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양갱’의 첫인상은 비비라는 아티스트와 이 노래의 분위기를 어떻게 하나로 받아들이는가에 달려 있다. 비비는 몇 곡의 피처링 외에는 레코딩 아티스트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전에, ‘더 팬’과 같은 경연 TV 쇼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같은 쇼에 출연한 아티스트 중 상당수가 많든 적든 기존의 활동 기록을 가지고 있던 것에 비해 비비는 그중에서도 ‘숨겨진 보석’보다 ‘신인’에 가까웠다. 다른 아티스트 혹은 유명 인사의 추천으로 참가자를 선정한다는 쇼의 규칙을 감안하면, 비비가 지상파 TV 쇼로 이름을 알릴 기회를 얻은 것은 행운이다. 하지만 그 쇼에서 준우승을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심지어 그 준우승이 사운드클라우드에 자작곡을 올리던 고등학생이라는 과거와 유명 예능 고정 출연자이자 인기 아티스트라는 현재를 잇는 다리가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그리고 이 다리는 직선이 아니라 아주 복잡하게 꼬여 연결이 안 된 것처럼 보일 정도라서 더 흥미롭다.
‘더 팬’의 비비가 지상파 경연이라는 여건 안에서 선곡과 퍼포먼스를 택하고, 그 와중에도 어딘가 어두운 자아를 드러낼 때에도, 데뷔 곡 ‘비누’를 예상한 사람은 드물다. 대중음악에서 폭력적 언사와 욕설에 얼마나 익숙하든, 비비가 “저X 저거 이상하다”고 읊조릴 때의 생경함은 여러 가지 생각을 불러온다. 이 표현은 관용구에 가까우면서 문학적인 고풍과 일상성을 동시에 뿜어낸다. 타인의 언사 혹은 풍문 같은 문장을 빌어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구조는 약간의 쾌감을 부른다. 당신이 비비를 언제부터 인식했든, 그것이 ‘더 팬’이든 ‘여고추리반’이든, 뮤지션으로서 비비가 말하는 방식은 ‘비누’에서 출발하고 ‘Lowlife Princess: Noir’ 주변으로 돌아간다(“아주 그냥 나쁜 X”). 2010년대 중후반 이후 하나의 씬을 형성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한국 R&B 시장에서도 비비의 대중적 입지와 음악적 자유로움의 결합은 특별하다. 자신이 만드는 음악과 자연인으로서의 퍼스낼리티를 분리할 수 있는 프로듀서 몇 명이 예외적으로 가능했던 활동 영역의 확장이 가능했던 경우다.
‘밤양갱’의 정서가 일회성 예외일 수도 있고 또 한 번의 방향 전환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것을 예외나 전환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비비의 기존 음악적 노선과 차별화된 발랄함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차별성은 장기하라는 외부에서 왔다. 장기하는 저 멀리 한국 포크와 사이키델릭부터, 가까이는 1990년대 말부터 이어지는 한국 인디록의 정서와 가사 쓰기를 계승하는 대표적인 존재다. 세세한 감정의 결을 나눈다면, 장기하의 독특한 창법과 눅눅한 분위기보다 브로콜리 너마저나 옥상달빛 같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계열과 비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하 특유의 일상에 대한 예민한 관찰, 한국어 가사에 대한 꾸준한 탐구, 특히 특정 사물에 주제를 투영하는 방법론 등에 집중하면, ‘밤양갱’이 장기하의 작품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더불어 이 노래가 비비를 찾아간 것도 놀랍지 않다. 그렇게 곡은 완성되었다.
왜 완성일까? 비비는 ‘밤양갱’을 R&B도 아니요, 록도 아닌, K-팝 아티스트처럼 부른다. 음악 방송 무대에 댄서와 함께 오르고, 여성 솔로 무대에서 종종 보이는 남성 상대역이 등장한다. 비비의 이전 활동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느 신인의 데뷔라고 해도 믿을 듯싶다. 비비의 어떤 노래보다 차트에서 선전하고, 다른 아티스트 및 AI 커버가 뒤따르는 현상은 ‘밤양갱’이 얼마나 널리 받아들여질 수 있는 노래인지 반증한다. 그리고 이 노래가 이례적인 인디 히트 곡이 아니라, 올해 K-팝 히트 곡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퍼즐의 일부다.
노래가 주는 첫인상의 충돌은 의외성으로 그리고 보편성으로 나아간다. 뮤직비디오에는 여전히 일말의 날이 서 있지만, 비비는 그것도 자신의 선택한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비비가 자신의 영역을 넓혀온 것과 같은 방법이다. 그리하여 인디록, R&B, K-팝이라는, 1990년대 말 이후 한국에서 자생적인 토대를 만들고 각자 성과를 쌓았으나, 미처 만난 적이 없던 세 장르는 비비라는 교차로 안에서 접점을 만들었다. 이는 같은 시기 힙합과 랩이 하나의 대중음악 문법으로 작동하면서 세상의 모든 장르와 영향을 주고받은 것과 다르다. 세 장르는 각기 다른 길을 걸어왔고, 아마도 앞으로도 다른 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보기 드문 이 순간은 반복되지 않아도, 노래는 남아서 증언할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20년 이상 이어져온 서로 다른 줄기들이 2024년의 어느 날 반짝하고 스쳐 지났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