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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희성,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 티빙

‘크라임씬 리턴즈’ (티빙) 

윤희성: 현대 엔터테인먼트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아마도 시간일 것이다. 스트리밍으로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2배속으로 이야기를 돌려 보거나 재생 바를 움직여 중요한 장면만을 훑어 보는 것은 이제 평범하게 효율을 추구하는 방식이 되었다. 가장 흥미를 자극할 장면을 짧게 잘라내어 과장된 제목을 붙이고 호들갑스러운 자막을 달아서 공유하고, 그것을 본 것만으로 콘텐츠 자체를 소비한 기분을 갖게 되는 것 역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태도이기도 하다. 롤플레잉을 통해 추리의 결과를 겨루는 ‘크라임씬’ 시리즈의 귀환은 그런 점에서 ‘시대의 관습’에 대한 도전에 가까운 일로 보였다. 두 개의 에피소드, 평균 2시간이 넘어가는 분량을 하나의 사건에 할애하는 ‘크라임씬 리턴즈’는 최대한 꼼꼼하게 살펴본 사람에게 더 큰 희열을 주는 방식의 게임이니 말이다.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더 많은 비밀을 알아낸 사람이 이야기를 장악하고 정답에 가까워 진다는 규칙은 출연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된다. 제작진은 이 짧지 않은 여정에 내내 긴장을 붙들어두기 위해 게임을 둘러싼 드라마에 더 큰 공을 들이는 선택을 했다. 세트장의 구성이나 시체의 모형이 한층 디테일해졌다는 것은 오히려 작은 부분이다. 게스트를 허락하는 대신 폐쇄적으로 출연자들을 운용해 몰입의 합에 밀도를 높이고, 프로파일링이나 수사의 기법을 배워가며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보다는 캐릭터 각자가 절실하게 자신을 변호하는 충돌의 에너지에 방점을 두는 방식야말로 ‘크라임씬 리턴즈’가 몰입을 ‘과몰입’으로 끌어올리는 힘이다. 두 번째 사건인 ’고시원 살인사건‘ 이후 많은 시청자들이 방송이 설명하지 않은 더 많은 이야기를 상상력으로 채워넣는다거나, 네 번째 사건 ‘교주 살인사건’에 등장한 캐릭터들의 관계성이 사건과 별개로 관심을 받는 등의 현상은 지금 ‘크라임씬 리턴즈’가 시간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단 몇십 분, 화면 앞에 시청자를 붙들어두는 것도 어려운 세상에 일분일초를 다 지켜보고도 이 끔찍한 사건을 잊지 못하게 하다니. 이 ‘리턴’은 거듭될 이유가 충분해 보인다. 

‘듄: 파트2’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행성 아라키스의 다른 이름 ‘듄’. 오직 이곳에서 값을 매길 수 없는 물질 ‘스파이스’가 모래에 섞여 흩날리고, 우주의 모든 ‘대가문’이 기갈에 시달리듯 이 가루를 원한다. 수요 공급의 불균형만큼이나 유구한, 믿음의 다른 이름 ‘퀴사츠 해더락’, ‘리산 알 가입’, ‘마디’는 하나를 칭한다. 오직 ‘메시아’. ‘구원자가 등장해 다른 길을 보여줄 것이다’. 신념은 아라키스 ‘원주민’ 프레멘과 종교 집단 베네 게세리트 안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몸집을 불렸다. ‘듄: 파트2’는 오랜 파괴 바깥의 ‘낙원’을 오래 기다려온 이들이 벌이는 정쟁을 그린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본격적인 승자 독식의 패권을 낙하와 협곡을 비롯한 다종다양의 y축 활용을 통해 수직의 미장센으로 시각화했다. 극단적 경사(傾斜)와 세로 단면의 심도로 구현한 이미지, 쟁탈의 사운드는 스토리와 유기를 이루며 관객의 체험으로 이어진다. 드라마의 중심, 멸문한 아트레이데스 가의 서자 폴(티모시 샬라메)은 자신을 향한 추종을 경계하다 끝내 부응한다. 우등과 열등으로 나뉘는 세계에서 챠니(젠데이아 콜먼)와 동등하기를 희망해본 그는 미혹되지 않는 이상주의자이길 원했으나, 베네 게세리트 소속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에게 유전자를 물려받고 훈련받은 폴은 통치의 기제가 내장된 ‘듄’의 ‘주인공’이다. 원작을 충실히 이행하다가도 원작과 방향을 튼 캐릭터를 등장시키면서 서사를 점진하는 데에 ‘듄: 파트2’의 성취가 있다. 혈통과 태생과 선천은 더는 유리하지만은 않거나,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의 실마리(안야 테일러 조이)로 작동한다. 낡은 설정을 생략, 전수(傳受)를 넘어선 통찰을 발휘하며 기민하고 과단성 있는 인물로 각색한 이룰란 공주(플로렌스 퓨)와 레이디 마고(레아 세이두) 역시 제 몫의 깃발을 꽂는다. “아름다움과 공포”. 사막에 파문이 일었다. 미신은 싸움의 너머에 닿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그들이 반드시 경유해야 한다고 여기는 싸움을 위한 명분이다. “성전(聖戰)의 시작”은 장엄하다. 그러나 감독은 인물을 미물처럼 배치하면서, 피를 바쳐 얻는 예외의 도래가 ‘녹색’이리라는 환상의 껍데기 또한 이중의 레이어로 불경하게 역설한다. 허무(虛無)는 그 없음의 있음이 드러날 때 허물어지기에, 정교한 순간이 있다.     

Beyoncé - ‘Texas Hold ’Em’

강일권(대중음악평론가): 트렌드와 파격의 아이콘이자 무엇을 하든 다 잘 어울릴 것 같은 아티스트 비욘세. 그럼에도 이걸 예상하긴 어려웠다. 전통적인 컨트리 음악이라니. 경쾌한 밴조 연주로 곡이 시작하고 1분여를 지날 때까지만 해도 곧 댄스팝이나 트랩 뮤직 뱅어로의 변주가 이루어질 줄 알았다. 그러니까 제목과 컨트리는 이윽고 드러날 반전의 짜릿함을 배가할 떡밥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노래는 같은 프로덕션을 유지한 채 끝이 난다. 말미에는 휘파람까지 삽입하여 장르적 정체성에 방점을 찍는다. 곡 자체가 거대한 반전이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음악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너무 절묘해서. 사실 비욘세가 살아온 배경을 찾아보면 컨트리와의 접점이 넓다. 장르의 뿌리가 굳건한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나고 자랐으며, 친할아버지 덕에 어릴 때부터 컨트리 음악을 들었다. 도시의 카우보이 유산도 그녀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2007년엔 ‘B’Day’(2006)에 수록된 히트 곡 ‘Irreplaceable’을 듀오 슈거랜드(Sugarland)와 함께 컨트리 버전으로 편곡하여 공연했으며, ‘Lemonade’(2016) 때는 컨트리와 자이데코(Zydeco/*주: 20세기 초반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거주하는 크리올이 만들고 발전시킨 장르)를 결합한 ‘Daddy Lessons’라는 곡을 발표한 바 있다. 당시엔 그래미 어워드와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 비욘세는 ‘Daddy Lessons’를 컨트리 부문 후보로 제출했지만, 그래미의 컨트리 음악위원회는 이 노래의 장르 분야 편입을 거부했다. 일단 ‘Texas Hold 'Em’의 항해는 순조롭다. 빌보드 ‘핫 R&B/힙합 송’은 물론, ‘핫 컨트리 송’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으며, 여러 음악 매체로부터 호평이 쏟아지는 중이다. 특히 비욘세는 1958년 차트가 시작된 이래 ‘핫 컨트리 송’과 ‘핫 R&B/힙합 송’ 차트 모두에서 1위를 차지한 최초의 여성 아티스트로 기록됐다. 컨트리마저 ‘비욘세화’하는 그녀의 놀라운 능력이 다시 한번 세계 대중음악계에 역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