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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나, 나원영(대중음악 비평가), 김복숭(작가)
디자인MHTL
사진 출처TVING

‘야구대표자: 덕후들의 리그 시즌 2’ (TVING)
정다나: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를 만들어온 전직 선수들과 남다른 팬심을 가진 야구 ‘덕후’들이 각 구단의 대표자가 되어 토론을 펼친다. KBO의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야구대표자: 덕후들의 리그(이하 ‘야구대표자’)’가 2025년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매번 VCR과 토론 키워드가 제시될 때마다 ‘2016년 신인왕’ 신재영,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언터처블’ 스타 투수 윤석민, ‘느림의 미학’ 유희관 등 전직 선수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생동감 있는 비하인드를 전하는 한편, 치과의사이자 30년 야구 팬인 유튜버 매직박, 30년 전 야구 굿즈를 갖고 있을 정도로 열정적인 지상렬처럼 ‘덕후’ 패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단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펼친다. 이처럼 전문성과 열정을 모두 보완하는 대표자 구성은 ‘야알못(야구를 알지 못하는 사람)’부터 ‘야덕(야구 덕후)’까지 아우를 수 있는 ‘야구대표자’만의 차별성이다.
‘야구대표자’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 코미디언 엄지윤 역시 시즌 2에도 합류했다. 매 회차 여러 구단을 직접 체험하는 엄지윤의 VCR과 이에 대한 대표자들의 리액션은 관중을 열광시키는 최고의 경기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의 생활과 구단 운영을 생생하게 전한다. 시즌 1에서는 ‘야알못(야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엄지윤이 던지는 촌철살인 멘트가 야구 팬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했다면, 시즌 2에서는 ‘야중알(야구를 중간 정도 아는 사람)’로서 엄지윤의 성장이 돋보인다. 2화에서 NC 다이노스의 영양사로서 활약하게 된 엄지윤은 직접 음식을 만들고 잔반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 선수들의 편식을 짚거나 메뉴 선호도 조사를 하면서 예능적인 순간을 만들어내며 선수들의 식습관과 관련된 비하인드를 전한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의 도핑 테스트를 위해 삼계탕에 들어가는 한약재 사용을 유의하고, 선수들의 다양한 컨디션에 맞출 수 있도록 보양식부터 다이어트식까지 폭넓은 식단을 구성하는 구단 영양사의 노고가 드러나기도 한다. 이처럼 ‘야구대표자’는 야구에 대한 전문적인 이야기와 팬들의 구단 사랑은 물론, 경기 뒤에서 야구단을 함께 만들어 가는 든든한 지원군들의 이야기까지 말 그대로 야구의 모든 것을 폭넓게 담는다. 올해 KBO가 개막 이후 역대 최소 경기 100만 관중을 기록하는 시기, ‘야알못’부터 ‘야중알’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야구 ‘덕질’의 즐거움이다. 

‘Vacation (feat. 김한주)’ - 세이수미
나원영(대중음악 평론가): 세이수미는 한국에서 지난 10여 년간 활동해온 밴드 중에서도 전기 기타를 가장 진지하고 열성적으로 활용하는 이들 중 하나다. 뜻깊은 활동 10주년을 기념하듯 정규 음반 ‘The Last Thing Left’와 커버 EP ‘10’을 발매했던 2022년을 전후로 녹음실과 기획사를 설립하며 자체적인 지속을 모색해온 이들이, 다가오는 월말에 반가운 신보를 낼 예정이다. 이번 EP의 제목인 ‘Time Is Not Yours’는 이들의 음악이 시간과 맺는 관계를 명쾌하게 담은 듯 느껴진다. 당신의 (또한 우리의) 것이 아닌 채 그저 흘러가거나 끝나버리는 저 모든 시간을 과연 어떻게 놓아주거나 남겨둘 수 있을지. 세이수미가 그간 능숙하게 다뤄온 주제들은 1990년대 미국 인디 록에 끈끈히 얽힌 향수도, 부산이라는 “오래된 동네(Old Town)”에 품은 애증도, 곡명을 인용하자면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도, 결국엔 상실 속에서 그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제시해줬으니까. 

그렇게 전작들이 지난날을 값지게 의미화하는 반추의 힘을 동력원으로 삼았다면, 이번 EP의 선공개 곡인 ‘Vacation’은 소개문에서 “이제 우리는 휴식할 때가 되었다!”고 말하면서도 뮤직비디오에서는 공회전 끝에 들판을 가로질러 앞으로 달려가는 자전거를 보여주듯이 나아가기를 택한다. 물론, 세이수미의 친숙하고 단단한 형식은 여전하다. 리듬 섹션이 반복을 위한 틀을 묵직하고 굳건하게 짜주면 각종 이펙트를 입힌 전기 기타로 소음의 강약을 은근하게 조절하고, 그렇게 스테레오 양쪽에서 서로의 톤과 리프를 주고받는 동안 팝 멜로디의 가창이 음향의 파도 위를 넘실대도록 하기. 이때 ‘Vacation’은 지난 음반의 ‘꿈에’가 김오키의 색소폰 연주를 추가하며 이 공식을 감동적으로 변주했듯, 이번에는 실리카겔의 보컬 김한주의 참여를 통해 세이수미 사운드의 미세 조정을 시험한다. 휴가철과 닮아 느릿한 편이나 긴장을 완전히 놓진 않은 속도감에 얹혀 컨트리나 블루스적으로도 느껴지는 리프가 곡 초중반의 이목을 끈다면, 두 목소리가 서로 감정을 맞추듯 “You Know What You Feel”을 따라 부르는 후반부에서는 시타르처럼 들리기도 하는 새로운 기타 소리가 들어오며 사이키델릭한 활기를 차차 끌어올린다. 연주를 끊임없이 되풀이하기보다 정점에 닿았을 때 일제히 끊는 결말에서, 내 것이 아닌 시간을 그런 만큼 주저없이 받아들이는 세이수미의 확신을 실감할 수 있다.

‘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김복숭(작가):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와 논란의 쇼맨, 일론 머스크. 그에 비해 빌 게이츠는 흔히 비즈니스 감각을 갖춘 ‘너드’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그런 빌 게이츠가 최근 회고록 3부작 중 첫 번째 책인 ‘소스 코드: 더 비기닝’을 출간했다. 이 책은 그의 회사가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기 전, 초기 삶에 초점을 맞춘다. 덕분에 우리는 종종 철저하고, 때로는 냉혹하다는 평가를 받는 테크 거물, 빌 게이츠를 보다 인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은 전기가 아니라 회고록이다. 그리고 빌 게이츠는 놀라울 만큼 솔직하고 열린 태도로 자신을 드러낸다. 가족과의 관계는 물론, 어린 시절의 심리 치료 경험까지 숨김없이 이야기하며 어두운 부분조차 감추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포장하려 들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비하에 가까운 시선으로 자신이 본질적으로 ‘문제아’였음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훗날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성공적인 인물이자 자선 활동에 헌신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건, 그 모든 성장의 배경에 전폭적인 지지로 그를 믿어준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시리즈의 다음 두 권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이 기술이나 비즈니스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점이다. 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그리고 성공 과정을 들려주는 이른바 ‘특권층’의 이야기에도 아직 염증을 느끼지 않았다면, 이 책은 충분히 쉽고 즐겁게 읽힐 것이다. 물론 자서전이라는 형식을 택한 그의 선택이, 오랫동안 부정적인 시선에 노출돼 온 자신의 이미지를 재구성하려는 계산된 움직임이라는 냉소적인 해석을 불러올 수도 있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자선가로서의 세월이 남긴 통찰과 겸손을 엿볼 수 있는 경험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어딘가 ‘위협적인’ 테크 거물들과는 분명히 다른 결의 인물이 남기는 잔상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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