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이후 일본 대중음악 씬에서 가장 거대한 ‘게임 체인저’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을 거론할 것이다. 아직도 나는 그와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큼지막하게 실려 있던 재킷의 삽화가 자아낸 호기심으로 집어든 앨범 ‘diorama’ 속 결과물들은, 앞으로 그의 커리어를 좇아야 하는 일종의 의무감을 안겨주는 미개척의 영역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이 데뷔작이 일으킨 나비효과는, 10년 뒤 J-팝의 경향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바로 요네즈 켄시에 대한 이야기다.
요아소비나 요루시카, 아도와 같은 스타들의 잇따른 탄생을 겪으며 ‘보컬로이드’와 ‘우타이테’가 어느덧 주류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은 2025년. 요네즈 켄시는 이 서브컬처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주역이라는 점에서 2000년대 이후 J-팝 씬에 큰 흔적을 남겼다. 그는 2009년부터 일본의 동영상 사이트 ‘니코니코 동화’에서 하치라는 이름으로 ‘マトリョシカ’, ‘パンダヒーロー’ 등의 노래를 발표하며 이르게 주목받았고, 손수 작업한 일러스트들도 호평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본격적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가상 세계를 벗어나 초창기의 스타일을 자신의 목소리로 옮겨낸 ‘diorama’, 메이저 레이블 계약과 함께 본격적으로 리얼 세션을 도입하기 시작한 ‘YANKEE’를 통해 본격적으로 세상과 발맞춰 가기 시작했다.
록 팬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스타로서 공고히 자리매김하던 요네즈 켄시가 임계점을 돌파하며 일반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그 존재감을 알린 데에는 ‘Lemon’의 역할이 컸다. 드라마 ‘언내추럴’의 주제곡이기도 했던 이 곡은, 죽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볍지 않은 언어로 채색하며 많은 이들의 마음속을 그만의 정서로 물들였다. 그렇게 타이업에서의 파괴력이 검증되며, 다양한 분야의 엔터테인먼트가 그에게 본격적으로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최근작 ‘LOST CORNER’는 그러한 흐름의 절정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애니메이션 ‘체인소 맨’의 주제가 ‘KICK BACK’, 게임 ‘파이널 판타지 XVI’의 테마 송 ‘月を見ていた’, 일본 조지아 CM 송으로 사용된 ‘LADY’,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요청을 받아 만들어진 ‘地球儀’까지. 하나같이 작품과 좋은 합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만의 정체성을 결코 놓치지 않으며 흥행과 내실을 함께 챙기는 데 성공한 수작들이다.
그렇게 바쁜 활동이 이어지는 동안, 한국의 대중은 그를 향한 환영식 준비를 일찌감치 끝냈다. 요네즈 켄시는 최근 몇 년간 한국에 불어닥친 일본 음악 붐 이전부터 이미 적지 않은 인기를 구가하던 팝스타였다. 일본 아티스트들의 유례없는 내한 러시가 이어진 2024년의 끝자락에 전해진 소식에 우레와 같은 환호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새 앨범을 기념함과 동시에 처음으로 돔에 입성한 ‘KENSHI YONEZU 2025 WORLD TOUR / JUNK’의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성사된 이벤트. 이틀간의 인스파이어 아레나 공연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규모였음에도, 많은 이들의 기대감을 반영하듯 순식간에 매진되며 그 영향력을 실감케 했다.
공연 2시간 전에 도착했음에도, 이미 티셔츠를 착용하거나 타월을 두르고 있는 팬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실내로 들어서자 관객들의 두근거림이 모여 굉장한 열기가 감지되었고, 시간에 맞춰 조명이 암전되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새빨간 조명과 함께 비주얼 아트가 펼쳐지며 스타트를 끊는 곡, 바로 ‘RED OUT’이었다. 강렬한 등장에 장내는 환호로 뒤덮였고, 곧바로 이어진 ‘消えろ’의 떼창을 통해 우리 모두 요네즈 켄시가 지배하는 공간에 진입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힘찬 브라스를 필두로 10명이 넘는 댄서들이 함께 뮤지컬과 같은 무대를 꾸몄던 ‘感電’, 파란 조명을 통해 분위기를 일신함과 동시에 환호를 적극 유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マルゲリータ’를 마친 후 그는 “첫 한국이라 기쁘네요. 끝까지 함께 즐겼으면 좋겠습니다!”라며 힘껏 인사를 건넸다. 이어 하치 시절의 흔적이 비교적 크게 남아 있는 ‘メランコリーキッチン’, 인트로 피아노 세션을 더해 레코딩과는 색다른 무드를 자아낸 ‘LADY’가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댄서들이 화려한 군무가 경쾌함에 힘을 더한 ‘さよーならまたいつか!’ 말미의 깨알 같은 피스 사인을 보고, 이렇게 환하게 웃는 얼굴이 있는 사람이었구나 싶어 괜스레 두근거리기도 했다.
요네즈 켄시는 “처음으로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정말 뜨거운 열기가 느껴집니다. 오랫동안 한국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드디어 오늘 이렇게 오게 되어 기쁩니다. 처음 방문하는 곳이라 한국 팬분들이 저를 어떻게 받아주실지 조금은 걱정되었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오늘은 제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날인 것 같습니다. 함께 노래를 불러주실 때, 언어가 다르다는 점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함께 불러준다는 그 사실 자체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꼭 다시 올 테니까 그때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더불어 큰 환호에 너무 기뻐 좀처럼 말을 이어갈 수가 없다며 어떻게든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멘트 후 그의 목소리를 오롯이 감상할 수 있었던 ‘地球儀’, 불빛을 든 댄서들이 뮤직비디오를 연상시켰던 ‘Lemon’, 뮤직비디오를 동반해 보다 극적인 광활함을 선사한 ‘海の幽霊’과 같은 곡들이 이어지며 공연장에 온기를 흘려보냈다.
공연은 어느덧 클라이맥스를 향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곡 특유의 무기력함을 재현한 ‘毎日- Every Day’를 지나 시작된 ‘LOSER’의 기타 인트로는 남은 에너지를 모두 불태우라는 신호와도 같았다. 여기에 배턴을 이어받아 모두를 열광으로 물들인 것은 바로 이날의 하이라이트 ‘KICK BACK’이었다. 곡 후반부 무렵 요네즈 켄시가 준비된 핸드캠으로 자신과 퍼포머를 비추었고, 그 날것의 모습이 그대로 스크린에 투사되며 전에 없던 역동성을 부여했다. 흐름이 끊길세라 기타를 맨 후 그가 번쩍 머리 위로 올린 것은 바로 두 손가락이 만드는 ‘ピースサイン’. 상승 기조의 기타 리프가 로커로서의 존재감을 치켜 세우며 실내를 록 페스티벌의 현장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달아오른 분위기에서 하치 시절 발표했던 ‘ドーナツホール’을 배치해 시작점의 자아를 꺼내들어 모두를 감회에 젖게 하는 구성은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이내 ‘がらくた’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마지막에 걸맞은 여운으로 공연 본 편을 마무리.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짜릿함이 온몸을 지배했던 후반부였다. 이후 약 10분여의 앙코르 요청 끝에 재차 등장해 비교적 최신 곡인 ‘BOW AND ARROW’와 ‘Plazma’를 선보인 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엔딩 크레딧과도 같은 ‘LOST CORNER’로 러닝타임을 마무리했다. 긴 기다림이 아깝지 않은, 현 시점의 톱 아티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낸 두 시간이었다.
한마디로 말해, 명확히 요네즈 켄시의 ‘지금’을 향하고 있는 라이브였다. 현재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씬을 강타하고 있는 그의 ‘압도적인 대중성’을 완벽히 무대로 구현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의 구축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음악’이라는 본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부가적 요소를 적절히 가미했다는 인상이었다. 애니메이션 ‘메달리스트’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스테이지 바닥 스크린에 마치 빙판과 같은 배경을 구현했던 ‘BOW AND ARROW’의 연출, 영화 ‘신 울트라맨’의 세계관을 연상케 하는 영상을 동반했던 ‘M八七’ 등 팬들이 원했던 감흥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배려가 이 공연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더불어 현대무용에 가까웠던 댄스팀의 안무는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즉흥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춤사위가 일정한 틀에 속박되어 있지 않은 그의 노래들과 어우어지며 이색적인 하모니를 선사했다는 점도 짚고 넘어갈 만하다.
13년 전 ‘diorama’로 그를 접했을 당시와 요네즈 켄시가 2만 2,000여 규모의 내한 공연을 펼치고 내가 그 현장을 취재하는 순간이 연결된다는 사실이 문득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온라인 공간에서 소통을 시작했던 아티스트와 팬들 역시 이렇게 큰 무대를 통해 음악적 여정이 확장되는 경험을 함께하는 기쁨은 더욱 남달랐을 것이다. 공연 말미에 울려 퍼진 ‘ドーナツホール’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강력한 아이덴티티를 폭발시킨 후에 되새기는 자신의 시작점. 이 대목을 통해 자연스레 구축된 음악적 서사에서 느껴지는 감회의 깊이는, 아마 그의 족적을 쫓아온 시간에 비례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의 흐름이나 기준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열망하는 것들을 좇아온 가수와 팬들이,
스스로 구축한 서사로 인해 그 구원의 영역이 대세가 된 시점에 맞닥뜨리게 된 기적과 같은 순간”
상기의 표현으로 그의 내한 공연을 정의하고 싶다. 더불어 이 기적처럼 찾아온 만남은, 우연의 영역을 넘어 모두가 각자의 인생을 충실히 그려왔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그와의 짧은 교감은 일단락되었지만, 앞으로도 요네즈 켄시 그리고 그곳에 있었던 2만 2,000여 명의 관객들은 언젠가의 재회를 염두에 둔 채 늘 그랬듯 각자 수많은 삶의 그림들을 질리지도 않고 그려나갈 것이다. 마치 지구본을 돌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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