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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
디자인MHTL
사진 출처빌리프랩

엔하이픈의 새 앨범 ‘ROMANCE : UNTOLD’ 프로모션의 시작을 알리는 ‘ENHYPEN (엔하이픈) UNTOLD Concept Cinema’에서 앨범 타이틀 곡 ‘XO (Only If You Say Yes)’는 엔하이픈의 행복한 순간을 상징한다. 영상 속에서 엔하이픈은 뱀파이어고, 인류는 그들을 멸종시키려 한다. 인간들에게 쫓기기 전, 그들은 자신들을 유일하게 받아준 인간 클로이에게 이 노래를 불렀다. “XO kiss me Don’t say no”. 사랑하는 상대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XO (Only If You Say Yes)’의 첫 가사는 일반적으로 기쁨에 가득찬 순간일 것이다. 그러나 뱀파이어가 이 노래를 부르면, “XO kiss me Don’t say no”는 다가올 모든 비극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서는 안 될 존재를 사랑하겠다는 피할 수 없는 결심이 된다. 이 7명의 뱀파이어들에게 ‘XO (Only If You Say Yes)’는 비극이 예정된 생에서 잠시 다가온 최고의 기쁨이다. 인간에게 “해도 달도 따다 줄 수 있어”는 상투적인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들의 세계에서 언제 절멸 당할지 모를 뱀파이어에게 사랑은 뱀파이어가 ‘해’를 가져다주겠다고 약속하고 싶을 만큼 기쁘고 소중한 감정이다.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 우주의 유일한 신”이 되고, “황혼이 내릴 때”가 되면 “네 모든 꿈을 이루어줄게”라고 약속한다. 인간이 “나 너의 지니가 되어줄게”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의 기쁨을 표현한 것일 뿐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에 비해 전능한 존재에 가까운 뱀파이어에게는 진지한 약속이다. 인간에게 ‘XO (Only If You Say Yes)’는 연인들이 한창 행복할 때의 마음을 표현한 노래일 수 있지만, 엔하이픈에게 이 가사들은 연인에게 보내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진심이다. 모든 걸 다 해주고 싶고, 다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행복한 약속 아래에는 자신이 언제 인간들의 세상 속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 불안이 있다. 

‘XO (Only If You Say Yes)’의 기쁨 앞에서 앨범의 프롤로그 역할을 하는 ‘Moonstruck’의 벌스는 “어둠으로 물든 이 순간”이다.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운드 속에서 엔하이픈은 그들의 사랑을 “둘만의 secret”으로 정의하고, “오늘 밤”이 “영원”이 되길 원한다. 불사나 다름없는 뱀파이어의 생에 있어 찰나나 다름없는 지금의 사랑을 영원한 순간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 ‘XO (Only If You Say Yes)’는 펑키한 연주에 도입부부터 흥겨운 멜로디로 시작해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순간의 행복과 즐거움을 표현한다. 그러나 여운이 남도록 녹음된 엔하이픈 멤버들의 목소리와 반복되며 곡 전체에 멜랑콜리한 감성을 더하는 메인 리프는 이 기쁜 사랑에 애잔함을 깔고, 멜로디는 가장 높은 음을 부르는 “내 우주의 유일한 신 그대”에서도 클라이맥스에서 힘을 빼고 살짝 음을 낮춘다. ‘XO (Only If You Say Yes)’의 가사가 연인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는다면 편곡, 녹음, 퍼포먼스, ‘ENHYPEN (엔하이픈) UNTOLD Concept Cinema’ 등에 이르는 이 곡의 프로덕션은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다 전할 수 없는 뱀파이어의 진심을 표현한다. “아까 인사한 저 앤 누구야? 왜 그렇게 웃어 주는 거야?”라는 ‘Brought The Heat Back’의 가사는 그 자체만으로는 연인 간에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질투심을 담아낸다. 하지만 뱀파이어에게 “난생처음” 다가온 이 순간은 “머린 Spinning 숨겨지지 않네 미친”이라고 할 만큼 감정을 극대화시킨다. ‘Brought The Heat Back’의 편곡 또한 흥겹다 못해 다소 미쳐 있다고 할 만큼 펑키한 사운드를 빠르게 전개하면서 후반부 떼창으로 거침없는 감정을 표현한다. 인간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한 순간일 수도 있는 모든 일들이 뱀파이어에게는 기쁨이든 슬픔이든, 때론 질투든 미치도록 특별한 순간이 된다. ‘ROMANCE : UNTOLD’ 발표 전 공개된 콘셉트 사진들은 세탁소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모습이 포함된 ‘Engene Ver.’이 보여주듯, 일상 속 엔하이픈을 담았다. 비현실적으로 잘 생겼다는 점을 제외하면 사진 속 그들의 삶은 평범한 인간 남자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러나 희승이 입은 티셔츠에 쓰여 있는 문구는 ‘Buried Alive’다. 죽어도 죽지 않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이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세탁소와 편의점에 가는 일상은 그 무엇보다 특별한 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일상이 디테일하게 들어간 뱀파이어의 설정을 통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랑의 순간이 되고, “XO”를 반복하며 누구나 쉽게 흥얼거릴 수 있는 쉬운 팝 멜로디의 노래에 복잡하고 섬세하며 절실한 사랑의 감정이 담긴 뱀파이어의 러브 송이 된다. ‘ROMANCE : UNTOLD’는 뱀파이어에 진심인 프로덕션을 통해 뱀파이어의 진심을 표현한다. 그 결과, 엔하이픈은 세상 어떤 노래든 그들만의 색깔을 불어넣을 수 있는 존재가 됐다. 이지리스닝 팝에서도 엔하이픈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유지되고, 경쾌한 댄스 곡과 모든 것을 던지는 진지한 사랑이 공존한다. 앨범 ‘DARK BLOOD’와 ‘ORANGE BLOOD’를 거치며 집요하게 구축한 뱀파이어의 세계가 ‘ROMANCE : UNTOLD’에서 뱀파이어 팝이라 할 만한 하나의 장르로 완성됐다.

“It’s like a Polaroid love 사랑 촌스러운 그 감정”. 엔하이픈을 대표하는 러브 송 중 한 곡인 ‘Polaroid Love’처럼, 엔하이픈은 앨범 속에서 사랑에 빠지는 것을 회피하려고 하곤 했다. 반면 ‘ROMANCE : UNTOLD’에서 그들은 과거의 다짐이 무색할 만큼 사랑에 빠져 있다. 앨범 곳곳에 있는 ‘Crazy over you(‘Moonstruck’)”, “난 이대로 미쳐 Going Crazy(‘Brought The Heat Back’)” 같은 표현처럼 미쳐야 가능한 감정일지도 모른다. ‘Hundred Broken Hearts’에서는 “온몸을 던져 네 심장을 내가 지킬게”라고 할 만큼 모든 것을 다 건 사랑이다. 그러나 ‘ROMANCE : UNTOLD’에서 엔하이픈이 상대를 위해 하고 싶은 모든 행동은 상대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XO (Only If You Say Yes)’에서 도입부의 “Kiss me Don’t say no”는 2절에서 “Can I kiss you? Can I hug you?”를 지나 “Would you kiss me? Would you hug me?”가 된다. 누군가에게 한없이 다정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게 미쳐 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XO (Only If You Say Yes)’의 가사처럼 “날 움직이는 단 하나 열쇠”를 가진 당신 앞에서는 안전한 남자가 된다. 어떤 정체성을 가졌든, 어떤 상황에 놓였든 너와의 관계는 너의 의사에 달렸다는 약속. 모든 로맨스에 반드시 수반돼야 할 관계의 안전함. ‘ROMANCE : UNTOLD’는 오랫동안 이어진 뱀파이어 로맨스의 매력을 유지하며 뱀파이어가 상징하던 로맨스의 성격과 남성상을 2024년 버전으로 변화시킨다. 일상의 모든 순간이 격정적인 로맨스가 되는 한편, 언제나 안전한 일상이 있어야만 로맨스 또한 가능하다. 뱀파이어가 그리고 엔하이픈이 정말로 사랑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희승이 프로듀싱을 맡고 엔하이픈의 멤버 전원이 참여한 ‘Highway 1009’는 “함께한 시작의 Clear blue sky 웃음 가득했던 첫 출발 기대 뒤 숨겨뒀던 우리 불안했던 뒷모습”으로 시작한다. 앨범 속 뱀파이어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돼 지난 4년의 시간을 통해 성장해간 엔하이픈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큰 성공을 거두는 사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한 특별한 일들을 경험했다. 그사이 “힘들고 지친 날”도 있었다. 하지만 팬이 있었기에 “다시 설 수 있”었고, 이제는 그들이 직접 만든 곡으로 팬에게 “I’ll be there be your engene(엔하이픈의 팬덤명)”이라고 약속한다. 상대방에게 늘 행복을 전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때로는 위태롭고 불안한 마음을 딛고, 4년 뒤 “나랑 영원히 함께 해줘”라고 노래하는 존재. 이 순간 앨범 속 뱀파이어와 현실의 아이돌 엔하이픈은 하나가 된다. ‘ROMANCE : UNTOLD’ 속 뱀파이어는 현실에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아이돌은 뱀파이어만이 줄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세상 무서운 게 없고 모든 것을 다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너에게 “날 움직이는 단 하나 열쇠”를 주는 순간만큼은 불안하고 수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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