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배지안, 강일권(음악평론가),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디자인MHTL
사진 출처ENA

찐팬구역 (ENA, ‘채널십오야’ 유튜브)
배지안: “야구를 누가 즐겁게 봐요?!” ‘찐팬구역’ 게스트 일주어터의 발언이 최근 많은 야구 팬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2024 KBO 리그가 드디어 개막했고 개막전 당일 5개의 구장은 전부 매진되었다. 하지만 야구 팬들은 늘 화를 낸다. 그리고 매일 야구를 본다. 이 심리가 무엇인지 궁금했을 이른바 ‘머글’들에게 ‘찐팬구역’을 추천한다. ‘찐팬구역’은 오랫동안 한화 이글스의 팬인 출연진들의 생생한 응원 또는 좌절을 담은, 일종의 야구 ‘리액션캠’이다. 신나서 다 같이 응원가를 부르고 충청도 사투리로 상대 팀 팬들을 약 올리다가도, 단 몇 분 만에 뒤집힌 상황에 좌절하고, 심지어 촬영장을 뛰쳐나가 하늘을 보며 깊은 한숨을 쉰다. 그냥 집에나 갈까, 고민 중이었다던 신원호 PD에게 전 야구선수 김태균은 경기 중 팬들이 일어나 집에 가는 모습을 보면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다고 선수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런 김태균에게 차태현과 인교진은 “우리도 허탈해.”라고 반박하다가도 계속된 실책으로 사기 저하된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두 손을 꼭 모은 채 “현빈이한테 더 이상 짐을 주지 마세요.”라고 기도한다. 팬의 마음이란 그렇다. 우연찮게도 한화 이글스가 ‘찐팬구역’ 촬영 날만 골라서 패배하자 차태현은 ‘혹시 내가 봐서 지는 건가?’라는 말도 안 되는 자책을 하기 시작한다. 야구장 현장에서 경기를 보고 있는 것도 아닌데, 행여 정말 ‘내가’ 패배 요정일까. 차태현은 방송도 잊은 채 소파 뒤로 숨어 경기 시청을 포기한다. 다행히도(?) 경기가 잘 풀리기 시작하고, 그는 환호한다. “우리가 살 길을 찾았어! 내가 안 보면 돼!” 내가 야구를 못 보는 아쉬움보다 우리 팀이 잘하는 기쁨이 더 크다. 야구 팬이란, ‘찐팬’이란 이렇다.

Tyler, the Creator의 Coachella 2024 공연
강일권(음악평론가):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은 라이브뿐만 아니라 스튜디오 밖에서 발휘되는 아티스트의 예술성과 독창성을 확인할 수 있는 축제다. 이를테면 무대미술과 스토리텔링 같은 요소 얘기다. 특히 여러 아티스트의 무대를 비교해보는 맛이 쏠쏠하다. 올해 ‘코첼라’를 본 이들에게도 각자 최고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나에겐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의 헤드라이닝 공연이 그랬다. 지난 4월 13일(현지 시각)의 ‘코첼라’ 무대는 그에 의해 펼쳐진 창의적 우주 그 자체였다. 시작부터 강렬했다. 두 개의 큰 바위 언덕과 낡은 트레일러를 중심으로 꾸민 사막 풍경, 대형 스크린의 오프닝 영상에 국립공원 관리인 복장으로 등장한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는 곧 폭발과 함께 트레일러로부터 튕겨 나왔다. 힙합 아티스트들이 종종 시상식 무대에서 선보인 연극적인 연출에 특수효과를 더한 시작이었다. 이후 세트 뒤에 배치된 프로젝션에서 여러 콘셉트의 이미지가 교차하는 가운데, 약 80분 동안 관객을 황홀한 세계로 몰아넣었다. 압권은 ‘Who Dat Boy (Feat. A$AP Rocky)’를 부를 때다. 암전된 상황에서 신경질적인 사운드의 인트로가 흘러나오고, 이에 맞춰서 우주 함선의 불빛 같은 LED 조명이 깜빡거린다. 점점 고조되는 불길한 분위기. 마침내 역동적인 메인 비트가 시작되자 무대 곳곳에선 불길이 치솟고, 공중엔 CG로 연출한 UFO가 떠 있다. 그리고 무대엔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 외에 또 한 명의 랩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피처링 게스트 에이셉 라키(A$AP Rocky)다. 2017년에 공개된 뮤직비디오가 호러 장르로 연출되었다면, 이번 라이브는 미스터리 SF였다. 정말 끝내주고 짜릿했다. 이외에도 71세의 소울 싱어송라이터 찰리 윌슨(Charlie Wilson)을 특별히 초빙하여 ‘EARFQUAKE’의 피아노 편곡 버전을 함께 부르던 모습, ‘NEW MAGIC WAND’ 퍼포먼스를 끝으로 폭풍에 휩싸여 무대 밖으로 솟아오르다가 사라진 너무나도 영화적인 마무리까지…. 타일러의 ‘코첼라’ 2024 공연은 훌륭한 무대 기술과 짜임새 있는 연출 그리고 감탄할 만한 스턴트가 빈틈없이 어우러진 최고의 쇼였다. 그 격렬했던 감정의 진앙지에 실제로 있었던 관객들이 너무 부럽다.

‘챌린저스’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위력이 실린 타구음, 터질 듯한 심박, 단련한 육체, 떨어지는 땀방울. 세 명의 선수 타시(젠데이아 콜먼), 패트릭(조쉬 오코너), 아트(마이크 파이스트)의 “관계”는 스포츠의 속성과 정확히 호환된다. 그들은 코트를 달구고 코트 바깥에서는 서로를 달군다.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챌린저스’에서 커리어를 향한 야심, 들끓는 섹슈얼 텐션이 버무려진 삼각관계를 슬로모션과 테니스공 POV(Point of View)를 넘나들며 다이내믹하게 포착한다. 테크노와 일렉트로니카 음악은 충동질한다. 패트릭과 아트, “불과 얼음”의 양극단 사이, 정중앙 네트에 타시가 있다. 주니어 때부터 에이스이면서 스타였고 탄탄대로를 달릴 예정이었던 타시는 무릎 부상 여파로 인해 아트의 코치로 직업을 전환한다.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여러 번 거머쥔 챔피언이자 타시의 남편 아트는 연패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중이다. 이기는 감각의 회복이 급선무라 판단한 타시는 아트를 챌린저급에 참가시키고, 둘은 대회 참가 수당으로 연명하는 패트릭을 13년 만에 맞닥뜨린다. 타시의 전 애인, 아트의 전 절친인 그는 과거에 아트가 져달라고 부탁할 만큼 전도유망한 원석이었으나, 현재 그는 부유한 집안의 원조를 마다한 채 그럭저럭한 랭킹에 머문다. 테니스 기숙학교에서 만난 열두 살 이래로 친구였던 패트릭과 아트는 타시의 경기를 본 후 타시에게 동시에 반했다. ‘내’ 분야에서 빼어난 기량으로 활약하는 매력적인 여자에게 빠진 그들은 판이한 성격이었지만 각별했고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복식조였다. 아트는 타시와 연인이 된 플레이보이 패트릭이 “한눈 안 팔 것” 같다는 속내를 드러내기도 전에, 커플을 이간질할 필요를 느낄 정도로 달라진 패트릭을 눈치챘다. 패트릭 역시 아트를 간파했기에 타시는 널 진지하게 생각 안 한다는 아트의 말을 여유롭게 받아쳤다. “뱀 같은 새끼. 이러면 나 더 불타는 거 알지?” 그는 타시를 사랑하는 아트를 아끼되 자신만만했다. 말쑥하고 섬세한 아트는 타시와 패트릭의 균열을 틈타 패트릭의 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승부사 타시는 패트릭의 재야 고수 면모와 혜안, 불도저 기질에 계속 끌린다. 불가항력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타시는 은퇴하려는 아트의 이완이 아니라 승리하겠다는 패트릭의 긍지를 원한다. 욕망은 닮은 욕망끼리 얽힌다. 결전의 날, 패트릭은 아트의 호승심을 자극해 그가 그를 발휘하도록 도발하고, 타시는 앉은 자리에서 게임에 출전한다. 서로의 자장 아래인 타시, 패트릭, 아트는 한 축이 사라지면 랠리를 이어갈 수 없다. 부재가 부진의 원인이었다. 다시 기합을 넣는 세 플레이어 모두 이 기묘하고 관능적인 트라이앵글 팀의 즉시 전력감이다. 위너가 누구인지는 끝까지 알 수 없다. 테니스는 LOVE(0점)로 시작할 뿐이다. 공의 궤적은 대담하고.

Copyright ⓒ Weverse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