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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은,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HUP! 유튜브

‘제이비쇼 The JB Show’ ('HUP!' 유튜브)
김리은: ‘제이비쇼 The JB Show(이하 ‘제이비쇼’)’의 구성은 그간 대부분의 미디어가 신인 걸그룹 아이돌에게 요구했던 전형성을 뒤집는다. 이 프로그램의 MC인 키스오브라이프의 쥴리와 벨은 데뷔 1년 차인 신인 걸그룹으로서 자신들의 언행이 어떻게 보여질지 걱정하는 상황에 놓이지 않는다. 대신 어린 시절 하와이 호놀룰루와 시애틀에서 성장한 문화적 배경을 살려 미국 키즈 채널 선생님을 연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게스트로 등장하는 남성 힙합 아티스트들의 태도와 행동을 교정한다. 빅나티에게 ‘럽스타그램’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묻거나 한요한에게 그의 음이탈 영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소위 ‘흑역사’로 불릴 만한 순간들에 대해 질문하거나, 두서없고 느린 래원 특유의 화법에 분노를 표출하는 쥴리와 벨의 모습은 웃음을 낳는다. 그러나 ‘제이비쇼’의 종착점은 단순히 MC와 게스트의 문화적 차이를 부각하거나 희화화하는 데에 있지 않다. 누가 더 오글거리는 낭만을 정의할 수 있는지를 대결하던 벨과 빅나티의 대결은 어느새 사랑에 대해 항상 진솔하게 표현하는 빅나티를 존중하는 쥴리의 멘트로 이어지고, 록스타가 되기를 원하는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던 한요한은 진지하게 “오래도록 음악하는 게 사실 꿈”이라며 직업인으로서 팬들에게 지키고 싶은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로 전형적인 이미지를 요구받던 신인 걸그룹 멤버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며 예능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그 과정에서 게스트들의 인간적인 매력이나 직업인으로서의 가치관을 진솔하게 보여줄 수 있는 기묘한 평화지대가 생겼다. ‘세계관 충돌’이 빚어낸 공존이다. “천 개의 눈에는 천 개의 세상이 있다.”는 래원의 말처럼.

‘더 납작 엎드릴게요’
정서희(영화 저널리스트): 법당 옆 출판사. 사찰 오피스. 부처가 굽어살피고 보살들이 수행한다는 절이 일터일 때, 피고용인은 그저 세상의 공평한 범속을 체감한다. 5년 차 직장인 혜인(김연교)은 공식적으로 불교 서적 교정·교열 담당이지만 5년째 막내이기도 한 그의 업무 범위는 매우 널따랗다. 전 직원 셋, 팀장 진희(장리우)와 대리 태미(손예원)의 눈치를 적절히 살피는 혜인은 굽신 모드란 사회생활용 페르소나일 뿐임을 잊지 않는다. 캐릭터 또렷한 상사들은 상황에 따라 천연덕스레 말을 바꾸거나 대체로 까칠하나, 책임자가 나설 타이밍에 물러서지 않으며 부당한 처사 앞의 혜인을 적극 방어한다. 저장 깜빡한 죄로 파일 날아가서 야근한 날, “내가 낸 기도비로 월급 받아먹고 사는 주제에” 같은 허튼소리를 뱉는 신도에게 고개 숙인 날들이 모여 혜인의 “한 달이 간다”. 대거리하고 싶은 울화를 도로 삼키게 하는 건 이미 혜인을 누르고 있는 공과금, 계비, 카드값, 대출이다. 그는 지옥도 극락도 아닌 일상에서, 은은한 자괴감과 이따금 스쳐가는 자부심 사이에서 “스스로가 전혀 가엾지 않다”.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하기를 택하는 태도 역시 프로의 그것이다. 고된 하루의 저물녘, 언제든 끝은 “내 쪽”에서 낸다고 새기는 혜인은 조아리기 위해 엎드리지 않는다. 절은 일어서면서 완성하는 행위다. 궂을수록 기억해야 한다. 천둥 번개엔 Ctrl+S 필수!

애플뮤직 플레이리스트: Permanent Vacation (매일 휴가처럼)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 여름은 음악의 계절이다. 스포티파이나 애플뮤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는 연말 홀리데이 시즌 이상으로 공들여 여름 재생목록을 제공한다. 캐럴처럼 어느 정도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만큼 개성도 드러난다. 예측 가능한 익숙함이나 적당한 계절감보다, 여유로운 산들바람을 찾는 방법은 어떤가?
최신 히트 곡, 클럽 비트 또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BBQ 또는 뒷마당 계열의 여름 재생목록에서 슬쩍 벗어나기를 추천한다. ‘매일 휴가처럼’에서는 레게, 펑크, 보사노바, 브라질리언 비트 등 당신의 여름에서 ‘핫’과 ‘쿨’의 의미를 새롭게 내려줄 노래들이 연이어 나온다. 장르에 얽매이기보다 그것이 서로 주고받은 영향을 면밀하게 살핀다. 메너헌 스트리트 밴드의 여름 펑크 신곡이나 토로 이 모이가 만든 ‘Genius of Love (feat. Brijean)’의 최신 버전 같은 2024년의 쿨부터, 세인트 에티엔이나 카디건스의 인디팝적 변용이 빛나는 1990년대, 로익솝과 J 딜라의 마법적인 비트를 거쳐 고전과 신예를 아우르는 모든 놀라운 발견에 이른다. 어느 에디터가 자신의 은밀한 취향을 세상에 펴낸 다음, 노래를 뺄 줄은 모르고 매번 더하기만 하는 보석함 같은, 세상 어느 멋진 그 카페의 영업 비밀 같은 재생목록이다. 영원한 휴가는 세상이 아니라 에어팟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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