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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서, 배동미(‘씨네 21’ 기자),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닛폰 테레비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 (넷플릭스)
최민서: “하늘을 봐봐! 새야? 비행기야? 아니, 내 직장 동료야.” 넷플릭스 드라마 ‘핫스팟: 우주인 출몰 주의!’는 우리가 알던 모든 우주인 이야기의 스테레오타입을 뒤집는다. 일본 창작물 속 우주인들이 대개 신비롭고 위압적이거나 때로는 적대적인 존재로 그려진 것과 달리, 이 작품의 타카하시는 시골 관광지 호텔의 직원으로 지내는, UFO보다는 동네 마트가 더 어울리는 안경 쓴 아저씨다. 직장 동료 키요미에게 정체가 들통난 뒤부터 그의 평화로운 일상에는 여러 문제가 생긴다. 호텔의 숨은 실세이자 싱글 맘인 키요미는 타카하시의 무른 성격을 꿰뚫어보고 그를 자신의 중학교 동창들 모임에 끌어들이더니, 그의 우주인 초능력을 이용하는 대가로 지점장 몰래 온천을 쓰게 해주는 영악한 거래까지 성사시킨다. 타카하시가 우주인이라면, 키요미는 우주인 조련사다.

하지만 동시에 타카하시는 ‘우주인’에게 시청자가 기대하는 슈퍼히어로서의 역할도 놓치지 않는다. 후지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야마나시현의 아름다운 온천 마을에도,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처럼 긴장감이 꿈틀댄다. 2화에서 타카하시가 불량배를 상대할 때, 그는 비현실적으로 거대한 만월을 배경으로 지붕 위에 날아올라 마치 달덩이를 던지듯 배구공을 날린다. 이런 연출 속에서 평범한 일상은 한순간 경이로운 스펙터클로 변모한다. 각본가 바카리즈무가 전작 ‘브러쉬 업 라이프’에서 보여준 소박한 일상과 판타지적 요소의 마리아주를 여기서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슈퍼히어로 주인공이 대단한 재주를 부려도 키요미와 그녀의 친구들의 반응은 무덤덤할 뿐이다. 우주인의 신체 구조가 인간과 달라 등이 굽어 있으며 차가운 음식을 먹으면 이가 시리다는 고백에도 돌아오는 건 “아주 전형적인 새우등이네요!”라는 천연덕스러운 반응뿐이다. 이처럼 미지의 존재를 두려워하거나 경계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선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공존의 자세가 아닐까. 후지산 자락의 작은 도시에서 펼쳐지는 특별한 환대의 이야기를, 겨울밤 온천 물처럼 천천히 음미해보시길.

‘브루탈리스트’
배동미(‘씨네 21’ 기자): “아무 기대 같은 것은 없었어."라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남자가 있다. 유명 예술대학 바우하우스에서 건축을 공부한 천재 건축가 라즐로 토스(에드리언 브로디)란 남자다. 유대인인 그는 나치를 피해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왔다. 새로운 땅에 큰 기대를 품은 건 아니었다. 생존이 급했던 라즐로는 창고에 거처를 마련해준 사촌에게 “아무 기대 같은 것은 없었어.”라고 말하며 창고 신세도 만족한다. 건축가로서 심미안과 기량을 가졌으나 공사장 인부 생활을 면치 못하던 라즐로는 어느 날 재기할 기회를 잡는다. 미국인 부자 해리슨 밴 뷰런(가이 피어스) 눈에 들면서 생긴 기회다. 졸부인 해리슨은 와인 수집에 싫증이 나 건축에 눈을 돌리더니 어머니를 기리는 문화센터를 짓겠다며 라즐로를 고용한다. 이에 라즐로는 열정이 되살아나는 걸 느낀다. 그는 이제 해리슨을, 아니 자기 자신을 만족시킬 아름다운 건축물을 지어 올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쉽지 않다. “아무 기대 같은 것은 없었어.”라는 라즐로의 중얼거림처럼 ‘브루탈리스트’는 처음부터 아메리칸 드림을 낙관하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이 진척될수록 라즐로는 신경이 날카로워져 간다. 마약에 다시 손대고, 아내 에르제벳(펠리시티 존스)과도 순탄하게 지내지 못한다. 그리고 돈이면 다 되는 듯 착취하고 하대하는 해리슨과도 갈등한다.

‘브루탈리스트’는 콘크리트를 이용한 거칠고 야수적인 건축 사조인 ‘브루탈리즘’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는 제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행한 이 사조처럼 거세고 고집스러운 주인공은 유럽 내 나치즘과 미국의 인종차별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신만의 예술 작품을 세상에 남기려 한다. 라즐로가 믿는 건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는 예술, 특히 건축이기 때문이다. 215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 동안 곡진한 인생을 들여다보면 라즐로가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존 인물을 영화로 옮겨온 게 아니라 이 작품을 위해 창조된 캐릭터란 점이 놀랍다. 피사체에 바짝 따라붙는 카메라와 장중하고 현대적인 음악의 힘이 크겠지만, 배우 애드리언 브로디가 깊이와 무게를 더했기에 스크린 속 예술가가 선연하게 다가온다. 브로디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최연소 수상자란 타이틀을 이미 가지고 있는 배우다. ‘브루탈리스트’에서의 연기로 그의 오스카 트로피가 하나 더 추가될 듯싶다. 브로디의 괴팍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로 탄생한 라즐로, 그의 여정이 끝나고 극장에 조명이 켜지면 영화는 관객에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남긴다. 삶은 고통스럽더라도 예술은 아름다울 수 있을까. 그래도 괜찮을까. 어쩌면 어려운 상황에서 예술 같은 영원성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인간 본질에 가까운 게 아닐까. 이 영화, 여러 의미로 관객을 오랫동안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켄드릭 라마의 슈퍼볼 LIX 하프타임 쇼 
김도헌(대중음악 평론가): 미국의 국기(國技) 미식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결승전 슈퍼볼. 2월 9일에 열린 제59회 슈퍼볼에는 하프타임이 허락되지 않았다. 플레이스테이션 컨트롤러 모양 사각 무대를 바라보며 엉클 샘으로 분한 사무엘 L. 잭슨이 외친다. “이건 그레이트 아메리카 게임이지!” 1) 국가의 불호령에 맞춰 등장한 주인공은 켄드릭 라마다. 지난해 문화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랩 게임의 우승자, 디스 곡으로 빌보드 차트와 그래미를 정복한 래퍼다. 뷰익 GNX 위에서 등장한 켄드릭은 길 스콧 헤론을 인용해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으며, 좋은 장소에서 엉뚱한 사람을 골랐다고 선언한다. “너무 시끄럽고, 무모하고, 게토 같아.”2) 엉클 샘의 비아냥에 켄드릭은 미국 국기를 상징하는 청백적의 의상을 입은 댄서들과 함께 ‘DAMN.’ 앨범의 히트 곡 ‘HUMBLE.’과 ‘DNA.’로 화답한다. 미국은 떨떠름하다. 6분이 넘는 디스 곡 ‘euphoria’에서는 “치사하게 고향 친구들을 데려왔다.”3)며 표정을 찌푸린다. 켄드릭이 시저(SZA)와 함께 선보인 가장 전형적인 축하 공연 무대에서야 비로소 크게 감동한다. “망치지 말라고!”4)

누가 게임을 망치는가. 끝없는 개척으로 일군 미국에서, 상대의 영토를 빼앗아야 하는 미식축구 결승전에서, 켄드릭은 자신의 랩 게임을 물러설 수 없는 스포츠 경기에 투영한다. “그들은 게임을 조작하려 했어. 하지만 영향력을 속일 순 없지.”5) 피가 끓는 스포츠의 본령에 충실한 랩 검투사는 여유롭게 스텝을 밟으며 ‘Not Like Us’를 시작한다. 음악의 영역을 넘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배타성으로 중무장한 전대미문의 히트 디스 곡이다. 유튜브 최다 30만 ‘좋아요'를 받은 댓글처럼6) ‘지금껏 본 적 없는 최장기간 장례식’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다. 엉클 샘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켄드릭은 미국이 원하지 않는 규칙으로 미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게임에서 가장 미국적인 게임의 엔딩을 선보인다. 적자생존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세계는 켄드릭의 게임에 역사상 최고 TV 시청자 1억 3,350만 회로 화답했다.

1)It’s the great American game!
2)Too loud. Too reckless. Too... ghetto.
3)"I see you brought your homeboys with you,” “The old culture cheat code. Scorekeeper, deduct one life."
4) Don't mess this up!
5) Yeah, they tried to rig the game, but you can’t fake influence.
6) Considering the beef with Drake started in March 2024, this is the longest funeral I’ve ever s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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