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빅히트 뮤직
00:00 00:00
POWERED BY  
tts logo

제이홉이 방탄소년단의 일원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이후에도 언제나 그의 중심엔 스트리트 댄스가 있었다. 새 앨범 ‘HOPE ON THE STREET VOL.1’은 이처럼 춤과의 한결 같은 유대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우선 스페셜 앨범이란 포맷에 걸맞은 구성이 엿보인다. 새로운 곡뿐만 아니라 제이 콜(J. Cole)과 함께했던 ‘on the street’의 솔로 버전과 ‘what if…’의 리믹스 버전도 수록됐다. 기존에 발표된 대표 곡의 새로운 버전이나 리믹스를 신곡 못지않게 즐기는 입장에선 더할 나위 없는 트랙리스트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곡은 ‘NEURON (with 개코, 윤미래)’이다. 한국 힙합 최상위 실력자들인 개코와 윤미래를 초빙한 덕분에 랩이란 보컬 형식이 선사할 수 있는 쾌감으로 넘실댄다. 목을 살짝 긁어가며 스타일을 만든 제이홉의 래핑이 시작과 함께 몰입도를 끌어올리면 개코가 예의 날카롭고 옹골진 플로우로 하이라이트를 연출하고 시원하게 꽂히는 윤미래의 랩이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 신경계의 단위, 제이홉이 몸담았던 댄스 크루 이름,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가사 ‘New Run’을 활용한 언어유희 등 삼중 의미가 담긴 제목도 흥미롭다.

프로덕션도 인상적이다. ‘on the street’와 결이 비슷한 동시에 보다 다채로운 구성이 도드라진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의 미국 동부 힙합 사운드를 관통하는 붐뱁(Boom Bap)과 멜로딕한 팝랩 프로덕션이 어우러졌고, 후렴 부분에선 서부 힙합의 대표적인 요소 토크박스 효과도 가미됐다. 그뿐만 아니라 윤미래의 랩이 이어질 차례엔 탁월한 변주가 이루어진다. 팝적인 후렴구가 끝나고 건반 리프가 굴러떨어지며 새로운 비트로 전환되는 순간이 매우 짜릿하다. 힙합에 대한 제이홉의 애정이 고스란히 반영된 듯한, 타이틀곡으로서 손색없는 넘버다.

정국이 참여한 ‘i wonder... (with Jung Kook of BTS)’는 펑크(Funk)와 일렉트로팝이 퓨전되어 완성됐다. 밝고 활력 있는 프로덕션 안에서 제이홉은 오토튠을 입힌 랩싱잉으로, 정국은 멜로딕한 노래로 팬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과 믿음을 전하고자 한다. 방탄소년단으로 함께해온 두 아티스트가 서로에게 보내는 메시지로도 들린다. 그들의 행보를 오랫동안 따라온 이들이라면, 더욱 뭉클해질 곡이다. 바로 다음에 ‘lock / unlock (with benny blanco, Nile Rodgers)’을 배치한 건 절묘한 선택이다. ‘i wonder...’와 마찬가지로 펑크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lock / unlock’이 좀 더 댄서블하며 전통적인 펑크에 가깝지만, 리듬 파트의 질감이 비슷하다. 그래서 마치 다른 무드와 템포로 변주되는 한 곡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다재다능한 아티스트 베니 블랑코(Benny Blanco)의 보컬과 살아 있는 소울/펑크 전설 나일 로저스(Nile Rodgers)의 연주가 제이홉의 보컬과 스텝을 맞추며 차오르는 감흥에 방점을 찍는다. ‘i wonder...’부터 점차 템포가 빨라지던 신곡 구간은 이어진 ‘i don’t know (with 허윤진 of LESSERAFIM)’에서 절정을 맞는다. 윤기 나는 딥하우스 프로덕션과 제이홉의 퍼포먼스는 물론, 르세라핌 허윤진의 매혹적인 프랑스어 독백과 보컬이 인상적이다.

한편, 또 다른 버전으로 가공된 곡들은 정규 앨범 외의 프로젝트에서만 만끽할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시작을 연 ‘on the street (solo version)’에선 제이 콜의 영특한 벌스가 빠진 자리를 제이홉이 새 가사와 래핑으로 채웠다. 자연스레 아티스트가 담고자 한 의미도 한 뼘 더 확장되었다. 그의 뿌리(‘스트리트 댄스’)를 상징하는 공간이자 그동안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 더불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하는 영감의 원천이자 삶의 교훈을 주는 세계인 거리에 바치는 헌사와 전 세계의 팬이 보내준 사랑에 대한 화답이 두 배로 커진 셈이다. 특히 앨범을 통틀어 가장 돋보이는 라인이 새로운 벌스에서 나왔다.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은 다르기에”. 우린 때때로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한 혹은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직접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짧은 구절이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전작 ‘Jack In The Box’(2022)에서 제일 큰 감흥을 안긴 ‘What if…’는 ‘dance mix’ 버전으로 재탄생했다. 일단 고(故) 올 더티 바스타드(Ol’ Dirty Bastard)의 명곡 ‘Shimmy Shimmy Ya’를 샘플링하고 뉴욕 힙합에서 일렉트로닉을 오가는 극단적인 형식의 프로덕션은 여전하다. 강렬했던 오리지널 버전으로부터 궤도를 거의 이탈하지 않은 리믹스다. 다만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진보(JINBO)가 가세하면서 환기되는 구간이 생성됐다. 잠시 진보를 얘기하고 가자. 그는 한국에서 네오 소울과 힙합 소울을 빠르게 흡수하여 제대로 구현한 매우 드문 아티스트 중 한 명이며, 이젠 힙합/R&B와 K-팝을 넘나들며 안주하지 않는 커리어를 쌓고 있다. 중반 이후 등장하는 그의 부드럽고 소울풀한 보컬은 제이홉의 낮고 빠른 래핑과 전투적인 비트가 조성한 위협적인 분위기를 잠시 누그러뜨린다.

‘HOPE ON THE STREET VOL.1’은 장르적 특성과 대중친화적 요소의 균형이 잘 조응된 작품이다. 그 안에서 전해지는 제이홉의 야심은 소박하다. 예술적 뿌리인 스트리트 댄스를 향한 무한한 애정, 댄서로서의 자부심, 랩/힙합에 대한 관심과 리스펙트, 믿고 지지해준 팬들에게 바치는 진심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문득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이 회자했던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명언이 떠올랐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제이홉은 ‘스트리트 댄스를 위하여’라거나 ‘힙합을 위하여’를 외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시작을 잊지 않고 되새기며 개인적인 여정을 이어갈 뿐이다. 즐겁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Copyright ⓒ Weverse Magazine.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