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훈은 도화지 같은 사람이었다. 흰 여백 위에 모든 색들을 포용할 수 있는. 그리고 그는 데뷔 이후 자신에게 입혀지는 색깔들이, 자신이 그려나가는 그림이 “마음에 든다.”고 몇 번이나 곱씹었다.

요즘 드러그스토어에 가면 성훈 씨가 정말 많이 보여요.(웃음) 여러 뷰티 브랜드의 모델, 앰배서더로 활동하고 계시잖아요.
성훈: 엔진분들이나 주변에서 드러그스토어에 가면 제 사진이 정말 많다고 해서 신기해요. 성수동에 가면 제 사진이 엄청 크게 걸려 있기도 하고요. 연예인 하는 게 새삼 실감 나요.(웃음) 사실 브랜드의 모델, 앰배서더가 되는 게 쉽지 않은데 엔진 덕분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죠. 제게 주어진 기회니까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죠. 자기관리도 꾸준히 열심히 하고, 항상 ‘꾸꾸꾸(꾸미고 꾸미고 꾸민)’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니까요.
성훈: 기본적인 청결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항상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려 해요. 피부 관리도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근데 요즘은 너무 ‘꾸꾸꾸’보다는 조금 자연스럽고 캐주얼한 스타일도 많이 보여주려고 해요. 저를 볼 때 너무 빈틈없어 보이는 것보다 편안한 모습도 있었으면 해서요. 물론 빈틈없어 보이지는 않을 테지만요.(웃음)

‘추구미’가 약간 빈티지하고 힙한 스타일로 바뀐 것 같더라고요.
성훈: 맞아요. 근데 요즘은 빈티지에서 조금 더 힙한 느낌이 된 것 같아요. 평소에 안 입던 패턴 많은 옷, 힙한 옷들도 많이 샀어요. 최근에 밀리터리 카고 팬츠를 많이 입는데, 요즘 다들 그렇게 입으시니까 저도 한 번 입어봤거든요.(웃음) 와일드한 느낌이 살아서 좋은 것 같아요.

안경이나 선글라스에도 관심이 많아 보여요.
성훈: 안경을 한 번씩 쓰고 나올 때, 엔진분들이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시간이 있으면 직접 빈티지 숍에 찾아가 사기도 하는데, 한 20개 정도 가지고 있어요. 분위기를 더해줄 수 있는 아이템이라서 많이 찾게 돼요. ‘뿔테’는 똑똑해 보이면서, 약간 ‘너드’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것 같고, ‘은테’나 ‘무테’는 좀 더 섹시한 느낌? 그리고 선글라스는 그냥 멋!(웃음)

성훈 씨는 자기관리뿐만 아니라 무대에서도 항상 완벽함을 추구해요. 사실 완벽주의자가 완벽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 완벽한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스스로 완벽하게 해냈다고 느낀 순간이 있을까요?
성훈: 사실 무언가를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방금 말씀하신 게 정말 맞는 것 같은 게, 항상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완벽에 다가가려 할 뿐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완벽’을 말하기엔 아직 좀 멀지 않았나 싶어요.

완벽을 추구하지만 집착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위버스콘 페스티벌’ 무대에서 작은 리프트 사고가 있었는데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죠. 뭐 지나갔는데.”라고 한 것처럼요.
성훈: 사실… 지나간 일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하는 편은 아니에요.(웃음) 그래서 더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지나간 거니까, 어쩔 수 없다.’라고 주문을 걸듯이. 그리고 위버스콘 페스티벌 ‘그녀는 예뻤다’ 무대처럼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그 상황을 돌파하는 것도 재밌다고 느껴요.

이번 컴백 앨범 ‘ROMANCE : UNTOLD -daydream-’에서 ‘이것’만큼은 특히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노력했고, 자신 있는 지점이 있다면요?
성훈: 저는 춤이요. 타이틀 곡 ‘No doubt’ 훅에서 뒷주머니에 손을 넣는 안무가 킬링 포인트라고 생각하는데, 손이 주머니 안에 있으니까 몸 쓰는 데 제약이 있더라고요. 또 계속 뒤돌아 있는 파트이다 보니까 얼굴이 잘 안 보여요. 앞을 보는 짧은 순간에 어떻게 하면 엔진 분들과 대중분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좀 치명적이면서 최대한 잘생긴 각도를 찾아서?(웃음)

수록곡 ‘Daydream’은 곡 처음부터 끝까지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이어져요. 호흡을 정말 많이 섞어서 불러야 했을 것 같은데요.
성훈: 저도 이런 스타일 노래는 처음이었어요. 힙합이니까 좀 세게 발음해야 하는데, 동시에 속삭이듯 해야 해서 목소리를 크게 못 내니까 좀 답답하고 어렵기도 했어요. 음이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 힙합 리듬을 타면서 그루브를 잘 살리려고 노력했고요. 힙합 장르에 자신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결과물을 들으니 마음에 들더라고요.

자신만의 보컬 스타일을 찾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한다고 들었어요.
성훈: 제 보컬의 매력은 좀 깨끗한 느낌이 든다는 거예요. 특히 가성에서 깨끗한 음색이 잘 사는 것 같은데, 타이틀 곡 ‘No doubt’에서 그런 파트를 딱 맡게 됐거든요. 사실 그렇게 높은 음을 부르는 제 목소리를 별로 안 좋아했는데, 이번에 그 파트랑 제 목소리가 잘 어울리는 듯해서 좋았어요.

타이틀 곡 ‘No doubt’, 수록 곡 ‘Daydream’ 모두 연인의 부재로 인해 더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팬과 아티스트의 관계도 서로 사랑하지만, 떨어져 있는 시간과 서로가 모르는 서로의 시간이 많다는 게 비슷해요.
성훈: 저도 엔진과 엔하이픈의 관계에 충분히 대입할 수 있는 곡들이라고 생각해요. 연인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연습하면서 생각한 건 엔진이거든요. 엔진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웃음)

성훈 씨가 엔진을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은 언제예요?
성훈: 모든 순간이 엔진이 필요한 순간들인데, 가장 큰 건 무대 할 때에요. 엔진만 있는 무대를 할 때는 정제된 모습이 아니라 정말 저의 모든 걸 보여주게 돼요. 조금 망가진 모습들도 보여줄 수 있고, 멘트할 때도 훨씬 더 편하게 친구한테 얘기하듯이 하게 되고요. 엔진이 저를 보고 힘을 받는 것 이상으로 저도 항상 엔진을 보면서 힘을 받고 있어요. 둘 중에 누구 하나라도 없어지면 모든 게 무너지는 거죠. 엔진과 엔하이픈은 너무 소중한 관계고, 서로가 있기에 가능한 일들이 많아요.

정규 2집에 수록된 팬 송 ‘Highway 1009’의 작사를 할 때는 어떤 생각을 담으려 했나요?
성훈: 엔진과 끝없는 도로를 달리면서 여행을 가는 생각으로 가사를 썼어요. 솔직한 마음이라 그런지 술술 잘 써졌어요. “더 꽉 안아줘 날”이라는 가사가 제가 쓴 부분인데, 이 앞뒤에 더 쓴 게 있었어요. 제가 쓴 버전은 이거예요. “운명 아래 널 다시 마주친 나 / 더 꽉 안아줘 날 /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뗄 수 없도록” 그래도 나름 잘 쓴 것 같아서 엔진분들한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는데, 지금 보니까 또 잘 모르겠네요.(웃음)

최근 위버스 라이브를 보면 엔진과 더욱 친밀해진 게 느껴져요. ‘에스콰이어’ 인터뷰에서 “일 말고 하는 게 없어 심심해서 라이브를 켠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팬들과 소통하는 건 ‘일’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걸까요?
성훈: 일이라고 느껴질 때는 정말 없어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다 자발적으로 하는 거잖아요. 위버스 라이브를 켜면 엔진의 이야기를 듣고, 저의 생각들을 전하는 것 외에는 복잡한 생각이 안 들어서 좋아요. 그렇지만 전 세계에 있는 정말 많은 분이 보고 계시니까, 누구 한 명에게라도 상처되는 말들을 하지 않기 위해 신경 쓰는 건 있어요.

라이브에서도 그렇고 엔진들은 성훈 씨가 은근히 웃긴 사람들이라고 말해요. 조금은 엉뚱한 틱톡을 많이 찍기도 하고요.(웃음)
성훈: 저의 틱톡 추구미는 그냥 좀 ‘킹 받는’ 거예요.(웃음) 너무 뻔한 건 안 하고 싶다는 마음. 제가 보기에도 좀 재밌고, 웃긴 걸 해야 엔진들도 더 재밌어 하더라고요. ‘02즈’ 틱톡의 경우도 제가 틱톡을 보다가 괜찮은 게 있으면 멤버들한테 먼저 제안하는 편이에요. 멤버들도 빼는 일 없이 다 참여해줘요. ‘진격의 방탄’ 틱톡 영상도 제가 의견을 낸 건데, 구도랑 카메라 빠지는 타이밍 같은 게 머릿속에 딱 떠올랐어요.(웃음) 개그 욕심은 잘 모르겠는데… 멤버들하고 있을 때만 그런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우리 꽃길만 걷자”, “넌 특별해” 등 성훈 씨가 서예로 써서 올려주는 글귀들도 팬들을 웃게 하는 포인트예요.
성훈: 팬분들이 조금이라도 웃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써보게 됐는데, 정말 생각처럼 돼서 가끔 쓰고 있어요. 그런 글귀를 보면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되잖아요. 누구한테는 재밌을 수 있고, 누구한테는 정말 힘이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이제 ‘서예’가 저에게 하나의 캐릭터가 된 것 같기도 해요. ‘EN-DRAMA’에서도 ‘서예부’로 나왔듯 이런 콘셉트와 관련된 콘텐츠도 찍기도 하고요.

‘FATE PLUS’ 서울 공연에서 엔딩 멘트를 하며 “엔진은 저를 유일하게 울게 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어요. 감정 표현에 서툴다던 성훈 씨가 우는 모습을 보여줄 만큼 엔진과 가까워졌나 봐요.
성훈: 엔진분들에게는 숨기지 않고 솔직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우리가 마음을 열고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정말 잘 안 우는 사람이다 보니 멤버들도 처음에 진짜 우는 줄 몰랐다고, 장난치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멤버들이 무대 위해서 걱정해주는 게 많이 느껴졌어요. 함께한 지 오래돼서 말하지 않아도 서로 어떤 마음인지 잘 아는 것 같아요.

어떤 마음에 눈물이 난 걸까요?
성훈: 저는 한 번에 우는 스타일이에요. 그날은 정말 오랜만에 울었던 거거든요. 평소에 활동하면서 조금 힘들었던 순간들이 있잖아요. 사소한 것들이 조금씩 뭉쳐지고 있었고 그게 한 번에 확 몰려왔나 봐요. 엔딩 멘트를 하는데 ‘그래도 내가 여기까지 왔다.’ 하는 마음이 들면서 울컥했어요. 울고 나서는 후련했어요. 우는 영상을 너무 많은 분들이 보셔서 좀 민망하긴 하지만요.(웃음)

엔딩 멘트를 할 때 “저는 아직 저를 잘 모르는 것 같아요.”라고 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성훈: 누구나 스스로를 제 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어렵잖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활동하면서 ‘나’를 알아가고 있어요. 제 성격이나 감정의 변화가 계속 있을 거잖아요. 엔진은 그런 저를 항상 지켜봐주고, 그걸 제게 말해주니까요. 엔진은 내가 누군지 알게 해줘요.

지금의 성훈 씨가 느끼는 ‘박성훈’은 어떤 사람이에요?
성훈: 옛날에는 자신감 없고 되게 조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걸 깨고 싶었거든요. 요즘에는 자신감도 많이 생겼고, 그러려고 노력도 하고 있어요. 지금의 저는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고, 복잡한 걸 싫어하지만 사실 뭔가를 복잡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웃음)

복잡하게 하고 있다는 건, 성훈 씨가 꼼수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 같아요.
성훈: 맞아요. 꼼수 부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항상 솔직하게, 정석대로 하는 것 같고. 그런 제 모습이 마음에 들어요.

햇수로 데뷔 5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성훈 씨는 ‘I-LAND’ 경연부터 지금까지의 긴 시간 동안 유독 기복 없는 무대, 컨디션을 보여준 것 같아요.
성훈: 운동하면서 저도 모르게 몸에 배었나 봐요. 기복이 있으면 선수 생활을 오래 못하니까요. 근데 힘들 때 조금은 밖으로 표현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잘 그러지 못한다고 느껴서 요즘에는 표현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콘서트 때 보인 눈물도 그 표현 중 하나겠네요.
성훈: 그렇죠. 참으면 참을 수 있었을 것 같긴 한데… 아니다, 그 눈물은 내가 못 참았을 것 같기도.(웃음)

성훈 씨가 흰 도화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데뷔 초반보다 점점 다채로운 색들이 입혀지는 게 눈에 보여요. 팬들에게 더 친근하고 다정해진 것, 감정 표현이 늘어난 것, 부드러운 춤을 추던 사람이 이제 아이돌로서 강한 춤도 소화할 수 있게 된 것.
성훈: 너무 마음에 들어요. 흰 도화지 같은 사람이니까 그만큼 계속 성장을 할 수 있고, 다른 모습들을 계속 보여줄 수 있는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계속 새로운 색깔을 채우고, 이미지를 계속 쌓아가다가 중간에 실수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근데 실수를 지우지 않고, 실수한 대로 또 다르게 제 그림을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스스로에게 많이 엄격했고 항상 “내가 못해서.”라고 저에게서만 문제점을 찾았어요. 지금은 더 관대해지려 하고, 상황을 넓게 보려고 해요. 

완벽주의자는 맞지만 스스로를 긍정하네요.
성훈: 어떤 점은 변화하고 나아져야겠지만 또 원래의 저를 잃지 않고 보여주고 싶기도 해요.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구처럼 되고 싶다기보다 지금처럼 계속해서 저만의 색깔들을 더해가면서,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이상적인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일단 사람 자체가 더 멋있어져야겠고.(웃음) 아티스트로서 보여줄 수 있는 춤, 노래가 더 실력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음도 더 단단해져야겠고요. 뭐 크게 달라져야 한다기보다, 그냥 지금의 제 모습에서 한 단계, 두 단계 계속 올라가다 보면 되지 않을까.

Credit
이희원
인터뷰이희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김민경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윤해인
비주얼 크리에이티브팀이건희, 민지민, 차민수, 예지수(빌리프랩)
사진곽기곤
영상조윤미, 서유정
헤어전훈, 안치현
메이크업오가영
스타일리스트김진석
세트 디자인황서인
아티스트 매니지먼트팀박성진, 이신동, 홍유키, 김한길, 강병욱, 우용희, 홍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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