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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사진 출처주식회사 쇼박스

*‘파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파묘’는 전문가들을 한국의 뇌관으로 소집한다. 사제지간인 무당 이화림(김고은)과 법사 윤봉길(이도현)은 “아는 의사 소개”로 미국 LA 출장을 간다. “밑도 끝도 없는 부자” 의뢰인 박지용(김재철)과 이들의 만남은 오컬트의 문법을 순순히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원인 모를 병을 앓는 갓난 아들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이미 상당한 재산을 병원에 쏟아부었으나 소득이 없자 ‘과학적으로 해명할 수 없는 신비적·초자연적 현상 또는 그런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에 기대어보는 인간. 그러나 이화림은 파리한 박지용에게서 ‘부성애’보다 묫바람을 확인한다. 그는 정체 모를 증상이 박지용 집안에 대물림되고 있음을 알아맞히며 “조상 중 누군가가 묫자리가 불편하다고 지랄”하는 중이라는 간명한 ‘진단’을 내린다. 영험한 이화림을 필두로 그와 세트인 윤봉길, 40년 경력 풍수사 김상덕(최민식), 대통령 염하는 장의사 고영근(유해진)이 일을 하기 위해 모인다. 프로젝트 목표는 이장(移葬), 보수는 인당 5억. 직업인으로서의 자부심에 걸맞은 액수는 넷을 여우가 득시글한 산꼭대기 묘로 이끄나, 북향에 덩그러니 놓인 ‘이름 없는 묘’의 자리가 “악지 중의 악지”임을 빠르게 판단한 김상덕은 손을 털겠다고 한다. 애가 아프다는 박지용의 호소에 끝내 설득당하는 김상덕은 오행(五行)의 섭리를 따르면서 먹고산 프로지만, 토지 분석과 인정(人情)은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기도 하다. “묘 하나 잘못 건드리면” “줄초상” 난다고 확언하는 그에게, 망자의 자리를 제대로 찾아줌으로써 아픈 아기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는 이음동의어 같은 가치다. 이화림의 제안으로 굿과 이장을 동시에 하는 ‘대살굿(영화를 위해 창작한 단어. ‘타살굿’의 형태와 비슷하다. ‘타살굿’은 돼지나 소를 잡아 제물로 바치는 굿.)’에 착수하는 그들은 “범의 허리”, “반도의 척추”에서 각자의 “이론”에 따라 할일을 시작한다.

장재현 감독은 ‘파묘’를 서사의 무게와 캐릭터 플레이 간의 균형을 맞춘 결과물이라고 개괄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현실감”과 “직관”에 중점을 두었기에, 동양 무속 신앙과 일제강점기 한국 역사를 결합한 ‘파묘’는 기획 의도를 성실히 반영한 최적의 형태로 세상에 나왔다. 이화림이 자신을 “빛과 어둠, 과학과 미신 사이에 있는” 무당으로 소개하는 오프닝과 관(棺) 아래 서 있는 관(棺)이 드러나는 순간의 기이함은 형언할 수 없으므로 장르적 충족감을 준다. 하지만 ‘파묘’는 제목부터 미지를 미지로 남기겠다는 일말의 여지 없이, 작정하고 파는 인간들을 포진한다. 무당, 풍수사, 장의사는 묻힌 것을 꺼내 헤집고 다시 정돈한다. 그들 눈에만 보이거나 그들만 느끼는 “뭐”로 인해. 그리고 그들의 규칙에 의거하여. 그들은 전문가이면서 시신과 지나치게 가깝기 때문에 죽음과 결탁한 사기꾼도 된다. 추앙을 받든 멸시를 받든, 이 발본색원의 대가(大家)들은 전진하려고 후진한다. 과거를 캐기 위해 끝도 없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넷과 이화림의 무당 동료 오광심(김선영), 박자혜(김지안)는 전부 실제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그대로 거푸집에 부은 작명이다. ‘파묘’는 정성스럽게 친일한 박지용의 조상, “나라를 팔아먹은” 부역자의 관(棺)도, 영(靈)도 연막인 깊이를 설계했다. 한국을 분지른 8척짜리 ‘험한 것’, 오니(おに)라는 쇠말뚝을 뿌리째 들어내는 개간 사업이 이 이야기의 가장 굵은 뼈대다.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이 땅.” 김상덕의 설파는 급작스러운 민족주의 메시지가 아니라, 풍수사 김상덕조차 실감하기 전에 그와 무당 이화림, 장의사 고영근, 법사 윤봉길부터가 이 땅의 ‘후손’임을 되짚게 한다. 정기(精氣)를 끊으려는 목적으로 일본이 한반도 곳곳에 박은 쇠침을 제거하러 다녔던 독립운동 단체 철혈단의 도구를 물려받은 ‘후손’ 김상덕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말미암아 “불타는 쇠의 상극은 물에 젖은 나무”라는 답에 이르는 클라이맥스에서, 그는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이다. 사사로운 능력의 발휘가 대의로 발현되는 지점에선 미끈한 매력의 이화림과 윤봉길이 윤활유 역할을 한다. 쭉 스승과 제자이기만은 하지 않을 것 같은 둘은 쌍방 “최측근”이다. 윤봉길을 연기할 때 “화림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자”라는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이도현 배우의 캐릭터 해석은, 성애를 배제했기에 도리어 둘의 관계를 독특한 모양의 굴곡으로 도드라지게 했다.
 
르메르를 즐겨 입다가 컨버스 화이트를 신고 굿을 하는 무당, 전신에 ‘태을보신경(몸을 보호하는 경문)’을 문신으로 새기고 지샥 시계와 뱅앤올룹슨 헤드셋을 착용하는 법사는 그들이 “뭐”를 보는 안목을 자신들에게도 적용한다. 굿판을 벌이면서 날 선 칼로 뺨과 허벅지를 가르거나 맨손을 불에 넣어 얼굴에 재를 바르는 이화림과 경문을 외고 북을 치는 윤봉길은 전통(傳統)의 ‘얼’을 요즘의 ‘가락’으로 소화한다. 자기 영역이 확실한 사람들이 자아내는 초연함은 힙한 징후에 그치지 않는다. 혼(魂) 부르기를 하는 무당과 기꺼이 혼(魂)을 받는 법사는 악(惡)을 막기 위해 스스로를 건다. “내 새끼들 데리고 가”겠다는 혼(魂)에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건 안 되지.”라고 답하는 이화림은 수호신 같기도 하다. 한구석도 모호하지 않은 캐릭터들을 구축해 한국의 토속을 담은 ‘파묘’는 지난 2월 22일 개봉 이래 삼일절 하루에만 8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고, 평일에도 10만 자릿수 관객을 기록하고 있다. 3월 8일에는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 기준 누적 7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오컬트 최고 스코어를 경신, 파죽지세의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에 등장한 한국 오컬트의 ‘실체’다.

“왕가에서나 쓰던 향나무 관”, “만 명을 베어서 신”이 되었다는 다이묘는 폭력으로 쥐어짠 득세의 상징이다. 갈취한 ‘영광’에 여전히 취해 있는 약탈자의 꺼풀을 벗긴 ‘주인공’도 일상에서 언뜻 비치는 ‘험한’ 그림자까지 물리칠 순 없다. 역사란 현재에 미치는 진행형이다. 과거는 없던 일이 될 수 없다. 알기 이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다. ‘파묘’는 “경로를 이탈”해야만 하는 노선을 따라 “범의 허리”라는 정확한 위도, 경도의 좌표에 도착한다. 기존 양식에서 벗어난 ‘구체적’인 ‘오컬트’는 서로 유리되는 듯 보이나, 다른 눈으로 본다면 오컬트에 육(肉)을 입히겠다는 새 결기다. 다이묘와 맞서기 전 이화림은 김상덕에게 말했다. “혼(魂)이나 귀(鬼)는 영(靈)만 있고 육신이 없는 불완전한 존재라 영(靈)과 육(肉)이 모두 있는 인간의 정신을 절대 이길 수 없어요.” 파헤친 깊이만큼 탈력을 느끼지만 부패(腐敗)를 도려낸 크기만큼의 자유가 ‘내’ 것이 됐다. ‘파묘’는 삿된 쇠말뚝을 뽑고 영(靈)과 육(肉)을 갖춘 길한 정령(精靈)이 되고자 한 고집스러운 오컬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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