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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
사진 출처네이버 웹툰

고해준은 집이 없다. 하나뿐인 가족,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돌아갈 집 또한 없어졌다. 백은영도 집이 없다. 집에서 부모가 그에게 유년 시절부터 저지른 끔찍한 폭력으로 인해, 그는 마음에서 집을 없앴다. 고해준은 가족이 있는 집을 원하지만 집이 없어졌고, 백은영은 가족이 있는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어 다른 집을 찾는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고해준의 생명까지 위협할 정도로 싸운 것은 악연보다 차라리 필연이다. 고해준에게 가족은 더 이상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어머니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그에게는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집이 있다. 반면 백은영에게 집과 가족은 물리적으로 실존하지만 심리적으로는 없으니만 못하다. 꿈에서라도 가족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과 꿈에서라도 가족은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한솔 고등학교에 다니며 그곳의 구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한다. ‘집이 없어’. 와난 작가가 최근 완결한 이 웹툰의 제목처럼, 두 사람은 집이 없다. 다만, 이 문장의 의미는 서로에게 완전히 다르다. 

“매번 널 이해를 해보려고 하는데도... 네 눈엔 오히려 내가 이상한 놈으로 보이는 거 보니까 그냥… 서로 얘기 나누는 게 의미 없는 것 같다.” 두 사람이 수많은 다툼과 화해를 반복하며 맞이한 2학년 추석 즈음, 고해준은 백은영에게 그들이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이렇게 벌면 인생 개이득 아닌가?” 백은영이 과거 절도로 돈을 벌며 했던 생각이다. 그는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필요하면 절도와 폭행도 할 수 있다. 자신을 돌봐줄 가족이 없음에도 열심히 공부해 학교 최상위권 성적을 내며 미래를 준비하는 고해준은 백은영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고해준 또한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순간이 있다. “...너 레스토랑 가본 적 없지?” 두 사람에 이어 구 기숙사에 입주한 박주완이 요리 중인 고해준에게 물에 레몬을 조금 짜서 넣어주길 바라자 고해준이 레몬 절반을 썰어 그냥 물에 넣어버린 것을 보고 한 말이다. 부모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받는 박주완은 같은 학교 학생이 레스토랑에 가본 적 없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박주완이 고해준과 백은영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는 백은영이 가출했다는 걸 알고는 함께 걷던 고해준에게 말한다. “저런 애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야.” 그 순간 두 사람 뒤의 배경은 사라지고, 박주완과 고해준의 거리는 갑자기 멀어진 것처럼 묘사된다. 고해준은 백은영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본인 또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 좀처럼 보호받지 못하는 또래들에 대해 알고 있다. 반면 박주완에게 백은영은 말로만 들어봤을 뿐 경험한 적 없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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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어’ 186화, ‘제사와 외삼촌 (1)’의 타이틀 이미지는 고해준, 백은영, 박주완이 거리를 걷는 모습을 묘사한다. 이 그림 속에서 세 사람의 외모는 몸의 윤곽만 남긴 채 사라지고, 몸속은 다른 이미지로 채워진다. 박주완의 몸에는 로켓, 게임, 버거, 공부 등 그를 설명하는 여러 아이콘이 있다. 고해준의 몸에는 땀을 연상시키는 물이 있다. 기초수급자로 살면서 어떻게든 좋은 성적을 유지해 좋은 대학을 가려는 그의 삶에는 무엇이든 땀 흘리며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아직 무언가가 들어설 여력이 없다. 그리고 백은영의 몸 대부분은 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무늬로 채워져 있다. 그는 박주완처럼 무언가를 갖지 못했다. 고해준처럼 바라는 미래도 없다. 같은 학교를 가고, 같은 거리를 걷는 학생들. 하지만 그들의 내면은 서로 이해가 불가능해 보일 만큼 다르다. 

그러나 ‘제사와 외삼촌 (1)’의 타이틀 이미지에서 백은영의 몸에는 붉은 무늬 말고도 고해준과 같은 물방울이 조금씩 있다. 자신을 위해 신 기숙사를 포기한 뒤부터 그는 고해준을 위해 아침 식사를 차린다. 고해준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휴대폰이 고장나자 수리비를 갚으려고도 한다. 오직 자신의 생존을 생각하던 소년이 선의를 보여준 사람에게 답례하고, 미안한 일에 대한 사과한다. 고해준은 백은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백은영을 변화시켰다. 백은영의 시점에서 ‘집이 없어’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럼에도 내 친구가 돼서 나를 변화시키는 이야기다. 고해준과 박주완, 그들에 이어 등장하는 김마리, 강하라, 공민주는 자신들의 첫 에피소드에서 과거사가 나온다. 반면 백은영은 연재 1년 5개월이 지난 ‘강하라와 백은영 (1)’부터 과거사가 조금씩 드러난다. 공개된 그의 과거 중에는 그를 잠시 따뜻하게 대했던 교사도 있었다. 이 교사는 힘겨웠던 10대 시절을 회상하며 백은영에게 감정이입한다. 그러나 백은영이 기대를 저버리자 “어떻게 된 게 넌 그대로니?”라며 돌아선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통해 백은영을 바라보고, 평가하고, 온정을 베풀었다 거둬들였다. 백은영의 과거가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으면서 독자들은 이 교사처럼 백은영에게 섣부른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주변에서 가출, 거짓, 절도, 폭력과 같은 단어들로 정의하는 현재의 그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백은영을 “저런 애”로만 생각했던 박주완의 시선은 백은영과 같은 삶을 경험하지 못한 학생들이 가질 수 있는 시선이기도 하다. 그러나 박주완은 백은영이 고해준과 다툴 때, 서로에게 미처 말하지 못한 속마음을 대신 전하며 중재한다. 어린 시절 유도선수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하려던 친구 강하라를 계속 응원하며 용기를 준 것도 박주완이었다. 타인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던 그 존재와 같이 지내다 보면, 그래서 그가 “저런 애”가 아니라 내 친구가 되면 자신의 방식으로 다가가 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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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백은영은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고해준이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누명을 썼을 때 백은영은 자신만의 방식, 거짓말과 폭력을 써서 고해준을 돕는다. 백은영은 타인을 도울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방식으로 돕는다. 백은영의 과거사는 이 지점에서 중요해진다. 백은영이 고해준을 돕는 것은 타인을 통해 일어난 현재의 변화다. 하지만 사람을 돕는 방식이 바뀌기 어려운 것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형성된 내면 때문이다. 어머니가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믿어준 경험이 있는 고해준은 사람을 믿는다. 그는 백은영에게 여러 차례 속은 뒤에도, 물건을 상습적으로 훔치던 백은영이 합법적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게 됐다는 말에 기뻐했다. 그러나 백은영은 그 순간에도 고해준을 속였다. “내 거짓말이 어때서? 내가 솔직하게 다 말하고 다녔으면, 우리가 이렇게 잘 지냈을 거 같냐?” 백은영은 누군가 자신을 믿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그는 부모, 특히 아버지의 물리적 폭력을 피하기 위해 부모의 의중을 파악해 기분을 맞춰야 했다. 틀리면 폭행이 반복됐다. 부모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는 사이 유년 시절은 “스스로가 너무 멍청하고 한심해서 떠올리기도 싫은 그런 기억들”이 되었다. 그사이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누군가 믿어주기엔 끔찍한 사람이 됐다. “저런 부모 밑에서 자란다고 다 나처럼 되지 않아. 예전부터 그랬어. 난 좀 달랐어. 내가 무서워.” 백은영이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 해도 좋을 연극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어린 시절 연극 활동이 부모의 폭력으로 돌아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부모, 특히 아버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타고난 연기력을 부모를 속이는 데 썼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자신을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상황에 해야만 했다. 백은영은 부모에게 사랑 대신 자기혐오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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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학교가 중요하다. 한솔 고등학교에서 생활하기 전, 백은영에게 세상은 집과 집 밖으로만 나뉘어졌다. “그런 집으로 굽히고 들어가야 할 만큼 밖은 만만치 않았고, 그런 밖으로 다시 나가야 할 만큼 집도 만만치 않았지.” 부모에게 보호받지 못한 아이가 집을 나가면, 밖에는 아이를 보호해주지 않는 세상이 있다. 가출 청소년을 받아주는 쉼터는 꽉 차 있다. 아르바이트를 한다 해도 한 달치 월급을 온전히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친구나 형들과의 싸움에 휘말리다 정말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드는 부모의 폭력이 있다. 고해준과 백은영이 모두 키가 크고 싸움을 잘하는 것은 차라리 현실적인 설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회 시스템이 10대를 보호하지 못할 때, 물리적인 힘은 다시 생존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 된다. 가출로 내몰리는 한국의 10대를 육체적, 정신적으로 말려 죽이는 메커니즘이라도 해도 좋을 이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어떻게든 학교에 있는 것뿐이다. 한솔 고등학교는 성적으로 구 기숙사와 신 기숙사 인원을 배정할 만큼 성적을 중시하고 경쟁을 유도하는 한국의 많은 고등학교 중 하나다. 이곳에는 학교 폭력을 자행하는 학생과 학생의 어려움에 무관심한 교사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기본적으로 백은영을 집과 사회 양쪽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백은영의 부모도, 그를 찾아다니는 질 나쁜 형들도 학교의 승인 없이는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한솔 고등학교의 구 기숙사가 고해준과 백은영의 집이자 다른 학생들에게 기숙사 역할을 하는 것은 상징적이다. 갈 곳이 없는 학생들에게 기숙사는 집과 다름없다. 동시에 기숙사로서 자신하고 다른 삶을 사는 학생들과 공존하는 사회적인 공간이 된다. 백은영은 10대의 아포칼립스와도 같은 집과 사회를 떠나, 학교에 와서야 생존만이 전부인 삶에서 벗어난다. 요리를 하고, 집을 청소하고, 친구를 만난다. 그리고 법이 보호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스스로 돈을 번다. 그 돈을 벌어 사고 싶은 식재료를 사서 요리했을 때, 백은영은 생각한다.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거군.” 백은영이, 이렇게 살게 된 것이다. 안전한 공간에서, 무언가를 바랄 수 있는, 사회적인 인간으로.

‘집이 없어’에서 고해준의 이름을 건 에피소드는 ‘고해준’으로 시작해 ‘고해준의 집’으로 끝난다. 어머니의 부재와 함께 고해준의 집을 잃은 고해준은 좋은 대학에 합격해 사회에 나갈 준비를 마친다. 어머니는 없지만, 자신의 새로운 집을 마련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집이 없어’ 후반에 꿈속에서 어머니를 만나 그간의 감정을 토로하기도 한다. 반면 백은영의 이름을 건 에피소드는 ‘백은영’으로 시작해 ‘백은영2’로 끝난다. 백은영의 두 번째 이야기 또는 두 번째 백은영. 고해준의 대학 입학이 결정된 뒤에도 한 학년 아래인 백은영은 구 기숙사에 그대로 산다.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백은영은 아직 부모 없이 살 자신만의 집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과거와 다른 ‘백은영2’다. 그가 고해준과 구 기숙사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뒤, 백은영은 고해준이 자신의 말을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고백한다. “그래서 너도 더 좋은 곳으로 떠났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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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영이 고해준과 쉬지 않고 싸우던 그때에도, 백은영은 고해준이 싫지 않았다. 고해준 또한 자신처럼 돌아갈 집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보다 조금이라도 좋은 환경, 최소한 부모가 자식을 찾기라도 하는 아이들은 늘 그를 남겨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더 나은 삶을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이 외롭지 않기 위해 친구가 같은 처지이길 바라는 마음. 백은영의 과거를 안다면, 이 마음에 동의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해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두 번째 백은영은 그 마음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고해준이 “더 좋은 곳”에 가길 바란다. 백은영은 더 이상 타인이 자신과 같기를 바라지 않는다. 고해준과 한솔 고등학교의 친구들이 그러하듯, 백은영 또한 자신과 타인이 서로 다른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시작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많이 밉지 않아.” 백은영의 과거사는 그가 왜 지금의 백은영이 됐는지 이해하도록 만드는 도구가 아니다. 공민주의 어머니 엄수현에게는 얼굴에 흉터가 있다. 흉터가 생긴 이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다만 엄수현이 10대 시절을 가족 때문에 험난하게 보낸 것은 묘사된다. 좋은 어른이 된 엄수현에게 과거는 얼굴의 흉터와도 같다. 내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 있다. 하지만 나는, 살아간다. ‘백은영2’가 된 백은영의 과거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의 과거는 부모에게 지배당했다. 하지만 그는 친구들과 함께 현재를 만들어 나간다. 

‘백은영’부터 박주완, 김마리, 강하라, 공민주가 첫 등장하는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집이 없어’의 타이틀 이미지는 그들의 외모를 짐작할 수 있는 윤곽선만 남긴 채 모든 것을 지운다. 에피소드가 진행될 때마다 그림에 구체적인 내용이 추가되면서 인물의 정체와 그가 맞이한 상황, 공간적 배경이 밝혀진다. 이것은 ‘집이 없어’가 개인과 세계의 관계를 보여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와난 작가는 인물들의 물리적인 상황과 심리적인 상황을 정확히 구분한다. 인물들이 거리를 걷거나,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할 때는 배경의 아주 작은 요소 하나까지 정밀하게 그린다. 반면 인물이 심리적인 문제로 인해 자신만의 생각에 빠질 때는 모든 배경을 지우고 인물의 심리 상태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백은영을 곤경에서 구해줬음에도 자신의 휴대폰을 고장내는 사고를 치고 도망친 뒤, 고해준은 슬픈 눈으로 ‘풍성한 추석 보내세요.’라는 문구가 써진 광고물을 본다. 그때 고해준 주위의 모든 배경은 물론 입마저 사라진다. 물리적인 공간과 심리적인 내면이 시각적으로 극단적으로 분리되면서, 개개인의 심리는 물리적인 공간 이상으로 거대하고 복잡해질 수 있다. 물리적인 공간 안에서 사람은 작은 존재다. 하지만 세상이 자신에게 한 일들을 받아들이는 각자의 내면은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하고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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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어’의 모든 학생들이 가진 심리적인 문제는 가족, 특히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정확히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백은영은 집을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그곳, 집.”이라 정의한다. 집은 닫힌 공간이고, 물리적으로 약한 어린 자녀들이 절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다. 체구가 커진 백은영은 더 이상 아버지에게 폭행 당하지 않는다. 반면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한 여자 김마리는 여전히 오빠에게 폭행 당한다. 어린 시절 오빠에게 폭행 당해 생긴 이마의 상처에 대해 “옛날 일”이라 잘 안 보일 거라는 김마리에게 백은영은 “잘 보이네.”라고 말한다. 닫힌 공간인 집은 아이에게 세상 전부고, 가족에게 당한 폭행은 평생 물리적, 심리적 상처를 남기며 아이의 인생에 긴 영향을 미친다. 김마리가 어떻게든 기숙사에 들어가려고 했던 이유 그래서 신문부 부장인 그가 특종을 통해 부활동 실적을 내고 싶었던 이유는 모두 가족에게 겪은 문제에서 비롯된다. 작아 보이는 가족의 일이 한 사람의 내면에 거대한 문제를 일으킨다. 하지만 세상은 좀처럼 그 문제를 바라보고 이해해주지 않는다. 특히 힘 없는 10대라면 더욱 그렇다. 백은영은 머리가 길다는 이유만으로도 교사에게 편견을 받고, 고해준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를 구해주려다 가해자로 몰리지만 같은 반 학생들은 그를 믿는 대신 다른 절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몰아붙인다. 돌아갈 집이 없는 상황만으로도 고해준과 백은영은 학교에서 약자다. 그들은 험난한 학교 생활과 그보다 더 험난한 바깥세상 사이의 경계에서 위태롭게 버틴다. 어머니가 심리적인 지지대 역할을 하는 고해준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교 안에서 살아남으려 한다. 무엇에도 의지할 수 없는 백은영은 잘생긴 외모를 이용해 타인의 환심을 사고, 마음속으로는 타인을 의심하고, 공격에는 더 강하게 맞받아치며 학교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으려고 애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고해준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삼촌이, 기억에서 사라진 아버지가 찾아온다. 사람을 믿는 고해준은 두 사람을 받아들이려 한다. 반면 백은영은 두 사람의 의도를 의심한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선택은 한 번은 맞고 한 번은 틀린다. 개인의 가치관과 상관없이 세상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다만 그 선택은 가족, 학교, 사회를 통해 형성된 삶의 방식이 낳은 결과다. 하지만 고해준과 백은영처럼 10대는 친구의 삶의 방식에 영향을 받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할 수도 있다.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개인의 문제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다시 개인의 인생에 영향을 미친다. 삶의 방식, 학교 성적, 이마의 작은 상처까지도. ‘집이 없어’는 여섯 명의 10대가 겪은 미시적인 개인사를 통해 가정, 학교, 사회가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거시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그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받은 개인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가서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 방식을 탐구한다. 백은영이 왜 ‘백은영’이 됐는지부터 어떻게 ‘백은영2’로 변했는지 보여주는 것이 갖는 의의다. ‘집이 없어’는 지금 사회가 지워버린, 집과 거리와 학교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생존하고 있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의 10대가 집과 거리와 학교로부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보여준다. 백은영은 존재한다. 세상 모두가 백은영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집이 없어’는 이 존재를 모두의 눈에 새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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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없어’는 집요한 사회적인 분석을 통해 종교적인 순간에 닿는다. 다른 다섯 명의 주요 인물들과 달리, 고해준은 등장 당시 자신을 소개하는 타이틀 이미지가 없다. 작품 초반 타이틀 이미지에 대한 방향이 결정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 후 타이틀 이미지에 그를 설명하는 그림이 등장하기도 한다. 다만 고해준이 ‘집이 없어’에서 하는 역할을 생각하면 이는 공교로운 우연이다. 개인의 내면과 바깥세상의 관계를 다루는 이 작품에서 고해준은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 귀신을 볼 수 있다. 그는 귀신이 보인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 공포에 시달렸고, 동네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귀신은 그를 비롯한 ‘집이 없어’의 주요 등장인물이 가진 문제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이 가진 문제처럼 귀신은 고해준이 아무리 떨쳐내려 해도 따라오고, 때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고해준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어느 정도 정리하고 나서 귀신에 대한 마음 또한 편해진다. 다만 고해준이 귀신을 보는 것을 작품이 묘사하는 그대로 믿는다면, 고해준은 ‘집이 없어’에서 개인과 세상, 심리와 물리 사이에 있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고해준은 ‘집이 없어’에서 세 번 크게 다친다. 처음에는 백은영과 싸우다 배에 유리 조각이 찔리고, 백은영의 일에 휘말려 누군가 휘두른 유리병에 머리를 맞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아버지를 참다 못해 공격하려는 백은영을 말리다 다시 머리를 다친다. 세 번 모두 자칫하면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세 번째 부상의 경우 의식을 잃기까지 한다. 고해준이 백은영 때문에 세 번 죽을 고비를 넘긴 뒤에야, 백은영은 비로소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려 한다. 현실에서는 사람을 믿는 고해준의 삶의 방식이 낳은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해준을 특별한 존재로 본다면, 그는 백은영을 구원한 성자다. 고해준은 백은영이 그를 계속 속여도 용서하고, 믿는다. 백은영이 결국 변화하는 과정은 성자가 길 잃은 한 마리 어린 양을 구한 것과 같다. 고해준이 세 번 희생한 뒤에야 어린 양 백은영이 제대로 된 길을 찾았다. 고해준은 백은영처럼 갈 곳 없는 10대다. 아직 세상 물정을 다 알지도 못하고, 타인에게 무조건 잘해줄 만큼 여유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 또한 백은영처럼 어린 시절 잠시 동네 가게 물건들을 훔쳤고, 자신을 보호하고자 중학교 시절까지 ‘미친 개’를 자처하기도 했다. 그것이야말로, 성자의 조건이다. 우리와 같은 곳에서 나고 자라 같은 삶을 경험하고, 그럼에도 우리와 다른 더 고결한 영혼이 된다. 백은영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더 나은 길로 나아간다면, 고해준은 다른 사람을 도우며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치유한다. 어머니를 잃었고, 귀신을 볼 수 있고, 사람들이 자신을 속임에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려는 고해준을 성자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좋은 대학에 입학한 그는 아마도 어떤 곳에서든 더 많은 사람을 구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집이 없어’는 백은영이 고해준을 시작으로 한솔 고등학교의 학생들과 사회적인 관계를 맺어가며 자신을 긍정하는 과정이다. 반면 종교적인 관점에서라면, ‘집이 없어’는 10대의 성자 고해준이 백은영을 구원하기 위해 행한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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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영이 가출한 뒤, 그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10대들을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학교와 같은 사회 시스템 안에 편입되지 못한 채 존재 자체가 지워진다. 그들 중 백은영만이 한솔 고등학교에 들어와 자신의 존재를 가시화시켰고, 고해준을 비롯한 친구들을 만나고, 그가 연극부에 들어오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를 계속 지원해주는 담임 교사를 만나 변화의 기회가 생겼다. 이 사람들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또는 고해준이 백은영과 얽힌 일 때문에 죽기라도 했다면 백은영의 현재는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사회의 이상은 복지 제도가, 더 나아가 사회의 사상이 백은영을 물리적, 심리적으로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사회가 제도적으로 주지 못하는 것들을 우연히 만난 선한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 한 소년이 가출하는 것은 가족과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가 낳은 결과다. 이 소년을 구하려면 온 세상이 나서야 한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라면 무엇을 기적이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백은영은 구 기숙사를 떠나는 고해준에게 말한다. “좋은 하루 보내.” 그 모든 사람과 사회의 시스템이 모여 두 소년에게 좋은 하루를 바라도록 만들었다. 이 시대 한국의 10대를 위한 주기도문의 첫 구절이 탄생했다고 해도 되겠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길. 편안한 침대에 누워, 내일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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