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0일, 허윤진이 다섯 번째 자작곡 ‘해파리’를 발표했다. ‘해파리’의 뮤직비디오는 깊은 심연을 헤엄치는 해파리를 바라보는 허윤진의 시선을 여러 각도로 다룬 아트워크와 허윤진이 직접 참여한 손 글씨가 어우러져 음악이 전하는 위로를 더욱 공고히 했다. 허윤진의 ‘해파리’ 뮤직비디오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아트워크로 협업한 아티스트 mareykrap, 박예람에게 작업 과정에 대한 비하인드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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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버스 매거진의 독자분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mareykrap: 안녕하세요. 그림 작업을 하고 있는 mareykrap, 박예람이라고 합니다. 주로 움직이는 그림 작업을 해왔는데, 요새는 평면 작업도 하고 있어요. 제 활동명인 ‘mareykrap’이라는 알 수 없는 단어처럼 조금은 이상하고, 약간은 괴상하기도 한 작업들을 좋아해요. 낯선 색, 낯선 상황, 낯선 오브제끼리의 조합처럼 어딘가 기묘한 느낌을 주는 작업을 지향합니다. 로토스코핑은 동체의 움직임을 가져오는 방식이기 때문에 작업자의 의도에 따라 정말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수 있는 영역이에요. 저는 제가 그린 일러스트레이션을 움직여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로토스코핑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에게 그림은 기록하고 싶은 순간을 남기는 수단이기도 했었는데, 만약 그 순간이 움직임으로써 영원히 반복된다면 더 생생히 기억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계속 작업해온 로토스코핑이 이번 ‘해파리’처럼 하나의 풀 애니메이션으로 뮤직비디오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동체의 형태 자체를 그대로 따오는 방식은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고, 움직임만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로토스코핑을 사용합니다.
‘해파리’를 처음 들으셨을 때의 감상이 궁금합니다. 그 감상이 이번 작업의 전반적인 톤앤매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합니다.
mareykrap: 처음에 쏘스뮤직 측에서 이번 프로젝트와 ‘해파리’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셨고, 저도 윤진 씨의 곡을 듣고 너무 좋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마냥 밝지만은 않은 곡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제가 메모한 단어들이 있어요. ‘윤진: 시니컬, 냉소적, 약간의 무기력, 관조적, 허무함’, ‘해파리: 유유자적, 무위자연’ 등을 적어 놓았더라고요. 제가 이해하기로 이 곡에서 허윤진 씨는 해파리처럼 유유자적하고 무위자연하는 삶을 살고 싶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기에 더욱 해파리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해파리에게 동질감, 동경심, 무기력함, 위로 등 정말 다양한 감정을 느끼시는 것 같았고요. 흘러가는 대로 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열심히 헤엄을 쳐야만 하는, 그게 유일한 길이라는 생각을 노래하는 곡이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허윤진 씨가 해파리를 바라보는 ‘감정’에 중점을 맞추고,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톤앤매너에 중점을 두고 이번 뮤직비디오 구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형태의 해파리가 늘 존재하는 허윤진 씨의 심연의 세계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해파리’의 가사는 해파리를 바라보며 느끼는 화자의 개인적인 감정선을 따라가는데요. 추상적인 내용인 만큼 구체적인 비주얼이나 스토리로서 형상화할 때 여러 고려 요소가 있었을 듯합니다. 뮤직비디오에서의 허윤진 씨의 모습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바는 무엇인지, 각각의 장면들에 어떤 의도를 담으셨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mareykrap: ‘해파리’라는 제목의 곡이라고 해서 단순히 해파리만 등장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기보다는, 그런 해파리를 바라보는 허윤진 씨의 시점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해파리와 함께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허윤진 씨를 뮤직비디오에 등장시키게 되었습니다. 때론 윤진 씨보다 훨씬 거대하고 화려한 해파리를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푹신푹신하고 말랑말랑한 해파리 위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아름답게 떠다니는 해파리를 손에 닿을 듯 만져보기도 하고, 그저 무기력하게 사다리 의자에 앉아 있기도 하면서요. 구체적인 가사 하나하나를 표현했다기보다는, 전체적인 가사의 뜻을 한 장면 한 장면씩 여러 개의 컷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해파리야 왜 넌 모를까 얼마나 아름다운지” 라는 가사가 나오는 장면에서는 유독 아름답게 헤엄치는 해파리 혼자 나오는데, 해파리를 바라보는 허윤진 씨의 시선을 담고 싶어서 단독 컷으로 연출하게 되었습니다.
뮤직비디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허윤진 씨를 표현할 때 가장 신경 쓴 것은 화려한 패션입니다. 바닷속이라고 해서 수영복이나 바다에 어울리는 착장으로 그리기보다는 무대 의상이나 화보 속 의상들로 연출해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가사에 “just keep swimming / 헤엄만 치기에도 바쁨 / 아직 갈 길이 남았잖니 / 살기에 숨 찬 나도 누군가의 해파리” 등이 제가 느끼기에는 윤진 씨의 직업을 표현한 가사로 느껴졌거든요. 윤진 씨는 해파리와 유영하면서도 본인 직업에 대한 여러 생각을 늘 심연 속에 간직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종의 메타포처럼 의상으로 표현해봤습니다.
해파리의 가사도 ‘너’에서 후반부에는 ‘나’로 변화하는데, 이런 지점이 아트워크에서는 어떻게 구현되었을까요?
mareykrap: 저는 이 가사의 화자가 의도적으로 조금 모호하게 그려졌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해파리의 입장에서 윤진 씨의 마음을 알아준다는 내용처럼 들리기도 하고, 윤진 씨의 입장에서 해파리를 이해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윤진 씨가 해파리 속에 들어가서 같이 둥둥 떠다니는 장면은 해파리가 되고 싶다던 허윤진 씨를 표현한 장면이기도 해요. 윤진 씨가 아예 해파리가 되지는 못하지만 그저 해파리 속에서 잠시 떠다니는, 윤진 씨의 해파리에 대한 잠깐의 관찰이나 상상, 혹은 휴식의 시간을 담으려 했어요. 하이라이트 구간인 “숨쉬느라 바쁘니 / 내가 대신 알아줄게”에서는 해파리는 등장하지 않고, 윤진 씨 단독으로 등장합니다. 윤진 씨와 해파리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서로가 동일시되는 느낌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때 윤진 씨가 입고 있는 드레스 의상도 해파리의 곡선을 많이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이전 인터뷰에서 수작업을 할 때 ‘질감’에 대해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신다고 하셨어요. 평소 작업을 하실 때 예람 님께서 특히 더 신경 쓰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그 부분이 이번 작업에는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었는지도 궁금합니다.
mareykrap: 매 작업마다 스스로에게 어느 정도 신선한 충격이 있을 것. 이전 작업을 되풀이 하지 않을 것. 해당 작업에 꼭 맞는 방법을 고를 것.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기존의 스타일이 있다고 해서 꼭 그 방식을 되풀이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매 프로젝트마다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이번 ‘해파리’ 작업에서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상상하고 그리다 보니 해파리 같은 생명체와 인체가 함께했을 때 어떠한 재밌는 포즈들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해주신 것처럼 질감 부분에도 신경을 많이 쓴 것이 사실입니다. 처음 요청을 받았을 때에도 그림의 질감을 잘 살려달라고 해주셔서 한 프레임 안에 다양한 질감을 섞어서 작업했습니다. 또 윤진 씨의 손 글씨가 들어가는 위치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손글씨가 펜으로 써져 있다 보니, 자칫 하면 배경의 러프한 질감과 어울리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배경과 같이 글씨에도 움직임을 주는 식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제일 신경 쓴 부분은 각각의 해파리 디자인 그리고 허윤진 씨와 해파리가 어떻게 함께하고 있을지에 대해 가장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뮤직비디오 결과물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드셨는지, 이번 작업에 대한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mareykrap: 우선 너무 좋은 곡에 참여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섭외 단계에서 허윤진 씨도 제 그림을 보시고 좋아해주셨다고 들었고, 오랜만에 전체 풀 애니메이션으로 작업한 뮤직비디오였어서 힘들지만 정말 즐거웠던 작업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부터 제작까지 참여한 작업이라 애정도 남다릅니다. 담당자셨던 쏘스뮤직 유록 님께서도 작업 내내 배려해주시고 잘 도와주셨고요. 아티스트가 작업한 좋은 곡에 저의 또 다른 세계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고, 감사한 일인 것 같습니다.
이전부터 K-팝 및 R&B 아티스트들 분들과 다양한 협업을 해오셨는데, 음악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예람 님이 느끼시는 바는 무엇인가요?
mareykrap: 어렸을 때부터 항상 등교 전과 하교 후에 매일 ‘MTV’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랬던 제가 이 분야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이 사실 가끔 믿기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 뮤직비디오 정말 멋있었어.’ 하면서 여러 번 찾아보는 뮤직비디오들이 각자 한두 개쯤 있잖아요. 음악을 비주얼라이징하는 과정은 멋진 음악을 더 각인시킬 수 있도록 시각적인 충격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시각적인 잔상을 만드는 거죠. 어느샌가 저의 목표가 된 것 같아요. 음악을 들었을 때 드는 상상을 구체화하는 작업이기도 한데, MBTI의 ‘N’ 성향이 100에 가까운 저는 상상을 구체화하는 이 작업이 정말 너무나도 즐겁습니다. 즐거운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인 것 같아요. 물론 어려운 순간들도 많지만 비주얼라이징 작업은 저를 다시 꿈꾸게 해줍니다. 상상한 것이 눈앞에 현실로 실현이 되는 것을 보다 보면 ‘세상에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몇 년 사이 문득 깊게 와닿는 점이 하나 있는데요. 어떠한 소중한 곡의 비주얼라이징을 저에게 맡겨주신다는 것 자체가 저를 그만큼 믿어주신다는 거잖아요. 그 믿어주시는 마음이 요즘에 저에겐 너무 감사하게 와닿고 정말 소중합니다. 그래서 인연이 닿는 곡과 프로젝트는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후회를 남기지 않고 작업하려고 해요. 그동안 저를 믿고 작업을 맡겨주셨던 분들 그리고 작업을 재밌게 봐주셨던 분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요. 2025년 행복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모두 꿈꾸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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