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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Getty Images

디스가 힙합 문화는 아니지만, 힙합 문화 속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긴 한다. 그것도 음악을 통해서. 힙합이 탄생한 1973년 이래 크고 작은 디스전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때때로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하기도 했다. 비교적 큰일 없이 마무리되는 한국 힙합 씬과 달리 미국 힙합 씬에선 랩으로 시작한 디스가 심각한 폭력 사태로 번지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디스에 대한 견해는 매우 엇갈린다. 음악을 통한 디스전이 힙합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폭력을 부르는 비참한 결과를 우려하여 부정적인 스탠스를 내비치는 이도 있다. 또 누군가는 디스의 대부분이 엔터테인먼트의 일부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한다. 힙합 역사를 살펴보면, 각각의 주장에 근거와 일리가 있다. 아티스트들의 갈등 속에서 창의적인 명곡이 탄생한 것도, 갈등 때문에 아까운 재능이 일찍 세상을 등진 것도 전부 사실이다.

그리고 우린 이처럼 힙합의 가장 모순적인 측면이 담긴 디스전을 다시 한번 마주하게 됐다. 오늘날 힙합계에서 가장 인지도 높고 영향력 있는 두 명의 래퍼,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와 드레이크(Drake)가 맞붙은 것이다. 그동안 디스전을 치른 대부분의 래퍼처럼 그들 역시 처음엔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2011년과 2012년에 걸쳐 함께 공연 무대에 선 것을 비롯하여 서로를 향해 긍정적인 발언을 이어가며 친분을 쌓았다. 그러나 바로 이듬해인 2013년, 상황이 급변한다. 빅 션(Big Sean)의 싱글 ‘Control’에 참여한 켄드릭 라마의 가사가 기폭제였다. 

켄드릭 라마는 우선 “이발소에서 항상 열띤 토론을 벌인다고 들었어, 누가 최고의 래퍼인지 말이야: 켄드릭, 제이지, 나스, 에미넴, 안드레3000 그리고 나머지들”이라며 자신을 상위 래퍼군에 위치시킨다. 그러고는 여러 랩스타의 이름을 언급한 다음 “난 너희를 좋아하지만, 전부 다 죽여버릴 거야, 너희의 골수 팬들이 너희 소식을 듣지도 못하게 만들 거라고”라며 엄포를 놓는데, 저격 대상에 드레이크의 이름도 포함되었다. 

비록 드레이크는 그해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라마의 구절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이후 둘 사이엔 묘한 기류가 형성된다. 힙합의 경쟁적인 장르적 특성을 얘기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도 인터뷰에서 은근히 불쾌함을 내비쳤다. 누군가 먼저 선을 넘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디스가 가해질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켄드릭 라마가 시상식장에서 드레이크에게 감사를 표하고 같이 찍은 사진까지 공개되면서 수년 간 두 래퍼의 미묘한 관계를 관찰해온 팬과 미디어는 2016년을 기점으로 불화가 끝났다고 여겼다. 단지 ‘최고의 래퍼’에 관한 켄드릭과 드레이크의 관점이 달랐을 뿐이라는 분석과 함께.

하지만 오판이었다. 그들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갈등은 2024년에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이번에도 시작은 켄드릭 라마였다. 단, 과정이 살짝 복잡하다. 켄드릭 라마의 첫 저격 대상은 흥미롭게도 드레이크가 아닌 제이 콜(J. Cole)이었다. 2023년 10월에 발표한 드레이크의 싱글 ‘First Person Shooter (Feat. J. Cole)’에 참여한 제이 콜은 가사에서 랩계의 “빅 3(big three)”로 자신과 드레이크 그리고 켄드릭 라마를 꼽았다. 그런데 이 라인이 라마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는 2024년 3월에 나온 퓨처(Future)와 메트로 부민(Metro Boomin)의 합작 싱글 ‘Like That’에 참여하여 해당 곡의 제목을 인용하며 제이 콜을 디스한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빅 3는 x까, 왕은 나 하나야”. 제이 콜은 빅 3 논쟁에 우호적으로 접근했지만, 켄드릭 라마는 이를 완전히 거부하며 다른 두 래퍼를 신랄하게 공격했다. 

이에 제이 콜은 4월 5일, 켄드릭 라마를 디스하는 트랙 ‘7 Minute Drill’로 맞불을 놓는다. 하지만 이틀 만에 돌연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세상이 피를 보고 싶어(world wanna see blood)”하기 때문에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고 말하면서 디스를 철회한다. 그렇게 제이 콜이 물러나면서 랩스타들의 불화가 일찍 진화되는가 싶었다. 그러던 4월 13일, 꺼져가는 불씨에 기름을 붓는 일이 발생한다. 드레이크의 켄드릭 라마 디스 곡인 ‘Push Ups’가 온라인에 유출된 것이다. 의도성이 엿보인 유출 곡의 가사는 매우 원색적이었다. 드레이크는 켄드릭 라마의 작은 키를 조롱하는 동시에 주류 팝 아티스트인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나 마룬 파이브(Maroon 5)와의 협업을 비난했다. 그리고 4월 19일, ‘Push Ups’에 대한 켄드릭 라마의 반응이 나오기도 전에 또 하나의 디스 곡 ‘Taylor Made Freestyle’을 내놓는다. 켄드릭 라마의 무반응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제목에서의 ‘테일러’는 테일러 스위프트를 일컫는다. 드레이크는 라마가 테일러 스위프트의 새 앨범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 발매 시기에 해가 되지 않기 위해, 더불어 디스 곡을 내려면 그녀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며 도발했다. 

그런데 ‘Taylor Made Freestyle’엔 문제가 있었다. 켄드릭 라마의 맞디스 곡을 독려하는 콘셉트를 강화하기 위해 고 투팍(2Pac)과 스눕 독(Snoop Dogg)의 AI 생성 목소리를 사용한 게 화근이었다. 힙합 전설이자 켄드릭 라마가 존경하는 두 명의 멘토를 가상으로 참여시켜 켄드릭 라마를 흔들고자 했으나 역효과가 일어난 것. 특히 투팍의 유산을 관리하는 변호인 측에서 단단히 화가 났다. 그들은 “법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자 투팍 유산에 대한 ‘남용’”이라고 부르며, 드레이크에게 24시간 이내에 트랙을 삭제하라고 명령하는 한편, 그렇지 않을 경우 법적인 소송을 하겠다고 경고했다. 결국 드레이크는 ‘Taylor Made Freestyle’을 삭제했다. 그럼에도 드레이크의 위세는 꺾이지 않았다. 어쨌든 일방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는 건 그였으니까. 

하지만 4월 30일, 드디어 켄드릭 라마가 6분 길이의 디스 곡 ‘Euphoria’를 발표하며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다. 드레이크가 제작한 HBO 시리즈의 제목을 고스란히 가져온 이 곡에서 라마는 잔뜩 벼른 듯 증오심을 폭발시켰다. 그는 드레이크의 혼혈 정체성을 비롯하여 양육 능력 및 방식, 성형수술 소문 등을 거세게 비난하는 동시에 랩 실력과 래퍼로서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드레이크를 “사기 예술가(scam artist)”라 칭했다. 본격적으로 불붙은 두 랩스타의 디스전에 많은 힙합 팬과 미디어가 열광했다. 

드레이크가 주춤하는 사이 켄드릭 라마는 5월 3일에 두 번째 디스 곡 ‘6:16 in LA’를 공개한다. 제목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다. 종종 노래 제목에 시간과 장소를 사용하는 드레이크의 성향을 비웃는 듯했기 때문이다. 중의적 의미를 담으려 한 의도도 엿보였다. 6월 16일은 그의 우상 투팍이 태어난 날이며, 드라마 ‘유포리아(Euphoria)’가 첫 번째 에피소드를 방영한 날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곡의 프로듀서 중 한 명이 다름 아닌 잭 안토노프(Jack Antonoff)다. 테일러 스위프트와 긴밀하게 협업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티스트. 드레이크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반복적으로 언급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최초 인스타그램으로 공개한 이 곡에서 켄드릭 라마는 드레이크의 레이블 OVO 내부에 자신을 위해 일하는 요원이 있다고 주장하며 거대한 떡밥까지 남긴다. 

채 하루가 지나기 전에 드레이크는 ‘Family Matters’란 곡으로 응답했다. 재생 시간이 무려 8분여에 이른다. 그 안을 불륜과 학대에 대한 폭로로 가득 채웠다. 켄드릭 라마가 약혼자를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데다가 둘 사이에 낳은 아이의 아버지가 실은 매니저라는 것이다. 드레이크의 가사는 몹시 노골적이고 위험했다. 디스전이 벌어지면 별의별 비난과 조롱 및 폭로가 난무하지만, 가족사, 그것도 아이를 끌어들이는 건 언제나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Family Matters’를 기점으로 둘의 불화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켄드릭 라마는 더욱 분노했다. ‘Family Matters’가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드레이크를 공격하는 또 다른 트랙 ‘Meet the Grahams’를 공개한다. 그 역시 상대의 가족사를 먹잇감 삼아 맹렬하게 물어뜯었다. 드레이크의 아들에게 그를 아버지로 둔 것에 대하여 유감을 표하며 시작한 켄드릭 라마는 무책임한 부모, 나르시시스트, 여성 혐오자, 성범죄자, 대필 작사가를 기용하는 래퍼 등으로 드레이크를 몰아세운 뒤 그에게 숨은 딸이 있다는 암시로 방점을 찍었다. 드레이크는 곧 비밀 딸 주장을 부인하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렸지만, 이미 대중에게 사실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가공할 랩과 신들린 가사 그리고 자극적인 폭로가 뒤엉킨 라마의 디스 랩에 열광할 뿐이었다. 

켄드릭 라마는 기세를 몰아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세 번째 디스 곡 ‘Not Like Us’를 발표한다. 커버 아트부터 문제적이었다. 토론토에 있는 드레이크의 저택 사진을 사용하고, 성범죄자가 거주하는 집을 표시하는 것과 유사한 빨간색 표시를 곁들였다. 그리고 그를 ‘인증된 소아성애자’로 낙인 찍으며 무자비한 비난을 퍼붓는다. 또한 AI를 사용하여 ‘Taylor Made Freestyle’에서 투팍의 목소리를 재현한 일을 회상하며 드레이크의 무례함을 꾸짖는다. 압권은 마지막 3절이다. 켄드릭 라마는 이전부터 드레이크의 인종적, 문화적 정체성을 은근히 꼬집어왔는데, 이 곡에서 “넌 동료가 아니야, 죽일 놈의 식민지 개척자지”라는 펀치라인을 작렬하며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번 디스전을 통틀어 가장 잔혹한 공격이 감행된 순간이었다. ‘식민지 개척자’란 표현은 드레이크와 힙합 문화 및 블랙 커뮤니티와의 관계를 함축한다. 켄드릭 라마는 이 용어를 통해 반백인인 드레이크가 흑인으로서의 경험과 어려움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흑인이 일군 문화로부터 이익을 전유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5월 5일, 드레이크는 새로운 디스 곡 ‘The Heart Part 6’를 공개하고 재반격에 나선다. 켄드릭 라마가 앨범 전체에 걸쳐 수록해온 ‘The Heart’ 시리즈를 인용했다. 그는 라마가 말한 숨겨진 딸에 관한 소문이 실은 자신의 팀이 의도적으로 제공한 가짜 정보라면서 켄드릭 라마가 낚시에 걸렸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Meet the Grahams’와 ‘Not Like Us’ 2연타가 너무 강력했다. 드레이크의 ‘The Heart Part 6’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시큰둥했고, 전세가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며칠 사이에 쏟아진 디스 곡은 빌보드 차트와 음원 플랫폼에서의 인기까지 대단했다. 특히 ‘Not Like Us’는 스포티파이에서 하루 만에 약 650만 건이 넘는 스트리밍 기록을 경신하며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미국 힙합 노래가 되었다. 음악적으로도 훌륭하여 1990년대 투팍의 ‘Hit ’Em Up’, 2000년대 나스(Nas)의 ‘Ether’를 잇는 클래식 디스 곡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야말로 폭풍 같은 시간이었다. 최고의 두 랩스타가 숨 쉴 틈 없이 공방을 주고받았고, 팬들은 열광하며 소셜 미디어와 음악 커뮤니티에서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디스 곡의 완성도와 화제성을 고러했을 때 ‘투팍 vs. 비기(Biggie)’, ‘나스 vs, 제이지’ 못지않은 디스전이라 할 만하다. 그만큼 서로를 겨눈 라임의 끝은 날카롭고 매서웠으며, 분출되는 아우라 또한 굉장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피치포크(Pitchfork)’ 작가 알폰스 피에르(Alphonse Pierre)가 5월 게재한 칼럼에서 표현했듯이 “랩 역사상 가장 비참한 광경”이기도 했다. 진위를 알 수 없는 민감하고 추악한 사안에 대한 무차별 폭로가 이루어졌으니까. 그 과정에서 아이들까지 처참한 전쟁터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였다는 점은 충분히 비판받을 만하다. 여느 디스전처럼 승패를 따지며 호화로운 랩 전쟁을 마냥 즐기긴 어려운 이유다. 분명히 승자는 있는 것 같은데, 서로에게 남은 상흔이 더 커 보인다. 
현재 이들의 싸움은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드레이크가 가장 최근 디스 곡인 ‘The Heart Part 6’를 홍보하는 게시물을 포함하여 켄드릭 라마와의 불화와 관련한 인스타그램의 모든 게시물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본인을 둘러싼 부정적 에너지를 떨쳐내버리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켄드릭 라마도 더 이상은 반응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잠깐의 평화일지 디스전의 종식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렇게 힙합 역사에 기록될 극적이고 격렬했던 한 달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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