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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우(게임연구자)
사진 출처한국닌텐도

2024년 새로운 의성어 하나가 각종 커뮤니티를 휩쓸기 시작했다. “옹씌 옹씌”, 바로 ‘피크민 블룸’에서 피크민들이 걸어다니며 내는 소리이다. ‘피크민 블룸’은 나이앤틱과 닌텐도가 공동 개발한 위치 기반 증강현실 모바일 게임으로, 2021년 10월 말에 전세계적으로 출시되었다. 한국에도 같은 시기에 출시되었지만, 비로소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2024년 11월경이다. 그 정확한 이유는 아직 확답하기 어렵다.

피크민이 세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1년 10월 26일, 무려 20년도 전이었다. 이는 닌텐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인 미야모토 시게루의 주도로 제작된 게임으로, 캡틴 올리마라는 우주 비행사가 운석에 맞아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한 후 피크민들의 도움을 받아 30일 동안 우주선의 부품 30개를 수집하여 행성을 탈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에 출시된 동 시리즈의 다른 게임 역시 비슷한 문법을 따르고 있는데, 모두는 우주 비행사라는 하나의 캐릭터 시점에서 퍼즐을 풀어가며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는 게임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같은 ‘피크민’을 다루면서도 전혀 다른 플레이 경험을 제공하기에, ‘피크민 블룸’은 동  시리즈의 작품들보다는 같은 모바일 플랫폼의 다른 게임인 ‘포켓몬 GO’에 비교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포켓몬 GO’와 ‘피크민 블룸’
피크민 블룸’과 ‘포켓몬 GO’가 공유하는 점은 상당하다. 모두는 스마트폰으로 동작하는 모바일 플랫폼 게임이고, 위치 기반으로 작동하며, 수집을 주요 플레이 메커니즘으로 삼는다. 또한 같은 게임사에 의해 개발되기도 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 역시 많다. 먼저, ‘포켓몬 GO’가 경쟁 기반이라면 ‘피크민 블룸’은 협력 기반이다. ‘포켓몬 GO’에서 플레이어들은 체육관을 선택하고 다른 체육관의 플레이어들과 대전한다. 포켓몬에는 레벨과 공격력, 방어력이 있으며 플레이어들은 위 능력치를 강화하여 더 많은 레이드를 뛰고, 체육관을 점령하고자 분투한다. 수집을 바탕으로 한 전략과 성취가 강조되는 ‘포켓몬 GO’와 달리, ‘피크민 블룸’에는 어떤 경쟁도 없다. 피크민들은 그저 걷고 물건을 운반하고 꽃을 심는다. 버섯을 해체하는 형식의 레이드가 있긴 하지만, 여기에는 참여 조건도 딱히 없으며(단지 피크민 몇 마리 이상을 모아야 할 뿐이다.) 공격력에 따라 순위를 매기지도 않는다. 전통적인 게임에 익숙하지 않거나 경쟁적인 요소를 부담스러워하는 사용자들 다수가 ‘피크민 블룸’을 즐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패의 걱정 없이 느긋하게 걷고 수집할 수 있는 포용적인 게임 환경이 다수의 사람들을 플레이어로 끌어들인 것이다. 또한 ‘피크민 블룸’에서는 ‘지리’가 보다 강조되어 있다. ‘포켓몬 GO’ 역시 위치 기반 게임이지만, 여기에서 구체적인 기후, 생물, 자연, 교통, 도시 등의 상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물과 땅 정도가 구분되고,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포켓스톱이나 체육관 등이 표시되는 정도이다. 한편 ‘피크민 블룸’에서 지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플레이어는 지리적 특성에 걸맞은 피크민을 얻고, 특정한 장소가 기록된 엽서를 수집하고 공유한다. 그래서 '피크민 블룸’ 플레이어들은 특정한 ‘그’ 장소를 찾아 이동하곤 한다. 이와 같은 차이점들은 두 게임을 전혀 다른 결과로 이끈다. 언뜻 보기에는 비슷하여도 실질적으로 전혀 다른 플레이 양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피크민 블룸’, 걸음에 대한 보상
‘피크민 블룸’에서 피크민들은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피크민들은 “옹씌 옹씌” 소리를 내며 거리에 놓인 물건들을 운반하고, 걸어다니며 꽃을 피워낸다. 이러한 피크민들의 움직임은 마치 개미의 운행을 떠오르게 한다. 자연 속에서 움직이고, 꽃보다 작으며, 여럿이 모여 이것저것 다양한 물건을 나르는 모습이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와도 같아 보인다. 다만 자연에서 개미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면, ‘피크민 블룸’에서 움직이는 것은 피크민뿐만이 아니다. 피크민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우리도 부지런히 걸어다녀야 하는데, 플레이어의 걸음 수가 곧 양분이 되어 피크민들을 키워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걸음이 수치로 환산되어 그에 따라 보상을 지급하는 것은 모바일 플랫폼에서 매우 흔한 애플리케이션 동작 방식이다. 사용자의 걸음 수를 측정하는 ‘디지털 만보기 애플리케이션’은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발전하며 건강 관리와 앱테크(앱을 통해 소소한 수익을 얻는 활동)의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아왔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7년 출시된 ‘캐시워크’가 있다. 캐시워크는 걸음 수대로 금전적 보상을 해주는 건강 관리 애플리케이션으로, 스마트폰 잠금 화면에 사용자가 걸은 거리를 표시해주고, 100걸음당 1캐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캐시워크의 성공 이래로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이 사용자의 걸음 수에 금전적 보상을 연결시켜왔는데, 여기에는 토스의 만보기, 나만의 닥터 만보기, 서울시 손목닥터 9988+ 등이 있다. 한편, 이상의 애플리케이션과 ‘피크민 블룸’은 일종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 캐시워크부터의 재테크용 앱들이 유용하다면, ‘피크민 블룸’은 무용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테크’용 앱을 이용하는 것은 결국 금전적 이득을 보기 위해서이다. 즉, 캐시워크 등의 이용자들은 걸음을 통해 포인트를 쌓아나가며, 그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한다. 반면, ‘피크민 블룸’에서 이용자들이 가져올 수 있는 소득은 사실상 없다. 오히려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하기 위해 돈을 쓰는데, 이는 ‘피크민 블룸’이 자원을 벌어들이는 쪽이 아니라 쓰는 쪽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피크민 블룸’을 플레이한다. 각종 피크민들을 수집하는 것이 거의 전부인 이 게임은 지금 140만 명 이상의 한국인들을 걸어다니게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피크민 블룸’의 매력은 무엇일까? 어떤 유용한 보상을 제공해주지도 않는 이 게임은 대체 어떻게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는 걸까?

디지털 다이어리로서의 ‘피크민 블룸’
앱 스토어에서는 게임으로 분류되지만, 사실 ‘피크민 블룸’은 다이어리에 가깝다. 게임의 주된 기능이 수집을 넘어선 기록이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는 ‘피크민 블룸’을 하며 다양한 정보를 저장한다. 가장 먼저 걸음 수를 기록하고, 꽃을 심은 구역을 지도상에 표시하며, 버섯을 깨거나 물건을 가져온 곳의 엽서를 가져온다. 이러한 정보들은 소지한 스마트폰의 사진첩과 연동되어 하루 단위로 저장되는데, 플레이어는 최대 4개까지의 사진과 그날의 기분을 기록하게 된다. 마치 다이어리를 쓰듯이 그날의 사진과 이동 경로를 지도 위에 표시하는 것이다. 더불어 플레이어가 얻는 피크민과 엽서는 모두 위치 정보를 지닌다. 각각의 피크민들에는 처음 획득한 위치가 표시되어 있고, 모두는 그 장소에 걸맞은 장식을 착용하고 있다. 엽서 또한 동일한데, 각 엽서는 플레이어가 방문한 곳을 지도상에 표시해준다. 심은 꽃, 키운 피크민, 모은 엽서는 모두 각각의 표지가 되어 플레이어의 지도를 채워나가고, 이렇게 정보들이 모여 만들어진 ‘피크민 블룸’의 AR 지도는 일종의 다이어리가 되어 플레이어의 일상을 담아낸다. 더욱이, 이 다이어리는 친구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더욱 풍성해진다. ‘피크민 블룸’에서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의 경험을 나눌 수 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는 버섯을 깨는 레이드에 친구를 초대하고, 엽서를 보내며, 일주일마다 함께 꽃을 심거나 걸으면서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결국 ‘피크민 블룸’은 단순한 게임을 넘어,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친구들과 소통하는 플랫폼이다. 일종의 디지털 다이어리처럼, 이 게임은 우리가 주변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속에서 발견한 소중한 순간들을 공유할 수 있게 한다.

‘피크민 블룸’은 우리의 일상 공간에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이 게임은 현실과 가상 세계를 연결하여 플레이어가 익숙한 공간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피크민과 함께 걷는 동안, 플레이어는 주변의 소소한 요소들에 새로운 의미와 이야기를 부여하게 되는데, 그저 지나가는 거리의 벽화는 엽서가 되고, 흔한 밥집은 ‘요리사 피크민이 태어난 장소’가 된다. 이렇게 부여된 의미를 친구들과 서로 나눌 수도 있다. 따라서 ‘피크민 블룸’을 플레이하며 사람들은 자신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즉, 게임의 플레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주변의 환경을 더욱 애정 있게 관찰하며, 삶의 다양한 요소들에서 작은 기쁨을 발견하곤 한다. 이러한 소소한 변화는 우리의 일상 속에서 ‘순간’을 보여주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동전 한 닢도 주지 않는 이 게임을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마도 플레이어들은 ‘피크민 블룸’에서 금전적 보상보다 더 큰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피크민과 함께 걷는 길 위에서, 플레이어들은 지금도 주변의 풍경 속의, 그들 삶 속의 이야기를 찾아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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