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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빌리 아일리시 인스타그램

2024년 상반기는 여성 인기 아티스트의 신작이 연이어 쏟아져 나온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빌리 아일리시의 세 번째 앨범 ‘HIT ME HARD AND SOFT’는 여름 시즌이 오기 전에 퍼레이드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이 앨범은 6월 1일 자 빌보드 200에서 2위를 차지하며 주간 판매량 34만 단위를 기록했다. 이는 빌리 아일리시 개인의 주간 판매 신기록이고, 자연히 ‘HIT ME HARD AND SOFT’를 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와 비욘세의 ‘Cowboy Carter’ 옆에 두게 된다. 이 세 앨범은 여성 아티스트로 범위를 좁히지 않더라도, 2024년 빅 3라고 칭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HIT ME HARD AND SOFT’는 (영화에 비유하자면) ‘바비’와 ‘오펜하이머’를 잇는 제3의 블록버스터는 아니다. 비욘세처럼 엔터테인먼트를 매개로 역사와 문화에 대하 담화를 시도하는 것도 아니고,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한 사람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진 삶을 은유와 암시로 담아내는 것도 아니다. 대신 데뷔 당시부터 익숙한 주제와 사운드를 가다듬고, 여전히 모험적이지만 동시에 성숙을 찾아가는, 최근 시대에 유독 짧아 보이지만 더 덜어낼 것이 없는 10개 트랙의 앨범을 만들었다.

빌리 아일리시는 스티븐 콜베어와의 인터뷰에서 첫 앨범을 낸 이후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에 갇힌 기분이었고, ‘Happier Than Ever’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며 자신도 남들처럼 다면적인 존재임을 밝혀야 할 필요에서 비롯한 앨범이었다고 밝힌다. 반면 ‘HIT ME HARD AND SOFT’는 창작자로 활동한 이후 처음으로 음악과 비주얼 측면에서 솔직한(genuine) 앨범임을 고백한다. 이는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이 앨범은 나처럼 느껴진다. 캐릭터가 아니다.”라고 간단히 정리한 바와 같다.

같은 인터뷰에서 빌리 아일리시는 앨범 타이틀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앨범이 하는 일을 완벽하게 포착하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극단적인 사람이고, 육체적으로 강렬한 것도 좋지만 동시에 부드럽고 달콤한 것도 좋다. 나는 동시에 두 가지를 원하고, 그것이 나를 설명하는 좋은 방법이다. 나는 그것이 불가능한 요구라서 좋다.” 요컨대 ‘HIT ME HARD AND SOFT’의 주제는 빌리 아일리시 자신이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응집력 있는 작품이 한두 개의 싱글일 수 없다. 당연히 앨범의 존재는 미리 예고했지만 선공개 싱글 없이 앨범으로 직행한 것도 자연스럽다.

비욘세나 테일러 스위프트와 달리, 빌리 아일리시가 이제 세 번째 앨범을 낸 스물두 살의 젊은 아티스트라 가능한 접근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어떤 운 좋고, 뛰어난, 젊은 아티스트는 때마침 변증법적 결과물을 도출하기에 적당한 시기를 맞이한다. 하지만 모든 아티스트가 그렇지 않으니, 무엇이 다를까? 빌리 아일리시는 2024년의 스물두 살이다. 그는 경력을 시작한 처음부터 창작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확보한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는 젊은 스타다. 더욱이 오빠 피니어스와 송라이팅과 프로듀싱 전반을 관장하는 특유의 창작 체계로 이 변화는 훨씬 높은 밀도로 이루어질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변화의 지향점은 흥미롭게도 과거의 부정이나 결합이 아니라 더 나은 팝 앨범이다. 그는 이미 애플뮤직 선정 역대 최고의 앨범 30위에 오른 데뷔작을 가지고 있다. 이미 미학적으로 완성된 목소리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그 완성은 위악적 태도로 요약되는 기괴한 비주얼이나 팝에서 보기 드문 극저음의 활용 등이 아니라, 거의 10년 전에 ‘Ocean Eyes’가 증명한 것처럼, 빌리 아일리시의 목소리에 있다. 올해 ‘코첼라 밸리 뮤직 & 아츠 페스티벌’에서 라나 델 레이가 깜짝 게스트로 빌리 아일리시를 소개하며 ‘세대의 목소리’라고 한 것은 그저 수사가 아니다.

따라서 단단함(hard)과 부드러움(soft) 사이에서 이 앨범이 더 단단할 수 있었다는 비판은 초점이 빗나가 보인다. ‘Lunch’ 같은 뱅어(banger)가 두세 곡 더 있으면, 몇몇 트랙의 댄스 사운드 전환이 좀 더 빠르고 오래 지속되면 더 나은 앨범이 될까? 네오-고스처럼 세대에 대한 편견에 가까운 딱지 붙이기를 걷어내고 나면, 그의 데뷔 앨범조차 고전적인 팝 보컬리스트의 가치가 더 컸다. 오스카를 두 번이나 안겨준 영화 주제곡 작업은 외도가 아니라 그의 본질에 가깝다. ‘Happier Than Ever’처럼 앨범 하나를 들여 따로 주장할 필요도 없었다. 결론적으로 ‘HIT ME HARD AND SOFT’는 하나의 앨범이 아니라 그가 음악을 만드는 방식을 완성한 것처럼 보인다. 피니어스가 설명하는 것처럼, “대단한 노래 하나를 듣는 것보다 행복할 거야. 이 앨범 들으면서 저녁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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