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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은,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김복숭(작가),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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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KBS다큐 유튜브

‘짜장면 랩소디’ (KBS다큐인사이트, 넷플릭스)
김리은: ‘먹방’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설명이 불필요한 콘텐츠다. 한 사람이 먹기엔 압도적으로 많은 음식 양으로 보여주는 풍요로움, 의도적으로 볼륨을 높인 음식 삼키는 소리, 면이 입술을 거쳐 후루룩 넘어가는 ‘면치기’가 주는 쾌감. 단지 보여주고 들려주는 행위만으로도 콘텐츠의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은 그만큼 음식이 인간에게 직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KBS에서 제작하고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다큐멘터리 ‘짜장면 랩소디’에서 ‘먹방’은 일부 장면에 등장하는 시각적인 연출에 불과하다. 오히려 ‘짜장면 랩소디’는 ‘한국인은 왜 짜장면을 사랑하는가?’라는 당연해 보이는 질문에 대한 가장 진솔한 세레나데에 가깝다. 다큐멘터리는 짜장면 특유의 윤기와 달고도 기름진 맛과 이를 만들어내는 식재료 및 조리법에 대한 내적인 탐구는 물론, 외국 음식점이 많지 않던 시기에 서민들에게 이국적인 세계를 제공하는 통로였던 ‘중국집’의 역할처럼 외부적인 맥락까지 말 그대로 짜장면에 대한 모든 것들을 파고들어 간다. 프레젠터 백종원이나 음식 평론가 박찬일, 음식 인류학자 주영하 등 전문가들을 비롯해 개그맨 김준현이나 오마이걸 미미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출연자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짜장면의 개별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정서를 발견하게 된다. 졸업식이나 이삿날에 먹는 대표 메뉴로서 한국인에게 공동의 추억을 제공하는 음식. 동시에 ‘스테이크트러플짜장면’처럼 시대의 흐름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며 여러 세대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음식. 요컨대 ‘짜장면 랩소디’는 ‘하루에 600만 그릇’이라는 한국인의 남다른 짜장면 사랑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설서다. 그 과정에서 중국의 ‘작장면’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짜장면’으로 변화시켜온 당사자인 화교들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해 타국의 문화가 한 나라에서 현지화되는 과정에 대한 통찰과 존중까지도 놓치지 않았다. 이처럼 ‘먹방’과는 반대되는 방식으로 음식 문화를 통찰하는 다큐멘터리가 넷플릭스 ‘한국 톱10 시리즈’ 부문 2위를 기록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짜장면에 대해 “소비층들이 계속 주문하는 음식은 수준이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발전하고.”라고 설명한 백종원의 말처럼, 짜장면을 한국인이 사랑하는 이유도, 콘텐츠에 대한 대중의 니즈도 계속해서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짜장면 랩소디’의 흥행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남긴다. ‘도파민 충전’이라는 유행어처럼 시각적·청각적 자극이 넘쳐나지만 그에 대한 피로도도 함께 올라간 시대에,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사랑의 이유에 대한 다소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가여운 것들’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광활한 세상보다 ‘내’가 더 광활하다. 벨라(엠마 스톤)는 여기까지 안다. 성인의 외형을 하고 걸음과 단어를 익히는 중인 그는 아무도 가르치지 않은 ‘모험심’을 발판 삼아 성큼성큼 ‘발달’한다. 벨라가 ‘하느님’이라 부르는 외과 의사 갓윈(윌렘 대포)에게 벨라는 ‘성공작’이다. 임신한 채 투신자살한 벨라의 몸에 태아의 뇌가 이식되면서 다시 눈뜬 벨라는 아직 이를 모른다. “정신과 신체가 어긋”난 벨라는 무적자(無籍者). “근본이 없”다. 그래서 그는 맞수가 없는 여자이며 삐거덕거리면서 탐구한다. 가장 가까운 자기 몸에서 출발해 책을 거쳐 스스로 어울리는 정신을 획득하는 데 이르는 모든 여정, 형이하와 형이상을 아우르는 항해다. 섹스 신은 노골적이고 빈번해 영화의 장식조차 될 수 없고 그로써 영화는 섹스를 벨라가 잠시 몰두한 삶의 일부로 둔다. 갓윈의 실험실에 드나드는 동안 벌거벗은 시체들에 여상하게 노출됐던 벨라는 성(性)도, 생명도 경외하지 않는다. 차라리 경시에 가까운 무감함이 먼저였으므로 섹스는 벨라의 궁극이 되지는 못한다. “내가 뭘 했다고 이런 안락한 생활을 누리나요? 세상에 베풀고 싶은데 가진 게 없어요.” 그는 자신이 지닌 부(富)가 부재한 풍경을 ‘내려다’보게 될 때 각성한다. 소유를 ‘성공’으로 착각하지 않는 벨라는 시혜를 배운 적 없다. ‘고급’에 관심 없기에 ‘저급’할 수 없다. 엠마 스톤이 예리한 눈빛마저 감추다가 드러내는 타이밍이자 캐릭터를 깊이 이해하는 배우의 헌신이 들키는 순간이기도 하다. 벨라를 구속하고 견인하고 운반했던 남자들은 벨라가 제 생의 내막과 함께 지나친 ‘가여운’ 정류장이다. 원작 소설과 역점이 다른 영화 ‘가여운 것들’은 벨라를 용서할 수 없는 ‘것’을 단죄하고야 마는 그로테스크로 밀어붙인다. 머리와 손발의 벨라다운 협응이다. ‘내’가 ‘나’를 만나야 한다는 절박한 순정을 감행한, 두 번째 탄생에 대한 첫 번째 정의를 직접 내린, ‘오늘’은 벨라의 날이다.

‘위너’ - 프레드릭 배크만
김복숭(작가):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단어에서 사람들은 흔히 슈퍼히어로 영화 시리즈를 떠올리겠지만, 스웨덴 소설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베어타운 3부작은 충분히 그 수식어에 걸맞다. 판타지 시리즈라기보다는 휴머니즘이 짙고 비극적인 내용을 담은 베어타운 3부작 그리고 그 신작이자 트릴로지의 마지막 이야기 ‘위너’. 이번 책에서 등장인물은 두 배로, 드라마는 세 배로 늘었다. 한국어 번역본으로 책 두 권, 페이지 수로는 장장 총 900장이 넘는 분량에서 독자가 읽어낼 수 있는 섬세한 감정들을 하나하나 나열하기엔 이 페이지도 부족하리라. 꽤나 두꺼운 책 두 권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한입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챕터 100여 개로 구성되어 있어 가볍게 차근차근 읽어볼 만하다. 베어타운 3부작의 앞부분을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어 고민이 된다면, 지난 두 이야기들을 충분히 친절하게 톺아주는 마지막 이야기 ‘위너’로 입문해도 충분하리라 본다. 혹은 앞의 이야기를 다룬 짧은 TV 시리즈인 ‘베어타운’을 몰아볼 수도 있겠다. 어떤 순서와 방식으로 이 책을 접했든 간에, 다양한 삶의 단계에서 각자 다른 개인적인 문제를 직면하고 있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읽어 가다 보면, 단언컨대 모든 독자들은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를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책의 서두에 나오는 어마어마한 폭풍이 두 라이벌 팬덤을 하나로 묶어내는 것은, ‘최애’ 때문에 한 번쯤 인터넷에서 열띤 논쟁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교훈 아닌 교훈을 남긴다. 추가로, ‘위너’를 읽어보려는 독자들에게 남기는 작은 경고 아닌 경고.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든 문학에서든, 모든 훌륭한 세계관이 으레 그러하듯, 초반에 마음을 준 등장인물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도록 할 것. 그리고 (제목부터 ‘불안한 사람들’을 쓴 작가의 이야기임을 잊지 않으며) 어떤 일이 펼쳐지더라도 침착할 수 있도록 미리 마음을 굳게 먹을 것. 

‘Von dutch’- Charli XCX
김도헌:
찰리 XCX는 2020년대 얼터너티브 록과 네오 펑크, 이모코어의 등장 전부터 Y2K를 그리워했다. 2018년 트로이 시반과 함께 1999년의 문화 레퍼런스를 재현한 ‘1999’는 새천년 유년기를 보낸 어른아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팝 시장의 ‘토토가’ 혹은 ‘숨듣명’이었다. 소소한 화제를 모았지만, 성적은 저조했다. 하이퍼팝 프로듀서들과 팝의 내일을 이끌 친구들을 발굴하며 유행의 최전선을 개척하던 찰리 XCX에게 ‘1999’는 유년기 경험을 나열한 곡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수평선처럼 아득한 더 먼 과거로 시선을 고정하던 뉴트로 세대에게 당시 2000년대는 추억과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제는 다르다. 더는 새로울 것도, 대단히 도전적인 것도 등장하지 않은 지 오래된 21세기도 20년이나 흘렀다. 마이스페이스에 자신이 만든 음악을 업로드하며 가수의 꿈을 키웠던 2008년의 찰리 XCX가 힙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왔다. 그 시절을 호령했던 패션 브랜드로부터 이름을 딴 신곡 ‘Von dutch’는 자신만만하다. 사람들이 앞다투어 손에 넣고 싶어 했던 옷은 한동안 잊히더니 이제는 컬트 클래식이 되어 신생 레트로 마니아들의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찰리 XCX는 유행의 순환 속 호명되는 이름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여전히 대중음악의 맨 앞줄에서 프로듀서 이지펀과 함께 만든 저돌적인 댄스 팝으로 질주한다. 자동차 창문 유리를 박살 내며 등장한 ‘Crash’ 앨범 커버에 한술 더 떠 ‘Von dutch’ 뮤직비디오에서는 프랑스 샤를 드 골 국제공항 일대와 활주로, 에어버스 A380 제트 여객기를 종횡무진 누빈다. 음울한 농담으로 얼룩진 록의 2000년대가 갔다. 무아지경의 트랜스와 테크노가 울려 퍼지던 2000년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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