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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BIGHIT MUSIC

그룹의 성공이 솔로 활동의 성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대중음악 역사만 훑어봐도 알 수 있다. 솔로 아티스트로서 음악적 성과를 인정받고 탄탄하게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 이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방탄소년단 제이홉(j-hope)의 행보는 확실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도 자기만의 서사를 만들어내며 인상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는 중이다. 특히 힙합을 중심으로 팝, R&B, 펑크(Funk), 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가 하면, 이를 유기적으로 융합하며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작년에 EP를 발표했던 제이홉은 올해에도 벌써 석 장의 싱글을 통해 왕성한 창작욕을 드러내고 있다. 각각 다른 스타일의 음악이 돋보이며, 일부 곡에는 쟁쟁한 참여진이 함께했다. 

Don Toliver - ‘LV Bag (feat. j-hope of BTS & Pharrell Williams)’
현대 대중음악계에서 힙합 아티스트가 명품을 과시하는 건 자기표현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명품은 그들이 음악으로 이룬 성취를 상징하는 도구다. 특히 힙합에서 패션은 주요 문화적 코드의 일부다. 다만 과거에 아디다스, 캉골, 팀버랜드, 푸부처럼 캐주얼한 브랜드가 힙합을 대표했다면, 이젠 루이비통, 구찌, 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텍사스 휴스턴 출신의 래퍼이자 싱어송라이터 돈 톨리버가 제이홉과 부른 ‘LV Bag’은 바로 루이비통을 소재로 삼은 곡이다. 2025년 1월 21일 파리에서 열린 ‘루이비통 2025 가을/겨울 남성 패션쇼’에서 피날레 음악으로 처음 공개되었다. 
힙합 스타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중 하나인 루이비통은 제이홉 역시 자주 착용해왔다. 그래서인지 그의 스타일과 개성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패션 아이템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이 곡에서 제이홉의 랩과 보컬은 돈 톨리버와 마찬가지로 음악에 완전히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가사는 단순하지만, 그만큼 현재 두 아티스트가 대중문화계에서 점한 위치를 직관적으로 알게 해준다. 그러니까 ‘LV Bag’은 돈 톨리버와 제이홉의 부와 지위를 대변한다. 돈 톨리버 특유의 사운드 스타일을 잘 반영한 프로덕션도 인상적이다. 섬세하게 배치된 신스와 베이스라인이 돋보이며 멜로딕한 트랩 비트와 랩 싱잉 그리고 몽환적인 R&B 스타일이 조화롭게 융합되었다. 프로듀서는 퍼렐 윌리엄스. 세월이 흘러도 그의 비범한 감각은 여전하다. 즉 클래스는 영원하다! 

j-hope - ‘Sweet Dreams (feat. Miguel)’
제이홉과 미구엘의 합동 작업이라니. 참여 아티스트 이름을 보고 놀란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워낙 대단한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피처링 작업을 자주 하는 아티스트가 아니어서이기도 했다(미구엘의 빛나는 발자취는 4월 16일 위버스 매거진에 게재된 칼럼 ‘미구엘, 얼터너티브 R&B의 아이콘’을 참고하시라.). 사랑에 빠진 감정, 특히 갈망을 섬세하게 표현한 ‘Sweet Dreams’는 제목처럼 이 노래는 달콤한 꿈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들을수록 제이홉이 참으로 절묘한 초빙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성을 위주로 한 미구엘의 개성 있는 음색과 보컬은 이전부터 꿈결 같은 사운드의 음악과 하나처럼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미구엘의 보컬로 ‘Sweet Dreams’가 시작되면 우린 꿈과 현실의 경계선 위에 서게 된다. 그리고 제이홉의 벌스(Verse)가 어우러지는 순간 달콤하면서도 아련한 여운을 남기는 멜로디에 빠져든다. 팝, R&B, 힙합이 사이좋게 섞인 음악 안에서 제이홉의 보컬은 랩과 노래를 교차하며 유영한다. 특히 그의 목소리는 따스한 손길처럼 다가온다. 마치 꿈속에서라도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듯이 말이다. 그래서 ‘Sweet Dreams’는 사랑에 대한 노래인 동시에 하루의 끝자락을 감미로운 위안으로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 그의 ‘달콤한 선물’과도 같다. 

j-hope - ‘MONA LISA’
제이홉의 솔로 음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트렌드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방탄소년단의 멤버로서는 음악 산업의 트렌드를 반영하는 K-팝의 최전선에 서 있는 동시에,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과거의 장르를 현대적인 감각과 결합한다. 자유롭다는 표현이 딱 맞겠다. 지난 2023년 래퍼 제이 콜(J. Cole)과 함께한 ‘on the street’나 두 장의 앨범 ‘Jack In The Box’와 ‘HOPE ON THE STREET VOL.1’ 같은 작품만 들어봐도 그렇다. 최근 싱글 ‘MONA LISA’ 또한 이 같은 제이홉의 행보를 고스란히 체감할 수 있는 곡이다. 
바탕이 되는 리듬은 여전한 트렌드 트랩이지만, 프로덕션의 중심인 건반 운용을 비롯하여 전반적인 그루브는 작금의 유행과 거리가 먼 스타일이다. 흡사 2000년대 초중반의 컨템퍼러리 R&B 혹은 팝랩 사운드를 듣는 듯하다. 이를 근간으로 쌓은 ‘MONA LISA’의 멜로디 구조는 매우 인상적이다. 반복되는 멜로디로 메인 후렴구가 자아낸 중독성이 포스트 후렴구와 벌스로 이어지며 기분 좋은 감흥을 선사한다. 그 안에서 제이홉은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예술 작품을 소재로 끌어와 매력적인 여성상을 재치 있게 풀어냈다. 이상의 부분들이 그의 음악을 듣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제이홉의 음악 세계는 전통에 대한 존중과 끊임없는 도전의 교차점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때때로 단순한 사운드를 넘어 하나의 메시지로 기능하기도 한다. 어쩌면 많은 팬들은 이러한 그의 음악을 통해 자신만의 ‘Hope World’를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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