴드를 이끌던 데이브 바크쉬의 영향이었다. 메이저 록 밴드 중 드물었던 유색 인종 멤버로 록 시장에서 존재감을 인정받던 그가 있을 때 썸 41의 음악이 후속 앨범 ‘Does This Look Infected?’와 ‘Chuck’에서 펑크보다 메탈에 기울어지던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9.11 테러 직후 미국 사회를 비판하는 히트 곡 ‘Still Waiting’이 등장했는데, 이 노래도 후렴 부분은 펑크 록의 경향이 강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스래시 메탈의 진행이 두드러지는 곡이다.

 

펑크 록과 헤비메탈에 번갈아 힘을 실어주던 썸 41의 음악은 데이브 바크쉬의 탈퇴 후 데릭 홀로 팝 펑크와 이모코어의 흐름에 탑승하고자 제작한 ‘Underclass Hero’와 이후 다시 한번 메탈 요소를 강화한 ‘Screaming Bloody Murder’로 이어졌다. 팝 펑크와 이모코어, 하드코어, 메탈이 힘을 잃어가던 21세기의 음악 흐름에 어울리는 행보가 아니었다. 밴드도 만신창이가 됐다. 데이브 바크쉬 탈퇴 후 2013년에는 2집의 커버를 장식한 드러머 스티브 조크즈가 팀을 떠났다. 에이브릴 라빈과 이혼 후 알코올 중독에 빠진 데릭 위블리는 간부전증, 신부전증으로 쓰러져 긴 재활의 시기를 거쳤다. 썸 41이 과거의 위상을 되찾게 된 것은 데릭 위블리와 데이브 바크쉬, 베이시스트 제이슨 맥캐슬린과 기타리스트 톰 대커, 드러머 프랭크 주모의 진영과 함께 2016년 발표한 6번째 정규 앨범 ‘13 Voices’부터였다. 건강과 우정을 회복한 밴드는 놀랍게도 전성기 이상의 라이브 컨디션을 선보이며 2020년대 팝 펑크 재유행에 불씨를 댕겼다. 그 밴드가 이제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있다.

  • ©️ SUM 41 Instagram

팝 펑크 리바이벌의 음악 구루는 블링크 182의 드러머 트래비스 바커다. 힙합 씬과의 교류를 통해 이모코어의 가능성을 확인한 그가 2010년대 말 영블러드, 머신 건 켈리, 윌로우와 함께 인상적인 프로젝트를 만들며 숏폼 플랫폼과 팬데믹 시기에 2000년대의 록스타들을 다시금 현실로 불러냈다. 하지만 썸 41이 없었다면 신세대들은 팝 펑크를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테다. 그들은 낯선 펑크 록의 세계에 입문한 신세대들이 과거 모호크 헤어스타일을 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던 기성세대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고 그들을 동경할 수 있도록 돕던, 살아 있는 역사였다. 황폐한 도시 외곽에서 하드코어 커뮤니티를 형성한 이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비추는 ‘Fat Lip’, 밴드 포스터로 가득한 가정집 2층에서 신나게 합주를 펼치는 ‘Motivation’, 실황 영상을 담고 있는 ‘Over My Head’의 모든 장면이 밀레니얼 팝 펑크와 하드코어를 참조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훌륭한 교보재로 기능한다. K-팝도 자주 활용한 팝 펑크 리바이벌 과정에서의 음악과 뮤직비디오에서 자주 떠오르는 이름은 그린데이, 오프스프링, 랜시드, 블링크 182나 마이 케미컬 로맨스 혹은 더 유즈드가 아니다. 썸 41이다.

 

썸 41은 랩과 메탈을 융합하고 유쾌한 농담과 진지한 언어를 섞어가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냈다. 건강을 잃어가며 젊음을 불사르기도 했지만, 불행한 록 밴드의 비극 서사를 따라가는 대신 재활의 시간을 거쳐 아름다운 마무리를 앞두고 있어서 다행이다. 마지막 정규 앨범 ‘Heaven:x:Hell’은 하드코어와 메탈을 아우른 더블 디스크 작품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스모키 메이크업과 편안한 스니커즈, 프린트 티셔츠와 가죽 재킷을 걸쳐보자. 21세기 첫 우상들의 아름다운 끝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