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부탁해’, ‘수요미식회’, ‘식신로드’의 섭외를 위하여.” 2015년 9월 15일에 방영한 ‘달려라 방탄’의 ‘30초 게이트’편(Ep.4)에서 슈가는 방탄소년단이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섭외됐으면 하는 바람을 말한다. 그때의 슈가는 상상했을까. 그들이 인기 방송인 백종원과 함께 요리를 하게 될 것이라는 걸. 그것도 다른 TV 프로그램이 아닌 그들의 자체 콘텐츠 ‘달려라 방탄’에서 말이다.

“전설을 만들 거예요.” 2015년 8월 1일, ‘달려라 방탄’ 첫 회에서 뷔가 했던 말은 현실이 됐다. 아티스트로서 방탄소년단의 위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방탄소년단의 성장과 함께 ‘달려라 방탄’은 에피소드당 조회수 1,000만 이상까지 기록할 수 있고, Mnet과 JTBC 등 케이블과 종편 TV에서 스페셜 편성을 할 만큼 영향력을 가진 예능 콘텐츠가 됐다. 이제 ‘달려라 방탄’은 멤버들이 애니메이션 더빙을 시도(Ep.109 ‘달방 더빙’)하기 위해 저작권 관리에 엄격한 디즈니와 협의를 할 수 있고, 세계적인 프로게이머 페이커가 소속된 e스포츠 구단 T1을 초대해 게임을 할 수 있다(Ep.114-115 ‘LEAGUE of No.1’). 그러나 T1을 만나기까지 방탄소년단은 작은 PC 스튜디오에 세팅된 테이블과 컴퓨터 앞에서 멤버들끼리 소소하게 온라인 게임을 즐겼고(Ep.25 ‘게임왕’),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업그레이드된 환경과 장비가 갖춰진 e스포츠 아레나에서 새로운 게임에 도전(Ep.107-108 ‘방탄 게임단’)했다. 방탄소년단이 요리를 소재로 한 에피소드의 변천사는 ‘달려라 방탄’의 성장사를 더욱 피부에 와닿게 한다. 멤버들끼리 팀을 나누어 요리 대결을 펼치던 방탄소년단이(Ep.20 ‘한식대첩’)이 직접 담근 김치를 활용해 요리(Ep.36 ‘김치전쟁’)를 하고, 레스토랑에서 유명 셰프에게 직접 이탈리안 요리를 배우며(Ep.57-58 ‘방탄 셰프’), 요리에 능숙한 멤버 두 명이 나머지 멤버에게 지시하여 요리를 완성시키는 ‘아바타 요리왕’편(Ep.102-103)과 그 방식을 역으로 활용한 ‘역 아바타 셰프’편(Ep.122-123)을 지나 백종원을 만나는 것(Ep.125 ‘K-햄특집’)으로 이어진다. ‘달려라 방탄’의 현재가 방탄소년단이 얼마나 거대한 팀이 됐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면, ‘달려라 방탄’의 과거는 그들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해오고, 성장해왔는지에 대한 방증이다.

2020년 5월 9일에 방송된 브이라이브 ‘슙디의 꿀 FM 06.13’에서 진과 슈가는 “‘달려라 방탄’이 이렇게까지 올줄 몰랐다.”며 “원래는 파일럿 같은 느낌으로 시작했는데 아미 분들이 너무 좋아해주셔서 스케일이 커졌다.”고 말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애초에 ‘달려라 방탄’은 “짧은 분량의 10회분 기획으로 출발했지만 팬들이 큰 호응을 보이면서 지속”된 콘텐츠다. 제작진은 ‘달려라 방탄’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로 “팬의 즐거움과 행복”을 꼽는다. “처음에는 촬영을 어색해하고 어려워하”던 멤버들이 “팬들이 좋아하는 것을 느끼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게 되면서 점차 그 안에서 재미를 찾게 되었”고, 그사이 멤버들은 TV 예능 프로그램 이상으로 스케일이 커진 ‘달려라 방탄’에 걸맞은 모습으로 성장해왔다. 방영 초반 다소 어색해하는 모습을 보였던 그들은 이제 백종원이 출연하자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띄우고, 예능 출연이 생소한 T1과의 아이스브레이킹을 적극적으로 유도한다. 더 나아가 최근 방영된 ‘PD 작가’편(Ep.124)에서는 방탄소년단이 촬영할 아이템을 직접 구상하고 제안, 선정한 후에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며 아이템을 발전시켰고, 이는 ‘777 럭키 세븐’편(Ep.126-127)을 통해 2주간 방영되기도 했다. 그들은 전문 예능인이 아님에도 팬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예능 콘텐츠를 계속 만들었고,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하는 사이 ‘달려라 방탄’에서는 예능 콘텐츠의 다양한 장르와 영역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팀이 됐다.
  • © RUN BTS
그러나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PD 작가’편(Ep.124)에서 아이템 회의 중 장기 프로젝트로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스포츠 종목을 정할 때 RM이 족구를 언급하자, 멤버들은 “족구는 우리가 잘하는 순간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한다. 방탄소년단은 ‘방탄 야유회’ 2편(Ep.54)에서 마치 홈런을 치듯 롱 슛으로 공을 차 족구를 야구로 만들고, 제작진과 계속 룰을 타협해 가는 난리통 속에 족구를 한 바 있다. 그들의 족구 시합으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은 ‘달려라 방탄’이 재미있으면 되는 그들의 즐거운 예능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조건 이 현장에서만큼은 마음 놓고 놀다 갈 수 있도록 하자.”는 기조를 유지해온 제작진의 말처럼, 그들은 팀과 ‘달려라 방탄’이 엄청난 규모로 커진 지금도 예전과 똑같이 서로 속임수를 쓰며 재밌어하고, 놀이기구가 무서워 호들갑스레 반응하고, 소품을 실수로 망가뜨려 멋쩍게 웃는다.

방탄소년단은 ‘달려라 방탄’에서 오락실(Ep.17-18 ‘오락실 올림픽’), 놀이공원(Ep.51 ‘50회 특집’), 사우나(Ep.61-62 ‘방탄 사우나’)처럼 평소 접하기 힘든 공공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라떼 만들기(Ep.45 ‘방탄 카페’), 공방에서 도예 체험(Ep.46 ‘방탄 공방’), 플로리스트가 되어 장식품 만들기(Ep.99 ‘플로리스트’)처럼 바쁜 스케줄 속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새로운 체험을 하기도 한다. ‘달려라 방탄’이 방송을 시작한 이후 6년여의 시간 동안, 그들은 픽션이라면 개연성 부족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성공을 거듭했다. ‘달려라 방탄’의 외형적인 성장 또한 이 성공의 결과이자 성공을 가능케 한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방탄소년단은 ‘달려라 방탄’ 안에서만큼은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누릴 수 없는 활동을 할 수 있다. ‘달려라 방탄’은 그들이 팬을 위해 만드는 콘텐츠이지만, 방탄소년단이 더 큰 성공을 거둘수록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시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보호막이기도 하다. 외부의 기준에 맞춘 평가나 억지스러운 의무나 요구도 없는 이곳은 방탄소년단의 멤버들이 ‘BTS’가 아닌 평범한 20대로서 함께 모일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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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걸 하고, 서로 다독여주며, 재밌게, 열심히 하면서 팬과 함께 웃을 수 있는 30분. 지금의 ‘달려라 방탄’은 방탄소년단의 거대한 위상을 증명하는 동시에, ‘달려라 방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그들이 무엇인가를 잃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멤버들의 우정, 팬들에 대한 변치 않는 마음,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태도 같은 것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다만 ‘달려라 방탄’ 속 방탄소년단을 보며 드는 복잡하면서도 기분 좋은 감정을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그거면 됐다고.
글. 이예진
디자인. 전유림
사진 출처. 달려라 방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