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일상 속에서 엔진을 떠올리는 것. 이제 정원에게는 당연한 습관이다.
요즘 위버스에 추워졌다는 글을 자주 남기더라고요. 정원 씨가 자주 입는 주황 카키 목도리나 주황 후드티 같은 ‘애착템’을 꺼낼 때네요(인터뷰는 10월 24일 진행).
정원: 맞아요. 오늘도 추워서 글을 남겼어요.(웃음) 그래도 일할 때는 추운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그 옷들은 지금 언제 꺼낼지 계속 눈치 싸움하고 있습니다.(웃음)
위버스 라이브에서 산책이 효율적이지 않은 것 같아서 러닝을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그러기에는 날씨가 춥긴 하네요.
정원: 다들 비는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물론 저도 작업을 할 때가 있지만, 더 효율적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쉬는 시간에 생각 없이 걷기만 하면 체력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데 뛰는 것도 생각보다 마음을 굳게 먹고 해야 하더라고요. 컴백하기 전에 한 번 뛰어보려고요.(웃음)
최근에 ‘WALK THE LINE’ 월드 투어를 시작했고, 이번 앨범 컴백 준비도 병행하느라 많이 바쁠 텐데요.
정원: 사실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진 않아요. 저희를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적어도 실망해서 돌아가시지는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제일 커요. 그리고 저희는 공연을 많이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날이 저희를 보는 첫날일 수도 있고요. 그 생각을 하면 힘이 안 풀어지더라고요. 그렇게 ‘에잇!’ 하면서 하다 보면 하나씩 섹션이 끝나 있어요.(웃음)
‘Future Perfect (Pass the MIC)’ 무대에서도 본 무대 단상에서 시작해서 돌출부까지 동선을 이어가면서 무대 위를 많이 뛰어다녔어요.
정원: 맞아요. 마지막에는 계단도 올라가야 했죠. 안무는 확 외워버리면 되는데 동선은 계속 생각하면서 돌아다녀야 해서 좀 헷갈려요.(웃음) 게다가 둘째 날에는 비가 왔는데 예상치 못하게 바닥에 습기가 차면서 무대가 미끄러웠어요. 춤추고 뛰어다녀야 하는데 돌발 상황이 생겨서 당황스러웠죠.
정말요? 전혀 몰랐어요. 그만큼 공연 내내 한순간도 몸을 아끼지 않나봐요.
정원: 사실 저는 엔진분들께 얼마나 보여드려야 만족하실지 잘 몰라서, 가능한 더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항상 커요. 특히 이번에는 무대 높이가 낮은 편이라 유독 엔진들이 잘 보여서 힘을 많이 얻었어요. 그날 되게 추웠는데도 불구하고 ‘Highway 1009’ 무대를 할 때 엔진들이 정말 행복하게 웃고 있더라고요. 그때 울컥했어요. 공연을 하면서 그런 모습을 보는 게 활동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기해요. 저는 제 할 일을 하는 건데, 그걸 보면서 누군가가 진심으로 행복해한다는 게 되게 감사하죠.
공연을 보면서 여러 인상적인 무대들이 있었는데, 특히 ‘Future Perfect (Pass the MIC)’에서 강렬하게 도입부를 여는 정원 씨의 모습이 기억에 남았어요.
정원: 지난 ‘FATE PLUS’ 투어를 돌 때, 다음 콘서트에서 ‘Future Perfect (Pass the MIC)’를 하게 된다면 꼭 핸드 마이크를 쓰고 싶다고 의견을 드렸어요. 핸드 마이크를 쓰면 제스처나 표현을 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서 좋거든요. 그리고 이번 ‘WALK THE LINE’ 투어는 이전과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로 준비하면서 ‘Future Perfect (Pass the MIC)’를 세트리스트 중에 포인트 곡으로 꼽았어요. 지금도 콘서트 디렉터님이랑 이 무대는 잘한 것 같다고 서로 자화자찬해요.(웃음)
무대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정원: 공연할 때가 제일 재밌어요.(웃음) 어쨌든 저희는 무대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니까. 2019년에 방탄소년단 선배님들의 ‘LOVE YOURSELF: SPEAK YOURSELF THE FINAL’ 공연을 본 적이 있어요. ‘언제 데뷔해서 이런 무대에 서볼까?’ 싶었고 그런 공연을 하는 게 소원이었어요. 어느새 여러 엔진분들을 눈앞에서 보면서 공연에 설 수 있어 기쁘고 신기했죠. 그리고 SNS에서 엔진분들이 ‘FATE’의 마지막 공연에서 저희의 모습을 담아주신 영상들을 봤는데, 그걸 보면서 ‘많이 성장했구나.’, ‘우리 멤버들 너무 멋있다.’ 싶었어요.
이번 앨범 ‘ROMANCE : UNTOLD -daydream-’을 통해서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록 곡 ‘Daydream’으로 어반 힙합 장르를 처음 선보이고 노래의 대부분이 위스퍼 랩이에요.
정원: 맞아요. 정말 힙합이에요. 사실 여러 선택지가 있었는데, ‘Daydream’을 하면 확실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선택했어요. 저희가 힙합을 많이 안 보여드리기도 했으니 이번에는 잘해오던 것보다 새로운 걸 해보자고 멤버들과 의견을 모았어요. 노래는 그냥 음을 내면 되는데, 위스퍼 랩은 속삭이기만 해야 되는 게 생각보다 많이 어렵더라고요.(웃음) 2절에 노래를 부르는 파트도 있어서 그 부분도 열심히 녹음했어요.
타이틀 곡 ‘No Doubt’의 퍼포먼스도 인상적이었어요. 스텝이 많은데 유연하게 춤을 이어가는 완급 조절이 필요해서 느낌을 내기 어렵지 않았나요?
정원: ‘No Doubt’ 춤이 별로 안 힘들어 보일 수 있는데 은근 힘들더라고요. 저한테는 사실 ‘Teeth’보다 힘들어요. ‘Teeth’는 역동적이라 힘들어 보일 수 있는데 오히려 춤출 때는 별로 안 힘들고, ‘No Doubt’은 프레임 단위로 계속 동작이 바뀌는데 안무 디테일을 잡아야 해서 연습할 때 힘들었어요. 매번 생각하면서 춤을 출 수는 없어서 반복 연습으로 안무를 몸에 익히면서 완성했어요.
특히 바지 뒷주머니를 활용하는 안무가 포인트이기도 해요.
정원: 사실 뒷주머니에 손을 한 방에 싹 넣어야 하는데 못 넣을 때도 많았어요.(웃음) 그리고 각 잡힌 안무가 아니고 느낌 내는 게 중요한 부분이라서 다 같이 합을 맞추는 데 오래 걸렸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저희끼리 얘기했던 게 ‘뒷주머니에 보통 마이크 팩이 있는데 그럼 손을 어떻게 넣지?’였어요. 그래서 주머니를 하나 더 달아주신다는 걸 확인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처음에 안무 시안을 봤을 때, 이 안무 느낌이 되게 좋아서 저도 그 느낌을 잘 살리려고 노력했어요. 이 안무가 진짜 ‘킥!’이거든요.(웃음)
‘킥’이요?(웃음) ‘흑백요리사’ 보셨나요?
정원: 네, ‘흑백요리사’는 쇼츠로만 봤는데 알고리즘에 많이 떠서 거의 다 본 것 같아요. 쉴 때는 숏폼을 보거나 위버스 하면서 침대에 누워 있거든요. 사실 일어나는 걸 귀찮아해서 거실로도 잘 안 나와요. 그래서 이번에 킹 사이즈 베드로 바꿀까 고민 중이에요.
‘EN-DRAMA’에서 정원씨 연기가 정말 자연스러웠는데, 숏폼 영상들을 참고하기도 해서 그런 걸까요?
정원: 아이고야, ‘EN-DRAMA’를 보셨구나.(웃음) 예전에 ‘UNTOLD Concept Cinema’를 찍을 때 잠깐 연기 레슨을 받은 적이 있는데, 선생님께서 “본인이 평소에 말하는 것처럼 하는 게 제일 자연스럽다.”고 하셨거든요. 그래서 누구를 따라 하진 않고 그냥 저처럼 했어요. 엔진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생각하면서 재밌게 찍었어요. 엔진들이 재밌는 콘텐츠로 소비했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해요.
정원 씨는 어떤 걸 하든지 무조건 엔진을 먼저 생각하더라고요. ‘UNSEEN’ 전시회에 방문했을 때, 팬분들을 위해 마이크 키 링을 선물로 준비해두기도 하셨잖아요.
정원: 그건 엔진들이 재미있으라고 한 거예요. 이벤트, 재밌잖아요. 그런 경험 있지 않으세요? 일상에서 뭘 할 때 누군가 떠오르는 거요. 사람이든 물체든, 누구에게나 일상에 녹아 있는 대상이 분명히 있잖아요. 저도 똑같아요. 저는 엔진밖에 없으니까 엔진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해요.
이번 타이틀 곡 ‘No Doubt’이 상대의 부재를 통해 오히려 더 큰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기도 하잖아요.
정원: 예전에 코로나19 때문에 일주일 넘게 멤버들이랑 떨어져 있다가 오랜만에 만났는데, 너무 반가워서 앉은 자리에서 3~4시간 동안 얘기한 적이 있거든요.(웃음) 확실히 떨어져 있으면 더 애틋해지더라고요. 근데 사실 엔진과는 애초부터 그런 관계잖아요. 멤버들처럼 계속 같이 지내는 건 아니니까 떨어져 있는 시간이 더 길기도 하죠. 그래서 제가 엔진분들을 보고 싶어 하는 것보다 엔진들이 저희를 보고 싶어 하는 게 더 클 거라고 생각해요. 한 번 보고 나면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커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맥락에서 엔진들이 저희를 기다리며 느끼는 애틋한 감정으로 이 노래를 이해하려고 했어요.
반면 엔진이 부재하는 상황이라면 정원 씨는 얼마나 엔진을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원: 엔하이픈 정원으로서요? 아니면 그냥 양정원으로서요?
둘 다 궁금해요.
정원: 엔하이픈 정원으로서는 엔진을 계속 기다릴 거예요. 다시 만날 때까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기다리겠죠. 팬데믹 동안 눈앞에 관객이 없어도 무대를 열심히 했던 것처럼요.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테니까 뭐라도 하면서 기다리고 있어야죠. 음, 그냥 양정원이라면요. 그래도 저는 계속 기다리지 않을까요? 저한테 다른 선택지는 없으니까요. 엔진밖에 없잖아요 저는.
콘서트 엔딩 멘트에서 “엔하이픈은 좋아해야 될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되는 아이돌이라 좋다.”라는 엔진분의 말을 언급하기도 했어요.
정원: 상대가 굳이 무언가를 안 해도 그냥 좋고 같이 있으면 편한 정도의 애정이 있으려면 가족이나 오래된 연인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엔진이 그렇게 말해주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게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안주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 같아요. 엔진이 저한테 실망하지 않도록 긍정적인 의미로 선을 지키려고 하는 거죠. 가수와 팬으로서 좋은 상호작용을 위해 제가 분명히 지켜야 하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EN-O’ CLOCK’ 우정&EN&캠프에서 “평균적으로 어린 나이에 데뷔한 것 같다.”고 말한 만큼 상대적으로 일찍 데뷔한 편이잖아요. 아티스트로서의 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온 것 같아요.
정원: 데뷔를 일찍한 건 확실히 장점 같아요. 철이 덜 든 상태로 일을 시작했다고 생각해서 그건 스스로 아쉽지만, 그만큼 많은 경험을 해서요. 아이돌은 정답이나 공식이 있다기보다 경험하면서 배우는 게 진짜 많아요.
많은 경험을 터득하면서 팀의 리더로서 태도나 생각이 달라진 것 같다고 느끼는 부분도 있어요?
정원: 최근에 리더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봤어요. 옛날에는 ‘내가 리더니까 내 의견대로 하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컸는데 요즘에는 누군가 더 좋은 의견을 내는 사람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의 역할을 믿어주게 됐어요. 내가 해야 되는 게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기준을 다시 세웠어요.
기준을 다시 고민한 이유가 있을까요?
정원: 영향력이 있는 선배님들을 보면서 꿈을 키워왔고, 예전부터 제가 그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성장하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제가 하는 안 좋은 판단에 대한 영향도 커지잖아요. 그래서 스스로 중간점을 맞춰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멤버들도 회사분들도 팀에 대해 항상 여러 의견을 내잖아요. 리더로서 멤버들이랑 다 같이 이야기를 해야 하면서 우리에게 뭐가 더 좋을지 판단해야 하고, 아쉬운 방향으로 흘러갔을 때는 다시 더 좋은 흐름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건 항상 어려워서 연차가 쌓인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요.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그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신뢰를 얼마나 쌓는지가 중요하다고 느껴요.
그 과정들을 통해 도달하고 싶은 정원 씨의 최종 목표가 뭐예요?
정원: 모두가 인정하는, 엔하이픈이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런 위치에 가고 싶어요. 예전에는 좋은 상을 받는 게 목표였는데 지금은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아요. 상을 받더라도 그에 걸맞은 인정을 받고 싶어요. 스스로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생각해서, 더 나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처음에 이 일을 선택한 이유도 그랬어요. 운동선수를 할 때는 많이 투자해도 기량이 조금씩만 올라온다고 느꼈는데, 연습생 때는 연습한 만큼 기량이 쭉쭉 느는 게 너무 재밌어서 시작했거든요. 이제는 조금 다르죠. 그동안 해온 게 어느 정도 쌓여서 그런지, 제가 똑같은 시간을 연습해도 예전만큼 기량이 확 늘지는 않더라고요. 그래도 계속 시간을 투자하면서 가끔은 실패하더라도 많은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 노력한다는 게 분명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정원: 이 일이 저한테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안 맞는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래도 확연히 다른 결과나 높은 목표를 바란다면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니까요.
데뷔 후에 만든 좌우명이 ‘하면 된다!’라고 했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정원: 네, 하면 되죠. 그건 변함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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