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은,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마음이 스며든다. 같은 곳에 있지 않아도 그의 시선, 생각, 마음을 공유하는 것에서 함께라는 것이 느껴질 수밖에 없으니... 특히나 사적인 시간 속의 이야기들은,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을 조금 더 가까이 데려와준다.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평소 미술을 향해 애정 어린 시선과 사랑을 보여주곤 했다. 감상했던 작가와 작품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술에 대한 기부로 많은 사람들과 기회를 공유하는 것은, 예술이 주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는 그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며 영감과 휴식을 얻는다는 RM의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더욱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바라본 미술의 세계는 어떠한 모습일까? 평소 RM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졌던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미술평론가 이장로가 그의 시선을 따라가보려 한다.
김환기

아티스트와 대중이 다양한 매체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요즘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규 활동 이외에도 여러 모습들이 팬들에게 주목받는데, RM이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서 김환기 작가의 작품 '영원한 노래'와 남긴 사진도 대중들에게 화제를 모았다.
'영원한 노래'
영원히 우리 곁에 함께하길 바라는 아티스트에게 이토록 빛나는 말이 있을까? 애정하는 아티스트가 오래도록 한결같길 바라는 팬들의 마음을 상기해주는 듯한 이 작품은, 수화 김환기 작가의 프랑스 파리 유학 시절의 작업으로 한국적 소재를 현대화한 회화이다.
  • 김환기, 영원한 노래, 1957, Ⓒ(재)환기재단 ∙ 환기미술관
화면에서 보이는 한국의 자연주의적 모티프들은 김환기 작가가 자주 사용하는 소재였으며, 그가 생각하는 한국의 정서를 잘 드러내는 이미지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캔버스 위에 두터운 붓 터치로 극대화된 질감은, 당시 파리 화단의 특징과도 연관성이 느껴진다. 이 시기의 작가는 당시 세계적인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한국적 시정(詩情)을 담은 작품에 몰두했다. 그는 거장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고유한 정체성을 그들만의 강력한 노래라고 이야기했으며, 본인의 노래를 위한 작업을 해나갔던 것이다. 그러한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이 '영원한 노래'라는 작품이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화면에 등장하는 새, 산, 사슴, 구름, 도자기 등의 이미지는 자연과 전통의 영원성을 상징하며, 노래라는 것은 과거부터 음을 가진 시로 여겨져 왔기에 화폭에서 이미지의 시를 써 내려간 조형 언어를 보여준다. 평면적 구성과 단순화된 형태로 절제력 있게 표현된 형상과 조화로운 색채는 문필가이기도 했던 그의 시선과 정체성을 진정성 있게 보여준 작품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김환기의 화풍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 뉴욕 시기를 거쳐 우리에게 익숙한 ‘전면점화’ 시리즈로 나아가게 된다. 그의 점화는 '점'이라는 기본 조형 단위가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그 점을 둘러싼 선과 반복된 채색으로 나타난 변화로 독창적인 화면을 이루었다.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막을 제목으로 붙인 회화로 화면 가득히 채워 넣은 푸른빛의 점들이 인상적이다. 고국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그리움을 나타내는 이러한 점들은, 명확하게 찍어내지 않고 묽은 안료를 스며들게 하여 농담(濃淡)의 차이에 따른 여러 톤의 푸른색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점들은 번지고 퍼져 나가 서로를 만나게 되어, 단일적 요소에서 개방되고 확장된 요소들로 뻗어 나가 절제와 숭고미의 조화를 보여준다. 이렇듯 작업 방식에는 차이를 보여주나 일관되게 한국적 모티프와 자연의 정서를 보여주는 김환기의 작품 세계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노래로 기억될 듯하다.
  •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70, Ⓒ(재)환기재단 ∙ 환기미술관
이응노

앞서 언급한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꽃피운 한국의 현대미술은 지금까지 활발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고단했던 한국의 역사 속에서도 현대미술의 기류를 잃지 않았던 원동력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창작한 작가들의 정체성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들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는 그들이 체험한 현실 상황을 기반으로 하여 작품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
  • 이응노, 대나무, 1971, Ⓒ이응노미술관
RM은 SNS에 고암 이응노의 '대나무' 작품 사진과 함께 지난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 '광장 : 미술과 사회 1900~2019'의 관람을 전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응노 작가의 후기 작품인 '군상'을 보며 동일한 작가라고 이야기했을 정도로 미술 애호가의 면모를 드러냈다. 이처럼 RM이 소개한 고암 이응노 작가의 화풍 변화를 바라본다면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모습이 더욱 흥미로워질 것이다. 이응노 작가의 초기 작업들은 먹을 이용한 사군자 그림으로, 우리나라 전통 화단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특히 1924년 조선 미술 전람회에서 입선한 이래로 7년간 대나무만 그렸다고 하는 일화는, 대나무에 대한 그의 사랑과 관심이 잘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대나무는 미술 작품의 소재로 사용될 때 절개와 곧은 정신으로 이야기되어 군자에 비유되곤 한다. RM이 게시한 사진 속의 '대나무'는 1971년 작으로 젊은 시절부터 축적되어온 이응노의 묵죽화(墨竹畫) 내공이 여실히 스며들어 있다. 먹의 농담(濃淡)에 따라 사실적으로 묘사된 대나무가 3m 높이의 화면 가득히 자라난 모습은, 마치 대나무 숲에 들어온 것만 같은 상황으로 관람자를 맞아준다. 특히 이 시기의 대나무 작품은 이전에 비해 대나무 잎이 강조되는 표현과 대나무 마디의 변형으로 보다 생동력 있는 화면을 보여준다. 이렇듯 같은 묵죽화(墨竹畫)의 장르 안에서도 변화를 보여주는 이응노의 작품 활동은 시기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의 말년에 새롭게 등장한 인간 시리즈들은 '군상'이라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수많은 인간의 형상이 운집되어 있는 작품으로, 마치 붓으로 글자를 써 내려가는 듯한 필력으로 탄생된 군상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의 형상은 달려가듯이 어딘가를 지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고령이었던 작가가 역사와 문명을 벗어난 인간의 생명력과 정신에 대해 표현하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이응노, 군상, 1988, 스마트K 제공
윤형근

여러 작품들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작가의 정신과 삶의 태도가 작가성으로 작품에 깃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한 작가성은 이미지와 함께 예술 작품을 적극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관람자가 작품에 매료되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동안 알려진 것에 따르면 RM은 윤형근 작가의 작품에 큰 매력을 느끼고 적극적으로 작품을 향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유럽 여행 중에도 베네치아에서 열린 전시를 찾아간 것은 물론 뉴욕, 서울에서의 전시를 모두 방문했다는 것은 작가와 작품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의 미술 사랑이 더욱 잘 느껴진다.
  • 윤형근, 제목 미상, 1966년 경, mu-um 제공
작품의 연대에 따라 변하는 모습까지 언급할 정도로 RM의 관심이 각별한 윤형근 작가의 작업은, 우리에게 단색화로 유명하지만, 그의 젊은 시절 초기의 작업들은 밝은 색채의 추상회화였다. 서정적인 작품의 감성은 그의 스승이자 장인이었던 수화 김환기의 영향을 반영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1973년 반공법 위반의 누명을 쓰고 형무소를 다녀온 후로 그의 작품은 현재의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어두운 색채와 분위기로 변했다. 당시의 설움과 울분으로 인해 비탄에 빠진 마음의 색을 보여주는 듯한, 그 흑색의 기둥이 들어선 화면은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먹을 연상시키는 검은색이지만, 그것은 검정이라는 단색으로 칠해진 것이 아니라 화면 위에 붉은 계열의 번트 엄버(Burnt Umber)와 푸른 계열의 울트라 마린(Ultra Marine)을 반복적으로 쌓아 올려 칠한 결과물이다. 아교를 칠한 바탕 위에 수차례 물감이 쌓여지면서 나타나는 색들은 자연스럽게 번지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연적인 효과로 흑색 안에서 다양한 색들이 은은하게 퍼져 나가는 색채를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평생을 지속해온 '청다색 시리즈'에서 보여지는 수직적인 색의 띠는 그 외부 공간에 위치하는 여백과 어우러져 우리에게 다양한 감정과 분위기로 읽히기도 한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작품에서 사용하는 색과 여백의 형태가 달라지기 때문에 그 당시 작가의 상황과 생각을 유추하며 작품을 바라본다면 그 안에 더욱 빠져들게 될 것이다.
  • 윤형근, 청다색, 1973,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권대섭

앞선 글에서 회화 작품 위주로 소개가 이루어졌지만, 우리의 전통과 역사로부터 유래된 작품들이 회화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을 계승하는 작품들은 미술의 여러 장르에서 항상 빠지지 않지만, 지금 이야기하려는 권대섭 작가의 도예 작품들은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달항아리 작품을 안고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기도 했던 RM은, 전시에서 작가의 작품을 관람하며 한국미의 거장이라고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올 정도이다. 달항아리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백자 항아리의 형식으로, 온화한 백색과 볼륨감을 지니고 있어 한국 도자 문화를 대표하는 자기로 유명하다. 본래 회화를 전공했던 작가는 이러한 달항아리의 분위기와 형태감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도예가로 활동해왔다. 오랜 기간 연구하고 정진해온 권대섭의 ‘달항아리’가 전통성에 뿌리를 두고 만들어지는 백자의 정신과 기술을 담고 있는 명품으로 인정받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불순물 없이 깨끗한 근본적인 달항아리의 형태를 세련되게 구현해내며 미니멀리즘과 어울리는 현대적인 감성을 보여준다.
  • 권대섭, 달항아리, 케이옥션 제공
큰 규모와 볼륨의 달항아리는 한 번에 물레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위와 아랫부분을 따로 만들어 붙이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작하는 사람에 따라 완성도와 미적 요소의 차이를 보여주며,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부정형의 둥근 형태가 그 멋을 더해준다. 또한 같은 백색이더라도 가마의 불 조절을 통해 색의 맑음과 탁함 등을 조절해낸다는 점은 달항아리가 탄생하는 과정이 결코 녹록지 않음을 보여준다. 달항아리의 단순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는 이러한 요소들의 자연스러움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전통적이고 기본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려 노력한 작가의 의도는, 그 정제된 균형미를 드러냄과 동시에 약간의 변칙적인 부분을 추가하여 각각의 항아리들에 고유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준다. 이처럼 전통적 방식의 도자기가 작가의 손에서 현대적 감각을 지닌 달항아리로 탄생하는 과정은 전통과 현대가 서로 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의 미적 체험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들일 것이다.

정영주

작품의 전통적 요소에서 편안함과 따뜻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듯이, 우리의 마음은 과거의 것에서 익숙한 정서를 느끼고 왜인지 모를 그리움에 빠지곤 한다. 그래서일까 <도시-사라지는 풍경> 시리즈에서 보여지는 풍경과 감성이 낯설지가 않다.
  • 정영주, 사라지는 고향 730, 2020, 정영주 작가 블로그
과거 달동네의 풍경을 화면에 담아낸 작품들은 있었던 옛 모습을 그대로 사진으로 찍어 남긴 듯한 사실성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물감과 함께 다른 소재를 화면에 붙여 표현하는 파피에 콜레(Papier collé)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주름 잡힌 한지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옛 동네의 형태 위에 아크릴 물감의 색이 입혀짐에 따라 나타나는 풍경들은, 한지의 질감과 색의 스며듦으로써 입체적이면서도 시간의 흔적이 느껴진다. 원근감에 따라 흐릿하게 보여지는 집들은 '사라지는 풍경'이라는 시리즈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주며, 사라지기도 전에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극대화한다. 작품을 보는 이에게 마음속 고향 같은 편안한 감정을 전달해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시선과 의도가 담겨서인지, 이와 같은 풍경 혹은 시간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따뜻한 동네의 기억을 재구현하는 작업임에도 화면에선 단 한 명의 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리움과 따스한 생동력을 느낄 수 있는 까닭은 캔버스 가득히 들어찬 집집마다 환하게 켜져 있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늘 그렇지만 보이는 것만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등장하지 않아도 집집마다 시간을 보내고 있을 동네 사람들의 시간을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 덕분에 정영주 작가의 작품에서 우리는 서정적인 기억의 장소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강요배

우리 모두에게 기억의 장소라는 것은 각기 다른 곳이며, 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한 점에서 제주도에서 나고 자라 제주의 역사와 자연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강요배 작가의 기억은, 제주도라는 장소와 이곳의 시간이 주요한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 강요배, 꽃과 무기, 1977,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RM이 최근에 빠져 있는 책으로 소개했던 강요배 작가의 예술 산문 ‘풍경의 깊이’는, 여러 도판과 작가의 글이 실려 있어 그의 삶과 예술을 잘 보여주는 서적이다. 강요배라는 개인에 대해 읽게 된다는 사실 외에도, 본인의 작품 세계를 담은 책 출간이 한국 작가들에게 드문 일이라는 현실에 비추어본다면 대중이 작업에 대한 작가적 사유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책의 첫 줄에서 “섬에서 자란 나는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라고 이야기하듯이 1980년대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였던 강요배는 고향 제주의 아픈 역사였던 4.3사건과 관련된 그림을 통해 강렬한 기억을 남기기도 했지만, 많은 수의 작품들은 제주도의 자연을 주제로 한 것들이었다. 그의 캔버스에서 제주의 모습은 서양화 기법과 전통 산수의 형식으로 융합되어 1년 사계절을 모두 담고 있지만,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풍경 묘사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에게 풍경은 사연이 있는 삶의 터전이었기에 다른 관광객들의 시선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같은 바다와 하늘을 보더라도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떠올리며 재구성된다. 특히 많은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바람에 대한 표현은 화면 위에서 자유로운 붓질과 호흡으로 나타나기에 시간성과 공간성을 가진, 이 장소가 보여주는 상황들의 생동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 바람은 작가의 인생에서 바라보았던 매 순간마다의 시선이자 그의 마음이 지향하는 바로, 보는 이들에게도 심적 동요를 일으키는 '바람'으로 불어올 것이다.
  • 강요배, 마파람 1, 1992, 돌베개 제공
글. 이장로(미술평론가)
사진 출처. 방탄소년단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