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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민
디자인MHTL
사진 출처빌리프랩

아일릿의 미니 2집 ‘I’LL LIKE YOU’의 시작을 알리는 브랜드 필름(Brand Film)에서 멤버들은 차례로 자신을 소개한다. 원희는 독수리가 되어 아무도 없는 구름 위에 올라서 자유를 느끼고 싶다 말하고, 모카는 느긋하게 자신의 페이스대로 살면서도 사랑받는 고양이가 부럽다고 고백한다.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연출을 배경으로, 한국어 또는 일본어 중 멤버들이 가장 편한 언어로 고백하는 각자의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그 나이대 소녀들이 할 법한 공상이기에 보편적이기도 하다. 특히 “보통 무척 조용”하면서도 “생각은 긍정적인 편”이고, “나의 적은 약한 부분”이라 “그런 나 자신에게 항상 이기고 싶다”는 멤버 이로하의 말은 요즘 10대 소녀의 전형을 가장 잘 보여준다. 팀의 막내이자 실제로 10대의 중심에 서 있는 그는, 겉으로는 그저 조용하고 수줍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고 진중한 내면을 지니고 있는 입체적인 면모를 갖췄다. 자아를 형성해 가는 10대 시기에는 여러 모습이 혼재하면서 외면과 내면 간의 간극이 큰 게 당연하다. 그 틈 속에서 소녀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자신만의 특별함을 선택해 나아가기에 의미가 있다. 이는 마침내 자주적이고 진취적인 의지(I Will)와 특별한 무언가를 의미하는 대명사(It)을 결합한 아일릿의 팀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앨범의 첫 트랙 ‘I’ll Like You’의 후렴구에서 아일릿은 “I’ll like you”를 반복하며 “너를 좋아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강조한다. 다만 이를 전하는 메인 멜로디는 상대적으로 단조로워, 풍부하고 다층적인 배경 사운드와 대비를 이룬다. 마치 겉으로는 담담하게 보이지만 이는 어쩌면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속마음을 애써 감추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 내면이 혼란스러워도 겉으로는 담담해 보이도록 노력하는 것. 이는 요즘 10대 소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이기도 하다. 사회적 기대와 자기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담담하게 행동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내 감정을 “저질러” 보겠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엄청난 선언이 된다.

“Not even god can stop me(신조차 나를 막을 수 없어)”. 타이틀 곡 ‘Cherish (My Love)’를 시작하는 내레이션은 전지전능한 신과 ‘나’를 대비시킨다. 이것은 그만큼 아일릿이 ‘나’에게 집중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너무 소중한 내 마음”이니까, “네 맘 대신” 나의 “설렘이 훨씬 더 내겐 소중”하며, 퍼포먼스에서도 민주와 윤아가 중심에서 춤을 추면 다른 멤버들이 그 배경이 되어주는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후렴에서 ‘나’는 “설렘”을 위해 상대에게 “협조해줘”라고 당부하면서 무엇보다 ‘나’를 우선시하는 더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의 반영일 수 있다. 상대를 대할 때 “웃기면 웃을까? 어떨까? 이상하게 볼까?” 내심 걱정하기도 한다. 결국에는 곡의 말미에서 페이드 아웃되는 효과음과 함께 사랑을 전하는 상상에서 다시 내면 속에 마음을 숨긴다. 마침내 ‘Cherish (My Love)’는 상대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는지, 다시금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노래로 완성된다. 

‘Cherish (My Love)’의 안무는 곳곳에서 마법 소녀의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후렴 구간의 동작은 다 같이 한 몸이 된 듯 동시에 턴을 돌며 손과 머리를 경쾌하게 흔들고, 엄지와 새끼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드는, 일명 ‘마그네틱 하트’에 이어 L자 손동작을 이마에 대는 동작까지, 마치 마법 소녀의 변신 과정을 연상시킨다. 상체와 손동작을 위주로 많은 안무를 역동적으로 소화하는 건 진지해서 되려 귀여워 보이는 마법 소녀의 모습이기도 하다. 곡 마지막에서 나의 마음을 “네게 건네줄 거야”라고 말하지만, 동시에 페이드 아웃되는 효과음은 마법 소녀가 다시 비밀을 간직한 채 현실로 돌아오는 모습이기도 하다. 마법 소녀는 현실과 초현실적인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세계를 잇는 존재이자, 그만큼 필연적으로 복잡한 내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변신 전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특별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이중성은 특별한 정체를 감추면서도 평범한 소녀로서 현실의 문제를 맞이해야 하는 고난을 부여한다. 복잡한 내면을 품은 채 ‘사랑’을 통해 외부 세계와 관계 맺음에 애쓰는 아일릿의 앨범 속 정서는 새로운 마법 소녀의 이야기이자 그를 통해 대변되는 새로운 10대 여성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I’LL LIKE YOU’ 앨범 전체에서 아일릿은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엉뚱한 감정 표현들은 오히려 복잡한 속내와의 대비에 집중하게 만든다. 어느 날은 ‘너’를 좋아하는 게 “어느 날 갑자기 돋아난 Pimple(뾰루지)”처럼 신경 쓰이고, 가끔은 “내 마음을 공격”하고 “자꾸 나를 괴롭”히는 감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 눈에만 보이는” 너의 모습을 “새로 발견”하면 “햇살(sunshine)”같이 맑은 기쁨을 느끼는 것처럼 사랑은 복잡하다. ‘아는 사람이면 다 안다’라는 의미의 신조어 ‘IYKYK(If You Know You Know)’의 뜻처럼, 이 감정은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내’가 타인을 좋아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 또래들은 알고 있는 무엇일 것이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Tick-Tack’에서 아일릿은 “저 멀리 네가 보”이자 “비상사태”가 되어 똑딱똑딱(Tick-Tack) 초침 소리 같은 긴박한 스캣(Scat) 사운드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숨기고 싶은 모습이 마구 섞인 “시끄러운 옷장” 같은 내면에서 상대가 “어떤 version 날 좋아할”지 몰라 당황한다. 그렇게 복잡한 마음을 꺼내 보이기 쉽지 않은 세상에서, 아일릿이 사랑하는 법은 다음과 같다. “기대해도 될 거야 이제 시작일 뿐이야 새로운 날 만나줘”라는 마지막 가사처럼 “아일릿은 아일릿의 길로” 상대를 향해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내면 세계로 상대를 초대하는 것.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랑의 방식 대신 ‘나’의 사랑이 향하는 방향. 아일릿의 세계를 마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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