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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안,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JTBC

‘My name is 가브리엘’ (JTBC, 디즈니+)
배지안: ‘도파민 디톡스’, 자극적인 콘텐츠에 중독된 삶을 벗어나 도파민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미디어 콘텐츠로 도파민 디톡스를 한다는 게 조금은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My name is 가브리엘’은 자극보다는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어울릴 듯하다. 김태호 PD가 기획한 ‘My name is 가브리엘’은 그의 대표작 ‘무한도전’ 특집 중 ‘타인의 삶’의 확장판이라 할 만하다. 박명수, 홍진경, 염혜란, 지창욱, 박보검, 가비 그리고 덱스는 각자 72시간 동안 낯선 나라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가브리엘’들의 인생을 살아가며 아침 식단과 같은 사소한 습관부터 친구와 가족까지 ‘가브리엘’로서의 새로운 삶을 마주한다. ‘무한도전’ 특집 ‘타인의 삶’에서 “예진이”와 따뜻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줬던 박명수는 ‘My name is 가브리엘’에서 태국 치앙마이에서 이제 6개월 된 ‘나란’의 아버지 가브리엘로서 그를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사이 박보검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못다 이룬 뮤지션의 꿈을 이룬다. 어릴 적부터 피아노 치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 뮤지션의 삶을 꿈꿔왔다는 그는 합창단 리더 가브리엘의 삶에 금세 녹아들어 합창단을 지휘하고, 온몸으로 생생하게 음악의 힘을 느낀다. 가브리엘의 삶을 통해 타인의 삶이 아닌 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 그래서 ‘가브리엘’은 정말 출연자 각자의 ‘My name’이 된다. ‘Falling Slowly’를 부르다 눈물 흘리는 박보검처럼 말이다. 

‘퍼펙트 데이즈’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골목을 비질하는 소리에 알람 없이 아침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출근길은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올드 팝과 동석한다. 도쿄 시부야 공공시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는 고정된 루틴으로 리와인드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변 없는 매일. 강박 혹은 편집으로 오해받을 단출한 규칙을 지킴으로써 그는 자기 인생을 관할한다. 작업복을 입은 히라야마는 가려진 때를 찾는다. 구석의 때. 휴대용 거울을 굳이 비춰 사각지대의 오염을 적발해낸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종종 홀로 미소 짓는다. 코모레비,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볕뉘를 만끽한다. 그 풍경을 친구나 마찬가지인 필름 카메라가 기억하게 한다. 사람의 눈을 거치지 않고 셔터를 누른 사진들, 렌즈에 일임해 낚아챈 아름다움을 현상한 사진들이 그의 집에서 조용히 잠자고 있다. 틈은 고즈넉한 틈을 타 벌어진다. 대단한 절망은 아니다. 의외의 만남이 남긴 기쁨만큼의 공허를 감당하는 일, 인력 바깥의 슬픔을 수용하는, 그런 정도의 일. 내일 더러워질 걸 알면서 오늘 정갈하기 위해 애쓰는 영혼이 흔들린다. 그러나 성심을 다하는 반복으로 일군 밀도 높은 일상이 그를 일으킨다. 그리 심플하지 못한 어느 동틀 무렵을 여느 때와 같이 시작한다. 완벽한 나날이다. 우는 눈과 웃는 입으로, 예보를 빗나간 먹구름 쯤 가려진 때(dirt)이며 구석의 때(dirt)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다면.

더딥(The Deep) & 하디(h4rdy) - ‘Taste (feat. Honey)’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작년 이맘때에 이소(iiso)의 ‘Salad Days’를 다룬 적이 있다. 그때는 트랙이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원곡과 맺는 묘한 참조 관계와 한국에서 여러 전자음악 하위 장르가 친숙한 음색의 보컬을 대동해 대안적인 댄스 가요로 이식되는 경향을 굴려보았다. ‘Taste (feat. Honey)’ 또한 이런 흐름의 최신에 위치한 곡일 텐데, 유려하게 흥얼거리는 현대 R&B 가창과 삐걱거리고 찰랑이는 투스텝 간의 안정적인 조합이 그렇다. 피처링한 하니(Honey)의 음색만큼 아른거리는 신스 음과 곳곳에 흩뿌려진 턴테이블 스크래치, 굉장히 쫀득한 펑크 그루브 등의 재료는 투스텝의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BPM에 잘 빠진 가요를 위한 양념을 잔뜩 첨가하고 말이다. 두 음악가의 면면을 살피면 이는 조금 다른 UK 개러지끼리의 주도면밀한 만남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몇 싱글에서 좀 더 팝적인 R&B·소울 쪽을 택한 더딥은 작년 EP인 ‘Messy Room’에서 바이젠(Weissen) 등 여러 프로듀서와의 협업으로 세기 초 미감을 본격적으로 장착해 베베 야나(BÉBE YANA)의 ‘SPACE MULAN’이나 이소의 ‘COMI’가 속할 ‘영국식 한국 댄스 가요’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하디는 뉴진스의 원곡을 탁월하게 변주하는 리믹스 작업 이전에도 데드보이스(Deadbois)의 컴필레이션 음반인 ‘Mantra’에서 프로듀싱을 도맡아 리듬파워가 ‘방사능’부터 꿰맞추려 애썼(고 끝내 본토의 명성까지 동원했)던 ‘영국식 한국 힙합’에 출중한 비트를 제공했고 말이다. 달리 보자면, ‘Taste (feat. Honey)’는 하위 장르의 기초에 충실하면서도 그 세부를 알맞게 해석해 옮겨오는 프로듀서와 그에 걸맞은 목소리로 팝적인 특징을 더할 역량을 가진 싱어송라이터 간의 상보적 창작이라는 인상적인 사례다. 흥얼거리기 좋게 반복되는 톱라인 멜로디와 포 온 더 플로어의 사이사이를 미끈하게 밀고 당기는 박자감의 조합은 클럽과 플레이리스트, 어쩌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와도 어색함 없을 테다. 여기에 꼴라(Ccola)의 ‘LOVE2000’이나 아이롬(I-Rohm)의 ‘Usually’까지 더해, ‘Taste (feat. Honey)’에서 또한 여러 여성 음악가와의 강한 친연성과 함께 2020년대 상반기 한국에서 새로운 제자리를 잡은 투스텝만의 시원한 맛을 즐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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