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는 무엇이든 대충 하는 법이 없다. 2022년 기타를 배워보고 싶다며 ‘언젠가 기타로 무대에 서는 날이 올까?’ 꿈꿨던 제이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고 굳은살이 몇 번이나 벗겨져 새살이 돋는 시간을 버텨내며 연습했다. 2023년 ‘위버스콘 페스티벌’에서 잔뜩 긴장해 첫 기타 연주를 선보이던 그는 이제 전 세계를 도는 투어, 수많은 대중이 지켜보는 시상식에서 종종 기타를 치는 무대를 선보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제이는 기타를 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항상 기타와 함께였고, 먼 미래에도 그럴 것이라고 단단한 목소리로 기타에 대한 애정을 말했다.
어린 제이와 기타의 첫 만남
제이: 어렸을 때 처음 배운 기타는 통기타였어요. 보통 통기타를 처음 배우면 ‘국룰’로 연습하는 가벼운 연주 곡들 위주로 많이 치곤 했어요. 일본 기타리스트 코타로 오시오의 ‘황혼’, ‘Wind Song’ 같은 곡들이요. 실용음악 학원 같은 곳에 다녔는데, 그땐 부모님이 한 번 가보라고 했던 거라 지금 정도의 열정으로 깊게 파고들지는 못했어요.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기타를 치다가 2~3년 전부터 기타를 다시 시작했어요. 최근에 록 음악을 많이 듣게 되면서 기타에 더 관심이 갔거든요. 특히 일렉 기타의 찢어지는 것 같은 고음 소리를 들을 때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라 배워보고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세상에 같은 기타는 없다
제이: 클래식 기타는 말 그대로 클래식이나 잔잔한 분위기의 곡들을 치기 좋고, 통기타는 대중음악에서 많이 쓰이는 만큼 다방면으로 밸런스가 좋아서 여러 장르에 활용할 수 있어요. 일렉 기타는 이 둘과는 또 많이 다른데, 통기타나 클래식 기타를 잘 친다고 해서 일렉 기타를 잘 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사실 같은 종류의 기타라고 해도 조금씩 달라요. 만약 다 똑같다면 일렉 한 개, 클래식 한개, 통기타 한 개씩만 갖고 있어도 될 텐데, 저마다의 소리가 다르다 보니 점점 많은 기타를 준비하게 됐어요.(웃음) 작업실 안에 있는 기타만 해도 6대이고, 다른 곳에도 더 있어요. 개인적으로 기타리스트는 섬세하고 예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기타에 쓰이는 목재 하나, 달린 부품 하나만으로도 소리가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소리도 소리지만, 영감적인 측면에서 여러 기타를 구매하게 돼요. 잡는 것마다 영감이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초창기에는 범용성에 중심을 두고 샀다면, 기타를 조금은 더 잘 칠 수 있게 된 요즘은 장르나 스타일에 특화된 것들을 구매하고 있기도 해요. 록 할 때 쓸 기타, 재즈 할 때 쓰는 기타 이런 식이죠.
제이가 소개하는 ‘최애’ 기타
제이: 가장 최근에 산 주문 제작 기타 ‘베스퍼’가 가장 애정이 가요. 스펙, 나사 하나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선택했거든요. 커스텀 기타를 ‘시그니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조금 독특하고 괴상한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기타의 외양, 스펙과는 많이 달라요. 멀리서 봐도 저건 ‘제이 기타다!’ 할 수 있게 정체성을 부여하고 싶어서 엔하이픈의 뱀파이어 콘셉트로 ‘베스퍼’를 만들었어요. 바인딩*이 보통 흰색이 많은데, ‘베스퍼’는 검은색으로 해서 바인딩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해요. 또 기타 잡는 부분인 네크**는 두께, 모양이 정말 많거든요. 보통 네크가 두꺼우면 빈티지한 소리가 나는데, ‘베스퍼’는 특이하게 소리는 빈티지한데 네크는 엄청 얇게 되어 있어요. 기타에 달린 픽업***도 해당 브랜드에서 취급하지 않는데 제가 골라서 넣은 거죠. 사실 저 기타 모델에서 저 색깔도 나오지 않는 거라, 저렇게 생긴 기타는 전 세계 한 대뿐이지 않을까요? 외양 외에 스펙적인 측면에서는 제가 여태까지 기타를 쳐오면서 ‘이런 건 편했고, 이런 건 불편했다’ 느꼈던 데이터들을 반영해서 만들었어요.
*바인딩: 기타의 몸체나 네크의 주변에 붙이는 장식 테두리로서, 악기의 각을 보호하기 위한 것.
**네크: 기타의 몸체 밖으로 길게 뻗어나온 부분.
***픽업: 악기의 진동을 받아들여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부품.
제이의 아지트
제이: 작업실은 제게 컴포트 플레이스(comfort place) 같아요. 쉴 때도 항상 여기 와 있고, 웬만하면 여기서 지내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라서 익숙한 보금자리 같은 곳이죠. 멤버들은 작업실에 놓을 물건들이 많진 않은 편이라서 다 같이 쓰는 공간인데도 제 물건이 좀 많죠. 제가 기타 부품이나 액세서리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사실 기타는 비주얼적으로 차지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스트랩도 예쁜 걸 골라서 사요. 다양한 상황, 다양한 장르, 다양한 의상에 맞춰서 달 수 있도록 많이 사두는 편이에요. 페달보드, 스트랩, 기타를 사다 보니 작업실 공간이 부족해져서 공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입니다.(웃음)
기타가 가져다준 변화
제이: 기타를 치면서 되게 계획적으로 바뀐 것 같아요. 취미 생활은 제가 시간을 만들고 쪼개서 해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기타라는 악기는 벽 하나를 넘으면 그 뒤로는 정말 즐거운 악기인데, 그 벽이 정말 높다고 생각해요. 그걸 넘는 과정에서 끈기도 생기고 훨씬 마음이 좀 너그러워지는 것 같아요. 도 닦듯이. 스스로 그 벽을 넘었다고 느낀 순간은 얼마 전 ‘2024 MAMA’ 무대쯤이에요. 그땐 ‘이거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청춘 밴드부, ‘2024 MAMA’
제이: ‘2024 MAMA’에서 선보인 ‘투엔제’의 ‘왼손잡이’ 무대는 엔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여러 팬분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기도 했고, 다른 아티스트분들과 하는 건 처음이라 색달랐어요. 어렸을 때 밴드부 활동을 해보고 싶었는데, 연습생도 하고 있어서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됐었거든요. 뜻 맞는 친구들이랑 그런 청춘 같은 활동을 제가 해본 적이 없어서 항상 아쉬움을 갖고 있었는데,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었어요. 동아리 밴드부 하듯 정말 즐거운 시간들이었고 그냥 진짜 재밌게 연습했어요. 같이 악기를 좋아하는 동료들이다 보니 MAMA 무대를 준비하면서 기타 얘기, 음악 얘기도 종종 나눴고요.
기타 연주의 시작점, 그리고 전환점
제이: 제게 ‘2023 위버스콘 페스티벌’ 기타 무대는 정말 큰 도전이었어요. 제가 평소 본업으로 하던 규모의 무대에서 기타라는 취미를 사실상 처음 선보이는 순간이었으니까요. 엄청나게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살짝이라도 잘못하면 트라우마로 남아서 다음에 또 도전하기 어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기타를 칠 때 머릿속이 진짜 하얘져서 기억도 잘 안 나고 손이 움직이는 대로 맡겼거든요. 그래도 많은 연습량으로 어떻게든 극복해냈던 무대였어요. 다행히 운 좋게 ‘시작이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웃음) 그 시작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용기를 갖고 무대를 할 수 있었어요. 위버스콘이 시작점이었다면 전환점은 ‘GLAY 30주년 콘서트’ 무대예요.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불리는 밴드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게 큰 영광이었고, 기타에 대한 저의 열정이 어느 정도의 보답과 인정을 받았다고 느낀 순간이었어요. ‘내가 여태까지 노력해왔던 게 절대 헛된 일이 아니고, 정말 의미 있던 일이구나.’라고 느끼면서 미래에 대한 용기가 확실히 생겼어요.
알면 알수록 어려운 기타
제이: 처음보다는 분명히 실력이 늘었겠지만, 기타는 사실 알면 알수록 부족한 게 더 잘 보여요. 치는 기술뿐만 아니라 듣는 귀도 발전하다 보니까, 예전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했던 게 점점 아쉬워지더라고요. 기타 연습은 그냥 끝도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기타 외에도 다 적용되는 말이기도 한 것 같아요. 아무리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이라도 죽을 때까지 계속 연습해야 더 큰 발전이 있잖아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연습한다 해도, 모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걸 다 해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지금 손에 굳은살이 뜯기고 새살이 자란 상태거든요. 예전에는 2주에 한 번씩 굳은살이 벗겨졌는데, 연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 기간이 짧아져요. 새살은 완전 아기 피부라 연습하면 말도 안 되게 아프고 쓰라리죠. 또 제 손톱은 항상 한쪽은 짧고, 다른 한쪽은 길어요. 오른손은 줄을 쳐야 하고, 왼손은 줄을 잡아야 하니까요.
제이의 기타 연습 루틴
제이: 조금 무겁긴 하지만, 기타는 들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에요. 악기는 항상 눈앞에 보이는 곳에 두고, 편안한 마음으로 틈날 때마다 칠 수 있어야 연습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기타를 들고 다니기도 하지만 제가 가는 장소마다 한 대씩 두고, 안 들고 가더라도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해요. 답답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으면 보통 기타 연습을 하며 풀어요. 밴딩**** 하면서 기타를 치면 마치 소리를 지르는 느낌, 감정을 분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기타 연습할 때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틀리지 않는 것’. 기타는 조금만 틀려도 바로 티가 나는 것 같더라고요. 아직 전문가가 아닌 저의 기타 실력으로는 틀리지 않고 연습했던 대로 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밴딩: 현을 잡고 끌어올려 음의 높이를 올리는 주법.
멤버들과 함께하는 기타 취미
제이: 제가 정말 매일 기타를 치고 있다 보니까, 멤버들도 제가 기타 치는 것에 많이 익숙해져 있어요. 쉬는 날이든, 숙소에서든 항상 저는 기타와 함께 있으니까요. 제가 기타 치는 걸 보고 관심을 가졌던 멤버도 있어요. 예전에 제가 밤에 숙소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는데 니키가 와서 틱톡 같은 데에서 기타 치는 영상 하나를 보여주더니, “형 이거 알려주면 안 돼요?”라고 했어요. 감미로운 느낌의 연주 곡이었는데, 제가 그 영상을 보고 코드를 따서 그 자리에서 니키한테 알려주고 그랬었죠. 니키가 그때 기타를 처음 쳐본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도 되게 잘 쳤던 것 같아요.(웃음)
제이만이 할 수 있는 콘텐츠
제이: ‘Magnetic’, ‘MAESTRO’ 등 다른 그룹 분들의 곡을 기타로 연주해 영상을 올리기도 해요. 각자의 방식으로 좀 더 색다른 걸 보여주는 게 엔하이픈이라는 팀에게도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누구는 춤을 추고, 누구는 기타를 치면 엔진들도 더 다양한 걸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세븐틴 선배님의 ‘MAESTRO’ 커버도 제가 직접 제안했어요. 멤버들이 찍을 챌린지 영상을 보는데 이 노래를 기타로 쳐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스태프분들께 “이런 걸 연습해보고 싶은데 미리 그 부분만 잘라서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여쭤보고 음을 따서 연습했어요.

미래를 위한 기타
제이: 엔진들도 ‘제이가 기타 치겠지?’ 하는 기대를 종종 해주시는 것 같아요. 팬분들이 좋아해주시고 호응해주시니까 저도 기타를 계속 보여줄 의지가 생기죠. 다만 계속 무대 준비로서의 기타 연주만 하게 되면, 제가 사실상 제대로 기타 연습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계속 다음 무대를 준비하다 보니까 손가락 움직이는 속도만 빨라지고, 다른 성장은 잘 느껴지지 못했달까요? 그래서 올해에는 순수하게 기타 연습에도 조금 더 몰두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도 있어요. 기타를 100% 저의 본업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본업을 대하듯 진실한 마음으로 임하려고 해요. 기타만큼은 평생 가져갈 것 같아요. 저의 음악 인생을 좀 더 길게 가져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기타라고 생각해요. 기타를 그래서 시작한 것도 있어요. 미래를 위해서.
저마다의 ‘기타’를 발견하길 바라며
제이: 제가 하나에 빠지면 끝까지 가는 스타일이에요. 제 피와 살같이, 저의 일부같이 느껴지는 존재가 생겼다는 게 정말 좋아요. 기타는 항상 저의 마음을 잡아주는 버팀목이기도 해요. 살면서 삶이 건강하지 않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나 자신이 되게 애매하게 느껴질 때인 것 같은데, 그런 부분만큼은 기타가 제게 확실한 정체성을 부여해줘요. ‘제이 하면 기타야.’, ‘나는 이런 사람이야.’ 이렇게요.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님이 본인이 밴드 하는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밴드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씀하시는데, 저도 그런 것 같아요. ‘기타를 치면서 이렇게 살고 있으면 되게 즐거워요!’라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보실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건, 무엇 하나에 열정을 갖는 것은 사람을 건강해지게 하고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다는 거예요. 제겐 그런 열정이 기타지만, 꼭 기타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그런 것을 하나씩 찾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