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의 최애’ (Pixid)
배지안: “저는 어떤 분야에서든 덕질을 하는 사람들은 건강하고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MC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수빈의 말처럼 ‘최애의 최애’는 ‘덕질’, ‘덕후’, ‘팬’이라는 단어를 둘러싸고 있던 부정적인 프레임을 벗겨내고, 이 단어들의 순수한 가치들을 찾아내 보여준다. ‘최애’의 존재는 수빈의 카라처럼 꿈을 꾸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미미미누의 지드래곤처럼 자신의 인생을 설명하는 하나의 서사일 수도, 우영의 해리 포터처럼 어른이 되어도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는 방법일 수도, 희승의 라면처럼 퇴근 후 나에게 주는 최대 보상일 수도 있다. 누구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관해서 이야기할 땐 신이 나서 말할 수밖에 없다. ‘저 사람이 저렇게까지 좋아하는 데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자기 삶에 ‘최애’가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좋아하기 시작해서 아직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 그 연대기를 설명하며 벅차오른 게스트들의 표정은 시청자들도 동요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게스트들이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순간, MC 수빈은 그들의 진정한 ‘덕심’을 시험하며 예능의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해리 포터 덕후’ 우영에겐 기숙사 풀네임을 아는지, 미미미누에겐 연인과의 기념일과 지드래곤 콘서트 중 무엇을 택할 것인지, 희승에겐 희승의 최애 라면을 수빈이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밝히며 도전장을 내민다. 이때 게스트마다 자신의 진정한 ‘덕심’을 증명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도 흥미로운 포인트다. 나의 ‘최애’는 나의 마음과 애정을 얼마나 이해할까? ‘최애의 최애’로 ‘최애’와 나는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한다.
‘RUBY POP’ - 아이나‧디‧엔드(アイナ・ジ・エンド)
황선업(대중음악 평론가): 아티스트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특히 아이돌 그룹 출신 멤버가 홀로 서 재차 독자성을 구축해 나가는 모습만큼 극적인 것도 없는 것 같다. 최근에 그 감흥을 크게 가져다준 아티스트 중 한 명이라고 하면 바로 아이나‧디‧엔드가 떠오른다. 빗슈(BiSH)로 활동하던 중에도 솔로 앨범과 영화를 통해 싱어송라이터이자 예술가로서의 존재감을 꾸준히 내비쳐왔던 그다. 어느덧 세 번째 정규작이 되는 신보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것에 대한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처절하게 내면으로 몰입해왔던 지난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기어이 본인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그가, 조금씩 주위 사람들과 손을 맞잡으며 이를 공고히 해 나가는 모습이 담겨 있는 덕분이다.
그가 살짝 자가 증명의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은 프로모션 트랙 ‘Poppin’ Run’을 통해 감지된다. 청량한 질주감으로 전에 없던 캐주얼함을 장착한 상태로, 뮤직비디오 속 그는 간만에 활기 가득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가사 또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쏟아내다시피 해 어떨 때는 듣는 이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평소의 작법과 살짝 거리를 둔 가벼운 메시지로 일관하고 있다. 고립되어 있던 그가 주변 사람들의 신뢰에 힘입어 전에 없던 ‘여유’를 새로이 발견한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 보기도.
재패니스 팝의 정석이라 일컫는 마키하라 노리유키의 ‘クリスマスカード’가 겨울에 맞는 적절한 계절감을, 린토시테시구레의 TK는 특유의 믹스처 하드록 질감을 ‘Love Sick’에 심어내며 긍정적인 이질감을 심어낸다. 이런 쟁쟁한 뮤지션의 참여에도 정작 주목해야 할 부분은 따로 있는데, 바로 서포트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약 중인 나카무라 쇼코와의 협업 곡들이다. 초반에 집중되어 있는 ‘Entropy’와 ‘ハートにハート’, ‘煽り癖と泣き虫’ 등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아이디어를 내며 즐겁게 만들어 나갔던 기억이 온기 어린 빨강으로 구현되어 러닝타임을 물들인다. 스타일에 관계없이 허스키한 음색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넘쳐 흐를 정도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의 보컬 역량 또한 부쩍 성장해 17개 트랙, 71분여의 재생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 자신이 만든 탄탄한 기반과 어느 때보다도 강조된 주변의 조력. 겨우내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된 그의 잠재력이 충만히 담겨 있는 이 보석 상자, 오랫동안 소중히 아껴 듣고 싶다.
‘대도시의 사랑법’ - 박상영
김복숭(작가): 최근 영화와 드라마 각색 소식으로 주목받고 있는 책 ‘대도시의 사랑법’. 그 시작점인 이 책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현대 대도시 서울에서 사랑과 복잡한 정체성을 탐구해 나가는 게이 남성 박영의 이야기를 다룬 박상영의 소설은 독립적이면서도 종종 서로 연결되는 네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파트너 규호나 절친한 친구 재희와의 관계 등이 담겨 있는 이 책은 영의 20대 초반부터 30대 초반에 걸친 삶과 그 안의 중요한 순간을 들여다본다. 주인공 영은 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로, 특유의 냉소주의와 개인적인 고뇌가 처음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의 미묘한 묘사는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이끌어낸다.
작가 박상영은 심각한 병, 사회적 기대, 서로에게 독이 되는 인간관계 같은 무거운 주제를 생생한 대화와 예기치 않은 유머로 균형감 있게, 재치와 비탄의 조화로 담아냈다. 틀에 벗어나지 않는 삶의 양식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영이 집과 외부 세계로부터 느끼는 자기 의심 그리고 그 압박에 맞서는 방식은 힘겨운 과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로 향해 있다. 소설의 비선형적인 구조와 각 이야기에 걸쳐 호기심을 자아내는 영의 정체성에 대한 모호함. 이 모든 것이 마치 여러 번 다시 읽으며 개인적인 성찰을 할 기회를 마련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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