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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희(작가, 칼럼니스트)
사진 출처오모이노타케 인스타그램

‘오모이노타케(Omoinotake)’. 다소 아리송한 이 단어는 일본어 ‘思いの丈’로 ‘어떠한 마음의 전부(길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본래의 뜻이 너무 무거워 그룹명을 알파벳으로 표기했다고 소개하는 이 밴드는, 그 이름만큼 ‘마음의 전부’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OST와 인연이 깊다. 2012년 첫 결성되어 인디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오모이노타케는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블루 피리어드’의 오프닝을 담당하며 메이저 데뷔를 했고, 그 이후로도 애니메이션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영상 매체와 음악 작업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 배우 채종협이 남자 주인공으로 열연한 드라마 ‘Eye Love You’의 주제곡 ‘幾億光年(수억광년)’이 빌보드 재팬 차트에서 누적 스트리밍 조회 수 1억 회를 돌파하며 명실상부 지금 일본의 밴드 씬을 대표하는 그룹으로 자리 잡았다.

오모이노타케는 드럼인 토미타 히로노신과 베이스를 담당하는 후쿠시마 토모아키 그리고 보컬과 키보드를 모두 맡고 있는 후지이 레오가 결성한 밴드다. 일반적인 밴드와 달리, 키보드가 기타를 대신하여 주 멜로디를 이끌고 있기에 이들은 자신들을 ‘피아노 트리오’라 소개한다. 그리고 바로 이 ‘피아노’가 오모이노타케를 다른 밴드와 구별 짓는다. 소울과 재즈, R&B의 영향이 짙은 오모이노타케의 노래에는 건반악기 특유의 서정성이 도드라진다. 여기에 호소력 짙은 보컬 후지이 레오의 가성과 시적인 가사까지 더해져 듣는 이의 마음을 자극한다.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표현해야만 하는 OST라는 장르에서 유독 빛을 발한다. 먼저, 배경이 되는 원작의 이해도가 높다. 그래서 가사나 뮤직비디오는 물론 곡 진행처럼 세심한 부분까지 원작이 담고 있는 주요 심상이나 메시지를 최대한 구현하려 노력한다. 바로 이 부분이 오모이노타케의 강점이지 않을까. 참고로 작사는 베이스를 맡은 후쿠시마 토모아키가, 작곡은 보컬과 키보드를 맡은 후지이 레오가 전담하고 있다.

지금부터 그간 오모이노타케가 참여해온 다양한 OST들을 살펴보자. 연도순으로 정리했다.

TV 드라마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 (통칭 ‘체리마호’)
‘30살까지 동정이면 마법사가 될 수 있대’는 2018년부터 연재된 토요타 유의 BL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TV 드라마이다. 2020년부터 테레비도쿄에서 방영했고 크나큰 인기에 힘입어 극장판까지 제작되었다. 주인공 ‘아다치 키요시’는 30살까지 연애 한번 못해본 대가로 어느 날 신체가 닿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마법 능력을 얻는다. 그리고 이 능력을 통해 직장 동료인 ‘쿠로사와 유이치’가 본인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오모이노타케는 그런 아다치와 쿠로사와가 서로 사랑에 빠지고 연인 관계가 되는 과정을 달달하게 그려내는 이 드라마의 오프닝 곡을 담당했다. 

제목인 ‘産声(산성)’은 갓난아이가 태어날 때 터뜨리는 울음소리를 뜻한다. 동시에 ‘산성을 지르는 나의 목소리’에서처럼 아다치가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는 모습도 의미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제목과 어울리게 (심장의)고동, 태동, 체온 등의 단어들이 가사에 들어가 있어 작중 아다치의 감정선을 신선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표현한다.

2022년에 개봉된 극장판의 주제가 ‘心音(심음)’ 역시 아다치의 입장에서 쿠로사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작중에서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는데, 해당 상황을 의미하는 ‘떨어져 있어도 귀를 기울이고 찾아낼 거라고 약속할게’나 ‘다녀왔어에 어서 와가 합쳐지는 심음’이라는 내용이 깨알같이 들어가 있다. 제목에 마음(심장)이 들어가 있는 만큼 “같은 리듬을 새기는 두 개의 심음”이나 “두 개의 마음으로 하나의 미래를 택하자” 등의 가사 또한 눈에 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블루 피리어드’
2021년 작 ‘블루 피리어드’는 야마구치 츠바사의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2021년 애니메이션이다. ‘좀 노는’ 남자 고교생이 진지하게 미술에 뛰어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피카소의 작품 세계 중 1901년부터 1904년까지를 차지했던 ‘청색 시대’에서 제목을 따온 데서 알 수 있듯, ‘블루 피리어드’의 오프닝 곡 ‘EVERBLUE’에도 색상과 색칠, 그림 등이 주요 심상으로 등장한다. “my life 언젠가는 컬러풀 / 색이 없는 비가 언젠가 무지개를 그리듯 / my life 어떤 색의 엔드 롤 / 눈물마저도 덧칠해 그리는 캔버스 / 푸른 바람 좌절의 빨간 아픔 / 섞이는 색감은 마치 딱지 같아”. 캔버스 위에 물감이 얹어지듯, 키보드 멜로디와 보컬 위에 드럼 사운드가 얹어지고 그 위에 베이스와 색소폰이 더해지는 복고풍 사운드가 맛깔난다.

작중에서 주인공 ‘야구치 야토라’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그린 그림이 파란색으로만 이루어진 시부야의 새벽 풍경이다. ‘EVERBLUE’로 메이저 데뷔를 하기 전의 오모이노타케가 그간 시부야를 중심으로 스트리트 라이브를 해오며 팬층을 쌓아왔던 걸 생각하면, 꽤 흥미로운 지점이다.

TV 드라마 ‘그녀들의 범죄’
오모이노타케가 담당한 주제곡들 중에서 드물게 어두운 분위기를 내는 곡이다. ‘그녀들의 범죄’는 요코제키 다이가 2019년에 출간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여러 차별적인 시선을 겪고 있던 세 명의 여성이 하나의 살인 사건에 엮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는 서스펜스 드라마다. 2023년 7월부터 9월까지 방영된 이 드라마는 내용뿐 아니라 주요 인물을 연기한 세 배우가 각각 노기자카46, AKB48, E-girls에 속해 있던 전직 아이돌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의 주목을 받았다. 이와 관련하여 해당 곡의 뮤직비디오에도 주인공 중 한 명인 ‘히무라 마유미’로 분한 후카가와 마이가 직접 출연하여 연기하기도 했다.

소용돌이 와(渦)와 장막 막(幕)을 합쳐 만들어진 노래 제목 ‘渦幕’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 단어다. 일본어로는 ‘우즈마쿠(うずまく)’라 발음하는데, 이는 ‘소용돌이치다’, ‘감정이나 생각 등이 뒤섞여 수습이 잘되지 않는다’를 뜻하는 동사 ‘渦巻く’와 발음이 같다. 가사에서도 제목을 의미하는 “운명에 저항하듯이 발버둥 쳐, 소용돌이 속에서”, “필연적으로 거스르듯이 발버둥 쳐, 두 사람의 소용돌이를”, “같은 소용돌이에 빠져서 숨 쉬지도 못하고 가라앉아, 언젠가 내리는 장막” 등의 문장이 등장한다. 작사를 담당하는 후쿠시마 토모아키의 언어적 감각이 빛나는 부분이다. 여기에 후지이 레오 특유의 목소리가 겹쳐지며, 어쩔 수 없이 불행 속으로 빠져드는 세 인물의 내면이 절절하게 드러난다.

TV 드라마 ‘Eye Love You’
‘幾億光年(수억광년)’은 지난 3월에 종영한 TBS 드라마 ‘Eye Love You’의 주제가다. ‘Eye Love You’는 지난 1월 첫 방영 이후부터 화제가 되어, 방영 종료까지 일본의 TV VOD 플랫폼인 TVer에서 줄곧 드라마 랭킹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일본 넷플릭스 드라마 순위에서도 꾸준히 10위권 내에 랭크되어 그 인기를 가늠케 했다. 특히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채종협이 일본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신스틸러로 떠올랐다. 실제로 첫 방송 당시 그의 이름이 일본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드라마가 종영된 후에도 특별 팬 미팅인 ‘Eye Love Fan Festival’이나 팝업 스토어, 컬래버레이션 카페까지 열리는 등 그 열기는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Eye Love You’의 이런 높은 인기에 힘입어 주제가 ‘幾億光年(수억광년)’ 역시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오모이노타케의 대표 곡으로 떠올랐다. 보컬 후지이 레오만의 감성 어린 목소리와 그와 어울리는 감미로운 멜로디가 이 드라마의 달달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평을 받았다.

재미있게도 여자 주인공 ‘모토미야 유리’는 앞서 소개한 ‘체리마호’의 아다치처럼 우연한 계기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그 초능력으로 남자 주인공인 ‘윤태오’과 엮이게 된다. 눈을 마주친 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유리는, 자신이 모르는 언어로 생각하기에 그 마음을 전혀 알아챌 수 없는 윤태오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이런 유리의 초능력과 두 사람 간의 언어 장벽은 중요 요소로 등장한다. 그리고 오모이노타케의 노래가 늘 그렇듯, 이런 부분들은 ‘幾億光年(수억광년)’ 속 “다시 한번 목소리를 들려줘”나 “여전히 내 목소리가 들리니?” 같은 가사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매 화가 끝날 때마다 폭죽처럼 쏘아 올려지는 이 노래를 들으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TV 애니메이션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통칭 ‘히로아카’)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2014년에 연재를 시작한 동명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다. 원작 만화는 2014년 11월에 출간된 1권이 바로 매진되고, 그다음 달에는 발행 부수가 30만 부를 돌파했다. 미국의 그래픽 노블, 그중에서도 DC나 마블 코믹스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며 그만큼 한국을 포함한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냐 하면, 2024년 1월 기준 전 세계 누적 발행 부수가 1억 부를 초과했을 정도다. 마찬가지로 2016년에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제작된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는 현재 7기가 방영 중이다. 원작이 완결을 앞두고 있는 만큼 애니메니션 또한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 예상하는 팬들이 많다. 이러한 대미를 장식하는 엔딩 곡으로 선택된 것이 바로 오모이노타케의 ‘蕾(봉오리)’이다.

오모이노타케는 뮤직 나탈리에서 “이 곡을 만들면서 재차 ‘히로아카(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를 생각하면서, 주인공 ‘데쿠’를 비롯한 히어로들의 사람을 생각하는 모습에 매번 감동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그 마음을 가슴에 담아 ‘蕾(봉오리)’라는 곡을 썼습니다. 원작과 함께 당신의 가슴속 깊은 곳에까지 이 곡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그 말처럼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보컬 후지이 레오는 “엇갈려 발버둥 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해 아파서 / ‘그래도’라고 외쳐 꽃봉오리 같은 내 소원 / 그것만은 절대 시들지 않도록”이라 노래한다. 애니메이션 엔딩 영상에는 오모이노타케의 노래와 함께 작중에서 대치하는 빌런 연합과 히어로들의 과거 모습과, 이와 대비되는 지금의 성장한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도록 연출하여 그동안 각 캐릭터들이 어떤 길을 걸어 마지막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음악과 영상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며 하나의 메시지를 구현해내기 때문에, 오모이노타케가 OST 분야에서 유난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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