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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사진 출처voque ting

지난 9월 27일 도쿄 가든 시어터에서 열린, 노다 요지로로서의 첫 라이브는 예상했음에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는 그런 순간의 연속이었다. DJ 세트를 동반해 비트를 깔고 자신의 목소리를 연주하는 듯한 퍼포먼스. 음악을 효과적으로 이미지화한 영상과 댄서들. 여기에 이리(iri)와 에이위치(Awich), 카즈마(kZm)라는 일본 R&B와 힙합의 현재를 상징하는 게스트까지. 원래부터 블랙뮤직을 비롯한 여러 음악에 관심이 있던 그였다 할지라도, 감춰져 있던 에고를 이렇게 본격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에 대해 코어 팬들조차도 짐짓 놀라는 눈치였다. 이처럼 이날의 공연은, 겉으로 보여지는 ‘뮤지션’의 삶에서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자신’을 분리해 새로운 영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실체화한 시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0년 넘게 래드윔프스로서 활동해온 반경을 아득히 넘어서는 솔로작 ‘WONDER BOY’S AKUMU CLUB’은, 그런 의외성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반드시 나올 작품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요 몇 년간 그의 음악 세계는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밴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과의 시너지를 통해 월드 투어가 가능한 레벨로 성장했고, 영상 작품의 OST 작업 요청이 연달아 이어졌다. 그의 또 다른 자아 일리언은 근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천천히 래드윔프스와 융합하며 대부분의 음악적 유산을 팀으로 이전했다.
그렇게 바깥으로 발산하는 수많은 창작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내면으로 수렴하는 ‘자신만의 음악과 메시지’에 대한 갈망이 생겼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앨범의 가장 큰 의의는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그에게 있어 흔치 않은 ‘개인적인 감각’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홀로서기의 시작점이었던 일리언은 애초에 동일본 대지진을 탄생의 배경으로 두고 있다. 상실감과 외로움, 슬픔 등의 감정을 일렉트로니카와 인디 팝 등에 기댄 실험적인 스타일로 담아냈다. 그 소리에서 파생되는 감정은 오로지 개인의 것일 수 없었다. 자신을 보듬기 위함이었지만, 결국 모두를 위로하는 소리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셈이다. 노다 요지로라는 뮤지션은 이 지점에서 명확히 구분된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과 취향을 기반으로 그라는 사람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언제나 ‘아티스트’의 자아로 살아온 그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소재로 삼은 것 자체가 새로운 시도이자 도전이라 할 만하다.

시작은 내면적인 동기에서 비롯되었겠지만, 작업에 추진력을 붙여준 존재가 있다. 바로 포르투갈 출신의 프로듀서이자 비트메이커인 홀리(HOLLY)다.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보낸 비트가 노다 요지로에게 영감을 주었고, 여기에 평소 흥미가 있던 여러 음악 장르를 녹여내며 골격을 갖춰 나갔던 것. 전혀 안면이 없던 이들이 SNS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고 결과물을 구체화해 나간 일련의 과정은 음악 제작 환경의 변화를 재차 직감하게 한다. 그렇게 재미로 시작된 실험은 차곡차곡 쌓여 갔고, 자신의 음악적 취향을 활용했듯 메시지 또한 자연스레 인간 노다 요지로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갔다.

앞서 언급한 내용으로 눈치챘겠지만,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13개의 트랙은 모두 록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초중반까지는 리얼 세션을 최소화하고 비트 중심의 건조하면서도 자극적인 사운드를 추구하고 있어 힙합 앨범에 가까운 무드를 자아낸다. 특히 초반의 두 트랙이 조타수를 정확히 잡고 있다 언급할 만하다. 하이퍼팝에 대한 관심을 한 곡에 응축한 ‘PAIN KILLER’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법론을
채택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808 베이스의 공간감이 도드라지는 ‘STRESS ME’는 음절 단위로 끊어서 구축한 플로우로 래퍼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래드윔프스 시절부터 이미 ‘G行為’나 ‘PAPARAZZI ~*この物語はフィクションです~’ 등의 트랙을 통해 꾸준히 랩을 선보여왔던 그다. 장르라는 틀을 가볍게 넘어다니는 모습에서 이 언어 장인의 진면목이 다시금 드러난다.

가스펠 코러스와 브레이크비트를 조합해 조금이나마 온기를 불어넣는 ‘HOLY DAY HOLY’, 바닥에 디스토션 기타를 깔고 칩튠 스타일의 신시사이저로 도배한 뒤 싱잉 랩을 통해 공간을 장식하는 ‘HYPER TOY’는 그가 이어온 트렌드 탐구에 대한 연구 보고서처럼 느껴진다. 반대로 중반부까지의 트렌디한 댄스 플로어를 고즈넉한 재즈 바의 무대로 일신하는 ‘BITTER BLUES’, 고전 소울 뮤직을 지향한 웅장한 소리의 파도가 청각을 습격하는 ‘PIPE DREAM’은 자신에 앞서 대중음악을 견인했던 이들에게 던지는 헌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다양한 시대의 음악적 자양분을 자유로이 비틀고 재해석하는 모습에, 그가 가진 창작의 샘이 고갈되기까지는 한참 남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장르적인 변화 외에 그가 또 하나 집중하고자 한 것이 바로 목소리다. 자신의 가창을 다양한 방향으로 편집하고 왜곡해 만들어낸 새로운 파장은 마치 작품에 곁들여져 킥을 주는 가니시 같다. 후렴구의 오토튠을 활용한 콜 앤 리즈폰스로 다양한 캐릭터를 창출하는 ‘EVERGREEN(feat.kZm)’, 시간 축을 일그러뜨린 듯한 보컬 트랙의 불안정함이 곡이 가진 혼란한 정서를 완성하고 있는 ‘HAZY SIGN’, 칩멍크와 같이 높고 얇게 변형시킨 후 본래 목소리와 겹쳐 하이퍼팝 특유의 과잉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SHEETA’ 등을 대표적인 예시로 들 만하다. 음색의 변형을 통해 여러 스펙트럼을 끌어내고자 한 방식은, 한편으로는 라이브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은, 스튜디오 앨범으로서의 완성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 방향성이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그의 내면이다. 창작을 지속하면서 자연스레 느끼게 되는 여러 감정이 크게 에두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표현되어 있다. 언제나 바깥을 향해 소리쳐 왔던 그가, 진솔하게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모습은 그것대로 드라마틱한 풍경을 그려낸다. 음악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는 ‘PAIN KILLER’와 ‘BITTER BLUES’에서의 가사는 래드윔프스나 일리언의 에고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면모다.
특히 노다 요지로식의 팬 송이라고 할 만한 ‘LAST LOVE LETTER’가 대미를 장식하는 모습은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을 숨겨왔기에 더욱 상징적인 순간으로 자리한다. 그 외에도 존재에 대한 의문, 인생에 대한 철학,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우선순위 등을 언급하는 수록 곡들은, 수수께끼로 둘러쌓인 그의 본모습을 엿볼 귀중한 기회를 선사한다.

이쯤 되니 이 솔로작은 20년 가까이 음악 활동을 이어오며 최정상의 자리에 등극했음에도 조금의 실마리도 주어지지 않았던 ‘인간 노다 요지로’의 실체에 대한 힌트를 주는, 극히 자전적인 작품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철저히 자신의 관심사를 반영한 장르의 채택, 굳이 더함이나 덜어냄 없이 담백하게 써 내려간 자기 고백에 가까운 가사가 이 명제를 뒷받침한다. 완성도는 준수하지만 낯섦 투성이로 가득한 탓인지 대중의 호불호는 살짝 갈리는 추세다. 그의 개인적인 일면을 볼 수 있어 반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레퍼런스의 측면 때문인지 그만의 오리지널리티가 희석되었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번 작품이 그가 음악을 지속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는 점이다.비대해진 아티스트로서의 자아를 살짝 덜어내고, 그 자리에 자기 자신을 채워 넣는 일 말이다. 이렇게 자유로이 뛰놀 수 있는 놀이터를 완성함으로써 20년간 달려온 그의 커리어는 다시금 새로운 전환기를 맞았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음악은 래드윔프스로, 스스로를 치유하고자 하는 음악은 노다 요지로로 명확한 이분화가 완료된 셈이다. 본체와 그림자의 공존을 가능케 한 이 ‘사소설적인 작품’은, 그가 이제까지 택하지 않았던 방법론으로 자신에게 다시금 새로운 숨을 불어 넣고 있다. 무엇을 떨어뜨렸는지 확인할 새도 없이 전진 일색이었던 지난 몇 년간의 활동을 지나 잠시 음악으로 찍는 이 쉼표. 그곳에서 발현되는 순도 높은 의외성은, 노다 요지로라는 이름에 잠시 무뎌졌던 대중들에게 다시금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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