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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인,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JTBC

‘연애남매’ (JTBC, 웨이브)
윤해인: ‘연애’와 ‘남매’. 연애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시대에 특이점이 온 것 같은 제목의 예능, ‘연애남매’는 형제자매가 있다면 상상만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콘셉트다. “남매는 먼 곳에서 서로를 응원하고, 잘되기만을 기도하는 사이가 가장 바람직하고… 좋습니다.” 출연자 재형의 바람과 달리, 한 공간에서 남매의 연애를 ‘직관’하는 설정은 이 시대의 생존 동력인 ‘도파민’을 확실히 보장한다. 예컨대 “내 혈육이 첫눈에 끌릴 것 같은 사람”을 고르라는 제작진의 지시부터 혈육의 ‘사회적 가면’을 집 밖에서 마주한 출연자의 괴로움, 정체를 숨겨야 하는데 혈연의 굴레로 너무나 닮은 남매의 외양이 오버랩되면 웃지 않을 수 없다. 호감 가는 이성뿐만 아니라 ‘매형 찾기’에 더 진심인 철현이나, “피는 어쩔 수 없는지” 선택받지 못한 혈육을 “이 꽉 깨물고” 치켜세우는 세승처럼 기존 연애 프로그램에서 본 적 없는 상황도 등장한다. 

연출을 맡은 이진주 PD의 전작 ‘환승연애2’가 폭발적 인기를 얻은 데에는, 이성애적 대리 만족이나 감정이입을 넘어 출연자들의 ‘관계’ 자체를 섬세하게 다뤘기 때문이다. ‘연애남매’ 또한 그의 전작처럼 잘 가꿔진 공간에서 출연자들이 함께 식사하거나 대화를 나누고 새로운 사람과 유대감을 쌓는 과정을 통해, 좋은 관계에 대한 로망과 대리 만족을 분명하게 선사한다. 물론 연애 프로그램의 미덕을 위해 마련된 현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 캐스팅과 유려한 연출의 힘도 간과할 수 없으나, 그 과정을 함께하는 운명 공동체 ‘남매’의 ‘관계’까지 세심하게 그린다는 점은 프로그램의 또 다른 매력이 된다. “평생의 기억 속에 내 혈육이 있다.”는 자막처럼, ‘연애남매’는 미디어 속 항상 투닥거리는 남매의 전형 외에도, 필연에 의해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남매에 대해 되짚게 만든다. 입만 열면 ‘왜 저래?’ 싶지만 괜히 신경 쓰이고 걱정되는. 분명 나와 다른데 너무 닮았고, 좀처럼 속을 모르겠는데 사실 너무 잘 아는, 혈육이라는 존재의 무게가 있다. 그 어떤 ‘인연’보다 운명적일지도 모르는 ‘혈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연애’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영화는 나뭇가지의 뻗은 모양을 익스트림 로우 앵글로 우러러보며 문을 연다. 켜켜이 쌓은 현악기 음률이 보태어지고 자연이 자아내는 고양감에 휩싸일 때쯤, 관람자는 어떤 인간도 산중의 ‘주인’이 될 수 없음을 감지한다. 타쿠미(오미카 히토시)와 그의 딸 하나(니시카와 료)는 꿩 깃털과 사슴 발자국이 있는, 샘물 그대로 식수인 작은 마을에 산다. 한 연예기획사가 여기에 글램핑장을 짓겠다고 나선다. 보조금을 타기 위한 신사업으로, 거주인들의 타당한 우려와 반발은 대충 뭉갤 예정이다. 우물이 구정물이 되든, 모닥불이 산불이 되든. 주민의 심부름꾼 타쿠미는 자연의 통역자처럼 말한다. “정도가 지나치면 균형이 깨져.” 그는 알고 있다. 3미터가량 뛰어오르는 사슴의 습성을. 하나는 어우러진다. 빨간 소나무, 검은 낙엽송과 함께. 부녀(父女)는 이곳을 이해한다. 시작부터 울린 명료한 총성과 이어지는 엉성한 건설 계획은 사슴을 궁지로 몬다. 야욕이 야생을 들쑤시는 동안 사슴은 “총에 빗맞”고, 무고하나 가까이 있던 이를 해한다. 타쿠미는 사슴을 영물로 신성시하지 않는다. 단지 그는 자연의 항상성을 인정한다. 겁 많은 사슴이 공격을 받으면 덤빈다는 섭리. 반드시 되갚는 자연의 방식을 차용하는 타쿠미는, 망쳐놓고 망친 줄 모르는 상대에게 작용 반작용의 질서를 경험케 한다. 악(惡)은 악(惡)의 형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총에 빗맞을 순 없다. 총에 맞은 것이다. 관통상은 예외 없이 치명적이다. 그다음은? 섭리다. 

아이유 - ‘홀씨’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국힙원탑’ 아이유의 힙합은 이런 모습이다. ‘홀씨’라는 말의 가벼운 무게감과 위배되는 둔중한 베이스가 곡을 끝까지 이끌어간다. 그 위에 아이유는 그저 흥얼거린다. 톱라인의 첫 구절이 C메이저 동요처럼 들려오다가 마지막 한 음이 시b로 삐끗 떨어지며 삐딱선을 탄다. (“한참 더 위로”) C를 기준으로 메이저(믹솔리디언)와 마이너를 줄타기하던 장난스러움은 “걔는 홀씨가 됐다구” 하며 훅 하늘로 떠올랐다가, 코러스에 또다시 동요 같은 C메이저로 돌아온다. 가사의 메시지에는 위배된다.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는 선언이 어떻게 홀씨처럼 가벼울 수가 있겠나. 그러나 아이유는 이런 작업을 꽤 오래 해왔다. 삶의 태도(“그렇다 해도 안경을 쓰지는 않으려고요” ‘안경’), 관계의 확신 (“나는 확실히 알아 오늘의 불꽃놀이는 끝나지 않을 거야” ‘이 지금’), 행복론 (“기를 쓰고 사랑해야 하는 건 아냐” ‘unlucky’) 등 누구나 하지만 금세 잊는 진지한 고민에 사뿐사뿐 가벼운 레트로풍 편곡을 접목시켜, 사실은 묵직한 이야기를 이게 그렇게 진지한 얘긴 아니란 듯, 딴청하듯, 듣는 사람 생각의 주머니에 꽂아넣었다. ‘홀씨’ 역시 그렇다. 비트와 쉽게 부르는(그렇게 들리는 건 그가 잘 부르기 때문이지만) 노래에 끼워 또 주머니에 쿡 찔러넣어주는 그의 내심은, ‘아름답기보다는 자유로우리라.’는 그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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