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홉은 방탄소년단으로 희망을 그려왔다. 솔로로서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자신의 내면 세계를 펼쳤다. 그런 그가 또다시 제이홉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이유. 자아, 팀, 아미. 제이홉의 정반합에 대하여.
전역하고 두 달이 조금 안 되었어요(인터뷰는 12월 7일 진행).
제이홉: 긴 꿈을 꾸고 온 듯한 느낌이죠.(웃음) 전역하고 2~3주는 군대 얘기밖에 안 했거든요.(웃음) 소소한 일상의 정호석, 작은 것에서 얻는 행복을 알게 해준 의미 있는 기간이었어요. 저와 두 달 차이로 들어온 마지막 동기가 이제 곧 전역을 앞두고 있어요. “이제 너도 전역하네.” 하니까 그 친구가 “그러게, 시간이 빠르다. 그래도 형 때문에 재밌게 했지.”라는 거예요. 그 친구들에게도 함께한 시간이 좋은 기억이고 재밌는 추억이 된 건데,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게 뿌듯하고 의미 있었어요.
부대원들이 여러 미담을 전하기도 했는데, 군 생활 동안 어떤 역할을 하려고 했을까요?
제이홉: 저희 부대는 위계질서가 확실했어요. 그래서 저보다 많이 어린 친구들이 있어도 ‘병장님’, ‘조교님’ 이렇게 불렀어요. 주어진 역할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고요. 예를 들어 저희 팀이라도 오히려 더 존중하고 배려해주는 게 있듯이, 그 안에서도 그걸 지키려고 노력했어요. 그 한 명, 한 명에게 저에 대한 기억을 심어주는 거잖아요. 그렇게 선을 지키니까 애들도 더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해준 것 같아요.
지난 1년 반은 그간 제이홉 씨의 일상과는 또 다른 생활이었을 것 같아요.
제이홉: 정말 중요한 시기였어요. 누가 군대에 대해 가벼운 마음이 들겠어요. 무겁고 쉽지만은 않은 여정이니 심적으로 어려움은 있었죠. 그런데 또 그 사회에 맞춰서 살아가는 정호석의 모습이 어른으로서 나아가고, 더 성장하는 데 좋은 발판이 되겠다고 느꼈어요. 힘든 부분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걸 견디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인간적으로 돈독해지는 과정이 저한테 다 살이 되더라고요. 진짜 살도 찌고요.(웃음) 밥을 세 끼를 먹으니까.(웃음) 그 1년 반 동안 정호석으로서, 제이홉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도 주어졌고요. 제가 했던 일을 다시 돌이켜볼 수 있어서,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처음 전역했을 때는 스스로 이런 게 변했고, 더 성숙해지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면 지금은 원래의 저로 돌아온 것 같아요. 소중했던 기억을 잊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제이홉에 익숙해지고 적응이 되었다는 거죠.
최근 미국 LA에 머무른 게 ‘지금의 제이홉’을 찾는 데에 도움이 됐을 듯해요. 미국행에 대해 “빠르게 제가 원래 있었던 이 세상에 적응을 좀 하기 위해서”라고 위버스 라이브로 설명하기도 했고요.
제이홉: 입대하기 전부터 ‘LA에서 공부도 하고 음악 작업도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마음이 조금씩 현실화가 된 거죠. 살다 보면 내가 보여줘야 되고, 하고 싶은 게 생기잖아요. 거기에 맞춰서 계획이 바뀌었고, 조금 빠듯하게 다녀오게 되었어요. 전역 후 일주일 지났을 때 다짜고짜 미국으로 갔는데, 한국에서도 어색한 게 많을 때여서 처음에는 정말 적응이 안 됐죠. 미국의 문화에 적응하고 그 나라의 온도와 바이브를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서 영어를 쓰고, 안 되는 걸 해보면서 딱 직감이 드는 거죠. ‘아, 내가 여기에 왔고, 적응하는 단계구나.’ 느꼈어요.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그냥 ‘이거였구나.’가 되어 있더라고요.
특별히 LA였던 이유가 있을까요?
제이홉: 저는 미국의 모든 지역을 다 좋아하지만 ‘캘리(캘리포니아)’만의 바이브를 되게 좋아해요. 햇빛도, 분위기도, 여유도 좋아하고요. 그리고 흔히 말하는 ‘음악쟁이’들이 다 거기에 있어요.(웃음) 미국에 가겠다는 것 자체도 사실 제이홉의 일과 관련된 부분이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어요. 그래서 LA를 가야겠다는 게 너무나도 명확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일상에 빠르게 몸을 담그고 제 자신을 적응시키는 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됐어요.
이미 제이홉 씨가 그려놓은 그림을 구체화하는 거네요.
제이홉: 맞아요. 구체화가 진짜 힘들어요. 항상 순탄하게 해결되진 않아요.(웃음) ‘제이홉’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은 단지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그냥 매 순간 하고 있어요.(웃음)
지난 ‘Jack In The Box’ 앨범이나, ‘HOPE ON THE STREET VOL.1’에서도 굉장히 세부적인 영역까지 디렉팅을 할 만큼 본인이 원하는 그림을 현실로 만드는 데 집중했었죠.
제이홉: 참,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했구나 싶어요. 그리고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했구나’. 이 문장 자체가 저에게는 영감이 되는 거죠. 시기별로 그때의 제이홉이 원했던 게 딱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때만 할 수 있는 걸 한 거죠. 그래서 과거가 소중하고요. 누구나 그렇듯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지금 똑같이 하라고 하면 아유, 못하죠.(웃음) 지금은 다시 눈 검게 칠하고, 점프슈트를 입고 못할 것 같아요.(웃음)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해봤으니까, 이제 대중들이 원하는 것도 해봐야겠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제이홉의 음악, 제이홉의 이미지, 제이홉의 퍼포먼스를 해봐야겠다.’ 그게 다 연결되는 거예요. 그때의 제이홉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생각을 할 수가 있고 또 다음의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의 내면을 밀도 있게 파고든 제이홉 씨가 있다면 또 다른 축에는 ‘Chicken Noodle Soup (feat. Becky G)’처럼 보다 경쾌한 모습의 제이홉 씨도 있잖아요. 스스로 보시기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제이홉은 후자의 결일까요?
제이홉: 그냥 ‘제이홉’ 하면 딱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모두가 생각하는 제이홉. 즐겁고 재밌지만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그리고 군대를 다녀왔으니 성숙하고 노련미 있고, 제 입으로 말하기 조금 민망하지만 섹시한 그런 것들을 하고 싶달까. 음악을 하면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해봤어요.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게 좋은 거니까.’였다면, 이제는 상대방을 생각해보는 거죠. 그게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이 시점에는 제가 하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걸로는 한계가 있다. 물론 음악적인 건 제가 다 관여하고, 저의 혼이 들어가 있기에 저의 음악이죠. 그런데 그동안은 제가 한 땀 한 땀 옷을 만들었다면 디자이너의 옷도 한 번 입어보고 핏도 보는 느낌이에요. 그렇게 해서 레드카펫에 딱 들어가는 거죠. 조심스러운 표현이지만, 조금 더 제이홉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리고 싶어요.
그런 판단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이홉: ‘사람들에게 친숙한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다.’가 있는 거죠. 제가 ‘Jack In The Box’ 때 다른 모습을 택했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지금의 이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어요. 물론 ‘해소하고 싶은 걸 정말 다 해소했나?’라면 아닐 수 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은 너무 많거든요. 그게 문제인데.(웃음) 그래도 지금은 그래야 할 타이밍이고, 그게 스스로에게 어색하지 않아요. 저는 저한테 어색한 건 절대 하기 싫거든요. 이것도 제가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걸 하고 나면, 여기에서 겪는 어떤 부분들도 제게 도움이 될 테니까 그 후에는 어떤 음악이 생길지 궁금하고요. 재밌게 그려보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 모든 걸 다 신경 쓰고 있죠.
제이홉 씨가 자기 자신이나 상황들을 조금은 떨어져서 볼 수 있기에 가능한 생각 같기도 해요.
제이홉: 제가 볼 수 있는 선 안에서 보는 거예요. 그래서 주변에 많이 물어보기도 해요. 가족들한테도 물어보고 회사 직원분들한테도 물어봐요. 예전에도 안 그랬던 건 아니지만, 요즘은 더 많이 들어요. “어때요? 내가 이걸 했을 때 괜찮을 것 같아요?” 그리고 듣고, 판단을 하고, 제가 선택하고요. 군대에서 시간이 남을 때 편지를 많이 읽었어요. 아미분들이 편지에 하고 싶은 모든 말들을 다 적어 놓으셨더라고요.(웃음) ‘앞으로 이랬으면 좋겠다.’, ‘뭘 했으면 좋겠다.’ 거기에서 영감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사람들이 이걸 진짜로 원하고 있네.’, ‘이걸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네?’ 제가 생각했던 것과 교집합이 있으면 그걸 고려해보고, 피드백을 맞춰보는 거죠. 그렇게 저를 멀리 떨어뜨려서 보면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뭔지, 저에게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많이 듣는 사람들은 스스로 중심을 잘 잡아야 하잖아요.
제이홉: 중심이 필요하죠. 그게 흔들렸으면 지금의 제가 있을까 싶어요. 그게 안 흔들렸기 때문에 지금이 있는 거죠. 저도 은근히 고집 있거든요.(웃음) 도움이 되는 건 듣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건 흘려버리고. 이런 스타일인 것 같아요. 자기 줏대가 있는 거죠.(웃음)
그만큼 보여주고 싶은 게 명확하다는 의미일 텐데, 아티스트로서 분명한 무언가를 추구하고 만들고 싶은 이유가 뭘까요?
제이홉: 이유를 생각해보진 않았던 것 같아요. 이유가 생겨버리면 너무 일 같지 않아요?(웃음) 하고 싶어서 하는 거고, 본능적으로 이렇게 표현했을 때 재밌을 것 같아서 하는 거죠. 창작에 있어서는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대로 하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본능에 따르지만 결과물에 다다르는 과정에서는 타협이 없어 보이기도 해요. 특히 지난 2022년 ‘롤라팔루자’ 시카고 공연처럼 모든 걸 홀로 이끌어갈 때 그렇게 보였어요.
제이홉: ‘롤라팔루자’ 무대는 돌이켜봤을 때 저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웃음) 그만큼 힘들었던 기억인데 결국은 해냈고, 잘 보여줬고요. 아미분들도 계속 이야기하는 게 ‘롤라팔루자’니까, 그럼 전역하고 나서 더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더 디테일하게 생각하면서 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지고 있는 상황인 거죠.(웃음) 제가 할 수 있는 건 딱 정해져 있다고 봐요. 제가 선사할 수 있는 즐거움도 분명히 있고, 그게 퍼포먼스인 거죠. 그걸 더 보여드리고 싶고, 무대에 서고 싶고, 즐거움을 드리고 싶어요.
구체화가 어렵다고 하셨지만, 제이홉 씨의 머리 속에서는 많은 게 꽤 명료하게 정리되었다는 인상이에요.(웃음)
제이홉: 네, 단순해요. 너무 단순하죠. 지금은 복잡하지 않아요. 재밌는 걸 보여드리고 싶고, 나한테 어울리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조금 더 쉬운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결국은 더 확장된 저의 자아를 반영하는 앨범을 보여주고 싶고요. 계속 크리에이티브를 하는 게 저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이전에 했던 말을 다시 빌리자면, 소명 의식인 거죠. 여전히 음악을 좋아하고, 무대를 좋아하고, 플레이어 입장으로 즐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끊임없이 저에 대해 생각하고, 그런 활동을 하고, 만들어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고. 그걸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그건 방탄소년단이라는 팀의 멤버로서 지니는 책임감의 또 다른 형태일 테고요.
제이홉: 그건 있어요. 방탄소년단은 초반에 힙합을 베이스로 하다가 점점 팝 성향으로 갔잖아요. 그 과정에서 다양한 노래들을 하다 보면 저에게 어울리는 옷도 있고, 살짝 안 맞아도 배에 힘을 주고 입어야 하는 옷도 있었고요.(웃음) 그런데 지금은 저도 그렇고 모두가 각자 하고 싶은 것들을 했잖아요. 저마다의 스타일도 있고요. 그런 상태로 이제 다시 모이는데, 그게 너무 재밌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젠 다른 이유보다 그냥 마음이 맞으니까 함께하는 거고 그래서 더 자연스러워졌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맞으면 옷이 끼더라도 같이 입어보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방탄소년단이 한 단계를 더 넘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봐요. 각자의 개성과 팀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플랜을 저희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팀으로서 함께하다가 각자의 개성을 살린 멤버분들의 작업물을 보는 것도 새로웠을 듯해요.
제이홉: 저희 애들이 재밌는 게, 본인들이 입대하기 전에 뭔가를 많이 만들어놨어요. 여러 가지로 자극을 받죠. 다들 일에 대해 참 생각이 깊고, 욕심이 많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게 정말 좋거든요. 본인이 하고 싶은 걸 표현하고, 그걸 음악으로 한다는 것만큼 아름다운 게 있나. 정말 아름답잖아요. 저는 지금 진 형이 나와서 보여주는 모습도 즐거워요. 형이 입대를 먼저 하면서 보여주지 못한 게 있었는데, 요즘 하고 싶은 걸 하는 걸 보면서 ‘이 형은 이런 걸 하고 싶었구나.’ 싶고. 그리고 저도 ‘형이 이런 걸 했으니까, 나는 이런 걸 해야겠다.’는 걸 꾸준히 생각하고 있어요.
스스로에 대한 탐구와 팀에 대한 고민을 거친 끝에 방탄소년단에 대해서는 무엇을 발견했나요?
제이홉: 방탄소년단으로서 저희가 해야 할 부분들은 분명하게 있는 것 같아요. 팀으로 돌아왔을 때 굉장히 영향력도 있을 거고, 다들 많이 보실 거잖아요. 다시 나와서 팀 활동을 하면 어떤 느낌일지 저도 기대가 돼요. 정말 멋지게 나와서 ‘이게 우리였다, 이게 ‘BTS’다.’ 이러고 싶은 것도 있고. 제가 다 대변할 수는 없겠지만 멤버들도 팀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요. 변함없는 건, 너무나도 하고 싶어요. 여전히. 팀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직까지도 멤버들과 일을 하는 게 너무너무 행복하고, 재밌고, 즐거워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는 아미로 커온 팀이고, 그게 중심인 팀이니까요. 잊어버리면 안 되고, 놓쳐서도 안 되고. 어마어마하죠. 그것 때문에 버텼는데.(웃음) 저를 기다려주고, 바라봐주고, 응원해주고, 알아봐주고. 아미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움직일 수 있어요. 자동차로 치면 마치 기름 같은… 그냥 저의 중심?
항상 나를 기다려주는 존재가 있다는 의미는 클 테니까요.
제이홉: 물론이죠. 아미는 저에게 저를 지탱하는 발바닥, 걸어갈 수 있는 근육, 세포, 뉴런, 그런 거죠.(웃음) 이건 더 할 말이 없을 정도예요.
- 제이홉의 춤, 음악, 거리2024.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