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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김다은,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김복숭(작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쑥쑥 SsookSsook 유튜브

‘회의중’ (‘쑥쑥 SsookSsook’ 유튜브)
안김다은: “어쩌다 이 채널을 발견하셨다면 당신만의 비밀로 간직해주세요.” 조회 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자극도 마다하지 않는 시대에 ‘쑥쑥’ 채널의 주인장 양세찬은 유명세를 거부한다. 오히려 아직은 구독을 누르지 말라며 시청자를 만류하기까지 한다. 언젠가 본격적인 1회를 시작했을 때 관심을 주라는 것이 그와 제작진의 바람이다. 그렇게 보다 괜찮은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그들은 여전히 ‘회의중’이다. 
‘쑥쑥’은 ‘뜬뜬’ 제작진이 양세찬과 함께 “비밀리”에 개설한 채널로 현재까지(6월 21일 기준) 11개의 ‘회의중’ 시리즈가 업로드되었다. 회차마다 최소 5개 이상의 아이템이 나오지만, 그중에서 통과하는 건 극소수다. 일명 “걱정인형”이라 불리는 양세찬과 제작진은 자신들이 낸 의견에 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염려한다. 혹시라도 누군가 상처받지는 않을지, 대중이 공감할 것 같은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무런 소득이 없는 날도 있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양세찬은 자신 있게 외친다. “오늘 이거는(회의는) 실패다!”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진 뒤 빠르게 개선점을 찾는 그의 모습에서는 수년간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회의로 다져진 노련함이 엿보인다. 적당한 타협점을 찾기보다는, 실패 속에서도 교훈을 얻으며 다음을 기약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서로의 아이디어를 경청하고, 존중하는 것. 1만 명이 시청한 영상에서 단 한 개의 악플도 발견되지 않은 비법은 이러한 사려 깊은 회의 방식에 있다. 퇴근 후에도, 하교 후에도, 휴일에도 참석하게 되는 그들의 회의에서 시청자가 바라는 건 명쾌한 정답이 아니다. 그보다는 시간이 걸릴지라도 응원하고 싶은 “걱정인형”들만의 다정한 해답이다.

‘태풍 클럽’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작고한 소마이 신지 감독의 ‘태풍 클럽(1985)’ 속 롱테이크는 청춘이라는 모호한 윤곽을, 그 불완전함을 완전히 포착하기 위해선 눈 한 번 깜빡일 수 없다는 완고한 장인의 태도를 견지하는 듯하다. 태풍으로 인해 시골의 한 중학교에 여섯 명의 학생이 고립된다. 그들에게 태풍은 불청객이 아닌데, 임계치에 다다른 각자의 질풍노도와 각자의 갈팡질팡을 “대형 태풍”이 한바탕 쓸어가기를 차라리 소원한다. 담임 선생님은 닮고 싶지 않은 어른이고 짝사랑은 난감하다. 철학적 사유와 성적 충동은 폭우를 만나 병증의 발현처럼 치닫는다. 교복도, 윤리도, 책상의 가지런한 대열도 그들의 문법이 아니라서 그들은 수영복을 입거나 속옷을 입은 채 비를 맞으며 춤춘다. 복식이 거추장스럽다. 태풍이 들른 학교는 더 나은 삶을 욕망하는 인간과 더 나은 삶을 향한 욕망은 불가능하다는 인간이 모인 공간이 된다. 4K 리마스터링을 거친 ‘태풍 클럽’은 본래의 역동성 그리고 날것의 폭력까지 선명해진다. 영화는 아이들의 5일을 따라가지만, 거센 비바람에 기꺼이 휘말리는 아이들은 예측 불가능한 비선형으로 시간의 흐름에 포섭되지 않는다. 날이 갠다. 모두가 주인공이면서 아무도 주인공이 아니다. 죽음이 산뜻하지만은 않고, 삶이 추접하지만은 않다.


‘Fine Art’ - 니캡(Kneecap)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모 차라(Mo Chara), 모글리 밥(Mógla Bap), DJ 프라바이(DJ Próva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3인조 랩 그룹 니캡의 정규작 ‘Fine Art’가 올해 최고의 앨범을 두고 경쟁한다. 영국의 영토 북아일랜드에서 눈총받는 서부의 가난한 아일랜드인 젊은이들에게 고단한 삶의 치료제는 마약과 술이요, 쾌락의 파티는 분열을 잊게 만드는 단결의 수단이다. 가상의 펍, 더 러츠(The Ruts)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18곡으로 담아낸 콘셉트 앨범은 거친 테크노와 하우스 뱅어, 댄스 홀과 힙합, 그라임의 비트 폭격 위 영어와 아일랜드어 랩을 쏟아붓는다.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거칠다. 그렇기에 듣기를 멈출 수 없다.
"그들이 끝내버린 건 우리의 언어예요. 언어는 사교와 생존을 위한 수단이지, 정치적인 것이 아닌데도 말이에요.” 0.2%에 불과한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어 화자들인 니캡은 2017년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어 지위 보장 시위부터 오늘날 뉴욕의 바워리 클럽까지 전 세계를 누비며 초록, 하양, 주황의 삼색기를 휘날린다. 그러나 니캡은 정치적 논란과 또 다른 폭력 대신 공존과 상생을 원한다. “여러분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정치적으로 의견이 맞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흥미로운 그룹의 이야기는 선댄스 영화제 관객상-넥스트 수상작을 수상한 마이클 패스벤더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모든 빈곤, 종파주의, 증오와 살인, 이를 방조하는 시스템을 해체하고자 하는 올해의 파티 음악이다.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문학동네)
김복숭(작가): 매년 이맘때쯤엔 그해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곤 한다. 매 봄에 출간되어, 한창 햇살이 따가워질 즈음 되면 동네의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책 제목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젊은 작가의 기준은 무엇인가, 매 해 생각하게 되는 것은 덤. 하지만 한국 중‧장편 소설계의 ‘트렌드’와 젊은 작가들이 써 내려간 새로운 이야기들을 읽기엔 이만한 책이 없다. 예와 다름없이 7편의 새 수상작과 각각의 서평을 함께 담은 올해의 ‘2024 제1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눈길을 끈 이야기 중 하나를 꼽자면 공현진 작가의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이다. 여름을 맞아 등록해본 동네 체육센터의 수영 강습을 마치고, 타오르는 태양 아래 흐느적거리며 집으로 가는 길에 젖은 머리를 탈탈 흔들면서 ‘으, 지구온난화!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텐데 이게 다 뭐라고…’ 같은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어색하지 않다면, 이 짧은 소설은 어쩌면 당신의 여름 이야기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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