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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해인
사진 출처여자친구 X
디자인김민경

“조금만 기다려 줘 내가 갈게”. 지난 1월 17일부터 3일간 서울 올림픽홀에서 열린 여자친구 데뷔 10주년 콘서트 ‘GFRIEND 10th Anniversary ‘Season of Memories’’에서, 학교 교실 속 여자친구의 모습을 담은 오프닝 VCR이 마무리될 쯤, 배경음악으로 ‘지금 만나러 갑니다 (Eclipse)’의 일부가 흘러나왔다. 이후 공연 타이틀이 등장하고 암전 속에서 학교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 종소리가 울릴 때, 모두 단숨에 알 수 있었다. 여자친구가 돌아왔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종소리가 나오는 순간만큼은 ‘우리가 사랑했던 여자친구의 모습 그대로구나.’라는 감정이 들길 바랐어요.” 유주가 전했듯 그 짧은 종소리는 ‘유리구슬’부터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u)’, ‘시간을 달려서 (Rough)’에 이르는 여자친구의 그 시절, ‘학교 3부작’의 정취를 순식간에 불러냈다. 공연의 첫 곡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u)’의 시작과 함께 여섯 멤버가 무대를 걸어 나와 “널 향한 설레임은”을 부르며 힘차게 팔을 뻗어 돌렸다. 여자친구의 그 군무가 돌아온 것이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자친구는 그때와 똑같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쏘스뮤직 퍼포먼스디렉팅팀 팀장 박소연 디렉터의 설명처럼 공연 초반에는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u)’, ‘너 그리고 나 (NAVILLERA)’, ‘귀를 기울이면 (LOVE WHISPER)’ 등 ‘파워청순’으로 일컫어지며 여자친구 특유의 정체성을 전달하는 곡들이 이어졌다. 박소연 디렉터에 따르면 “팬들이 온전히 과거를 회상하고 무대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한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10주년을 맞이한 여자친구 멤버들이 데뷔 초 발표한 노래를 여전한 기량으로 선보인 동시에, 오랜만의 만남이 주는 애틋함이 더해져 버디들에게 어떤 향수를 소환했다. 과거의 노래들이 추억을 상기시켰다면, 새롭게 선보이는 무대들은 공연의 풍부함을 더했다. “제가 버디였어도 보고 싶을 것 같아 고민이 없었어요.” 소원이 이번 콘서트를 통해 첫 오프라인 무대를 선보인 ‘Apple’과 ‘MAGO’를 세트리스트에 포함한 배경을 설명하자 신비가 덧붙였다. “아무래도 팬데믹에 발매된 곡들은 버디들이 실제로 보지 못했던 무대들이라, 이번에 눈으로 잘 담아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화이트에서 블랙으로 바뀐 멤버들의 의상부터 콘서트를 위한 강렬한 편곡이 2부의 전환을 알렸다. 여자친구 멤버들이 팔을 길게 뻗는 동작을 활용한 ‘RAINBOW’, ‘FLOWER’, ‘Only 1’ 퍼포먼스가 이어지며, 여자친구 특유의 화려함이 공연 현장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밤 (Time for the moon night)’은 사실상 앙코르 전 엔딩 곡으로 염두에 두고 기획했어요.” 콘서트 전반의 기획에 참여한 쏘스뮤직 이준성 Head of Production이 세트리스트의 의도를 설명하며 덧붙였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후반은 여자친구의 ‘격정아련’ 정서를 끝까지 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간 발표된 여자친구 뮤직비디오를 역순으로 재생한 ‘Snowflake’ VCR을 통해 팀의 역사를 상기시키고, 그 끝에 시계 바늘 모티브의 무대장치를 배경으로 데뷔 초반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착용한 여섯 멤버가 ‘시간을 달려서 (Rough)’를 부르면서 고조된 분위기는 ‘교차로 (Crossroads)’, ‘해야 (Sunrise)’와 ‘밤 (Time for the moon night)’ 등으로 이어지며 ‘격정아련’을 현재로 가져왔다. 발매 당시 과거와 현재를 잇는 의미가 됐던 ‘교차로 (Crossroads)’는 다시 그때의 여자친구와 지금의 그들을 잇게 되었고, ‘시간을 달려서 (Rough)’의 가사, “우린 결국 만날 거야”는 여자친구가 버디에게 하는 약속을 이룬 공연의 심정적인 하이라이트였다. 앙코르 전 공연의 마지막 두 곡, ‘해야 (Sunrise)’와 ‘밤 (Time for the moon night)’을 붙인 이유에 대한 이준성 Head of Production의 설명은 이 공연이 버디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준다. “지난 ‘Go Go GFRIEND!’ 콘서트에서 순서가 붙어 있었고, 팬분들도 두 곡을 세트처럼 생각하시다 보니, 이번에도 그렇게 배치하게 됐어요.” 멤버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두 곡에서 손끝과 팔의 움직임을 맞춰 섬세하며 화려한 안무를 선보였고, 관객들은 “엄지야!” 하며 멤버를 향해 응원법을 외치거나 후렴구를 따라 부르는 것으로 화답했다. “오랜만에 돌아오는 무대인 만큼 ‘역시 여자친구’라는 말을 듣고 싶었고, 멤버들 모두 한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소원의 바람처럼, 공연 내내 버디들이 느낀 인상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친구’의 무대였다.

최근 배우로 활동 중인 소원은 “춤을 출 수 있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 혼자 먼저 나와 연습을 시작”했고, 멤버들과 스태프 모두 “할 거면 제대로 해보자.”, “대충은 없다.”는 기조가 흘렀다고 이준성 Head of Production이 전했다. 이처럼 멤버들은 각자의 활동과 콘서트 연습을 병행하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공연에 필요한 체력을 기르기 위해 따로 운동까지 하며 공연 준비에 집중했다. “체력을 생각하며 세트리스트를 기획하기보다, 만족스러운 세트리스트에 맞춰 체력과 노력을 끌어올리는 연습을 했어요.” 유주의 말은 공연에 대한 멤버들의 의지가 어땠는지 드러낸다. “멤버분들이 서로 함께했던 시간이 있어서인지, 마치 어제도 함께했던 것처럼 금방 호흡이 맞아 갔어요. 생각보다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며 큰 어려움 없이 준비를 마칠 수 있었어요.” 박소연 디렉터의 소감처럼 멤버들의 케미스트리는 공백의 시간을 뛰어넘어, 좋은 퍼포먼스를 완성하는 힘이 됐다. 박소연 디렉터는 “안무를 다시 기억해내고 몸에 익숙해지는 것, 여섯 명이 안무의 디테일을 맞추는 과정이 처음에 쉽지만은 않았어요.”라며 멤버들이 다시금 안무를 맞추고 수록 곡 무대까지 상기시키는 건 어려운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멤버들은 특유의 팀워크로 공연을 완성시켜 나갔다. 공연 전일 진행된 리허설 현장에서도 멤버들은 자유로이 의견을 주고받았고, 한 멤버가 “한 번 더 맞춰봐도 될까요?”라고 제안하면 모두 흔쾌히 응하며 적극적으로 동선과 타이밍을 맞췄다. “멘트도 맞물리지 않으면서 비는 타이밍 없이 매끄럽게 잘 흘러가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신비의 기억처럼 여자친구 멤버들은 본 공연 중 퍼포먼스가 진행되지 않을 때는 현장의 관객들과 능숙하게 소통하고, 자연스러운 ‘티키타카’를 보여주며 공연을 지루할 틈 없이 만들었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버디가 함께 쌓아오며 이룬 시간의 힘은 유주의 말처럼 긴 러닝 타임의 공연을 해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중간중간 체력이 부족할 때, 함께 손을 잡는 안무에서 일부러 더 세게 잡으며 서로에게 힘을 주고받았던 기억이 나요.”

“대면 콘서트가 정말 오랜만이어서 모든 관객분들이 만족할 수 있는 콘서트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은하의 바람에서 알 수 있듯, 이번 공연은 여자친구와 버디가 팬데믹 이후 처음 모인 자리이기도 했다. 그래서 세트리스트부터 퍼포먼스, 팬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고려한 동선까지, 공연은 멤버들의 아이디어와 고민으로 채워졌다. “멤버들이 핸드마이크를 들고 객석의 팬들을 찾아간 ‘Tarot Cards’와 ‘물꽃놀이 (Water Flower)’ 또는 ‘바람 시리즈’처럼 여러 곡을 묶는 구간을 제안했어요.” 이준성 Head of Production은 여자친구의 그런 세심함과 의지가 이번 콘서트를 단순한 스페셜 무대를 넘어 “하나하나 공을 들인 공연”으로 완성된 배경이라 전했다. “기념비적인 공연인 만큼 타이틀 곡은 최대한 보여드리고 싶었고, 타이틀 곡 못지않게 사랑받던 수록 곡도 세트리스트에 꼭 포함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엄지의 말처럼 공연을 빽빽이 채운 스무 곡이 넘는 노래와 꽉 채운 퍼포먼스는 10주년의 의미를 잘 살리고픈 멤버들의 바람이 모인 결과였다. 여자친구 공연만의 ‘칼군무’를 경험할 수 있는 ‘핑 (Crush)’이나 ‘RAINBOW’ 무대, 새로운 댄스 브레이크를 선보인 ‘FINGERTIP’, 여전한 에너지를 선사한 ‘유리구슬 (Glass Bead)’ 발차기 안무를 만날 수 있었던 이유일 테다. 여기에 1일 차 ‘TRUST’로 시작해 3일 동안 다른 곡을 선보인 발라드 구간, 지난 온라인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해서 더 의미 있는 ‘Here We Are’처럼 부르는 이와 관객 모두 가사에 집중할 수 있는 곡들이 공연의 다채로움을 더했다. “특히 앙코르 무대의 엔딩은 공연에서의 만남이 주는 즐거움이라는 감정도 담고 싶었거든요. ‘Always’는 멤버들의 반응이 좋았던 곡이자 가사에도 참여한 곡인데, 앨범에 수록할 때부터 이번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고려하고 있었어요.” 이준성 Head of Production이 ‘Season of Memories’ 앨범의 수록곡 ‘Always’가 엔딩 곡으로 선정된 비하인드를 전했다. 조금은 경쾌한 분위기로 “늘 변함없이 너의 곁에 있어 줄게”라고 말하는 ‘Always’는 공연의 마지막이 필연적으로 선사하는 아쉬움보다는, 10주년이라는 소중한 기념일의 의미로 치환될 수 있게 만들었다.

“멤버 한 명씩 이름을 불러주는 버디들의 응원 소리가 가장 듣고 싶었는데, 버디들이 ‘떼창’과 응원법을 너무 잘하셔서 행복했습니다.” 예린의 소감처럼 공연에서는 버디들의 엄청난 함성과 응원이 끊이지 않았다. 다만 그 열렬한 환호는 단순히 오랜 기다림에 대한 반가움뿐만 아니라, 여자친구가 무대를 통해 보여준 어떤 진심과 믿음이 닿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준성 Head of Production이 10주년 공연에 대한 멤버들의 마음을 이렇게 정리했다. “현실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공연을 준비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모두의 의지가 정말 높았어요. 멤버들이 항상 여자친구를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었기에, 퍼포먼스를 빠르게 맞출 수 있었고 공연을 가능케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데뷔 10주년에 다시 돌아온 여자친구의 공연.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문장이, 그렇게 완성되었다. 여자친구와 버디의 다정한 계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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