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ARE WE?” 세븐틴의 미니 12집 ‘SPILL THE FEELS’의 트레일러 영상 ‘Speak Up’은 리더 에스쿱스가 프로젝터로 쏘아올린 질문으로 시작된다. 이에 대한 답은 타이틀 곡 ‘LOVE, MONEY, FAME (feat. DJ Khaled)’의 제목으로 짐작할 수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세븐틴은 약 1,600만 장의 앨범을 판매하며 테일러 스위프트와 음반 기록 경쟁을 벌였다.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페스티벌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글래스톤베리, 롤라팔루자 베를린의 메인 스테이지에 올라 관객들의 환호와 ‘떼창’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LOVE, MONEY, FAME (feat. DJ Khaled)’은 세븐틴이 그들의 커리어를 통해 얻은 “사랑, 돈, 명예”에 대한 노래가 아니다. “너 없이 빛나는 Fame 나는 원하지 않아 / 너의 사랑 하나 그거면 돼”. 이 사랑의 대상은 이어지는 세 번째 트랙 ‘1 TO 13’에서 구체화된다. “When I first met you / 5월부터 내 모든 계절은 only you”. 세븐틴이 2015년 5월 26일에 데뷔했다는 사실을 알면 “you”가 세븐틴의 팬덤 캐럿(CARAT)임을, “열세 가지 나의 약속”이 열세 명인 세븐틴 멤버들의 마음임을 이해할 수 있다. 팝스타나 힙합 뮤지션이 아티스트로서의 멋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할 법한 키워드인 “사랑, 돈, 명예”는 세븐틴에게 그들의 순정을 증명하기 위한 밑바탕이 된다.
“사랑, 돈, 명예”를 성취하기까지, 세븐틴에게는 약 9년간 무대 위에서 끝없이 땀을 흘리며 뛰던 시간들이 있었다. ‘무한 아나스(무대를 끝내기 전 ‘아주 NICE’의 후렴구를 반복하며 관객과 호흡하는 세븐틴의 공연 문화)’가 대변하는 그들의 열정과 쾌활함은 팀의 시그니처가 됐다. 그러나 ‘Speak Up’은 그 뒤로 가려진 멤버들의 고민을 보여준다. 그들은 ‘THE REAL ME?’가 적힌 여러 장의 티셔츠 중 하나를 골라 입고 거리를 걷는 디에잇의 모습처럼 다양한 표현을 하는 직업인으로서 진정한 자아를 고민할 수도, 팀의 프로듀서인 우지가 창문에 적는 ‘HIGH EXPECTATION’처럼 성취만큼 높아지는 기대에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세븐틴의 개별적인 고민은 ‘HOW TO LOVE’가 적힌 버스에서 내린 정한이 청자에게 건네는 질문을 통해 보편성을 얻는다. “그래서, 너의 고민은 뭐야?(So I wonder, what is it that you want to spill out?)” 이 질문은 ‘SPILL THE FEELS’의 시작을 알리는 트랙 ‘Eyes on you’의 가사인 “Tell me more about yourself”와 연결된다. ‘Eyes on you’의 하우스 비트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간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알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춤을 출 때의 흥겨운 분위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프리코러스에서 점차 빨라지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비트와 달리 그 뒤로 이어지는 코러스 파트의 핵심 메시지인 “Eyes on you, Eyes on me”는 고음으로 치닫지 않는다. 대신 멤버들의 보컬은 기교 없이 담백하게 그들의 감정을 전하는 데에 집중한다. 아직 “널 쉴 틈 없이 알고 싶”은 낯선 단계일지라도, 상대방의 “첫 번째 상처”를 알고 싶어 하며 이 만남을 “기적”으로 정의하는 진심. 여전히 세븐틴은 ‘HOW TO LOVE’를, 어쩌면 그들을 아직 알지 못할 수도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을지를 고민한다.
스스로를 ‘MAESTRO’라 부르는 것이 단순한 콘셉트가 아닌 진정성을 가질 수 있는 팀. 지난 4월 세븐틴이 발매한 베스트 앨범 ‘17 IS RIGHT HERE’의 타이틀 곡 ‘MAESTRO’는 그 자체로 K-팝의 원천 기술을 집약한 결과물과도 같았다. “Beat부터 Melody까지 Mix and match가 특기니까”라는 가사 그대로 클래식, 힙합,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를 일관성 있게 꿰어내는 K-팝의 음악적 구성을 콘셉트로 삼았고, 고난도의 스텝 안무를 무려 13명의 ‘칼군무’로 소화하는 퍼포먼스는 세븐틴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반면 ‘LOVE, MONEY, FAME (feat. DJ Khaled)’의 보컬과 퍼포먼스에서 세븐틴은 그들이 그간 쌓아온 K-팝적인 강점을 내세우지 않는다. 일관되게 R&B/힙합 장르의 기조를 유지하는 음악은 어느 지점에서 특별히 고조되지 않고 리듬을 타기 좋은 이지 리스닝에 가깝고, 그에 맞춰 퍼포먼스 역시 여유를 표현하듯 리듬을 타며 분위기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빠르게 돌면서 앉았다 타이밍에 맞춰 일어나거나, 대형을 맞추기 위해 큰 보폭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것은 멤버들의 노력과 실력이 동시에 결합됐기에 가능하다. 곡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 할 수 있는 코러스 파트의 “But only want you baby baby baby / I only want you baby baby baby”에서 멤버들은 여유롭게 기본기에 가까운 동작들을 취하고,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춤보다 노래의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단순한 동작을 소화하는 이 구간을 제외하면, 세븐틴 멤버들은 퍼포먼스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곡의 빠른 리듬에 맞춰 다양한 동작을 취하거나 리드미컬한 동작들의 대부분을 팔 각도까지 맞춘 군무로 소화한다. ‘SPILL THE FEELS’의 모든 수록 곡들이 K-팝 특유의 다이내믹보다 각 장르에 충실한 것은 상징적이다. 그들의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 세븐틴은 화려한 실력을 과시하기보다 편안한 음악과 퍼포먼스로 각 곡의 메시지와 분위기를 살리는 방향을 선택했다. 요컨대 ‘SPILL THE FEELS’는 타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나 음악 시장의 트렌드로 인한 음악적 변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븐틴의 실력과 진정성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I FELT HELPLESS(나는 무력감을 느꼈다)’. 이번 앨범의 이름인 ‘SPILL THE FEELS’는 앞선 문장의 알파벳 순서를 바꾸어 쓴 애너그램에서 출발했다. 이 앨범의 앞선 세 곡이 어떤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순정을 담았다면, 세븐틴의 세 유닛이 선보이는 나머지 세 곡은 ‘I FELT HELPLESS’로 대변할 수 있는 세븐틴의 진솔한 내면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보컬 팀의 발라드 곡 ‘사탕’의 가사 “그대 맘을 다 가지고 싶다면 어린 맘인가요”라는 가사처럼, 10년 차 보이그룹으로 큰 사랑을 받을지라도 여전히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무대 위에서 아무리 ‘아주 NICE’를 무한대로 외칠 열정을 갖고 있다 해도, 어떤 날에는 퍼포먼스 팀의 곡 ‘Rain’의 가사처럼 “시끄러운 노래도 신나지 않는 밤”이 찾아올 수 있다. K-팝의 본고장이 아닌 지역에서 열리는 유명 페스티벌에서 수많은 팬들의 ‘떼창’을 들어도, 힙합 팀의 곡 ‘Water’의 가사처럼 “여전히 나는 목이 말라”라며 더 큰 성공을 갈망할 수도 있다. 다시 에스쿱스의 질문이었던 “WHERE ARE WE?”로 돌아가보자. 그들은 “사랑, 돈, 명예”를 이미 얻었다. 어쩌면 ‘I FELT HELPLESS’라는 문장을 그들이 말한다면 누군가는 공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븐틴은 유닛 곡으로 표현한 ‘I FELT HELPLESS’를 앞선 곡들을 통해 ‘SPILL THE FEELS’로 뒤집는다. 어떤 “사랑, 돈, 명예”를 가져도 “너의 사랑 하나 그거면” 된다는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아티스트로서 음악을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SPILL THE FEELS’하는 만큼, 이를 들어주는 이들에게 “Tell me more about yourself”라는 질문을 잊지 않겠다고. 아티스트가 팬들에게, 그리고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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