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 하이’로 평가받는 찰리 XCX(Charli XCX)의 정규 6집 ‘BRAT’은 특히 10여 명의 ‘잇걸(it girl)’들이 단체로 출연한 ‘360’ 뮤직비디오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틱톡, 유튜브, X(구 트위터) 등 각자의 소셜 미디어 채널과 필드에서 현재 가장 핫한 인플루언서들이 한데 모여 이 기회가 아니라면 다시는 볼 수 없을 역사적인 장면을 만들어냈고, ‘인터넷에 살고 있는(chronically online)’ 젠지(Gen Z)에게 이 뮤직비디오는 바이블이나 다름없는 작품이 됐다.
‘인터넷 세상에서 사랑받는(darlings of the internet)’ 잇걸의 본질은 메인스트림의 인디이며, 인디의 메인스트림이라는 그 묘한 경계에 있다. 뿐만 아니라 멋진 스타일로 ‘저 사람이 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해야 한다. 찰리 XCX 그 자신도 현재의 Y2K 붐 훨씬 이전부터 ‘Y2K 퀸’으로 불리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해왔고, 아방 팝(Avant Pop), 일렉트로 팝 장르와 팝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잇걸이기도 하다. 그러나 뮤직비디오 속 잇걸의 조건 중 하나로 언급된 ‘je ne sais quoi(프랑스어로 ‘형용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무언가’)’처럼, 잇걸에는 학위도 없으며 ‘올해의 잇걸 상’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모두에게 인정받는 ‘잇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360’ 뮤직비디오 속 잇걸 5명을 통해, 그 정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줄리아 폭스 (Julia Fox)
“I’m everywhere. I’m so Julia.” ‘360’ 속 찰리 XCX의 가사처럼 줄리아 폭스는 어디에나 있고, 전방위적인 활동을 한다. 그는 여성 의류 브랜드 프란치스카 폭스(Franziska Fox)를 론칭한 디자이너였으며, 사진작가, 회화 작가 그리고 모델일 뿐만 아니라 샤프디 형제가 연출하고 애덤 샌들러가 주연을 맡은 영화 ‘언컷 젬스(Uncut Gems, 2019)’에 출연해 고섬 독립 영화상 신인배우상(Gotham Independent Film Award for Breakthrough Performer) 후보까지 오른 배우다. ‘언컷 젬스’ 출연 이후에는 단편영화 ‘Fantasy Girls(2021)’의 각본과 감독을 맡고, 회고록 ‘Down the Drain(2023)’을 발표한 뒤 동명의 음원까지 발매했을 정도이다.
최근 잭 생(Zach Sang)의 팟캐스트에서 줄리아는 ‘360’에 묘사된 “Julia”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자신감 있는 것, 관심의 중심에 있는 것 그리고 ‘바로 그 여자’가 되는 것(being confident, being the center of attention, and just being that girl)”이라고 말했다. 줄리아의 이런 솔직함과 발칙함, 과감함은 그의 다양한 활동을 하나로 묶는 그만의 퍼스널리티다. 이를테면 그의 패션은 인간의 머리카락이 달린 오스카 의상이나 직접 리폼한 미니 데님 톱 의상 등 파격적인 모습이고, 검은 그래픽 아이라이너는 줄리아의 상징적인 메이크업 룩이기도 하다. 이런 창의적이고 과감한 스타일과 함께 줄리아는 ‘엘르 브라질’의 커버를 장식하고, 런던 기반의 디자이너 브랜드 노울스(KNWLS)의 얼굴이 되기도 했다.
세상 화려한 옷과 메이크업을 입고 사방팔방으로 ‘핫’하게 활동하는 그에게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줄리아는 화제의 틱톡 ‘집 소개’ 영상을 통해 방 두 개가 딸린, 생활감이 가득한 집을 소개하며 “세상엔 더 중요한 것들이 많기 때문에 예쁘고 멋있는 집은 필요 없다.”고 말한다. 그의 집을 가득 채운 건 사랑하는 아들의 물건들이고, 매일 들여다볼 침실 거울에 위치한 건 세상을 먼저 떠난 친구들의 사진이다. 이런 인간적인 줄리아의 모습과 “난 100퍼센트 잘 나갈 것이다(I will a hundred percent sell out).”라고 당당히 외치는 줄리아 모두 솔직하고도 발칙한 줄리아가 과감하게 보여준 그의 진실된 모습들이다. 왜냐하면 “that’s literally Julia Fox”, 그것이 줄리아 폭스니까.
@captincroook Mary popins 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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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콘사니 (Alex Consani)
슈퍼모델의 아우라와 코미디언의 영혼을 갖고 태어난 알렉스 콘사니는 모델이자 틱톡커이며, 독보적인 ‘젠지(Gen Z)력’을 가진 잇걸이다. 알렉스 콘사니는 데뷔 당시 가장 어린 트랜스젠더 모델로 활동을 시작했고, 2021년 뉴욕 톰 포드 쇼를 통해 런웨이 모델로 데뷔했다. 이후 코페르니, 뮈글러, 지방시 등 수많은 브랜드의 쇼에 서며 ‘보그’의 ‘The 11 Standout Models of Spring-Summer 2023’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성공적인 모델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있다.
런웨이 위에서 보여주는 엄청난 카리스마와 달리, 틱톡에서의 알렉스 콘사니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된다. “나에게 틱톡은 ‘그 순간’을 의미한다(TikTok for me is something that comes very in the moment).”는 알렉스 콘사니의 말처럼, 그는 틱톡을 꾸밈없는 자신을 보여주는 장으로 활용한다. 이를테면, “Play-Doh 같은” 재밌는 표정으로 다른 사람의 눈치는 보지 않는 듯한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다. 바이럴된 영상으로는 ‘물병 영상’, ‘콘서트 영상’, ‘‘360’ 뮤직비디오 비하인드 영상’, ‘표지판 영상’ 등이 있다. 그리고 280만 이상의 팔로워와 1억 1,600만 이상의 ‘좋아요’ 수가 증명하듯, 솔직함과 유쾌함을 주요 가치로 받아들이는 젠지에게 알렉스 콘사니의 유머 코드가 완벽히 통했다.
“모델의 휴무일 패션(Model-Off-Duty look)”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사람들은 모델들이 일상에서도 런웨이처럼 멋진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곤 했다. 하지만 알렉스 콘사니는 모델로서의 자신과는 또 다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새로운 유형의 모델이자 인플루언서를 제안한다. 이제는 시종일관 흐트러짐 없이 시크함을 뽐내기보다, 오히려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솔직하게 그리고 유머 있게 자신을 드러내는 시대다. 알렉스 콘사니가 이 시대를 대변하는 잇걸이 된 건 어쩌면 당연하다.
엠마 체임벌린 (Emma Chamberlain)
엠마 체임벌린은 만 15세였던 2017년에 처음 유튜브 영상을 올렸다. 거의 매일 같이 영상을 올렸던 엠마 체임벌린은 3개월 만에 이미 유튜브 스타가 되어 있었다. 당시 가장 큰 반응을 얻었던 건 ‘Dollar Tree 하울’ 영상. 엠마 체임벌린 특유의 유머와 줌(zoom) 기능을 활용한 편집 기법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유쾌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옆반 친구 같은 편안한 매력으로 또래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게 됐다. 이후 ‘멧 갈라(Met Gala)’의 MC로 미국은 물론 한국에도 얼굴을 알렸고, 현재는 유튜브 구독자가 1,200만 명을 넘긴다.
엠마 체임벌린이 본격적으로 젠지의 잇걸이 되기 시작한 건 그의 패션이 함께 주목받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특히 그의 시그니처기도 했던 스크런치(scrunchie) MD는 29분 만에 완판되었고, 당시 친구 유튜버들인 한나 멜로쉬(Hannah Meloche), 엘리 투만(Ellie Thumann)과 함께한 코첼라 영상은 조회 수 1,600만 이상을 넘기며 ‘코첼라 패션’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이후 엠마 체임벌린은 루이 비통의 앰배서더로 발탁되고 수많은 패션 행사에 참석하며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그런데 패션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엠마 체임벌린은 ― 당시 너도나도 패션 브랜드를 론칭하던 것과는 다르게 ― 커피 브랜드 체임벌린 커피(Chamberlain Coffee)를 론칭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엠마 체임벌린이 패션 아이콘인 것과 별개로, 유튜브 영상의 주된 콘텐츠는 ‘일상’이었으며 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바로 커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언제나 영상의 시작 부분에서 아이스 아몬드 밀크 라떼를 마시는 엠마의 모습은 아이코닉하게 남았고, 직접 공개한 커피 레시피 자체가 바이럴되기도 했다. 특히 ‘360’ 뮤직비디오에서 엠마 체임벌린이 행인의 커피를 뺏어든 뒤, 한 모금 마시고는 인상을 찌푸린 채 던져버리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커피 맛에 엄격한 그를 무척 잘 반영한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애정과 열정으로 커피 사업을 이어 나가는 엠마 체임벌린의 모습은 ‘진정성’으로 대중에게 인정받게 되는 큰 계기가 됐다.
엠마 체임벌린은 유튜버가 범람하던 시기에 등장해 현재까지도 큰 논란 없이, 자신이 가진 ‘칠(chill)’한 매력과 진정성으로 꾸준한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그의 팟캐스트에서 친구 관계와 연애에 관해 이야기하는 엠마는 여전히 ‘공감할 만(relatable)’하다. 엠마 체임벌린의 하울 영상을 보며 학교에 입고 갈 옷을 고민하던 소녀들은 이제 그가 겪는 20대의 방황에 공감한다. 아마 먼 미래에 엠마 체임벌린이 할머니가 되어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또래 여성들은 또다시 그에게 공감하지 않을까. 흰머리가 된 채로 아이스 아몬드 밀크 라떼를 마시며 삶의 허무함을 논하는 엠마 체임벌린을 보며 말이다.
가브리엣(Gabbriette)
가브리엣은 ‘360’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잇걸들 중 특히 찰리 XCX와 인연이 깊다. 전직 발레리나이자 모델로 활동하던 가브리엣이 찰리 XCX의 ‘After the Afterparty(2016)’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고, 이후 찰리 XCX는 가브리엣을 포함한 4인의 여성 밴드 ‘내스티 체리(Nasty Cherry)’를 기획한다. 이들의 데뷔 과정과 초기 활동 비하인드 등을 다룬 넷플릭스 리얼리티 쇼 ‘우리가 바로, 내스티 체리’가 공개되며 데뷔부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찰리 XCX는 멋진 여자들이 모인 쿨한 이미지의 밴드를 만들고 싶어 했고, 내스티 체리의 프런트맨인 가브리엣은 그 계획이 실현될 수 있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리가 바로, 내스티 체리’에서 멤버들이 가브리엣을 “가비(가브리엣)는 그저 멋져요(Gabi is just effin’ cool).”라는 한마디로 소개했을 정도다.
내스티 체리 활동 당시 스모키한 메이크업에 고스(goth) 패션으로 쿨한 인디 록밴드의 프런트맨 ‘감성(aesthetic)’을 보여줬던 가브리엣이 본격적인 젠지의 스타일 아이콘이 된 건 2023년부터이다. 당시 1990년대 고스 걸(goth girl), 헤로인 시크(heroin chic) 스타일이 다시 급부상하며 가브리엣이 이 스타일을 대표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얇은 아치형의 눈썹, 잿빛의 아이섀도 그리고 블랙을 주로 하는 고스 패션이 주요 요소인 이 트렌드는 ‘서큐버스 시크(Succubus chic)’라 불렸으며, 이는 그 이전까지 유행해온 ‘클린 걸(Clean girl)’ 감성을 완벽히 뒤집는 트렌드였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스타일을 고수해오던 가브리엣은 많은 이들의 핀터레스트(Pinterest) 보드에 등장하기 시작했고, 원조(OG)라고 할 수 있는 1990년대 안젤리나 졸리와 함께 젠지들의 스타일 아이콘이 되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오피스 사이렌(Office Siren)’의 ‘베요네타 안경(Bayonetta glasses)’ 트렌드에도 일조하며 ‘가브리엣 스타일’을 정의 내리는 계기가 됐다.
‘360’에서 가장 처음에 나오는 가사는 “I'm your favorite reference, baby / Call me Gabbriette, you're so inspired”이다. 사람들이 가브리엣의 스타일에 영향을 받는 것에 대한 공식적인 인증을 한 셈이다. 실제로 유튜브와 틱톡 등의 소셜 미디어에서 사람들이 ‘가브리엣 메이크업’을 커버하거나 ‘가브리엣 스타일’의 패션 영상을 공유하고 있다. 심지어 가브리엣이 업로드한 요리 영상들이 엄청난 화제가 되어 ‘가브리엣 요리 따라 하기’ 영상들도 존재한다. 무엇이든 다 따라 하고 싶게 만드는 사람. 가브리엣은 걸어 다니는 핀터레스트 보드 같은, 그런 사람이다.
클로이 세비니(Chloë Sevigny)
‘360’의 뮤직비디오에서 알렉스 콘사니, 가브리엣 그리고 줄리아 폭스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이 전자담배(vape)를 들고 있을 때, 클로이 세비니는 불이 붙은 연초를 든 유일한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대와 2000년대생들 사이에서 클로이 세비니는 1992년에 데뷔한 ‘원조 잇걸(OG it girl)’이다.
워싱턴 스퀘어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며 예술을 공부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던 클로이 세비니는 ‘새시(Sassy)’ 매거진과 ‘X-Girl’에서 모델로 커리어를 시작해 소닉 유스(Sonic Youth)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클로이 세비니의 남다른 쿨함과 당시 뉴욕 다운타운의 힙스터 스타일을 대변한 패션 센스는 많은 이들의 눈에 띄었고, ‘더 뉴요커(The New Yorker)’에 클로이 세비니에 대한 무려 7페이지짜리 기사가 실리며 스무 살에 이미 뉴욕의 잇걸로 불렸다. 이후 1996년에는 미우 미우의 캠페인 모델이 되었으며, 수년간 많은 아이코닉 룩을 남기며 패션계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래리 클락 감독의 ‘키즈(Kids, 1995)’를 포함한 다양한 미국의 인디 영화와 TV 시리즈에 출연하였고, ‘소년은 울지 않는다(Boys Don’t Cry, 1999)’로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고 ‘빅 러브(Big Love, 2010)’로는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연기자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 뮤직비디오에 그가 등장한 건 단지 원조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함이 아니다. 클로이 세비니는 다른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젠지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미친 이 시대의 잇걸이기도 하다. 2023년의 큰 이벤트로 회자되는 클로이 세비니의 ‘Closet Sale’이 이를 증명한다. 그의 소장품을 사기 위해 젠지들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 줄을 서며 기다렸고, 소셜 미디어에는 클로이 세비니의 ‘Closet Sale’에서 산 것들을 자랑하는 하울 영상이 줄이어 업로드됐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특히 대표적인 Z세대 팝스타인 올리비아 로드리고가 이곳에서 구매한 클로이 세비니의 원피스를 입고 “이 원피스를 입은 클로이 세비니의 사진을 몇 년간 가지고 있었다.”며 굉장히 들뜬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클로이 세비니가 X세대부터 Z세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며 여전히 쿨한 이유는 그의 한결같음에 있다. 멋진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고, 클로이 세비니는 유명해진 이후에도 메인스트림으로 가고자 하지 않았다. 할리우드 스타가 되기 위해 LA로 가기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뉴욕을 선택했으며, 작품을 선정할 때 고려한 것은 존경하는 연출진과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였다. 잇걸의 요소로 ‘니치(niche)함’은 빼놓을 수 없다. 클로이 세비니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한결같이 보여주었고 그래서 그가 30년간 변함없이 멋지고, 쿨하고, 여전히 조금은 신비로운 잇걸로 남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