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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KBS 생로병사의 비밀

‘생로먹방의 비밀’ (KBS 유튜브)
강명석: 손승수 씨는 한국에서 ‘삼겹살 먹방’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그는 집으로 퇴근하자마자 점퍼도 벗지 않고 주방에서 삼겹살을 굽는다. 밥상 따윈 필요 없다. 주방에 서서 지글지글 기름이 튀는 삼겹살에 상추를 싸 먹는다. 상추를 두 손으로 잡고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려 우적우적 씹어 먹고 소주 한 잔 곁들인다. “장인의 먹방”, “먹방계 1티어” 먹방을 위한 연출이 아닌, 일상의 ‘찐 바이브’로 나오는 손승수 씨의 삼겹살 먹방 영상에 수많은 이들이 찬사의 댓글을 남겼다. 해당 영상의 조회 수는 유튜브에서 1,300만 뷰를 넘겼다. 다만 사소한 문제는, 그가 먹방을 찍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KBS ‘생로병사의 비밀’은 손승수 씨를 통해 과도한 삼겹살 섭취에 따른 건강 문제가 없는지 알아보려 했었다. 그러나 손승수 씨가 너무 맛나게 삼겹살을 먹어버렸고, 제작진은 상추쌈이 손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매혹적인 카메라워크로 찍어버렸다. 프라이팬 위에서 튀겨지며 갈색빛으로 변하는 삼겹살은 아예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한참을 훑는다. 건강 정보를 찾았다가 영상을 보고 삼겹살을 구워 먹게 된 사람들의 간증이 댓글로 달렸다. “진심 어지간한 먹방보다 더 맛있게 보임 심지어 정보도 있음.” 건강 정보 영상이 최고의 먹방 콘텐츠로 소비되기 시작했고 라면, 피자, 족발, 치킨 등을 다룬 편들도 ‘생로먹방의 비밀’로 불리기 시작했다. 제작자의 의도가 수용자의 해석으로 삼겹살 뒤집듯 바뀌는 것은 인터넷 등장 이후 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제작진이 직접 ‘생로병사의 비밀’을 정말로 ‘생로먹방의 비밀’로 바꾸는 건 흔치 않은 ‘미친 짓’이다. 원래 영상의 점잖은 제목, ‘[생로병사의 비밀] 삼겹살 리포트’는 ‘삼겹살 좋아하세요? 전설의 주인공들이 댓글과 함께 살아숨쉰다! 채널 조회수 1위! 1370만 돌파 [삼겹살 리포트] 댓글모음.zip🍚생로먹방 시리즈 3탄’이란 어질어질한 제목이 됐다. 손승수 씨가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장면에는 달콤한 재즈를 얹어 삼겹살이 입에 들어가는 모습을 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이 장면들을 먹방으로 소비했던 이들의 댓글을 붙여 넣었다. 말로는 곱창에 밥 볶아 먹는 것이 건강에 끼칠 수 있는 위험성을 강조하지만 표정은 왠지 모르게 밝은 교수님의 얼굴을 확대하는 편집을 볼 즈음엔 공영 방송 KBS에서 “이게 돼?”와 “이래도 돼?” 사이에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그러나 대놓고 삼겹살 먹방 매드 무비가 된 영상은 먹는 즐거움을 강조하며 삼겹살을 건강하게 사랑하는 법으로 인도한다. 삼겹살에 대한 식욕을 폭발시킨 시점에서 삼겹살이 적당하게만 먹으면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안심시키고, 더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들을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납득시키고, 요리법을 통해 실제 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알려준다.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건강 정보를 얻는 대신 삼겹살 300g을 야식으로 주문하는 것이 인생의 진실이라면, 먹고 싶은 삼겹살을 더 오랫동안 더 많이 먹기 위해 더 잘 먹는 법을 배우는 건 현명함이다. 그리고 욕망과 현명함 사이의 균형을 이루며 건강한 몸으로 저녁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삼겹살을 먹으며 피로를 푸는 것은 인생의 완성이다. ‘생로병사의 비밀’ 제작진은 한 가족이 즐겁게 삼겹살을 먹는 장면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붙였다. “가족이 함께하는 밥상이 왜 이리 아름다워 보일까. 너무나 행복해 보이고 부럽다. 자취도 고달프고 온통 그 생각에 영상이 눈에 안 들어오네 ㅎㅎ...” 정말로, 생로병사의 ‘비밀’이 있다. 손승수 씨가 두 손으로 고이 집어든 삼겹살 상추쌈 속에. 

‘로봇 드림’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외로움이 만나게 했다. 뉴욕 맨해튼에 사는 도그는 꺼진 텔레비전의 검은 화면에 비친 자기 실루엣마저 넌더리 날 즈음 로봇을 주문한다. 둘은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를 같이 듣고, 빅터 플레밍 감독의 ‘오즈의 마법사’를 같이 본다. 함께 놀러간 여름 바다에서 먹통이 된 로봇은 휴장한 해수욕장에 누운 채로 갇혀, 달려와 수리해 줄 도그를 기다린다. 합법으로도 편법으로도 로봇을 구할 방도를 찾지 못한 도그는 다음 개장일을 기다린다. 대사 없는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은 ‘꿈’을 환상부터 이상(理想)까지 팔레트로 활용한다. 도그와 나눈 찰나를 그리워하는 로봇의 백일몽에서, 로봇은 무사히 귀가하고, 만개한 꽃은 도그의 생김새로 피어난다. 정물처럼 시간을 버틴 로봇과 잊어버리지 않은 도그의 해후는 없다. 삶의 변수는 진심을 과녁으로 삼는다. 도그가 설명서를 따라 조립해 로봇을 움직이게 했다면, 새 친구 라스칼은 로봇의 부서진 팔다리를 스피커에 연결하는 DIY로 로봇에게 숨을 불어넣는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놀라 눈을 뜬 로봇은, 다른 반려 로봇 틴과 걷는 도그를 멀리서 발견하고 다시 ‘If’를 상상한다. 달려가 잡는다면. 그러나 로봇은 과거와 현재를 어그러뜨릴 가정(假定)을 접고 최초의 꿈을 꾼다. 변칙 또한 ‘우리’의 생(生)임을 이해한다면. 혼자 하는 재회가 있다. 단절이 아닌 작별이 있다. ‘우리’가 ‘그때’ 춤추던 노래를 여전히 가장 좋아할 수도 있다.


구름 - "나폴리탄 악몽 산책"
김윤하(대중음악 평론가):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인 구름의 이력은 화려하고 알차다. 데뷔와 동시에 각종 신인상을 휩쓴 밴드 바이바이배드맨의 멤버에서 그룹 치즈, 싱어송라이터 백예린, 밴드 더 벌룬티어스(The Volunteers)와 더불어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과시한 활약까지. 과연 2010년 처음 대중 앞에 선 이후 큰 부침이나 공백 없이 자신만의 또렷한 커리어를 쌓아온, 지금을 대표하는 음악가라 부를 만하다. 구름의 정규 2집 ‘나폴리탄 악몽 산책’은 그렇게 누구나 선망할 만한 그의 이력이 다른 무엇도 아닌 그의 음악이 가진 설득력을 바탕에 두고 있음을 증명하는 앨범이다. 그동안 모아놓았던 소리와 감정을 한 번에 토해내는 듯한 첫 곡 ‘잘 지내나요?’와 마지막 곡 ‘인 영’으로 시작과 끝을 맺는 앨범은, 마치 데칼코마니 같은 그 그림 속 우연히 태어난 문양과 색채를 통해 지금껏 그의 음악이 다양한 청자를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 힌트들을 알린다. 아무도 볼 수 없게 자물쇠를 달아 놓은 일기장의 한 페이지, 들릴 듯 말 듯 흐르는 내향적 보컬, ‘청소년 영화’나 ‘지금부터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세요’ 등에서 문득 존재감을 드러내는 선 굵은 대중적 멜로디. 그리고 그 모든 걸 압도하는 품위 있는 선율과 꿈결 같은 분위기. 구름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노래의 궤적을 따라 이제는 모두가 어느새 사랑하게 되어 버린 바로 그것. 짧지 않은 시간 서서히 사람들의 귀를 물들여온, 구름의 음악이자 지금의 음악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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