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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지,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김복숭(작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미선임파서블 유튜브

‘미선임파서블’ (미선임파서블 유튜브)
오민지:
‘미선임파서블’은 ‘미션 임파서블’이 떠오르는 채널명처럼, 코미디언 박미선이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혹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보며 가능하게 만드는 유튜브 채널이다. 화이트데이를 기념해 디저트를 왕창 만들며 “그냥 내일은 없는 사람들처럼 달게 먹어보”기도 하고, 본인의 굿즈를 제작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여자)아이들의 체험 스페이스에 가거나 ‘앨범깡’을 해보기도 한다. 채널의 설명처럼 “방송 생활을 35년간 하면서”도 “정말 신나고 재미있”게, “해보지 못한 것”들을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이다. ‘선킷리스트’에서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이뤄보고, ‘코미디언의 꼬리를 무는 이야기(코꼬무)’를 통해 같은 길을 걸어가는 코미디언들이 일궈나가고 있는 현재의 코미디에 대해 듣거나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고 격려하며, ‘미선이네2’에서 하숙집 입주자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기도 한다. 이때 ‘미선이네2’에서 같은 코미디언 부부인 ‘엔조이커플’에게 했던 “인생이 조금씩,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 그게 사는 재미야.”라는 말은 이 채널을 통괄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미선임파서블’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들과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면서도, 그 모든 경험들이 취향과 일치하거나 원하던 일이 아니었더라도 계속해서 “재밌네.”, “괜찮네.” 할 수 있는 부분을 새롭게 찾아내기 때문에. 

“우리가 버틸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버티면서 마지막에 꼭 이기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그래서 불가능했던 혹은 어려울 거라 생각했던 ‘미션’들을 해내고 있는 박미선이 후배들에게 하는 조언은 우리에게까지 와닿는다. 말하자면, ‘미선임파서블’은 무궁무진한 불가능 속 가능한 즐거움을 찾아내는 채널이다.


트라이비(TRI.BE) - ‘Diamond’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 국내에선 사뭇 낯설 리듬으로 댄스 가요를 제작하고 공연할 적임자에 신사동호랭이와 트라이비만큼의 조합도 없을 테다. 두껍게 번쩍이는 전자음에서 색소폰이 요란한 클럽튠까지의 비트와 통속성이 중독적이다 못해 유독할 정도인 톱라인으로 이목을 잡아끄는 동안에도, 그에겐 종종 이색적인 댄스 리듬을 은근하게 깔아 직관적인 대중성의 틈새를 채워 넣는 능력이 있었다. 이러한 역량은 그의 경력 내내 전자적인 댄스 팝의 무척 한국적인 판본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주저 없이 현대적인 “K-팝”이라 부를 양식과 그 명암을 구축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그가 엘리와 함께 총 제작을 맡은 트라이비는 EXID의 여러 2010년대 하반기 트랙들로 균형 잡은 조합법을 더욱 국제적으로 확장하는 실험을 자신 있게 감행한다. 열정적인 팀 퍼포먼스와 개별 멤버들의 전문화된 역할 덕에, 트라이비는 댄스홀로부터 내려온 혁신적인 박자(특히 브라질의 발리 펑크)를 2020년대 아이돌 팝의 최전선에서 조금씩 이식하는 장본인이 되었다. 이런 명민한 제작자-아이돌 쌍의 전환점인 두 번째 미니앨범 ‘W.A.Y’에서 쾌청하게 낮춘 열기는, 이제 ‘Diamond’ 속 차분한 성찰로 이어진다. 신사동호랭이의 가장 가요적인 히트 곡에서 두드러졌던 과장되고 과잉된 사운드는 아프리카 서해안에서 고안된 장르인 아프로비츠 특유의 편안하게 밀고 당기는 박자감 속으로 잦아든다. 곡의 느긋하고 든든한 뼈대가 되어준 이 독특한 리듬 체계 위로, (빌보드를 강타한 타일라(Tyla)의 ‘Water’처럼) 부드러운 R&B 가창 대신 신사동호랭이의 기질을 한껏 살린 감각적인 훅들이 트라이비의 매력적인 중저음을 강조한 멜로디로 얹힌다. 이전까지 둘을 규정했던 특징을 여유롭게 재세공해 스스로를 재발명하는 장관은 ‘Diamond’뿐만 아니라 모든 멤버가 작사·작곡에 참여한 서브 곡 ‘Run’에서도 청명한 빛을 낸다. 신사동호랭이가 이전에도 애용한 미주 남부 베이스 음악의 리듬을 차용한 이 곡은 여태껏 트라이비가 보여준 포인트 안무를 하나로 꿰어 지난 3년간을 의미 있게 결산하며 다음 행보를 준비한다. 그 길목에 신사동호랭이, ‘이호양’이라는 인물은 슬프게도 함께하지 못할지라도, 그가 아이돌 팝에 남긴 귀한 유산은 그간의 수많은 명곡뿐 아니라 트라이비가 꿋꿋이 내디딜 걸음에도 생생히 살아 있을 것이다.

‘조용한 이주’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수 번의 천천한 패닝 숏과 진공 같은 고요를 지나야 한다. 그러면 목가적 일상이 가린 들끓는 휴화산을 알아보게 된다. 영화 ‘조용한 이주’는 필수불가결한 관조를 요구한다. 한국에서 태어난 서지훈은 덴마크 부부에게 입양됐다. 열아홉 살 칼(코르넬리우스 원 리델-클라우센)로 자란 그는 수순처럼 아버지 한스(비아르네 헨릭센)의 가업을 계승할 예정이다. 바람이 벼와 풀을 흔드는 소리, 거대한 위용의 트랙터가 내는 굉음이 공존하는 농장을. 미지근한 표정으로 후계자가 되겠거니 하던 칼은 자꾸 평정(平靜)을 잃는다. 남에게, 친척에게, 아버지 친구에게 듣는 인종차별 언사는 그를 “자기 역사”로 이끈다. 한국계 덴마크 감독 말레나 최는 “우리는 우리와 닮지 않은 사람들”과 “다수의 덴마크 백인 가족들 속”에서 “숨은 소수로 살아”왔다는 고백으로, 이 자전(自傳) 영화에 담은 디아스포라(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지내는 이들의 이야기)의 핵심을 들춘다. ‘내’가 애매하다는 감각. ‘이방인’ 취급과 정착에의 종용을 동시에 받는 칼은 전속력으로 달리며 심장의 분명한 팔딱거림을 느끼거나, 생물학적 어머니의 반투명한 환영(幻影)을 홀로 본다. 불현듯 떨어진 운석이 낸 구멍을 통해 순식간에 한국으로 이동하는 칼의 판타지는, 난감한 정체성 혼란기를 단축하고픈 그의 염원이 만든 교차로다. 너보다 더 멋진 아이는 못 가졌을 거라는 어머니 카렌(보딜 예르겐센)을 “사랑”하는 칼은 덴마크 “농부가 되고 싶지 않”다. 한국은 근원이지만 터전은 아니다. 그가 근사치라면, 그는 오차 범위에서 유연할 수 있다. 칼은 처음으로 뜨거운 유보를 택한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황보름
김복숭(작가): 작년 어느 가을날, 비와 햇살로 하늘이 변덕스럽던 오후 나는 서울의 한 독립도서전을 방문했다. 다양한 사람이 열심히 작업한 작품을 전시하는 모습도 많은 영감을 주었지만, 무엇보다도 신진 작가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꽤나 많은 도서전의 작가들이 비슷한 이야기 – 쳇바퀴 도는 듯한 삶을 살며 번아웃이 오던 직장인이 책을 사랑하게 되고, 꿈을 좇게 되는 – 를 삶에서 펴내고 있음을 느꼈다.

황보름 작가의 (소설인 듯 소설 아닌) 책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도 역시, 직장인에서 서점 주인이 되기까지 책을 사랑하는 그 사람들과 비슷한 궤적을 따라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엿볼 수 있다. 그 여정은 선택이 준 보람만큼이나 용감하고, 또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기도 하다. 책은 ‘비욘드 더 스토리(BEYOND THE STORY)’ 역자이기도 한 안톤 허의 멘티 중 한 명인 샤나 탄의 손을 거쳐 영문으로도 번역 출간되었는데, 세상에 이리저리 치이던 삶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열정적이 되어 “먹고 사는 공간”을 꾸려나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묶어낸 이 책은 천천히 읽을수록 삶을 응원하는 메시지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책이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이 책은 평소에 책을 많이 찾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부담 없는 분량, 독서를 규칙적인 습관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설득력 있는 이야기 등 황보름 작가의 글은 극적인 드라마나 액션을 애써 찾지 않아도 그저 ‘휴남동 서점’이 추구하는 철학처럼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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