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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후령
디자인MHTL
사진 출처빌리프랩

아일릿(ILLIT)의 데뷔를 알린 ‘‘SUPER REAL ME’ Brand Film’은 학교를 배경으로 아일릿 멤버들이 현실과 상상 사이를 오가는 모습을 그린다. 멤버 원희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시선이 닿지 않는 틈을 타 이어폰을 꼽은 채 춤을 추고, 화장실에서 ‘셀카’를 찍던 모카는 거울 속에서 미래의 자기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상상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 선생님이 뒤를 돌아보자 원희는 멋쩍게 질문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며 상황을 무마하고, 모카는 다른 학생들이 등장하자 상상 속 자신의 모습이 자취를 감춰버려 아쉬워하는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 ‘‘SUPER REAL ME’ Concept Film (SUPER ME. Ver)’의 어두운 방에서 홀로 생각에 잠긴 ‘현실의 나’와 구름에 파묻히고 유니콘도 탈 수 있는 판타지 세계인 ‘상상 속 나’의 모습을 대비시키는 연출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과정을 거치는 10대는 이상적 자아와 실제적 자아 간의 간극을 유독 크게 경험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때 아일릿의 데뷔 앨범 ‘SUPER REAL ME’는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10대 소녀들이 어떻게 나다움을 찾아가는지에 주목한다. 앨범의 첫 트랙인 ‘My World’에서 아일릿은 “인생 네 컷 속 나만 못 나와 울”다가 “Pepperoni topped pizza 맛에 웃”는 내가 이상한 건지 고민하다가도 “이게 진짜 real me”라고 선언한다. 그래서 ‘My World’의 가사 “지금에 최선을”과 “나머진 멋대로”는 아일릿의 세계를 요약하면서도, 동시에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를 보여주는 말이 된다.

멤버들을 소개하는 영상 ‘SUPER REAL ME Film - MINJU’에서 민주는 크로스워드 퍼즐을 풀다 ‘어디든, 어디에나’라는 문제에 “틀린 답인데 그냥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적겠습니다.”라며 ‘EVERYWHERE’ 대신 ‘WIND’라는 답을 썼다. 그렇게 자유롭게 마음가는 대로 쓴 낱말들이 모여 ‘THIS IS MY WORLD’라는 문장을 완성한다. ‘SUPER REAL ME’는 어떤 모습이 나다운 것이라고 섣불리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민주가 “나머진 멋대로” 쓴 답으로 퍼즐을 완성했듯, 엉뚱하지만 “매 순간”에 “과몰입”하고 싶다는 소녀들의 현재를 찬찬히 조명한다. “조금 이상”해 보여도 “이게 나”인 일상(‘My World’)과 “미스터리 아포칼립스 로맨틱 코미디 전환되는 장르”처럼 변화하는 “my teenage dream(‘Midnight Fiction’)”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2024년을 살아가는 10대 소녀들의 내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는 좋아하는 상대에게 끌리는 마음을 자석에 비유한 앨범의 타이틀 곡 ‘Magnetic’이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 가장 초점을 두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일릿은 ‘Magnetic’에서 상대가 자신과 “정반대”의 타입이더라도 “No push and pull”로 “내 맘의 끌림대로” 사랑하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oh my gosh!”, “you’re my crush!”라고 격양된 감정을 전달할 때면 매 어절을 끊어 부르는 방식으로 감정의 끓는점을 표현하기도 한다. 다만 그 목소리가 가장 분명히 다가오는 순간은 배경 사운드가 모두 사라지고 “This time I want”라는 보컬만이 남을 때다. 너에게 “이끌림”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내가 원하는 것이 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타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였던 ‘Magnetic’ 또한 결국 ‘나’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하게 된다. “난 과몰입해 지금 순간에”. 매 순간에 집중하고 현재를 사는 것. 이렇듯 ‘SUPER REAL ME’는 수많은 지금이 모여 ‘나’를 만든다는,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명제를 10대의 언어를 통해 전달한다.

‘SUPER REAL ME’에서 전개하는 ‘나’에 대한 고민은 앨범의 마지막 트랙 ‘Lucky Girl Syndrome’에 이르러 자기 긍정의 태도로 구체화된다. ‘럭키 걸 신드롬(Lucky Girl Syndrome)’은 2023년 초 틱톡에서 ‘#luckygirlsyndrome’ 해시태그가 들어간 영상이 1억 조회 수를 넘기며 Z세대 사이의 미디어 트렌드가 되었던 현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을 상상하고 자신이 운이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믿다 보면 정말로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일종의 자기암시라고 할 수 있다. 아일릿은 ‘럭키 걸 신드롬’을 수록 곡의 테마로 삼아 동세대의 감각을 빌려오면서, 밝고 즐거운 분위기의 퍼포먼스로 구현해 데뷔하는 신인 걸그룹의 에너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운이 좋다. 무조건 성공한다.”고 근거 없는 자기 긍정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현실이 나아질 수 없듯, 그들이 시종일관 경쾌한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해서 ‘Lucky Girl Syndrome’이 세상의 밝은 면만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chocolate 삼키자 so sweet”. 달지만 쓰기도 한 초콜릿을 오직 “so sweet”하다며 “삼키자”고 하는 것은 그들이 세상의 ‘단(sweet)’면만 보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대신 긍정해보기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는 “Oh my girl 주문을 걸어 say”와 같은 가사에서 “we’re so lucky”하기 위해서는 “주문”을 걸어야 한다고 표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일릿은 데뷔조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JTBC 글로벌 걸그룹 서바이벌 프로그램 ‘알유넥스트(R U NEXT?)’를 거치며 일상이 경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지금의 10대가 경험하는 현실이다. ‘긍정 확언’이나 ‘럭키 걸 신드롬’이 유행이 될 만큼,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세상. 그만큼 과거보다 더욱 화려한 모습으로 저 높이 있는 것 같은 이상을 꿈꾸며 현실을 살아가는 세대가 요즘 10대다. 그래서 아일릿은 ‘Lucky Girl Syndrome’에서 “I’m a lucky girl”이고 “you’re a lucky girl”이기를, “we’re so lucky”하기를 바라며 주문을 걸고, 그 퍼포먼스에서는 멤버들이 함께 팔짱을 끼고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온다거나 신이 난 듯 기지개를 켜고 부둥켜 안는 모습을 연출한다. 아일릿이 ‘Lucky Girl Syndrome’을 통해 전달하는 것은 ‘너’도 함께 “lucky girl”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그래야 그들도 이 곡의 마지막 가사인 “Yeah I’m a lucky girl”을 마음 편히 외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golden ticket”보다 중요하다고 노래하는 이 마음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또한 자기암시를 필요로 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또래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된다. “내 자신을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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