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은 K-팝 팬에게도 익숙한 연례 행사가 되었다. K-팝 아티스트의 출연이나 공연 자체의 유명세는 물론이고, 유튜브라는 보편적 플랫폼을 통한 공식 스트리밍으로 전 세계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다는 접근성이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말 3일에 걸쳐 4~5개의 채널에서 동시에 쏟아지는 공연을 쫓아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약 150팀에 이르는 라인업 중에서도 가장 기대가 큰 무대를 6개만 뽑았다. 코첼라는 언제나 화려하고, 유명 아티스트만 뽑아도 두 손이 모자라다. 하지만 때때로 어떤 아티스트의 공연을 코첼라에서 꼭 봐야 할 이유가 생기기도 한다.

레이디 가가
대중문화에서 ‘나초를 데운다(Reheating Nacho)’는 표현을 종종 본다. 한국어의 ‘재탕’이라는 말과 통한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사람의 것일 수도 있고 자신의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새롭지 않은 아이디어의 재활용이라는 뜻이다. 레이디 가가의 새 앨범 ‘MAYHEM’이 초기작을 연상시키는 댄스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나초’ 비유가 등장했던 이유다. 아티스트 본인도 그 비유를 알았고, 최근 한 인터뷰에서 답했다. “내 나초는 애초에 내가 만든 내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레이디 가가는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다. 토니 베넷과의 첫 번째 듀엣 프로젝트는 2014년이었다. 솔로 작업에서도 음악적 확장을 보인 ‘Joanne’ 앨범이 벌써 9년 전이다. 2018년 영화 ‘스타 이즈 본’부터 주연급 배우로 활약한 것은 물론이고, ‘탑건: 매버릭’의 사운드트랙 같은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시기의 레이디 가가는 초창기의 에지를 언제든 꺼낼 수 있지만 동시에 모든 세대에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보컬리스트로 보인다. ‘Die With A Smile’은 이 조합의 상업적 파괴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가 라스베이거스 레지던스 공연으로 대표되는 대중적 성인 취향으로 수렴한다는 관측은 틀렸다. ‘MAYHEM’을 보라. 레이디 가가는 ‘괴물’ 시절로 언제든지 돌아가서, 비욘세와 테일러 스위프트가 각자의 장르에서 해내는 것과 같은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할 수 있다. 그가 2017년 헤드라이너 공연 이후 처음으로 코첼라에 돌아오기에 이보다 완벽한 타이밍은 없다. 원조집 나초 맛을 볼 준비를 하라.
*“My nachos are mine, and I invented them.”

엔하이픈
엔하이픈은 올해 코첼라 유일의 K-팝 보이밴드로 등장한다. 2016, 2022년 두 번 무대에 오른 에픽 하이, 2024년의 에이티즈 이후 3번째다. 팀 자체의 해외 대형 페스티벌 출연 역사로 보면, 2023년 서머소닉, 2024년 록 인 재팬 페스티벌에 이어 매년 다양한 관객을 만나는 기회를 만들고 있다.
특히 2024년 이후 엔하이픈이 미국에서 보여준 활약 덕분에, 한 해 동안 페스티벌과 공연 시장의 방향성을 선도하는 코첼라 무대의 반응이 더욱 궁금해진다. 앨범 ‘ROMANCE : UNTOLD’는 2024년 7월 빌보드 200 2위, 톱 앨범 세일즈 1위로 데뷔했다. 이후 톱 앨범 세일즈 차트에서 최근 2025년 3월 29일자 40위까지 36주간 빠짐없이 차트에 머무는 중이다. 공연 시장을 보면 빌보드의 2024년 결산 중 아티스트의 공연 매출을 집계하는 톱 투어 차트에서 50위를 차지했다. 전체 100위 안에 K-팝 아티스트는 4팀이고, 엔하이픈은 그중 2번째다.
이미 검증된 투어 레퍼토리와 팀워크는 K-팝에 익숙하지 않은 페스티벌 관객과 스트리밍 시청자에게도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좋은 자원이다. 최근 인터뷰에서 니키가 “우리를 모르는 분들에게 우리 음악을 들려주는 소중한 기회”라고 밝힌 것이 반가운 이유다. 코첼라는 현재 진행 중인 월드 투어와 올해 예상되는 새 음악 사이의 기분 좋은 가교가 될 것이다.
리사
블랙핑크는 2019년 코첼라에 처음 출연했고, 2023년에는 K-팝 액트 최초의 헤드라이너 무대를 장식했다. 두 무대 사이에 2장의 앨범 ‘THE ALBUM’과 ‘BORN PINK’가 각각 빌보드 200 2위와 1위에 올랐다. 핫 100에서는 톱 40 히트 곡 5개를 남기며, K-팝 걸그룹으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2023년 가을까지 이어진 ‘BORN PINK 월드 투어’는 총 1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가장 성공적인 여성 그룹의 공연으로 남았다.
2023년 말 이후 블랙핑크 멤버의 솔로 활동 계획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리사는 실제 결과물이 가장 빨랐다. 2024년 6월 ‘Rockstar’가 솔로 시대를 공식화했다. 뒤이어 8월에는 로살리아와 함께한 ‘New Woman’이 나왔다. 돌이켜보면, 이 노래는 이들의 솔로 활동에 대한 기대를 대변하는 화려한 협업 목록의 수준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2025년 2월의 데뷔 앨범 ‘Alter Ego’ 발매, HBO의 인기 시리즈 ‘화이트 로투스(The White Lotus)’ 시즌 3 출연으로 그의 개별 활동은 정점에 올랐다. 코첼라는 앨범 트랙을 라이브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특히 유튜브 뮤직 나이트를 통해 공개된 ‘FXCK UP THE WORLD (FUTW)’의 스테이지 퍼포먼스는 리사의 단독 무대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인다.

제니
그룹의 성공 이후 멤버가 솔로 경력을 추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블랙핑크같지는 않다. 2024년 12월 로제의 ‘rosie’부터 2025년 3월 제니의 ‘Ruby’에 이르기까지 불과 3개월 동안 4명의 멤버가 거의 동시에 솔로 활동을 전개했다. 보통 우려할 법한 충돌보다 각자의 신곡이 나올 때마다 더 좋은 성적을 내며 화제성을 유지하는 시너지가 이어졌다. 각자의 활동이 충분히 작동하면서도, 팀 전체에도 도움이 되었으니, 드문 성과다.
그중에서도 제니는 앨범 전체의 공연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구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Ruby’ 발매와 동시에 ‘The Ruby Experience’라는 이름의 쇼케이스를 미국, 한국, 프랑스에서 진행했다. 여기서 제니는 앨범 수록 곡 15개를 모두 선보였고, 그중 대다수는 라이브 데뷔였다. 더불어 빌보드가 새롭게 시작한 ‘Iconic Stage’ 시리즈의 첫 아티스트로 ‘like JENNIE’와 ‘Handlebars (feat. Dua Lipa)’의 퍼포먼스를 공개했다.
이를 코첼라의 예행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당장 올해 하반기에 블랙핑크의 월드 투어가 예정된 일정을 감안하면, 각 멤버의 솔로 작품 중 앨범 전체를 일관된 무대로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을 수 있다. 특히 ‘Ruby’의 완성도는 이 기회를 더욱 소중한 것으로 만든다. 올해 코첼라의 일요일, 가장 놓쳐서는 안 되는 공연이 될 것이다.

트래비스 스콧
트래비스 스콧은 2017년 이후 8년 만에 사막으로 돌아온다. 그는 2020년 코첼라의 헤드라이너였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행사 전체가 취소되었다. 이후 2022년 재개된 페스티벌에 참가할 예정이었지만, 2021년 말 ‘ASTROWORLD’ 공연 사고로 출연이 좌절되었다. ‘ASTROWORLD’의 여파는 여전해서, 지금도 그의 대형 페스티벌 출연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있다. 단, 주최 측은 행사장의 디자인, 인파 관리 등 운영 능력 측면에서 충분한 경험과 자신감을 밝히고 있다.
동시에 트래비스 스콧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높다. 라인업 포스터를 보면, 그는 특정 날짜에 속하지 않지만 토요일 마지막 무대에 오를 계획이다. 대신 포스터 하단에 ‘Travis Scott Designs The Desert’라는 문구가 보인다. 이는 트래비스 스콧이 따로 선보이는 몰입형 전시 공간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편 그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음악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시대에 진입할 것이라 선언했다. 2023년 ‘UTOPIA’ 앨범 이후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나 개별 싱글이 히트했지만, 자신의 새로운 앨범 계획은 최근 알려지기 시작한 상태다.
따라서 코첼라가 트래비스 스콧의 신곡을 선보이는 기회가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아직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몰입형 전시가 음악과 연계되어 모을 화제도 기대된다. 그가 어떤 공연을 하길래 힙합 콘서트의 개념을 바꿨다고 하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번에 그의 새로운 시대를 직접 목격하는 것은 어떨까?
찰리 XCX
‘브랫(brat)’이 코첼라로 간다. 찰리 XCX는 2023년 코첼라에 출연한 바 있지만, 당시와 지금의 위상은 또 다르다. 그의 2024년 앨범 ‘Brat’은 1년 내내 화제를 모으며 대중문화 전반에서 가장 강력한 키워드가 되었다. 메타크리틱 95점으로 2024년 앨범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가장 많은 매체로부터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되었으며, 그래미 어워드에서 9개 부문 후보로 올라 3개를 수상했다.
트로이 시반과의 합동 투어나 단독 공연으로 명성을 얻은 에너지 넘치는 공연이 코첼라의 야외 무대에서 펼쳐지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특히 트로이 시반뿐만 아니라 ‘Brat’의 리믹스에 참여한 모든 아티스트가 잠재적으로 게스트 가능성이 있다. 찰리 XCX의 경력 전체와 밀접한 프로듀서이자 PC 뮤직 레이블의 설립자 A.G. 쿡도 올해 공연자 중 한 명이다. 라인업에는 또 다른 하이퍼팝 아티스트 아르카도 있다. 리사가 찰리 XCX와 협업을 원한다고 밝힌 적이 있는 것도 신경 쓰인다.
찰리 XCX는 자신의 생일 파티도 셀럽 이벤트이자 바이럴로 만들었던 사람이다. 코첼라는 브랫 시대의 완성 혹은 성대한 마무리가 될 것이다. 올해 헤드라이너를 제외하면 가장 뜨거운 무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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