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의무로 어느 정도의 공백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던 기간 중에도, 방탄소년단은 몇 곡의 싱글만이 아니라 앨범/EP 혹은 영상 작업으로 새로운 창작물에 대한 갈증을 상당 부분 해소한다. 이제는 원래 가능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익숙해진 군복무 중 앨범 발매가 사실 보기 드문 이유는 당연하다. 음악 활동이 신곡 공개와 함께 방송, 공연 등 물리적 활동을 수반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제이홉의 ‘HOPE ON THE STREET VOL.1’은 음악만이 아니라 여섯 에피소드의 다큐멘터리로 자신의 모든 것이 시작된 춤을 되돌아보는 형식을 취한다. RM의 ‘Right Place, Wrong Person’은 믹스테이프부터 쌓여온 개인 작업과 그 과정에서 구축된 집단의 창작력을 음악과 뮤직비디오라는 형태로 집약했다. 만약 방탄소년단이라는 팀의 역사를 군복무 전후로 나눈다면, 두 앨범은 그 전반에 대한 기록이자 그 다음을 예상하는 청사진의 일부로 남았다.
지민의 ‘MUSE’는 어떨까? 1년 전의 ‘FACE’가 앨범 제목부터 직관적이고 솔직했던 것을 기억해보자. 당시의 인터뷰는 앨범이 만들어진 배경을 꽤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투어 시절 지민이 길을 잃은 듯한 감정을 토로할 때 다른 멤버들은 그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길 권했다. 당시의 감정은 ‘Like Crazy’라는 노래로 열매를 맺었고 덕분에 그는 허무와 상실감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다. ‘face’는 아티스트의 다면적인 얼굴을 뜻하기도 하겠지만, 당시의 자신을 직면한다는 의미가 더 강했을 것이다. 가사 또한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썼다고 강조하는 그에게, 우리도 복잡하게 다가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뮤즈는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를 뜻한다. 작년 말 크리스마스 직전에 공개한 ‘Closer Than This’가 포함되어 있고, 앨범에 앞서 나온 ‘Smeraldo Garden Marching Band (Feat. 로꼬)’가 방탄소년단에게는 오래된 세계관의 일부인 스메랄다 꽃을 포함하는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Smeraldo Garden Marching Band (Feat. 로꼬)’의 뮤직비디오만이 아니라 각종 티저 이미지도 예의 그 파란 꽃을 강조한다. 이 정도면 평안과 자신감을 되찾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의 상당한 지분은 팬과 방탄소년단이라는 팀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Closer Than This’에서 이들의 관계는 첫 만남으로부터 함께 걸어온 여기까지의 여정을 기리고, 작은 쉼표를 건너 다시 보랏빛으로 물들 날을 기다린다. 하지만 노래 한 곡으로는 부족했던 것인지, ‘Smeraldo Garden Marching Band (Feat. 로꼬)’는 “전하지 못한 말 숨겨왔던 너의 맘 다 전해 줄 거”라 다시 한번 선언한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는 복고적인 비주얼은, ‘레트로’라는 말로 뭉뚱그릴 수 없는 확실한 지향점이 엿보인다. 선명한 컬러를 강조하면서, 연극적인 촬영, 앙상블을 강조하는 집단 안무는 ‘오즈의 마법사’ 같은 고전 컬러 영화의 질감을 재현한다. 스메랄도는 이탈리어어로 에메랄드이고, 노란 벽돌길 끝에 마법사가 다스리는 곳이 바로 에메랄드 시티다. 이쯤 되면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세 명의 프로듀서에게 별도의 배역명이 있다고 해도 놀랍지 않다.
‘Smeraldo Garden Marching Band (Feat. 로꼬)’는 세 번째 트랙이다. 그에 앞서 서커스를 연상시키는 마칭밴드라는 콘셉트로 들어가는 길목은 친절하다. ‘자신과의 대면’ 이후의 첫 곡이 재탄생(‘Rebirth (Intro)’)인 것은 어떤가? 가스펠 스타일의 합창과 현악으로 고양감을 불러오는 밝은 분위기는, 비슷하게 시작했지만 전혀 달랐던 ‘Face-off’ 같은 급전환 없이, 자연스럽게 ‘Interlude : Showtime’의 짧은 행진곡을 거쳐 쇼를 시작한다. 상당히 공을 들여 전면에 배치한 도입부의 끝에서, 지민은 이제 준비되었으니 시작한다고 알린다.
이제 조금씩 다양한 속도와 색깔의 사랑 노래가 이어진다. ‘Slow Dance’의 R&B 남녀 듀엣은 중독적인 톱라인과 좋은 보컬을 조합할 때 볼 수 있는 결과가 무엇인지 증명한다. 소피아 칼슨은 디즈니의 ‘디센던츠(Descendants)’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동시대 디즈니 스타 중 발군의 보컬을 선보인 바 있다. 넷플릭스의 ‘퍼플 허츠(Purple Hearts)’도 뮤지션을 출연한 그의 노래가 예고편을 뮤직비디오로 바꾸고 아직 안 본 영화를 본 것처럼 만든다. ‘Be Mine’은 아프로-비트 스타일과 좀 더 직접적인 유혹을 덧붙인다. 이 노래는 아프로-비트가 종종 보이는 제례적 성격을 배제하고 좀 더 듣기 쉬운 팝으로 남는다. 예컨대 복잡한 구조적 리듬, 주고받는 노래 같은 형식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지민 특유의 높고 날카로운 팝 보컬과 라틴 텍스처를 배합하고, 후반부에는 1990~2000년대 R&B 스타일의 신스를 더하여 앤서니 해밀턴이나 오마리온 쪽으로 슬쩍 뻗어나간다. 지민의 사랑 노래는 이런 식이다.
이 길을 계속 걸어가면 ‘Who’는 역사적으로 증명된,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물이다. 템포를 올리고, 건조하다 싶을 정도로 간결하지만, 깊숙하고 펑키한 리듬에 R&B에 굳이 얽매이지 않고 록/댄스의 장르적 특성을 적극 채택한다. 일찍이 넵튠즈가 완성했고,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우리는 지민의 버전을 본 적이 없고, 그의 목소리는 이것이 충분히 새롭다고 설득한다. 지민 옆에 기타가 등장한 것은 그가 무엇을 하지는 스스로 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앨범은 짧지만, 충분한 분량을 할애하여 변화와 의도를 설명할 준비가 되어 있다. 본론은 스타일상 다양해 보이지만 그만큼 일관되고 의도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댄스, 발라드, 힙합 같은 백화점과는 당연히 다르고, 당대의 유행 사운드로 적당히 말할 수도 없다. 지민은 준비된 것 맞다. 우리는 자기 장르를 가진 팝스타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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