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미성년의 경계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도, 어른이라는 단어가 부담이나 두려움으로 다가와도, 일단 앞으로 나아가는 열일곱 살, 운학의 이야기다.
오늘은 잘 잤어요?
운학: 와, 저 어제 ‘스튜디오 춤’ 콘텐츠를 한 6시간 정도 찍어서 몸에 알이 배겼어요. 이번 안무가 진짜 힘들거든요. 열일곱의 나이에 체력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웃음)
6시간이라니 너무 힘들었겠어요. 심지어 운학 씨는 누웠다가 일어서는 안무도 있잖아요.
운학: 한 번 출 때마다 100m 달리기를 3분 동안 하는 느낌이에요. 안무 처음 봤을 땐 ‘모 아니면 도다. 우리가 잘하면 모고, 우리가 못하면 도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스페드 업(Sped up) 구간에서 목각 인형처럼 춤을 추거나 넘어졌다가 일어나기도 하고, 태산이 형 파트 때는 마이크를 만들어서 노래를 부르거나 제 파트 때 갑자기 누워버린다든가 하는 동작이에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너무 어려워서 감이 안오는 거예요. 그런데 될 때 까지 하다 보니까 또 되더라고요. 몸에 익을 때까지, 노래만 틀어도 바로 안무가 나올 때까지 연습하면서 점점 저희 옷으로 만들어 갔어요. 솔직히 안무할 때는 너무 힘든데 원도어가 이 안무를 보고 ‘진짜 열심히 준비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게 하려면 이 정도 노력이나 열정은 껌이지 않나 생각합니다.(웃음)
체력 관리도 중요했겠네요.
운학: 안 그래도 운동을 해야 되는데… 그냥 춤이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사람이 있으면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데 혼자 있을 땐 뭘 하려는 성격이 아니라서 운동을 너무 귀찮아 하고요. 운동할 시간에 작업하자는 마인드여서요.
이번 앨범에서 신곡 6곡 중 5곡의 크레딧에 올라갔죠. 그렇게 작업에 몰두했기 때문일까요?
운학: 앨범 작업 과정은 매번 달라져요. 이번에 톱라인은 작업실에서 송캠프처럼 다 같이 작업했고, 가사 작업은 각자 감성이 다르다 보니까 그걸 살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따로 썼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가사는 ‘So let’s go see the stars’에 “어 뭐야 마이크 켜져 있었네”인데 마이크 켜져 있는 줄 모르고 상대한테 ‘너한테 지금 말하고 싶다.’, ‘너밖에 없다.’라고 소리치고 있었는데 “뭐야 마이크가 켜져 있었네” 하고 바로 전조가 바뀌면서 빵 터지는 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 가사를 쓰려고 쓴 게 아니라 송캠프를 하면서 다이내믹 마이크로 노래 부르다가 그냥 “뭐야 마이크 켜져 있었네” 하고 녹음했던 게 그 곡에 들어갔어요.
우연의 순간이 가사에 녹아든 거군요.
운학: ‘l i f e i s c o o l’에서도 “샴페인 말고 다 탄산으로 바꿔” 부분에서 저 샴페인이 탄산인 줄 몰랐어요!(웃음) 샴페인이 와인 같은 술인 줄 알고 콜라랑 사이다로 바꾸라는 말이었는데 지코 PD님이 가사를 보시고 “샴페인도 탄산인데 탄산이 또 나오는 건 이상하지 않아?”라고 하셔서 그때 “탄산이었어요?!”라고 했었어요. 가사를 바꿀 뻔했다가 그 의도가 너무 웃겨서 그대로 썼어요.
딱 지금의 운학 씨만 쓸 수 있는 가사였네요.
운학: 그게 제일 중요해요. “똑똑 아무도 없어 아무나 나랑 좀 놀아줘 왜 또(왜 또 왜)” 이런 가사들도 제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가사들이거든요. 경험이 없는 사람한테서만 나올 수 있는 치기어리고 날것 같은 가사들 있잖아요. 사회에서 부딪히고 어른으로서 느끼는 감정에서 쓰는 가사랑은 깊이가 절대로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청춘을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의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게 작업을 했어요. 곡 만들 때 지금 이 열일곱 살의 감성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미성년자인 지금을 보내주고 싶지 않아요.(웃음)
왜요? 내년이면 운학 씨도 “오늘도 나만 집에 남겨져 있네”가 아니라 형들이랑 같이 놀 수 있잖아요.
운학: 그때면 정말 어른인 거잖아요. 그게 부담이나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도 있어요. 다른 분들도 저한테 “그때가 제일 좋을 때다.”라고 하시는데 ‘난 아직 그만큼 못 즐긴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고 팀에서 막내다 보니까 성인이 되면 당장 형들처럼 어른이 되어야 할 것만 같고 그래요. 당연히 가볍게 생각하면 '운전 해보고 싶다'일 수도 있는데 저는 어른이 되었을 때 바뀌는 저의 변화 과정을 자꾸 생각하게 되고, 그게 앞에 보이는 듯 같아서 부담이 느껴져요.
위버스라이브에서 ‘One and Only’ 무대를 볼 때도 계속 풋풋하다고, 청소년기에는 빨리 큰다고 했잖아요. 그때의 운학 씨가 지금의 운학 씨와 다르듯 성인이 된 운학 씨도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운학: 저희 스태프분들이 저한테 이제 마냥 애같지 않고 분위기도 성장한 것 같대요. 그 말들이 반갑게 다가오면서도 가끔은 아주 살짝 서운해요. ‘저때 진짜 귀여웠다.’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또 그렇게 귀엽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리고 맨날 키 컸냐고 물어보세요. 키 안 컸는데! 저 작업할 때 습관 때문에 항상 자세도 구부정한데!(웃음)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선 장남이라 애교가 많기보다는 근엄했다고 했잖아요. 집에선 근엄하지만 회사에선 귀여운 운학 씨라니!(웃음)
운학: 근엄은 그냥 하는 말이죠, 뭐.(웃음) 엄마와 아빠랑은 친구처럼 지냈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랑은 말동무였어요. 엄마가 제가 연락을 하도 안 하니까 걱정하세요. 아들들 특징이 집에 가도 엄마 생각 안 하고 잘 생각만 하는 건가 봐요.(웃음) 제가 하도 연락을 안 하니까 걱정되시는지 맨날 연락해주셔서 답장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집이 화목한 분위기라 저희 남매도 사이좋게 자랐는데 다들 신기해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여동생이 내년에 중학교 1학년이 되는데 지금 사춘기가 와서 큰일났어요.(웃음) 그래도 6살 차이라서 귀엽기만 하죠. 싸우면 져주면 되고요. 최근 ‘KCON HONG KONG 2024’ 때 생일이어서 축하하다고 말하며 “오빠가 사줬으면 하는 거 있으면 보내라.” 했더니 오늘 무대 잘하고 오라는 한마디만 해주더라고요. 애가 성숙해요. 그래서 무대 끝나고 “선물 줬지. 됐지.” 하고 보내놓고 진짜 선물로는 예전부터 가지고 싶어 했던 걸 사줬어요.
운학 씨는 여동생이 성숙하다고 하시지만 재현 씨는 운학 씨가 성숙하다고, 어른이 늦게 되길 바란다고 하시더라고요. 2023 MAMA 어워즈 ‘Endless Rain’ 스페셜 무대의 “아이가 되기엔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너이기에”라는 가사도 운학 씨를 위해 쓴 가사였다면서요?
운학: 재현이 형이 가사를 쓰기 전에 “이번에 MAMA에서 특별 공연을 하는데 너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까 널 위해서 너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하는데 괜찮겠어?”라고 먼저 물어봐줬는데 너무 고마웠어요. 그때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아기 때부터 절 키워주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었어요.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게 처음이었는데 제가 해외에 있어서 장례식장을 못갔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무대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야 하고 제가 웃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약간 힘든 거예요. 그리고 무대 끝나고 와서 장례식장에 있는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펑펑 울었어요. 그때 재현이 형이 “안 웃어도 돼. 울어도 돼. 왜 그렇게 어른인 척하려고 해. 어른처럼 안 굴어도 돼. 너 막내야. 무대에 못 나가도 돼. 그러니까 여기 있어.”라고 해주는데 그 말에 엄청 울음이 나면서도 많은 위로를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가능하시다면 할아버지 얘기를 인터뷰에 꼭 넣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운학: 저는 할아버지가 위에서도 응원해주고 계실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그 당시에 제가 힘들어 하고 우울했던 게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고, 그래도 재현이 형이나 다른 형들한테 많은 위로를 받아서 이겨낼 수 있었다는 걸 꼭 얘기하고 싶었어요. 귀국하자마자 형들이 납골당에도 같이 가줬어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 중 하나였는데 그때를 이겨낼 수 있게 옆에 형들이 있었어요.
운학 씨에게 형들이 큰 의미네요.
운학: 제가 돌파구를 찾을 때나 도전의 시작점에 있을 때 항상 형들이 옆에 있었어요. 노래 만드는 걸 시작할 때도 태산이 형이 있었고, 보컬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할 때는 성호 형이, 춤에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할 땐 리우 형이 있었고요. 제 자신에게 자신감이 생길 수 있도록 따뜻함을 주는건 이한이 형이, 랩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건 재현이 형이었어요. 재현이 형이 항상 “너가 만든 음악 너무 좋은데 왜 자꾸 안 들려주려고 해? 나 진짜 좋아해.”라면서 자신감을 불어넣어 줘서 그걸로 인해 제 자작곡을 들려주게 됐던 기억도 있어요. 그런데 형들이 저한테 일부러 자신감을 주려고 한 건 아니지만 형들이랑 같이 살고 연습하면서 ‘이렇게 하면 나도 할 수 있겠구나, 나도 진짜 잘할 수 있겠구나.’라는 거에서 얻는 자신감이었어요.
그 모든 시작에 멤버들이 있었군요.
운학: 지금은 같은 팀의 멤버고, 같이 무대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연습생으로 처음 들어왔을 때 형들은 제가 보고 배우는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정말 처음이었고, 잘 못하다 보니 ‘형들한테 피해가 안 가게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아니면 ‘형들보다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형들이 귀찮아할 때까지 계속해서 물어봤었어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예요? 형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못하는 걸 잘하게 되기 위한 과정도 사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운학: 저는 욕심이 정말 많은 아이거든요. 계속해서 저를 발전시키고 싶고 뭐든 다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일단 부딪히고 보고 생각한 대로 해봐요. 별로인 결과가 나오더라도 경험에서 배우는 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 실패를 겪더라도 그걸 다시 좋은 결과로 바꿀 수 있는데 이것마저 두려워하면 다른 건 어떻게 해내겠어요? 저는 5만 명 원도어 앞에서, 그래미나 빌보드 같은 큰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게 꿈인데 연습실 안에서 어떤 곡 하나, 어떤 춤 하나를 도전하는 걸, 새로운 곡을 써서 남한테 들려주는 걸 무서워할 거냐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도전해요. 노래 부를 때도, 라이브를 연습할 때도 ‘지금 원도어 앞에서 못 부르면 나중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원도어 기 살려줘야 할 때는 어떻게 불러주려고 이러냐?’라는 생각으로 항상 일단 도전해봐요.
연습하면서 춤이 너무 미웠는데 그래도 계속 췄던 적도 있잖아요. 그 수많은 실패나 두려움 속에서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운학: 포기는 애초에 없었어요. 그냥 배제 대상. ‘이미 시작했는데 왜 포기를 하지?’, ‘이미 나는 강을 건넜는데. 내가 잘하는 분야에서 포기를 하면 도대체 어떤 걸 해야 하지? 다시 돌아가도 다른 친구들보다 뒤처질 텐데 어떤 걸 할 거라고 포기를 하지?’라는 마인드여서 중간에 진짜 힘들었던 적은 있어도 회사를 나가고 싶다거나 포기하고 싶다라는 마음은 절대 한 번도 든 적 없어요. 시작했을 때부터 오직 데뷔의 꿈 하나였어요. 춤도 진짜 추기 싫었는데 이겨낼 수 이유는 그냥 포기라는 단어를 배제하고 형들이랑 한 팀이 되기 위해 계속 뭔가를 하려는 제가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를 잡아줬던 형들이 있었기에 끝까지 할 수 있었어요.
형들이 고맙겠네요. “솔직한데 감사함을 잊지 말자.”고 했던 만큼 그 감사함을 표현했을까요?
운학: 최근에 형들이 자꾸 장난을 쳐서 고맙다는 표현을 할 일이 없었어요.(웃음) 형들 이상해요. 반말하라고 해서 반말 썼더니 쓰지 말래요. 그런데 어떻게 안 써요? 그건 불가능하죠. 그래서 “싫은데요!” 하고 반말이 80%인 반존대 쓰면서 친구처럼 지내고 있어요. 형들 진짜 ‘초딩’처럼 노는 게 물 뿌리고,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있으면 밖에서 불 끈 다음에 공포 영화 귀신 소리 틀고 막 ‘따닥따닥따닥’해요. 그리고 갑자기 등교해야 된다고 일어나래요. 그래서 일어났더니 새벽 2시인 거예요. 진짜 유치하게!(웃음) 억울한 게 저는 굳이 장난을 먼저 치진 않는데 형들이 하도 장난을 많이 치면 반격을 하거든요? 근데 그런게 잘 안 먹혀요. 장난도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하는데 없어서요. 아, 그래도 저는 남들한텐 형들이 착한 형들, 동생한테 누구보다 잘하는 형들로 비춰졌으면 좋겠어요.(웃음)
왜요?(웃음)
운학: 아무래도 계속 같이 살다 보니까 형들이 행복하면 저도 행복하고 형들이 슬프면 저도 슬프고 형들이 힘들면 저도 힘들거든요. 그래서 형들한테 고마워할 건 정말 고마워하되 나중에는 그걸 넘어 항상 도움이 돼주고 싶고 형들이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동생이 되고 싶어요.
왜 지금이 아니라 나중인가요?
운학: 지금은 미성년자니까요. 지금은 즐기고 어른이 되면 그때 생각해봐야죠.(웃음)
지금은 잘 즐기고 있어요?(웃음)
운학: 많이 웃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었을 때 굳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들이 반복됐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일상생활에서 하는 고민만으로도 충분한데 잠자리에 들어서까지 하는 생각은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잠 잘자고, 밥 잘 먹고, 주변 사람이랑 재밌게 지내고 원도어 보면서 행복하게 무대하고, 멤버들끼리 재밌게 행복하게 지내고, 웃으면서 파이팅하는 삶이 저한테는 행복한 삶인 것 같아요.
요즘은 그런 고민 없이 행복해요?
운학: 저 그런데 요즘은 고민을 진짜 많이해요. 사실 데뷔하고 난 이후로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사를 더 잘 쓰고 무대를 잘할 수 있을까? 내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걸까?’ 같은 질문을 하루도 안 해본 적이 없을 정도예요. 그런데 매일 밤 결론을 내려도 내일이 되면 또 바뀌어요. 하루하루도 다 다른 것처럼 고민에 대한 답도 매일매일 바뀌는 것 같아요.
그렇게 내린 나름의 결론이 있을까요?
운학: 저는 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사람들이랑 있을 때 애 같고 천진난만하고 마냥 밝아 보이는 막내지만 혼자 있을 땐 고민이나 생각이 많고 진지한 사람이기도 해요. 한참 혼자 진지할 나이기도 하잖아요. 아이돌로서는 개구쟁이 같고 좋아하는 힙합처럼 악동 같으면 좋겠다가도 어떨 땐 대학교 같이 다니는 동생 같았으면 좋겠어요. 원도어분들이 보시기엔 전 그냥 눈사람 같고 곰돌이 같은데 저는 혼자 “나는 그게 아닌데! 나는 완전 힙합인데!”이러기도 하고요.(웃음) 그래서 내린 결론이 제가 계속 바뀌면 된다는 거예요. 나는 그냥 나니까, 되고 싶은 지금의 나로 살면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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