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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디즈니 +

콘서트는 때때로 영화로 만들어진다. 물론 극장의 대형 스크린과 음향 시설에서조차 실제 공연의 경험에 미치지 못한다는 회의적인 시선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콘서트 영화는 관객에게 충분한 감동과 가치를 전달한다. 달리 말해 좋은 콘서트 영화란 존재한다. 현장 관객의 시선을 담는 것으로 답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이 손쉽게 비디오를 촬영하고 유튜브에 업로드하면서 증명하는 바다. 역사적인 시도를 돌아보자. 프린스의 걸작 ‘Sign “☮” the Times’는 세트에서 촬영한 드라마와 공연을 연결하여 앨범 전체의 맥락과 콘서트의 활기를 연결지었다. 디페시 모드의 라이브 앨범이자 콘서트 다큐멘터리 ‘101’은 아티스트와 팬이 각각 투어의 101번째, 마지막 공연으로 모여드는 과정을 추적하고, 이 유대감을 폭발적인 무대 영상과 교차시킨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Eras Tour (Taylor’s Version)’는 어떨까? 이 투어의 역사적인 성공이 가진 의미는 거대한 숫자보다, 테일러 스위프트 본인이 ‘Lover’를 부르기 앞서 직접 밝힌 바와 같다. 17년간 발표된 노래들은 저마다 과거 어느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담고 있지만, 당신은 모든 노래를 그와 함께한 시간부터 새롭게 기억할 것이다. 이 공연은 가장 온전한 상태로, 관객이 아니었던 당신에게도 닿아야 했다.

에라스 투어는 2023년 3월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서 첫 무대를 시작했다. 이후 8월까지 미국과 멕시코에서 57회 공연을 하고 11월까지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테일러 스위프트는 쉴 틈을 주지 않는다. 8월 말 콘서트 영화를 공개한다는 소식이 나오고, 10월 13일 북미에서 ‘Taylor Swift: The Eras Tour’라는 이름으로 극장 개봉한다. 영화는 AMC 극장 체인에서 목요일부터 일요일에만 상영되었다. 관객들은 주말에 공연을 참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복장을 갖추고 춤을 추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미국에서 첫 주말 박스오피스 9,280만 달러로 10월 개봉작 중 역대 2위, 콘서트 영화로는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첫 2주간 박스오피스 연속 1위를 달성한 유일한 콘서트 영화이기도 하다. 누적 박스오피스는 미국 1.8억 달러, 글로벌 2.6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콘서트 영화가  보통 1~2주간에 걸쳐 팬 중심의 이벤트성 흥행을 기록하고 마는 보통의 경우를 아득히 넘어선다.

영화는 2023년 8월 3일부터 9일까지 총 6회 열렸던 LA 공연에서 첫 3일간 촬영되었다. 이는 2023년 미국 투어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에라스 투어 공연은 보통 3시간 반이 소요되고, 45곡 이상의 세트리스트를 소화한다. 그중 두 곡은 매 공연마다 다르게 선보이는 서프라이즈 노래다. 안타깝게도 이 모두가 극장 스크린에 오르기는 어렵다. 극장 버전인 ‘Taylor Swift: The Eras Tour’는 어쩔 수 없이 ‘The Archer’, ‘Long Live’, ‘cardigan’, ‘Wildest Dream’ 등 몇 곡을 덜어내고 3시간 아래의 러닝타임을 맞췄다. 대신 올해 3월 14일 디즈니+에서 공개한 버전은 LA 공연의 세트리스트와 3일간 부른 6곡의 서프라이즈 노래를 모두 포함하여 3시간 30분에 이른다. 모든 것이 담겼으니 이 버전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당연히 ‘The Eras Tour (Taylor's Version)’이다(사실 한 곡이 빠지긴 했다. LA 공연에서 게스트로 나온 하임(HAIM)과 함께 부른 ‘no body, no crime’은 어떤 버전에도 수록되지 않았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2018년 레퓨테이션(Reputation) 투어 이후 공연을 한 적이 없었다. 5년간 정규 앨범만 ‘Lover’, ‘Forklore’, ‘Evermore’, ‘Midnights’로 4장이 나왔다. 그사이 ‘Fearless’와 ‘Red’의 테일러스 버전도 있다. 투어가 그녀의 활동 기간 전반을 아우르지만, 공연에서 다룬 적이 없는 최근작에 좀 더 비중이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투어 일정까지 발표했다가 취소한 ‘Lover’(2019년) 시대로 공연을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무대 중앙에서 홀연히 등장하고, ‘Miss Americana & the Heartbreak Prince’로 공연 1막의 시작을 알린다. 그리고 곧 이어 ‘Cruel Summer’를 부른다. 이 노래는 ‘Lover’ 앨범의 다섯 번째 싱글로 예정되어 있다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취소된 바 있다. 하지만 팬 페이보릿으로 남아 조용히 생명력을 유지하다가 에라스 투어 이후 차트를 역주행했다. 결국 2023년 10월 공식 싱글로 발매되고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라, 테일러 스위프트의 가장 큰 히트 곡 중 하나가 되었다. 조악한 유튜브 영상으로도 이 노래가 공연에서 보여주는 힘은 확연했지만, 제대로 된 공식 영상은 비로소 증명한다. ‘Cruel Summer’는 스타디움을 위한 노래이고, 팝 역사상 손꼽히는 싱어롱 브리지를 담고 있다.

‘Lover’ 앨범의 싱글 발매 곡을 모두 부르고 ‘The Archer’로 1막을 마무리하면, 무대에 황금색이 쏟아지면서 2막 ‘Fearless’(2008년) 시대를 알린다. 이 시기의 히트 곡 ‘Fearless’, ‘You Belong With Me’, ‘Love Story’를 연이어 부른다. 무대에 밴드와 함께 올라 어울리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그리운가? 여기 있다.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사에 무슨 죄가 있을까? 뺄 이유가 없다.

무대에 숲이 자라나고 3막 ‘evermore’(2020년) 시대로 넘어간다. 공연은 이 시기를 좀 더 스펙터클하게 전달한다. “wait for the signal and I’ll meet you after dark” 부분을 주문처럼 외치는 인상적인 인트로와 함께 ‘willow’가 안무와 소품, 무대효과를 이용하여 뮤직비디오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champagne problems’는 나무 덩굴 아래에 놓인 듯이 연출된 피아노 독주로 공연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는다. 영화에 담긴 것은 아니지만, 8월 9일, LA에서의 마지막 공연에서 8분간 이어진 함성과 박수 세례는 투어 전체로 시선을 넓혀도 인상적인 순간이다.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연주자에게 넘기고, 무대 중앙의 테이블에서 남성 연기자와 함께 ‘tolerate it’ 무대를 연출한다.

이제 4막 ‘Reputation’(2017년)이다. 이 시기를 상징하는 뱀 그래픽이 무대를 감싸고, 가장 강렬한 버전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Ready For It?’을 부른다. 잔잔하게 ‘Delicate’를 거쳐, ‘Don’t Blame Me’에서도 여전히 그 혼자 무대를 책임지지만 조명과 무대장치로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리프트가 낮아지며 테일러가 무대로 내려오는 부분의 촬영은 실제 공연에서는 오히려 느낄 수 없는 감흥을 준다. 현장에서는 단지 리프트가 그를 지상에 내려놓을 뿐이지만, 영화는 절묘표한 프레이밍으로 저 높은 곳에서 에너지를 뿜어내던 그가 어느 순간 지상을 활보하는 마법을 보여준다. 이 강렬함이 이 시대를 상징하는 ‘Look What You Made Me Do’로 이어지며 이 시대를 마무리한다. 보랏빛 5막 ‘Speak Now’(2010년)를 지나 공연은 후반부로 들어간다.

테일러 스위프트 팝 시절의 정점 ‘Red’(2012년)와 ‘1989’(2014년), 팬데믹 이후 테일러 스위프트를 재정의하는 ‘forklore’(2020년)와 ‘Midnights’(2022년)가 번갈아 나오며 히트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All Too Well’의 10분 버전은 ‘Red’의 테일러스 버전이 필요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면서, 7막 ‘forklore’ 시대로 자연히 넘어간다. ‘forklore’ 무대는 앨범 전체를 연주하고 불렀던 디즈니+ 스페셜 ‘Folklore: The Long Pond Studio Sessions’를 떠올리게 하는 소박한 도입부를 지나, 이 앨범이 팬데믹 상황이 강제한 소박한 포크 앨범이 아니라 여전히 대형 공연에 어울리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forklore’의 오두막이 도시를 상징하는 직선으로 뒤덮이면서 8막 ‘1989’가 시작된다. 이 앨범이 낳은 싱글 1번부터 5번을 모두 부른다. 당신이 테일러 스위프트의 카탈로그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가장 귀에 익은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시대일 것이다.

9막은 서프라이즈 노래다. 모든 공연마다 한 곡은 기타로, 한 곡은 피아노로 어쿠스틱 무대를 꾸민다. 모든 공연은 관객에게 유일무이한 밤이다. 그리고 ‘The Eras Tour (Taylor’s Version)’에서는 6곡이다.

1. ‘I Can See You’ (Speak Now (Taylor’s Version) 수록 곡, 8월 3일 공연에서 최초 라이브)
2. ‘Death By A Thousand Cuts’ (‘Lover’ 수록 곡)
3. ‘Our Song’ (데뷔 앨범 ‘Taylor Swift’의 3번째 싱글)
4. ‘You Are In Love’ (‘1989’의 디럭스판 수록 곡)
5. ‘Maroon’ (‘Midnights’ 수록 곡)
6. ‘You’re On Your Own, Kid’ (‘Midnights’ 수록 곡)

영화 본편은 3, 6번을 담고 있다. 공연과 엔딩 크레딧이 끝나면 6곡을 순서대로 편집한 어쿠스틱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다.

서프라이즈 노래가 끝나면, 테일러 스위프트는 무대 가운데로 뛰어들고 물속을 가르는 영상과 함께 ‘Midnights’의 대단원이 시작된다. 무대도, 연출도, 의상도 가장 다채롭게 변한다. 앞서 보여준 십수 년간의 모든 모습을 요약하는 듯하다. ‘Midnights’가 그저 가장 최근에 나온 작품이 아니라, 그의 과거 흔적이 모두 담긴 종합판이라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앨범 자체로, 뮤직비디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공연에서만 가능한 프레젠테이션이다.

‘The Eras Tour (Taylor’s Version)’는 디즈니 플러스에 공개되고 첫 주말까지 1,620만 시청 시간을 기록하며, 스트리밍 시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음악 프로젝트가 되었다. 테일러즈 버전은 공연에 참석했던 사람도, 극장에서 보았던 사람에게도 새롭다. 에라스 투어는 앞으로 깨지기 힘든 흥행 기록을 쌓았고, 계속 쌓는 중이다. 2023년에만 66회 공연으로 추정 매출이 9억 달러에 이른다. 각종 상품과 투어의 영향을 받은 스트리밍 성적까지 감안하면, 모든 경제적 효과는 상상하기 어렵다. 올해 2월 일본을 시작으로 투어가 다시 시작되었고, 12월까지 85회 공연을 연다. 투어 기간 동안 테일러 스위프트는 ‘Speak Now’와 ‘1989’의 테일러즈 버전을 내놓았다. 올해 4월에는 완전히 새로운 앨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를 낸다. ‘Midnights’로 2024년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을 4번째로 수상했다. 4회 수상은 역사상 최초다. 국제음반산업협회(IFPI)의 글로벌 레코딩 아티스트도 4번째로 수상했다. 역시 최초다. 이 모든 것이 후일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다. ‘The Eras Tour (Taylor’s Version)’는 오직 콘서트 자체에 집중하고, 공연을 화면까지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설명을 위해 덧붙인 이야기도, 비밀스러운 비하인드 씬도 필요 없다. 아티스트와 팬의 유대감도, 공연에 쏟아부은 노력과 정성도, 모두 무대 그 자체에서 드러난다. 이 영화가 다시는 반복되기 힘든 순간을 목격하는 기적이 되는 이유다. 최대한 좋은 환경에서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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