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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은,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김복숭(작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MBC

‘운동짱범규’ (M드로메다 스튜디오)
김리은: 성실, 열정, 자기관리. 미디어에서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아이돌에게는 불가피한 덕목들이다. ‘운동짱범규’는 이에 대한 배반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의 호스트인 투모로우바이투게더 범규는 매 오프닝마다 자신의 체력과 운동 신경에 대해 자신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하루 4시간씩 안무 연습을 해내는 그도 비현실적인 ‘운동짱'들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개그우먼 김혜선의 멈추지 않는 점핑머신, 10kg 케틀벨을 들고도 거뜬없이 용마산 정상까지 오르자고 외치는 줄리엔 강과 함께하는 등산은 범규로 하여금 미션을 회피할 수많은 방법을 고안하게끔 한다. 운동량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김혜선에게 즉석 인터뷰를 시도하거나, 돌탑을 쌓고 소원을 비는 문화를 처음 접한 줄리엔 강에게 눈을 감고 기도하라고 알려준 후 몰래 도망치는 범규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프로그램 내내 ‘룰 브레이커’를 자처하는 범규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결국 엔터테이너로서의 프로의식이다. 그는 트램폴린 위에서 고통스러워하다가도 김혜선과 열정적인 댄스 배틀을 펼치고, 번지 피트니스 미션에 함께 출연한 게스트 KCM과 ‘분량을 얻고 아이돌 자아를 잃다.’라는 자막이 붙을 정도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상황극을 펼치고도 재미있는 장면들이 충분히 나왔을지를 걱정한다. KCM이 주문한 ‘피터팬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해 발끝 포인트까지 신경쓰며 공중을 도는 범규의 모습은 오랜 기간 무대 위 퍼포먼스를 연습해온 아이돌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기도 하다. 

‘아이돌’이라는 단어의 의미 그대로, 대중이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직업인으로서의 아이돌에게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범규가 점핑머신을 마친 뒤 지친 상태로 누워서 “다 먼저 가셔도 돼요. 저 혼자 있고 싶어요.”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그 뒤에는 쉬고 싶은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운동짱범규'는 아이돌이 그간 요구받던 모습 뒤에 가려진 인간적인 욕망을 엔터테인먼트의 소재로 활용하되, 이조차도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로서의 책임감과 무관하지 않음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그러니 범규의 끝없는 도망과 꼼수도, 김혜선으로부터 “제정신이 아니세요.”라는 말을 들을 만큼 넘치는 에너지도, 웃음을 주기 위해 평소와 달리 일그러뜨린 표정도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건 그간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매력적인 배반이니 말이다.

‘디피컬트’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1974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뉴스는 매년 ‘힘든 한 해’를 회고하거나 ‘힘든 한 해’를 예고해 왔다. ‘어려운’ 해가 아닌 적은 없었다. 콤비 감독 에릭 토레다노와 올리비에르 나카체는 ‘디피컬트’에서 이탈리아식 코미디를 바탕으로 “과도한 부채와 생태라는 두 가지 주제를 연결”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시련을 비웃”는다. 오프닝 시퀀스에 흐르는 ‘Grandbrothers - Sonic Riots’는 활동명 캑터스(노에미 메를랑)를 필두로 블랙 프라이데이 당일 쇼핑센터 앞에서 연좌 농성을 하며 구호를 외치는 환경 운동가들의 에너지를 배가하는 선곡이다. 알베르(피오 마르마이)와 브루노(조나단 코헨)는 연체와 저당, 독촉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프랑스 은행에 신청한 채무 변제 승인이 떨어지기만을 고대한다. 이곳저곳에 손을 벌린 그들은 대개 주눅 들어 있다가 거짓 변명을 할 때나 겨우 뻔뻔해진다. 공짜 맥주에 혹해 “사회 정의에 대한 토론”에 참석한 두 남자가, 확성기를 들고 소비와 방관은 “반인륜 범죄”라고 연설하는 캑터스의 급진 네트워크에 속하는 건 얼결 혹은 우연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노에미 메를랑 배우의 말대로 이 설정은 “유머, 사회를 향한 관심, 휴머니즘 등 다양한 톤을 혼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는 감독들이 심은 파토스다. 넉넉한 ‘환경’ 덕에 학업에 전념하던 캑터스는 발표 준비를 하다 기후 변화 보고서를 읽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는 환경 오염 실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후 두려움에 우울증을 앓고, “자신을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여기며 모순의 간극을 좁히려 전진한다. 영화는 근본적 공포로 인해 숨이 막히는 캑터스를 몽상가로, 생존을 위해 잔꾀를 부리는 알베르와 브루노를 불한당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가치관에 따라 미니멀리스트로 사는 캑터스의 널따랗고 텅 빈 집과 실은 맥시멀리스트이나 빈한하여 널따랗고 텅 빈 브루노의 집을 비춘다. 다른 의도를 지닌 이들은 같은 최전방으로 내몰리고 맞물린다. 저지당하고 들통날 걸 알면서 움직인다. 사회에는 아름다운 선지자와 한심한 속물이 공존한다. 언제나. 그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을 담은 영화는 뻗어나간다. 요원한 환상에서 파드되.

※파드되: 두 사람이 추는 춤(발레)


투모로우바이투게더 - ‘내일에서 기다릴게’

랜디 서(대중음악 해설가): 시작부터 귓가에 온통 소다맛 청량감으로 가득하다. 왼쪽 오른쪽 나뉘어 터지는 꾸밈음들이 토독 하고 터지는 탄산 기포 같다. 베이스드럼이 없는 버스와 프리코러스는 백비트에만 의존해 멜로디를 불러나간다. 아슬아슬하면서 자유롭다. 처음에는 B를 ‘도’로 한 B메이저처럼 곡을 소개하다가, 프리코러스 첫 줄 “반짝임에 현혹돼”에서 B를 ‘라’로 흡수해 B마이너로 넘어간다. 홀톤(“다 놓친채”)이나 피카르디3도(“meant to be” “난 늘 여기”)로 아직도 B메이저인 척 장난도 친다. 코러스에 마침내 등장한 4박 베이스드럼과 잔 리듬의 UK 개러지가 시원하면서 팝핑캔디처럼 따끔하게 터지는 여름의 이미지를 그린다. “There’ll be no more sorrow / I’ll see you there tomorrow” 같은 줄을 다섯 멤버가 돌아가며 부르는 구간은 5인 보이밴드 구성의 이점을 극대화한 멋진 한 수다. 보컬찹이 반짝이는 댄스브레이크에선 큰 무대와 투어로 다져진 멤버들의 기량 성장이 확연히 느껴진다. 원래도 어려운 노래에 어려운 춤을 준수하게 표현하던 팀이었는데 이제는 매끄럽기까지 하다. 단점이 없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곡들은 이른바 ‘가요 뽕’이 적은 세련된 느낌이 특징이다. 그래서 ‘뽕’ 없이도 멜로디가 캐치하다 싶으면, 그 곡은 기존의 세련됨을 좋아하던 사람 뿐만 아니라 훅(hook)을 즐기는 사람들까지 포섭해 특히 많은 사랑을 받더라는 나만의 가설이 있다. ‘내일에서 기다릴게’가 그럴 것 같다. 이 노래를 시원하게 듣고 싶어서 여름이 기다려진다.

‘흐르는 강물처럼’ - 셸리 리드
김복숭(작가): 작가 셸리 리드의 데뷔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은 시작부터 자신을 아끼고 돌보아주던 모든 이들을 잃고, 모든 집안일과 농장 일을 어깨에 짊어진17살의 주인공 토리(빅토리아 내쉬)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러니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을 찾고 있는 독자라면, 마치 장맛비처럼 쏟아지는 듯한 비극의 연속인 이 책보다는 다른 책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한편 책을 막 집어 드는 독자라면, 대화보다는 선명하고 생생한 서술로 가득한 이 소설을 마음 깊이 읽어내려 보기를 추천한다. 소설은 배경인 미국 콜로라도주의 거친 이미지와 선명한 은유들로 가득해 그 척박한 풍경마저도 이 책의 주 등장인물처럼 느껴지게 한다. 누군가는 그래서 주인공 토리가 상대적으로 납작한 캐릭터라고 느낄 수 있겠다만, 1950년대 미국의 작은 마을에 만연한 성차별과 인종차별에 맞서고, 전후 미국이 겪어야만 했던 혹독한 정서적, 환경적 역경 속에서 자신의 의지만으로 살아남은 그는 충분히 롤모델이 될 수 있는 캐릭터라고 본다.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자 시대물인지라 씁쓸한 알약을 넘기는 느낌을 생각할 수 있겠으나, 역경을 이겨내는 캐릭터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자연에 대한 아름답고 달큰한 서술로 가득한 이 책은 한편으로는 자기계발서처럼 느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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