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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안
사진 출처tvN

*‘선재 업고 튀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눈이 오는 걸 좋아했던 나(임솔)의 ‘최애(류선재)’가 첫눈 오는 날 생을 마감한다”.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스토리는 누군가를 일명 ‘덕질’해본 사람들에게는 다소 트라우마가 생길 내용일 수 있다. 하지만 선재를 살리기 위해 쉴 틈 없이 달리는 임솔의 간절함이 너무도 처절해 이 드라마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고마워요, 살아 있어 줘서. 이렇게 살아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고맙다고 할 거예요. 곁에 있는 사람은. 그러니까 오늘은 살아봐요. 날이 너무 좋으니까. 내일은 비가 온대요. 그럼 그 비가 그치길 기다리면서 또 살아봐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사는 게 괜찮아질 날이 올지도 모르잖아요.” 라디오를 통해 임솔에게 전달된 선재의 이 말은 교통사고로 다리가 마비되어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던 임솔의 인생을 바꾼다. “나를 살게 한 사람”. 임솔은 그렇게 선재를 표현한다. 힘든 시기를 버텨낼 수 있게 위로가 되어준 존재, 나의 하루를 밝게 만들어주는 최애는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와 만나는 것은 물론, 마음을 전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마음은 가득한데 일정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관계. ‘선재 업고 튀어’는 이 관계에서만 가능할 것 같은 팬의 마음을 바탕으로 팬이 ‘최애’에게 갖는 사랑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 그려낸다.

선재가 죽은 날, 선재가 후송된 병원으로 미친 듯이 휠체어를 밀다 하늘에서 펑펑 내리던 눈처럼 하염없이 눈물을 쏟고 있던 임솔에게 첫 번째 타임슬립이 일어난다. 눈 떠보니 고등학교 교실 안. 날도 화창하고 두 다리도 멀쩡하다. 임솔은 곧장 당시 옆 학교 재학 중이었던 선재에게로 달려간다. 아직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내가 어떻게 두 다리로 달릴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임솔에겐 그저 선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이것이 팬의 마음이다. 임솔의 세상은 오로지 선재에 맞춰 돌아간다. 최애와의 첫 데이트 장소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 아니라 선재가 몸보신할 수 있게 삼계탕집에 간다든가, 선재가 자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상황에도 “너 물릴까 봐…”라며 임솔은 모기를 잡는 게 우선이다. 선재가 가수로 데뷔한 이후 생긴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임솔은 당시 옆 학교 수영부였던 선재에게 자신이 ‘수영 팬’이라는 핑계로 계속해서 선재의 주위를 맴돌며 그의 데뷔를 막으려 노력한다. 과거 인터뷰에서 선재가 부상으로 수영 선수 생활을 접고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심지어 ‘천신할매’로 분장해 선재가 무리해서 대회에 출전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장면은 코믹하게 표현되었지만, 그 속에는 선재를 살리기 위해서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임솔의 진심이 보인다. 아이돌 팬에게 흔히 “걔는 너 몰라.”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걔’가 날 몰라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대답. ‘선재 업고 튀어’는 그동안 미디어에서 맹목적인 마음 정도로만 묘사됐던 팬의 마음을 절절하게 보여준다.

10:30~

데뷔를 막기 위해 선재가 소속사 대표에게 받은 명함을 찢어버리기 전 임솔이 멈칫하는 장면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임솔은 ‘이클립스 선재’를 애정하는 걸까, ‘인간 류선재’를 애정하는 걸까?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임솔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선재를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소나기’ 속 선재의 목소리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질 것이고, 위로가 필요한 날 더 이상 선재의 음악을 들을 수도 없을 것이다. 선재를 살리는 대신 자신의 삶의 원동력을 없애야 한다. 그럼에도 너무나 당연하게도, 임솔은 선재를 살리기로 결심한다. “남 걱정하지 말고 다른 사람 위하지도 마. 난 네가 너밖에 모르는 애였으면 좋겠어. 이럴 시간에 어떻게 하면 네 자신이 ‘더 행복해질까, 더 잘 살까’ 그것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결국 어깨 부상으로 선수 생활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은 선재를 보고 임솔은 홀로 오열하고 선재가 마음 다칠까 올림픽 경기도 보지 못하게 원천 봉쇄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임솔은 선재가 자신을 오랫동안 좋아했고, 결국 자신을 구하려다 다치게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최애가 내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백마 탄 왕자님처럼 등장해 날 구한다.’는 설정은 팬의 판타지를 실현하는 것 같은 스토리처럼 보인다. 하지만 ‘선재 업고 튀어’에서 임솔과 선재의 관계는 팬의 사랑이 가진 진심을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팬인 나 때문에 최애가 죽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임솔에게는 매일, 매분, 매초를 전전긍긍하게 만드는 고통이다. 결국 임솔은 몇 번의 타임슬립을 거쳐 다시 선재와의 거리가 멀어지고, 선재가 다른 이성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자 “내가 무슨 자격으로 질투야, 질투는. 너만 행복하면 그만이지.”라며 그저 선재의 행복과 안녕을 바란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팬에게 다가왔을 때, 팬은 그저 좋기만 할까. ‘선재 업고 튀어’는 최애와 거리는 멀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가까운 팬의 감정에 진지하다. 팬이 아티스트에게 갖는 마음을 단지 이후 두 사람이 연인으로 가는 과정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 행복과 절망을 함께 주는 사랑이라는 점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선재 업고 튀어’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다루는 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빛나는 접근법을 제시한다. 선재가 속해 있는 그룹 이클립스의 콘서트 당일을 묘사한 장면은 ‘선재 업고 튀어’의 시선이기도 하다. 아이돌을 소재로 다루는 다수의 작품들이 ‘무리’로서의 팬을 아이돌에게 무작정 다가서거나 하는 존재로 묘사하곤 하는 반면, ‘선재 업고 튀어’는 공연장 풍경을 보여주며 콘서트 시작 전 선재의 등신대 하나에도 들뜨고 행복해하는 팬들의 설렘에 집중한다. 팬의 감정을 뻔하다 생각하지 않고, 팬의 입장에서 그들의 사랑을 당연하지 않게 그린다. 팬으로서 누군가를 깊이 좋아한 경험이 있다면 ‘선재 업고 튀어’는 판타지이자 현실이며, 자신의 지난 팬 활동에 대한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13:00~

아무리 막으려 해도 결국 운명인 건지, 무대 위에서 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 노래하는 선재를 보며 임솔은 다시금 깨닫는다. 이클립스는 자신뿐만 아니라 선재에게도 기쁨이자 행복이었다는 것을. 이런 임솔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을 만나느라 오디션에 가지 않은 선재를 보며 임솔은 말한다. “너 노래하는 거 좋아했어. 그땐 정말 행복해 보였는데. 그래서 내가 네 행복을 빼앗은 걸까 봐. 나 때문에 네가 다시는 무대에서 노래할 수 없을까 봐, 걱정돼.” 평생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최애가 나를 좋아한다. 둘만의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 있었지만, 임솔은 또다시 오직 선재의 행복을 위해 시간 속을 달린다. “계속 이렇게 웃어주라. 내가 옆에 있어 줄게. 힘들 때 외롭지 않게 무서운 생각 안 나게 그렇게 평생 있어 줄 테니까 오래오래 살아줘.” 그의 노래와 무대로 내가 위로받고 살아갈 힘을 얻은 만큼 나 또한 나의 스타에게 그 이상의 행복을 돌려주고 싶은 팬의 마음. 임솔은 옛날에 선재가 자신을 살린 것처럼 타임슬립이 자신이 선재를 살리기 위한 기회라 생각한다. 내가 대신 아파하고 울어주고 싶은, 오직 그 사람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마음. 나의 최애를 위해 단 한 가지 소원을 빌 수 있다면, 떨어지는 벚꽃잎을 잡고 임솔이 빌었던 소원처럼, 세상 모든 팬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 선재 오래오래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말할 것이다. 팬의 사랑은, 이렇게 완성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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