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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빅히트 뮤직

RM은 군복무를 앞두고 ‘Right Place, Wrong Person’을 만들었고, 입대 이후 발표했다. 자연히 방송, 공연 등의 활동은 물론이고, 앨범에 대한 직접 발언을 접하기도 어렵다. 대신 한 달에 걸쳐 뮤직비디오와 라이브 클립 6개가 나왔다. 앨범은 현재까지의 RM을 종합한다. 다양한 장르의 리스닝 배경을 창작에 반영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협업은 정성스럽다. 바밍타이거의 산얀을 중심으로, 한국과 해외를 아우르는,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보다 취향이 담긴 팀을 구성한다. 이는 K-팝 아이돌이 창작의 주체로 등장한 나름의 역사에서 보기 드문 차별점을 만든다. 그룹 활동의 일부 혹은 연장선에 위치하는 장르적 경계에서 벗어난다. 이를 개인적 시도가 아니라 글로벌 음악 산업 수준의 자원이 투입된 프로젝트로 완성한다. RM은 여기에 한국인 또는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 서구권에서 이방인으로 남는 감각을 더한다. K-팝이라서, 방탄소년단이라서 그리고 RM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이미 지적된 것처럼, RM이 언어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은 장점이나 특기가 아니라 필연적인 배경이다.

앨범의 활동 전체를 대변하는 뮤직비디오가 앨범의 성격을 반복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선공개한 ‘Come back to me’는 넷플릭스 시리즈 ‘성난 사람들(Beef)’의 이성진 감독이 지휘했다. 그는 작년 한국에서 열린 특별 세션에서 “과거에는 어떻게 하면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글을 쓸까 걱정했지만 지금은 내 정체성을 피력하면서 쓰고 있다.”고 밝혔다. ‘Come back to me’의 주요 출연진은 한국에 기반을 둔 혹은 한국계 배우다. 배경이 되는 집 안은 류성희 미술감독의 솜씨가 느껴지는, 어딘가 생경하지만 한국으로 보이는 생활공간이다. 영화 분야에서 ‘기생충’,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증명한 것처럼, 최근에는 보다 대중적인 TV에서도 HBO의 ‘동조자(The Sympathizer)’나 FX의 ‘쇼군(Shogun)’과 같이 베트남, 일본의 문화와 언어를 타협하지 않고 이야기를 중심으로 삼는 일이 자연스럽다.

한국어 음악이 더 이상 생소하지 않을 때, 뮤직비디오는 무국적의 알록달록함 혹은 이국적인 풍경 이상의 무엇이 가능한가? 과거 K-팝에서 그나마 고유한 지역적 이미지가 교복으로 대표되는 학교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면, 최근 몇 년 사이 전통문화, 한복, 전래 동화 등의 이미지로의 확장은 사람들 마음속에 비슷한 질문이 있다는 뜻이다. RM의 접근은 현대적이라서 대비되는 것이 아니다. 대신 영화적이다. 적절한 생략은 ‘가지 않은 길’이 무수히 많음을 암시하고, 순환 구조는 앨범의 주제가 되는 옳은 것과 그른 것, 내가 나이고 싶다는 욕망과 내가 누구인가 묻는 의문의 충돌, 새로운 것을 탐험하고 싶지만 익숙한 것에 머무르고 싶은 모순을 담아낸다.

‘LOST!’는 오베 페리(Aube Perrie)가 감독했다. 그는 MK의 ‘Chemical’, 메건 디 스탤리언의 ‘Thot Shit’ 뮤직비디오로 2021 영국 뮤직비디오 어워드의 신인상과 해외 힙합 부문을 수상했고, 뒤이어 해리 스타일스의 ‘Music For a Sushi Restaurant’과 ‘Satellite’ 작업으로 유명하다. 그의 뮤직비디오는 대개 주어진 상황과 설정에서 가능한 상상을 한계까지 밀어붙인다. 여기에서 ‘Come back to me’의 주제는 다양하게 변주된다. 클레이 또는 툰 애니메이션,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세트, 복고풍의 실사 등 이질적인 스타일이 에셔(Escher)적인 공간의 반복과 시간 역설로 이어지며 한데 얽힌다.

그 뒤로 공개된 ‘Groin’, ‘Nuts’, ‘Domodachi (feat. Little Simz)’, ‘ㅠㅠ (Credit Roll)’의 뮤직비디오는 모두 페나키(Pennacky)가 맡았다. 그는 일본 인디 씬에서 1980~90년대 분위기의 복고적인 영상 스타일을 주도했다고 평가되지만, 일본 밖에서도 한국의 바밍타이거, 싱가포르의 솝스(Sobs), 인도네시아의 기즈펠(Gizpel) 등 다양한 아시아 아티스트와 작업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타라시 각코(ATARASHII GAKKO!) 같은 일본 내 대형 아티스트, 피닉스(Phoenix) 같은 서양권 주류 아티스트와도 작업 중이니 오래 전부터 인디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RM과 함께한 일련의 작업에서도 그의 특징은 여전하다. 16mm 필름 같은 화면, 간단한 아이디어로 흥미로운 효과를 만든 다음 그 방법을 굳이 숨기지 않는 의도적인 어설픔, 아티스트의 국적과 무관하게 영상의 배경이 일본임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강조하는 태도, 주류 아티스트를 위한 매끈한 작품에서도 전형적인 일본 직장인, 고전 특촬물 등 특정한 이미지에 대한 꾸준한 선호 등 다양한 요소가 서로 다른 조합으로 제시된다.

그중에서도 RM과의 결합으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앨범을 마무리하는 ‘ㅠㅠ (Credit Roll)’이다. 카메라는 RM을 찍고, 이 영상은 브라운관 TV로 전달된다. 그 앞에서는 플로어 테이블 혹은 ‘밥상’에 둘러앉은 다양한 인종과 연령의 사람들이 한식으로 짐작되지만 확실하지 않은 음식을 나눠 먹는다. 그들은 서로 대화하고 식사를 할 뿐이지 TV에 눈을 주지 않는다. 한국적 혹은 아시아적 일상의 식사 풍경 안에 외국인을 두고 TV 속에서 RM은 노래하고 있다. RM의 자랑스러운 현재부터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하여 이만한 은유가 더 있을까? 이제 ‘ㅠㅠ (Credit Roll)’는 모든 것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갈 때도 기다릴 수 있는지 묻고, 고맙다고 답하는 간단한 아웃트로 트랙이 아니다. 어떤 아티스트는 자기 자신을 플랫폼으로 삼는다. ‘Right Place, Wrong Person’은 이방인, 글로벌 스타, 가지 않은 길, 부적응 또는 부적합 등 다양한 키워드를 낳는다. RM을 중심으로 모인 다양한 배경의 조력자들은 그 맥락이 얼마나 다양한지 대화를 주고 받아 음악과 영상을 남겼다. K-팝이라,  방탄소년단이라, RM이라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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