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이미지 출처: 공연음악 생존을 위한 연대모임

팬데믹 이후 1년이 지났다. 일상의 회복은 어느덧 요원한 일이 되었고, 비정상적으로 느껴지던 많은 것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많은 국가에서 백신 접종과 함께 과거의 일상을 되찾을 것이라 기대하기도 하지만, 과거를 회복하는 것은 아직 미래의 일이다. 그리고 그사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리고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 아래의 글은 뮤지션 오지은이 보낸 편지다. / 편집자 주

안녕하세요. 저는 음악을 하는 오지은이라고 합니다. 2005년부터 홍대 앞에 있는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첫 앨범은 2007년에 냈어요. 운이 좋게도 지금까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살롱 바다비(이하 ‘바다비’)라는 클럽이 있었어요. 과거형으로 표현해야 해서 벌써 마음이 조금 안 좋네요. 아주 작은 곳이었어요. 스무 명 정도가 들어오면 ‘어, 꽤 찼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았어요. 홍대엔 작은 클럽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작은 축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작은 무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정확하게 얘기하면 작은 무대에서 일어나기 쉬운 위험 요소가 두렵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일단 관객의 기운이 너무 직접적이면 공연의 호흡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것(관객이 기침만 살짝 해도 다 들리죠)과 원래 공연장으로 쓰이는 곳이 아닌 경우(독립서점이나 전시장 같은 곳이요) 음향의 밸런스가 좋지 않을 확률이 크다는 것. 그래서 그런 곳에서 공연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해요. 보시는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그런 속사정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바다비는 달랐어요. 바다비의 음향은 항상 최상이었어요. 섬세하게 설계된 곳도 아니고, 엄청난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음향을 보던 털보 사장님은 음향 전문가가 아닌 시인이었지만, 신기하게도 바다비의 소리는 항상 끝내줬어요. 좋은 우연과 마음이 겹치면 그런 기적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유치한 표현이지만 마법 같은 순간이요. 바다비의 무대에 섰을 때를 떠올리면, 마치 나와 함께 달리기를 해줄 것 같은 표정의 관객들과 콘솔 앞에 선 털보 사장님의 미소, 푸른 빛 조명, 높은 습도의 공기가 생각나요. 그리고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다가 문득 ‘아, 나 오늘 멀리까지 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던 것도요. 그게 너무 좋아서 언젠가 공연을 통째로 녹음해서 앨범을 만든다면 바다비에서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다비는 2015년에 문을 닫았습니다.

바다비가 문을 연 지 2년째인 2007년에 사장님이 이런 인터뷰를 하셨어요. “바다비는 흘러가는 곳이에요. 사람들은 계속 흘러가는 거죠. 창작자도 대중들도 이곳에 묶어둘 수 없어요.” 저도 흘러갔습니다. 앨범을 내고 제 음악을 듣는 분들이 많아지고 저는 더 큰 공연장으로 갔어요. 20명이 200명이 되고 400명, 800명이 되고 어느샌가 저는 올림픽공원의 수변 무대에 서게 되었어요. 어떤 페스티벌의 마지막 순서였지요.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바다비의 무대에 섰어요. 그 멀리 갈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관객과 공간이 제 등을 밀어주는 기분.

어떤 뮤지션은 자신의 방에서, 어떤 뮤지션은 연습실에서, 어떤 뮤지션은 공연장에서 성장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기도 하고요. 공연에서 어떻게 곡을 배치하고, 어떤 식으로 중간에 멘트를 하고, 어떻게 노래에 집중을 했다가 다시 빠져나와야 하는지,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은 없죠. 많은 홍대의 뮤지션은 클럽에서 그 훈련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음악이 공간에 울려 퍼질 때 어떤 기분인지, 노래를 어떻게 하고 편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관객과 소통해야 하는지 배우게 됩니다. 가장 멋진 점은 내 음악에 마음을 내어주는 사람들의 눈을 실시간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부분이에요. 어떤 관객이 있느냐에 따라 그날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객석을 앞에 두고 노래하는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아주 힘들지만, 아주 멋진 일입니다.

많은 뮤지션들이 홍대에서 시작을 했어요. 자우림, 크라잉넛, 노브레인은 이미 전설이지요. 저와 비슷한 시기에 클럽에서 공연을 하던 뮤지션은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9와 숫자들 등이 있어요. 어떤 운 좋은 관객은 시작하는 에너지로 가득한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을 단돈 2만 원에 봤던 거예요. 홍대 클럽은 그런 곳입니다. 아주 재미있는 무언가가 생겨나고 자라나는 곳.

그리고 코로나 시대가 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졌어요. 문화라는 것은, 가장 힘든 시기에 힘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가장 먼저 제쳐지는 것이기도 하죠. 먹고 사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게 아니니까요. 많은 것들이 점차 허용되었지만, 공연의 경우에는 엄격했습니다. 특히 대중음악 공연이요. 공연장에서 감염된 사례가 한 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랬어요. 왜 그럴까 궁금하던 차에 댓글을 하나 보았습니다.

“어딜 감히 이 시국에 공연을 해?”

저는 많은 것을 알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어딜 감히.’ 누군가에게 제 직업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공연과 행사가 줄어들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고민하던 것보다 이런 말이 훨씬 상처가 되었어요. 저는 서서히 힘이 빠졌습니다.

사회 곳곳에서 ‘너는 필요 없어.’라는 사인을 보내는 것 같을 때 사람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고민하고 회의감을 갖게 되죠. 올해 2월 27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공연을 준비한 클럽이 있었어요. 공연장 관계자는 2주 전 구청에 전화를 하여 공연 진행이 가능하다는 답을 들은 상태였습니다. 토요일 저녁이었고, 그날 공연 예정인 밴드는 리허설을 마친 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팬들은 공연장에 모였고요. 그리고 갑자기 구청에서 사람들이 나와 공연을 중단시켰습니다. 공연을 준비한 클럽 측과 뮤지션, 리스너들은 몹시 당황했습니다. 왜냐면 공연은 카페에서 친구들과 만날 약속을 잡는 것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공연을 한 번 하는 데 적어도 두 달의 연습 기간이 필요합니다. 같이 하는 연주인들도 두 달의 시간을 쓴다는 뜻입니다. 빈 공간에 뮤지션과 관객만 들어가서 공연이 진행되는 것도 아닙니다. 음향과 조명 담당이 있고, 티케팅을 담당할 사람도 필요하죠. 공연장은 매달 월세를 내며 공간을 지킵니다. 그리고 그 공연을 손꼽아 기다리던 관객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만약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이 있다면 어쩌지 하고 아찔해졌습니다.

그다음은 더 끔찍했습니다. 마포구청 관계자는 그 사건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같은 곳이 공연장이고, 일반 음식점에서 하는 칠순 잔치 같은 건 코로나19 전에야 그냥 넘어갔던 거지, 코로나19 이후에는 당연히 안 되는 것 아니겠냐.” 저는 화가 났습니다. 홍대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뮤지션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하는 뮤지션은 다른 존재가 아닙니다. 문화 생태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무신경한 말에 화가 났고, 홍대가 위치한 마포구청의 관계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왔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트위터에서 의견을 얘기한 제게 어떤 사람은 말했습니다.

“웃기고 있네. 너의 공연이 칠순 잔치만큼 가치가 있을 것 같아?”

뮤지션과 관계자들은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LiveMusicLIves #우리의공연우리의일터 등의 해시태그로 보실 수 있습니다). 공연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명에 동참해주었고 다행히도 마포구청은 답변을 바로 주었습니다. 방역 지침을 준수한다면 클럽도 다시 공연을 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아직 나아갈 길은 멉니다. 관련법 때문입니다.

홍대의 공연장들이 왜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되어 있는지 궁금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법 때문입니다. 지금 라이브 클럽들이 따르고 있는 법은 1999년에 제정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클럽 공연이 불법이었습니다. 1998년, 뮤지션들과 공연장이 라이브 클럽 합법화 운동을 하였고 다음 해 법이 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음식점에서의 공연을 허한다는 내용의 반쪽짜리 법이었습니다. 공연법 상 공연장으로 등록하려면 공연 일수가 연간 90일 이상 혹은 연속 30일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주말 이틀만 공연을 여는 경우가 많은 클럽들은 그런 요건을 충족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반 음식점으로 등록을 합니다. 티켓 판매만으로는 모자라는 수익을 음료 판매로 메우기도 합니다. 맥주 한잔하며 공연을 보는 것도 이 문화의 매력이니까요.

얼마 전에는 이소라의 공연이 취소되었습니다. 대중음악 콘서트는 뮤지컬이나 클래식 음악과 달리 ‘모임 행사’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코로나19의 진행 상황에 따라 지침이 계속 변하여 저의 경우에도 공연을 취소해야 할지 막판까지 긴장했던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길게 준비했어도 지침이 바뀌면 공연을 취소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같은 공연장이어도 뮤지컬과 클래식 음악의 경우에는 공연을 열 수 있고 대중음악은 할 수 없다는 부분입니다. 정부 관계자들이 생각하는 대중음악 공연이란 무엇일까요. 예술성이 없는, 문화적 가치가 없는, 일종의 소란 같은 것일까요.

문화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습니다. 다양한 출발점이 있고 다양한 성장이 있고 다양한 쓰임새와 다양한 결과가 있습니다. 엄청나게 박력 있는 사운드의 K-팝이 듣고 싶어질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나른하게 읊조리는 인디 음악이 듣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물론 나른한 K-팝도 있고 박력 있는 인디 음악도 있습니다). 서울의 을지로에는 호텔 수선화라는 카페 겸 바가 있습니다. 공연도 가끔 하고요, 아주 작고 쿨합니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그곳에서 화보를 찍었어요(세간에는 샤이니가 찍은 사진이 제일 유명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는 주류에서 살짝 비껴간, 신기하고 재미나고 작은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들이 묘하고 이상하고 멋진 공간을 만들면 소문이 나고, 더 재미있는 사람들이 모이고, 공연도 열리고, 그렇게 문화의 줄기가 생깁니다. 그 줄기에서 독특한 열매가 자라나고요. 문화는 그런 식으로 돌고 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이 우월하거나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은 이미 음악과 공연의 소중함을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소중한 것들을 더 소중하게 여겨주세요. 코로나19 감염자의 수가 다시 증가 추세라고 합니다. 방역을 철저히 지켜서 코로나19가 종식되어, 우리가 누리던 순간들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1년 4월
오지은 올림
글. 오지은
편집자. 강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