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 ‘희로듀서’라고 말할 자격이 없어요.” 엔하이픈 희승은 첫 자작곡 ‘Highway 1009’가 나오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려 자신을 ‘희로듀서(희승+프로듀서)’라고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객관적이면서도 확고한 주관으로, 진중하지만 들뜬 말투로 음악을 이야기했다. 희승에게 직접 듣는 ‘희로듀서’의 EP.0, 프롤로그.
2024 위버스콘 페스티벌
희승: 위버스파크 현장에서 라이브가 잘 들렸나요? (네) 아, 진짜요? 저는 재즈 페스티벌을 좋아하고 많이 찾아보는 사람이라 이런 야외 무대나 페스티벌에 로망이 있었어요. 그래서 애드리브나 팬분들이 좋아하실 만한 그런 부분들을 신경 써서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트리뷰트 스테이지는 제가 멤버들 없이 혼자서 제 목소리만으로 무대를 채운 게 처음이었다 보니까 기분이 조금 새로웠어요. 관객들이 퍼포먼스 없이 저의 노래만으로도 좋아해주시는 걸 직접적으로 본 게 처음이기도 했고 또 사실 제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는데 저를 보자마자 되게 좋아해주셔서 부끄럽지만 좋았습니다. ‘너의 뒤에서’ 무대 속 저와 엔하이픈 무대 속 제가 동일 인물인 줄 몰랐다고 칭찬해주시는 글도 봤는데요, 그건 진짜 좋은 칭찬인 것 같아요. 저는 어떤 무대를 한다고 하면 항상 그 곡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걸 제일 첫 번째로 하는데 그날 그런 느낌을 받으신 거니까. 제가 딱 듣고자 했던 피드백이었어요.
‘this is what falling in love feels like’ 커버 속 희승
희승: 개인적으로 무대 위에서 제스처를 꽉꽉 채우려고 노력하는 편은 아니에요. 하지만 JVKE의 커버 같은 경우는 컨셉추얼한 면이 많이 들어갔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일종의 액팅이죠. ‘재즈에 대한 열망이 깊은 사람이 하는 공연’ 정도로 캐릭터를 설정하고 이 사람이 어떻게 무대에 임할까를 상상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구성을 해봤어요. 벌스(Verse)를 들어갈 때 JVKE 원곡은 되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라면 저는 이제 벌스 1부터 흥겨운 리듬이 시작되거든요. 곡 구성도 원곡 같은 경우는 훅(Hook)이 들어갔을 때 조금 다이내믹하게 클라이맥스가 나오는데요. 저는 슬로우잼으로 빌드업을 하는 구성으로 뭔가 곡의 무드 자체를 아예 다르게, 전체적인 그림을 바꿔서 가보고 싶어서 의견을 많이 드렸습니다.
‘희로듀서’의 등장
희승: ‘DARK BLOOD’ 앨범을 발매했을 당시 타이틀 곡 ‘Bite Me’에 랩 라인이 있는데 그 랩에 대한 아이디어가 안 나오는 상황이었어요. 그때 직접 좀 느낌을 봐도 되겠냐고 프로듀서님들에게 의견을 드려서 멤버들한테 도움을 줬던 기억이 있어요. 근데 저는 절대 제가 멤버들보다 잘하기 때문에 디렉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결국은 각자의 개성이고 이렇게 녹음해놓으면 리스너들은 본인이 더 좋아하고 더 선호하는 목소리를 찾아서 듣는 거거든요. 제가 디렉에 많은 시간을 쏟았던 거는 그냥 멤버들이 더 좋은 느낌을 내기를 원해서 그리고 저희가 더 좋은 앨범을 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어떻게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희로듀서’의 철칙
희승: 저는 멤버들이 똑같이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그건 조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근데 또 프로듀서님들의 생각은 조금 다를 수 있잖아요. 프로듀서님들은 같은 곡이기 때문에 같은 리듬과 같은 완성도를 만들고 싶어 하시지만 저 같은 경우는 사실 각자 멤버가 가진 그 장점과 특색을 살리면 되거든요. 그래서 그냥 멤버들이 하는 걸 먼저 들어보고 거기서 ‘느낌 괜찮은데 이것만 좀 더 음악적으로 만들어주면 되겠다.’ 생각드는 걸 디렉팅하는 스타일이에요.
‘희로듀서’가 말하는 엔하이픈 멤버별 장점
희승: 정원이는 톤이 되게 유니크하다고 생각해요. 이게 믹싱을 아무리 해도 본인 톤을 정말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소리가 그냥 뚫고 나오거든요. 그게 정원이에요. 제이는 본인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스타일로 가고 싶어 하는지, 자기가 추구하고자 하는 게 뚜렷한 친구라서 그런 개성이 좋아요. 제이크는… 사실 해외에서 살다온 게 이게 좀 사기거든요.(웃음) 그 영어 발음이 자연스럽게 한국어에도 묻어나는데 너무 매력적으로 들려요. 성훈이는 기본적인 톤이 좋기 때문에 어느 라인에도 잘 어울려요. 선우는 발라드에 잘 어울리는 목소리라고 생각하는데, 선한 톤을 가진 보컬이 퍼포먼스가 부각된 곡이나 빠른 템포의 곡에서 주는 매력이 있죠. 니키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랩을 좀 해줬으면 좋겠어요. 랩을 할 때는 사실 톤이 좀 타고나야 되는 게 있거든요. 니키의 타고난 로우 톤, 이거 무시 못합니다!
녹음실 안 희로듀서
희승: 사실 저는 아직 제 자신을 ‘희로듀서’라고 인정을 안 하긴 해요.(웃음) 근데 스스로 디렉팅을 본 지는 꽤 됐죠.(웃음) 거의 ‘DARK BLOOD’ 이전 앨범부터 막 시작한 것 같아요. 녹음실에 가기 전 회사에서 미리 연습해오라고 저희한테 곡을 보내주잖아요. 그러면 저는 녹음실에 가기 전까지는 곡을 많이 안 들으려고 해요. 녹음실이 아닌 곳에서 노래를 들으면서 귀로 연습하는 건 변별력이나 객관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발성 연습이야 충분히 해서 갈 수 있겠지만 녹음실에서 직접 듣는 거랑 플레이백을 해서 듣는 거랑은 너무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녹음 전 제가 미리 디테일을 다 쌓아서 가면 좀 만족스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현장에 가서 곡을 듣자마자 ‘이건 이런 장르고 이런 느낌이다.’는 걸 한 번에 알고서 녹음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희로듀서’의 고집
희승: 저, 고집 빡세요.(웃음) 프로듀서님들과 의견이 다를 땐 그냥 제가 녹음한 걸 들려드리고 그걸로 설득을 해요. ‘특색이 있으면 된다.’라는 게 사실 말만 그렇지 결국은 그냥 잘해야 되는 거잖아요. 제가 원하는 방식대로 녹음을 잘 받아놔야지 프로듀서님들도 “오, 좋네.” 이렇게 느끼고 설득이 되는 거기 때문에 저는 제 작업에 무조건 확신을 가지고 해요. 그러다 보면 프로듀서님들도 자연스럽게 설득되시는 것 같아요.
‘ROMANCE : UNTOLD’ 속 희승
희승: 엔진분들에게 타이틀 곡 ‘XO (Only If You Say Yes)’를 얼른 들려주고 싶었어요.(웃음) 이 곡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멜로디가 저는 딱 프로모션 캘린더 영상에서 공개된 그 파트라고 생각하는데, 먼저 선보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죠. 이번 앨범으로 저희 엔하이픈이 정말 좋은 음악을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아티스트가 되어가고 있는 과정이라 느끼거든요. 제가 들었을 때는 ‘XO (Only If You Say Yes)’도 그렇고 저희 수록 곡도 마찬가지로 모든 곡이 정말 퀄리티도 높고 깊이가 있는 음악들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굉장히 자신이 있는 상태입니다.
‘희로듀서’의 취향
희승: 줄곧 듣는 음악만 듣는 스타일이었는데요, 요즘에는 좀 더 다양하게 듣는 걸 좋아해요. 곡을 부를 때도 곡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게 제가 좋아하는 방식이에요. 이번 앨범은 완전 팝적인 노래들로 세트리스트가 구성돼서 준비할 때 저는 빌보드를 다 확인했어요. 이번 앨범 최애 곡은 ‘Hundred Broken Hearts’인데 이유는… 그냥 너무 좋았어요. 키 파트 체크하러 간 날, ‘우와’ 이 느낌이 딱 드는 곡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모든 라인을 거의 한 15분 만에 다 끝냈는데 진짜 너무 좋은 거예요. 프로듀서님들도 “희승아, 이건 미쳤는데.” 이러시는데 저도 그걸 똑같이 느꼈어요. 내가 이런 곡도 소화를 할 수 있는 날이 오는구나 싶어서 그런 희열도 좀 있었고요.
‘희로듀서’의 “미친” 비하인드
희승: ‘Brought The Heat Back’ 벌스 2에서 “미친”이라는 가사는 제가 평소에도 많이 안 하는 말이지만 노래할 때는 더 안 나오는 말이란 말이에요. 평소 가사에서 주로 인용되는 그런 단어가 아니라서 자연스럽게 하는 게 사실 쉽지는 않았어요.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을 찾다가 “젠장”도 해보고 또 되게 말도 안 되는 단어들도 여러 개 해보고, 유독 거기만 녹음을 많이 해봤던 것 같아요.
‘Highway 1009’ 탄생 비화
희승: 이번 트랙리스트 결정 때 ‘아, 지금 침투해야 된다.’ 싶어서 친한 형이랑 데모를 만들어서 회사에 들려줬죠. 데모를 듣고 나서 회사 반응이 또 엄청 좋았어요. 이 곡 쓴 게 다 합해서 3시간 걸렸나? 저는 프로듀싱할 때 분위기, 뿌리, 멜로디를 한번에 작업해요. 제가 느낀 감정 그대로 순수하게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에요. 사실 곡이 나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진 않았는데 제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오기까지가 오래 걸렸어요. 저는 무조건 들었을 때 좋아야 돼요. 딱 들었을 때 아프거나 기쁘거나 뭔가 느껴져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설령 ‘멜로디가 완벽한데?’ 하더라도 느껴지는 게 딱히 없으면 아무리 잘 쓰여진 곡이라 해도 그 곡은 안 써요. 사실 이때 초안으로 쓴 가사와 제목이 다 있긴 했지만, 팬 송으로 채택된 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멤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면 팬분들을 위한 곡인게 좀 더 전달이 잘되지 않을까 싶어서 전 멤버가 작사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가사를 모아서 보면 엔진은 물론, “힘들고 지친 날” 멤버들과 같이 이겨낼 수 있다는 서로를 향한 마음 또한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것 같아요. 엔진분들이 가사 속 저희 멤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고, 이 노래를 듣는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안 들고 그냥 기분 좋은 느낌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작곡의 기쁨
희승: 저는 아직 ‘희로듀서’라고 말할 자격이 없어요. 저의 곡을 들려드리고 그걸로 사랑받는 게 진짜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이게 너무 오래 걸렸다 보니까 엔진분들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 커요. 하지만 그만큼 잘 만들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고 만드는 과정에서 되게 즐겁고 행복했어요. 팬분들과 대중분들에게 들려드릴 첫 번째 작업이라는 점에서 너무 기대되고 설렙니다.
‘희로듀서’ EP.1
희승: 최근에 제가 느낀 것들, 좋아하는 음악들, 마음 가는 대로 계속 곡을 쓰고 있는데 아마 올해 안으로 들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앨범일지 믹스테이프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곡들이 나왔을 때 더 깊은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 그때 다시 ‘희로듀서’라고 불러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웃음)
- 뱀파이어의 말하지 못한 진심2024.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